시인의 정신 /천양희

2011.07.20 19:30

조옥동 조회 수:497 추천:57

시인의 정신

천양희



거짓은 화려한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진실은 분명히 있으면서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뚜렷이 있는 그것이 진실일 것입니다.

무엇이든 진실이 없는 것은 감동 없는 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겉모습이 아니라 속내용일 것입니다. 감동이란 공들인 마음이 없이는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시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공들이기가 곧 시의 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시든 소설이든 미싱으로 박아낸 것이 아니라 수바늘로 한 땀 한 땀 뜬 작품이라야 정신이 깃들게 된다던 어느 작가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렇듯 정신의 끌로 새긴 글이 마음을 채우는 감동일 것입니다. 옛 어머니들은 작은 골무 하나를 감칠 때도, 연 하나를 만들 때도 온 정신을 다해 공을 들였습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진정한 기원이며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 기원과 기도는 공들이는 마음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옛 시인들은 시가 잘되지 않거나 소원이 있으면 달의 정기를 들이마시며(吸月精) 좋은 글을 쓰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다 온 정신을 기울여 공들인 자세였을 것입니다.
언어가 짓는 집이 시라면 시의 공들이기도 마음과 마음이 모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살다 죽는 하루살이도 성충이 되기 위해 물 속에서 천일 동안 견디다 25번 허물을 벗은 뒤에야 하루살이가 된다고 합니다. 보잘 것 없는 미물도 그토록 치열하게 살다 가는데,

시인이 치열하지 않고 어떻게 감히 시를 쓸 수 있을까 싶습니다. 공들이지도 않고 고뇌하지도 않고 고독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감히 좋은 시를 쓸 수 있겠습니까. 시는 가장 낮고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높게 신음을 자아내게 하고 고통의 목소리를 삼키는 것입니다. 그 소리는 즐거운 고통이며 괴로운 기쁨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정신 있는 시인들은 시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현재를 발견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미래를 향해 눈을 크게 뜰 수 있도록 이끌어 가는 존재들입니다. 시인들이 할 수 있는 질문이란 이 시대에 시를 쓴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도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소설 <캔디드>의 주인공은 전쟁과 병, 재난과 생이별의 온갖 고난을 겪은 뒤에 ‘세상이 어찌되든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괴로움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시의 길을 헤쳐나갈 수 있겠습니까. 시 쓰는 일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시인들은 개기일식 같은 시를 원합니다. 개기일식이란 해와 달이 완전히 포개져 해가 달에 가려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시인이 해든 시가 달이든 시가 해든 시인이 달이든 개기일식처럼 시인은 시와 완전한 교감을 이룰 수 있기를 꿈꿉니다. 그러자면 시인은 끊임없이 예이츠 시인처럼 ‘생활은 낮게 생각은 깊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다면 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시는 시를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란 여행이자 귀향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을 때 시인은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들임을 새삼 절감했습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세상 속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눈을 크게 바로 뜨고 현실을 볼 수 있다면, 세계를 보는 눈은 더 크게 뜰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결핍을 더 잘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에서는 노을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해가 지자마자 캄캄해져 노을이 아예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노을을 볼 수 없는데도, 어느 나라보다도 노을에 대한 시(詩)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노을이 없다는 것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 때문일 것입니다.

시가 실재에 대한 결핍이라면 희생과 모험은 세상에서 가장 큰 자극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처럼 어떤 시도나 역발상도 새로운 시를 쓰는데 자극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슬픔까지도 시에서는 힘이 되고 어떤 경험도 선생이 됩니다. ‘슬픔이 시와 더불어 홀로 있게 하여라’던 시인 프로스트도 시인들은 슬픔을 거쳐 충만함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슬픔이나 아픔, 어떤 자극도 시의 자양분이 되고 기초가 되는 기둥이기도 하며 참신한 창조력을 일깨우는 큰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때도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소설은 <죄와 벌>이라 할 수 있고 플로베르의 모든 소설은 <감성교육>이라 할 수 있으며 엘리엇의 모든 시는 <황무지>라 할 수 있다면 지금 우리의 모든 시들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카뮈가 <이방인>을 출간했을 때 사르트르는 <이방인론>을 썼을 정도로 격찬했습니다. 출간 즉시 최대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방인>을 종전 후의 희대 걸작이라 말하며 이 시대의 문예창작 가운데서 이 소설은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방인이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이방인 같은 젊은 시인이 없을까요? 자기의 시가 가장 좋다고 자만하는 시인들의 정신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놀라운 시는 왜 보이지 않을까요? 권위를 부리고 헤게모니를 쥐려는 문학인들에게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자존심 강한 시인, 선비 같은 정신을 가진 꼿꼿한 시인. 끼리끼리 놀지 않고 혼자서 무소의 뿔처럼 갈 수 있는 시인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요즘은 시인들이 너무 편한지 아직 겨울도 아닌데 동면하는 시들이 있고, 낮잠 자듯 졸린 시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시인들이 너무 배가 부른지 시들이 비틀거리면서 제자리를 뱅뱅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장차 나라를 다스리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느냐’고 묻자 ‘언어를 개혁해야 한다’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우리 문단도 개혁이 필요하고 구조 조정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른 것 같습니다. 문예지들도 시인들로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부터 그렇기도 합니다.

신춘 문예나 각종 문예지 신인 등용 심사위원들이 대체로 남성 위주이고 그것도 모자라 독식에다 장기집권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들은 양산되지만 시의 수준은 제자리걸음입니다. 젊은 시인들은 특히 신인들은 위아래도 모르고 천방지축이고 늙은 시인들은 너무 도사연 합니다. 나이 들었다고 대가이겠습니까 시가 위대해야 대가일 것입니다.

시인들은 거듭 변신해야 하고 시는 거듭 변모해야 합니다. 문예지들은 새로운 기획으로 변별성을 가져야 밀려나지 않을 것입니다. 책이든 시인이든 자신을 살리는 것 그것이 자존심일 것입니다. 시의 자존심 그것이 정신의 공들이기일 것입니다.
시는 정신의 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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