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귀향(2)

2017.09.12 12:46

김명선 조회 수:114


                귀향 (2)

                                                                                           김명선


   터널의 끝은 아직 안 보였다. 멀리 전방에서 희미한 광선이 긴 행렬의 자동차 사이를 뚫고 구불구불 끼어들어 오는 것으로 출구가 그 쪽에 있다는 것을 알릴뿐이다.

터널의 벽은 군데군데 균열이 졌고 타일은 떨어져 오래된 소파에서 삐져나온 솜덩이처럼 지저분한 맨살이 허옇게 드러나 있다. 답답해 창문을 열었다. 매캐한 매연이 확 들어와 캑캑 기침이 났다. 에어컨이 밖의 일산화탄소까지 불러들여 에어컨 보탄을 검지로 눌렀다

순대 같은 공간에 빼꼭 들어 찬 자동차들, 한 발작만 움직여도 끼어들 기회를 엿보는 얌체족 때문에 차들은 앞차와 범퍼가 닿도록 갖다 대고 틈새를 막고 있다. 앞차 꽁무니에 달린 두개의 개구리 눈알이 독살스럽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부릅뜨고 있었다. 공기가 희박해 눈알이 튀어나오고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고산지대의 등산객 이야기가 새삼 생각났다.

  그는 담배 생각이 굴뚝같았다. 흠씬 들이마셨다가 훅 뿜어내던 향긋한 연기, 감미로운 환상에 젖어 잠시지만 현실을 망각할 수 있던 것, 사는 게 시들시들할 때, 지독스런 권태에 젖어 답답할 때, 살덩이가 떨리도록 한순간의 위로를 주던 것인데. 다신 입에 대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던져버린 담배 갑 생각이 났다. 주머니 어딘가에 태우다 남은 게 있을 것 같아 포켓을 뒤집어 털어 봤다

남자는 차의 서랍과 사물함들을 핥듯 뒤졌다. 오른쪽에 붙은 서랍에서 꽁초하나를 발견했다. 너무 반가워 손끝을 떨며 조심조심 불을 댕겼다.

한 모금 맛있게 연기를 폐부 깊이 들여 마셨다가 코의 긴 터널을 지나 다시 밖으로 뿜어내는 향기가 도시의 욕망들을 신기루처럼 흩어버렸다.


  차의 행렬은 아직도 끝을 모르게 뻗어있고, 남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낮 최고 기온이 80도 라 했지만 체감온도는 훨씬 더 높은 것 같다. 끈적끈적한 물기가 등을 타고 꼬리뼈까지 흘렀다

   남자는 답답해 당장 폭발할 것 같았다. 후진기어를 넣어 확 밀어 버리고 싶지만, 뒷걸음질도 이미 지나온 그의 삶처럼 불가능했다. 가정을 이루고 남처럼 그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스스로를 달래가면서 젊어서 꿈꾸던 이상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당장 닥치는 문제해결부터 급했던 생활, 그러나 또 새롭게 닥치는 무의미한 일들, 끊임없이 연결되는 생존의 잔잔한 일들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었다.

  시계를 본다. 기다릴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그는 이 길을 뚫고 가야했다. 이 터널을 빠져나가면 자기가 원하던 그 무엇이 존재할 것 같았다. 터널 입구에 유조차가 전복됐다한다. 수만 갤런의 기름이 쏟아져 그것을 걷어버리거나 아니면 모래라도 뿌려야 길을 열어 줄 모양이다. 기다리는 이는 없지만 그는 이 터널만 빠져나가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열릴 것 같은 어떤 환상으로 조바심이 일었다

   남자는 차에 갇혀 이렇게 시간을 죽이는 것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종신형을 받은 죄수처럼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삶의 남아있는 시간을 도둑맞는 느낌이었다. 째깍째깍 지나는 일분일초가 이렇데 무의미한 기다림으로 소비돼버린다는 사실이 그는 안타까웠다

    

아내 얼굴이 차창에 비쳤다.

그래 가버려 소원대로 가라고. 어느 하늘 아래 떠돌다가 칵 죽어버리던지 살아남던지 원 없이 해 보라고.’

  아내의 능멸하듯 내뱉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거렸다. 그녀의 저주가 몸에 칭칭 구렁이처럼 감겨 영원히 풀어지지 않는 업으로 남을 것 같다.  

 - 그래 그럴 거다. 난 어쩌면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저주의 쇠사슬에 발목이 잡혀 어딜 가도 자유로울 수 없겠지-

   자포자기에 스스로를 묶어놓고 아내의 치마폭에 매달려 하루를 보내기보다는 그래도 이렇게 훌훌 털고 나온 게 백번 잘했다고 그는 자위했는데 시작부터 길이 막혀버리다니. 남자는 손끝에 남아있는 꽁초를 창문 밖으로 휙 던져버렸다.

   앞차가 조금 움직였다. 황급히 오른발로 악세레타를 밟았다. 그러나 차는 몇 바퀴 구르지 않고 다시 섰다. 기어를 부렉키에 정지시키고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봤다.

옆줄에 스포츠 유티리티 카엔 온 가족이 탄 모양이다. 아이들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창문을 내렸다 올렸다 장난질이다. 그 안에서 떠들고 먹고 마시고 무던히도 잘 먹고 마시는 사람들, 모두 과체중이다. 그래서 구멍가게가 잘 됐다. 저물도록 군것질 거리가 팔려 나갔다. 감자 칩이나 소다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 덕분에 푼돈이나마 모였다.


*

 

'복권 있어요?‘

키가 작아 카운터 끝에 얼굴이 닿는 죽은 깨 여인이 돈을 내밀 땐 

'-.'

필요이상 큰소리로 꼬리를 길게 잡아당기면서 신경질을 냈다. 여자의 머리 정수리에 땜통 같은 원형탈모가 훤했다.

앞도 잘 안 보이는 노인이 수전증으로 벌벌 떠는 손바닥에 지폐를 덜덜거리며 내밀 때, 그리고 그것이 복권을 원하는 것일 때, 그는 속이 뒤틀렸다. 그 나이에 돈벼락을 맞아서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뱃속에 뭉쳐있는 배설물 덩어리처럼 적나라하게 보이는 탐욕. 그러다가 뜻밖에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도 발견했다. 자기 모습도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탁하고 짙은 물욕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자신. 그래도 자기의 욕심은 형이상학적이지 않은가. 손끝에 잡히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돈이 있을수록 편리해진다는 원리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돈 없이는 사람 구실하기도 어렵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들이 엄청난 돈벼락을 기대하는 거나, 자기가 원하는 행복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굵은 똥이나 지린 똥 덩이나 냄새나기는 매 한가지인데, 누가 누굴 판단해?

그래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인간의 생존권을 누가 시비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꼴뚜기고 누가 잉어란 말인가? 세상이란 물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잉어도 뛰고 꼴뚜기도 뛰어야겠지.

그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일 때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자신을 들볶았다.

   그러나, 지루한 일과를 마치고 누우면 코를 고는 자신의 삶의 이유가 돈, 돈 때문만 이라면 삶의 목적이 어딘 가 잘못 돼 있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평생 그런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그는 문득 서있던 자리가 참을 수 없으리만큼 징그러워졌다. 그는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어딘가로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인생은 단 한번뿐인데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소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미지의 세상이 어딘가에서 자기를 기다릴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났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안고 떠났지만, 그에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골똘히 쳐다보아도 그가 밟고 섰는 세상은 그에게 한 조각 희망 같은 걸 보여주지 않았고, 현실이라는 세계는 그에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는 자기 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될 수 있으면 사라져버리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사회성이 부족하여 적응 능력이 모자란다고 한탄하였다.

무슨 일을 하다가 조금 실수를 하면 어디다가 정신을 팔고 그래요.’하면서 어린애 나무라 듯 소릴 쳤다. 그는 세상 사람들 대하기가 겁이 났다. 그런 사람들은 다 자기보다 잘난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을 피해 어디로 달아나고 싶었는지 몰랐다.

이상하게도 그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캣쉬 박스에서 지폐들이 그를 보고 일제히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 , , 네놈도 별수 없구나, 누구보다도 날 좋아하는놈이 무슨 소리냐......’

   그는 울화가 치밀었다. 그들에게 매어서 온 종일 자기 인생이 노예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억울했다. 살아있는 생물인 자기가 한갓 종이 장에 그려진 죽은 자들에게 인생을 송두리째 저당 잡혀 자유를 잃고 꼼짝 할 수 없다는 게 원통했다.

   한결같이 굽실굽실한 머리에 코가 높은 신사들이 웃음을 멈추고 근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남자는 그들의 엄숙한 얼굴에 칼질을 북! 충동이 벌컥 일었다.

그는 팔고 있던 면도칼 뭉치를 뜯어 새파란 칼끝으로 죽 그어봤다. 그래도 시원치 않아, 가위로 미세하게 썰었다.

   얼굴의 정면을 가위로 잘라도 그들은 표정 하나 바꾸질 않았다. 의연히 비웃는 표정이다. 덜 떨어진 놈, 못난 놈!, 그래봐라, 네놈이 십분도 못 가 후회할 테니. 그는 더 맹렬한 미움이 솟아 가위질을 했다. 파란 불꽃이 지폐 위에서 번쩍였다. 계속 조롱 당하는 느낌이 들기만 했다.

이를 북북 갈며 지폐를 잘게 난도질했다. 누군가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가위질을 계속해 나갔다. 그 때 점심을 사들고 들어오던 아내가 그의 하는 짓을 보더니 질겁을했다. 그녀가 세차게 남편의 손에서 가위를 빼앗았다.

아니, 당신 미쳤어? 무슨 짓이야.”

   남자는 그녀 얼굴을 흘금 보고 빙긋 웃었다.

어머, 이게 얼마야? 이 귀한 돈을. 당신, 당신, 정말 미쳤어? 정신이 어떻게 된 게 아냐?”

   아내는 기가 막혀 빤히 남편을 쳐다보았고, 남자는 아내의 입술이 참 두툼하구나 생각하다가 그 입술을 지폐처럼 가위로 싹둑 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남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바지에 숨겼던 칼을 꺼내들고 아내에게 다가섰다. 찢어진 지폐들을 모아 봉지에 담던 아내의 눈이 화들짝 커지면서 뒤로 슬슬 피했다.

으악-, 아악.’ 그녀는 사무실로 뛰어들어 문을 잠갔다. 남자는 그녀가 주워 모아 넣은 지폐조각들이 담긴 봉투를 거꾸로 들어 확 쏟아버렸다. 후루룩 사방으로 날며 흩어지는 종이조각들이 춤을 췄다. 악마의 날개처럼 너풀거리는 부상당한 지폐들.

남자가 히죽 광적으로 웃었다.

   아내가 사무실 문을 걸고 미친 듯 소릴 질렀다. ‘당신 미쳤어, 왜 이래? 찢은 돈이 모두 얼만 줄이나 알아!’ 아낸 목을 놓고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을 조금도 이해하려고 안 했다. 그의 가슴에서 농익어 터지려는 한을 여자인 아내는 상상이 안 됐다.

남자는 지폐의 오만함을 욕보이고 싶었다. 난 지폐의 노예가 아니란 말이다. 파란 종이 장 때문에 내 인생의 모든 꿈을 접고 그것에 목이 메어 꼼짝 못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해 보라. 누군들 나같이 억울하지 않을까? 꿈을 꾸듯 먼 곳을 바라보는 워싱톤의 낯짝이 밉고 징그럽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아내는 남자를 금전등록기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 하게 했다. 창고에 들어가 물건이나 정리하게 하고 무거운 짐짝을 이리 저리 옮기는 일만 하게 했다. 아내는 남편보다 젊고 유능한 남자를 고용해 금전등록기 앞에 세웠다. 아내가 없을 때도 한성진 이라는 그 남자는 주인인 김정식을 돈 옆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남자는 어떻게 하던지 돈을 슬쩍해 찢어버리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충동으로 계속 부대꼈다. 가위를 보기만 해도 안달이 났다. 아내는 남편의 눈이 닿는 주위에서 모든 가위와 칼을 치워버렸다. 그러나 잘게 썰지 않아도 방법은 있었다.

초등학교 때 공작 시간에 가위를 잊어버리고 가면 종이를 접었다가 금대로 침을 발라 쭉 찢던 기억이 있다. 몇 장의 지폐를 슬쩍해 화장실로 들어가 선을 날카롭게 접어 좍 찢는 일은 오히려 짜릿했다.

   일 불짜리는 중심을 접으면 워싱톤의 오른쪽 눈과 볼로 중심선이 지났다.

워싱톤의 얼굴이 삼분의 일이 됐다. 조폐공사 놈들은 도안을 어떻게 이렇게 그렸단 말인가? 오불짜리 링컨은 중심선이 오른쪽 눈과 광대뼈를 살짝 스치고 지난다. 십불짜리 해밀턴은 오른쪽 눈과 이마를 스치고, 이십불짜리 잭슨은 오른쪽 눈의 반쪽이 잘려나간다. 멍청이 같은 놈들, 날더러 하라면 좀 더 생각을 하고 그렸을 걸.

   배설을 시원하게 끝내면 몸이 부르르 진저리를 친다. 그러나 그냥 앉아 똥구멍이 말라 닦기도 전에 부숭부숭해지며 구멍이 오그라드는 것도 상관 않고, 돈 찢는 맛에 시간을 죽였다. 찢어버린 지폐들을 펴놓고 히히거리다가 입안으로 탁 털어 넣었다. 침과 섞여 풀처럼 녹으면 변기 속에 탁 뱉었다. 아내를 깜빡 속일 수 있어 스릴 만점 이다. 슬쩍한 지폐들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던 그가 아내와 한성진이 소곤거리는 소릴 들었다.

"큰일예요"

"글쎄요, 혹시 사이코? 심리분석가에게 가는 게 어때요?"

사이코? 후 후 흣,”

   자존심이 상한 그가 화장실 문을 부서지게 쾅 닫았다.


*

 

   엄격한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해 하고 싶던 문학을 접어두고 법과를 택해야했다. 그러나 그는 딱딱한 육법전서나 시시하고 자잘한 수많은 법규를 달달 외워야하는 것에 아무 의미를 달 수 없었고, 법관의 삶에 소질도 흥미도 없어 남몰래 문학관련 서적만 탐독했다. 그는 몇 번의 고시에 보기 좋게 낙방했다. 아버지 소원대로 못해드려 자식의 소임을 못한 게 약간은 안됐지만, 그는 어떻게 하던지 떨어질 궁리만 했고, 아니 공부를 제대로 안했으니 덜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의 낙심하는 모습을 남의 집 초상을 바라보듯 한 발작 물러 나 덤덤히 바라보았다.

   결혼까지도 그는 자기 마음대로 못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러냐고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여자를 데려와도 어머니는 박수무당에게 먼저 가서 궁합 먼저보고 그 박수무당의 허락이 떨어져야 했다. 만약 무당 왈,‘이 처자에게 살이 끼어 이 혼사는 신랑이 급살을 맞을 수라고.’ 한다면, 허무맹랑한 소리지만, 그는 아까운 처자를 다른 남자의 품으로 고이 보내줘야 했다. 아무리 떼를 쓰고 용을 써도 콘크리트 같은

세대 간의 두꺼운 벽을 허물지 못하고 그는 부모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결혼이란 일생일대의 중대사다. 장가를 가는 것은 출장을 가는 것 관 다르다. 걸핏하면 이혼들을 하고 여차하면 안 살겠다고 하지만,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그런 꼴 못 본다. 부모가 어련히 알아서 잘 시키겠니? 시키는 대로 신중히 따라라.”

   결국 그는 자포자기로 아무려면 어때, 여자면 됐지. 여자의 귀밑머리를 풀면서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버렸다.

아내의 친정이 모두 미국 이민 바람으로 떠난 후, 아내는 우리도 이민을 가자고 졸랐다. 사실 고향을 떠난다는 게 두렵고 주저됐다. 더구나 난 외아들 아닌가. 늙으신 부모님을 홀로 남겨두고 떠날 수는 없지만, 완고한 독재자 아버지의 곁을 떠날 수 있는 오직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더구나 부모님은 아직 똥오줌 싸고 노망이 나거나 생활이 어려워 아들의 부양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가 부모의 덕을 보고 사는 처지였다.

   한 발짝 고국을 떠나면 모든 억눌린 것에서 탈출하리라 믿었던 그는 자유는 의무를 동반해야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아버지 밑에선 자기 의사대로 살순 없었지만 생계를 책임질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상당한 구두쇠인 아버지는 퇴직금을 잘 불려 식구들 밥걱정은 안 시켰었다.

   이민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버지는 가타부타 한 마디도 없이 눈을 감아버렸다.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야 홀로 서기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아버지 역시 아들이 독립을 하겠다는 의지를 막지 않았다. 그러나 엘에이 공항을 빠져 나온 날부터 그를 기다린 것은 낯선 도시의 외로움과 가족 부양이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처음엔 처갓집의 도움을 받았지만, 늘 그럴 수도 없어 그들 부부는 맨발로 뛰었다.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웃으면서 빼앗는 일이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몸으로 터득했다.

아내는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했고 곧잘 일자리를 찾았지만, 그는 인간의 정글에서 혼자 외톨박이가 돼 왕 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화장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울기도 했다.

그러면 가슴속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남편의 나약함이 못마땅해 한숨을 쉬거나 소릴 지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더 거세게 변해갔을지도 모른다. 아내의 생활력이 강해질수록 반대급부 적으로 그의 의욕은 상실의 늪에서 허덕였다. 화장실 속에서 울어버림으로 가시처럼 박혀있는 삶의 시름이나 서러움이 조금은 삭아 없어진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것들은 저 가슴 밑바닥에 누룽지처럼 깔려 겹겹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민 온지 얼마 됐소? 하고 누가 물으면 십 여 년 됐다, 고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아 이젠 자리가 잡혔겠군요.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오, 십 년이 백년보다 길기만 했소, 하루가 내겐 천년 같았소,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고개만 끄떡였다.

아내는 극성스럽게 곗돈을 부어 목돈을 마련했고 그 돈으로 구멍가게 같은 점포를 장만했었다.

   먹고 자는 일, 때때로 일어나는 성욕의 처리, 그리고 그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땀 흘려 노동을 하는 것만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이뤄야할 본래의 목표였을까?

그는 회의에 빠졌다. 그런 기본권조차 해결이 안 되는 땅에서 사는 사람들보다야 낫겠지만.

                                 



      

   차속이 너무 후덥지근해 견뎌낼 수가 없다. 이 게 굴속이니 망정이지 땡볕 아래라면 사람도 죽을 것 같다. 그는 창문을 확 내렸다. 앞차에서 사람들이 내려 서성이고 있다. 좁고 어두컴컴한 사이드 워크에도 앉아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여자 둘 남자 셋이었다. 몸집이 보통 사람의 두 배는 훨씬 넘을 여자가 허덕거리며 손부채질을 하고 있고 그 옆에 남자가 티샤쓰를 훌러덩 벗더니 내팽개친다.

갓댐, 지옥처럼 덥네. 참을 수 없다는 듯 제 가슴에 수풀처럼 무성한 시커먼 털을 양손으로 북북 긁는다. 그 말이 신호라도 됐는지 다섯 명의 남녀가 동시에 낄낄거렸다. , 너 지옥에 가 봤어? 으하하.

하늘이 무너져도 낙천적인 사람들.

   손목에 수갑처럼 걸려있는 시계는 벌써 오십 분이 지났다.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하나. 그는 거울처럼 비치는 창문에 눈을 갖다 댔다.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오늘따라 더 깊게 파인 것 같다. 온몸의 피로가 갑자기 엄습해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도매상에서 필요한 물건이 매진됐다고 다음날 다시 오란 소리에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가게는 잠겨있었고 단골인 미스터 쟌이 담배를 사러왔다가 유리문에 눈을 대고 내부를 들여다보며 서성거렸다.

   ‘왔스 했푼?’ 남자의 소리에 쟌이 싱긋 웃었다.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가슴이 어떤 예감으로 덜렁거렸다.

가게의 불은 켜진 상태였고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는 키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도어 벨이 땡 하고 울렸다. 가게 매장은 조용했지만 사무실이 있는 안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사무실은 창고를 지나 작은 복도를 따라 들어간다. 사람의 신음소리 같은 게 들렸다. 그가 창문을 통해 발견한 모습은 남녀의 엉킨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하얗게 가셨다. 준비되어있었기나 한 듯 육두문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그는 일어나는 분노를 꾹 누르며 숨을 골았다. 질투 같은 원색적인 감정을 용납할 가치가 없었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 야구방망이 같은 게 뭉클뭉클 치솟았다. 뱉을 수 없는 저속한 말들이 계속해서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는 말들을 삼키며 엉망으로 망가지려는 자신의 정신을 수습해야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가슴을 꾹 누르고 조용히 문을 먼저대로 닫고 나왔다.

   그는 자신을 타일렀다. 보지 못했어, 그건 백일몽일 일거야. 난 귀먹고 눈 먼 장님이야. 난 악몽을 꾼 거야.

솟구치는 분노를 참으려 안감 힘을 쓰면서 묵묵히 감정을 안주머니 깊숙이 넣어놓고 봉해버렸다. 나날이 말이 없어지는 그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전보다 아내는 점점 낯설어져갔고, 흐릿한 영상으로 멀어져 가는 화면 속 장면처럼 변해갔다.

아내는 그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오라고 아양을 떨거나, 점심을 먹고 오라고 돈을 주기도 했다. 그는 생각이 없는 기계처럼 아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줬다.

아내는 날이 갈수록 대담해져서 그의 면전에서도 한성진과 육체를 툭툭 부딪치며 히히덕거리기도 했고, 창고 속에서 물건을 점검하는 줄 알고 들어갔다가 둘이 꽉 껴안고 입을 빨고 있는 장면을 본의 아니게 엿보게도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자신의 존재가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며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떠날 것을 결심했다.

떠나기 위한 준비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어느 날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결심을 말하고 그 집( 그들은 장모네 집에서 살고 있었다.)을 나오면 됐다.

아내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난 나의 길이 있고 아내는 아내의 사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다음 날 당신의 길을 열어줄 테니 거리낌 없는 자유를 맘껏 누리고 살라고 말하는 그에게 뜻밖에 아내는 잘못했으니 제발 가는 것만은 말아달라고 애원을 했다. 예상 밖이었다.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던 아내의 돌변한 태도에 잠시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렇다해서 그의 결심이 간질병 환자가 경련이 지난 후 언제 그랬냐 하듯 없었던 일로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실어증 걸리고 귀먹은 노인처럼 무감동한 눈빛으로 멍청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이들을 봐서라도 마음을 돌릴 수 없어? 모든 게 내 실수였으니 제발 떠나지만은 말아 줘.”

   아내는 눈물까지 떨어트리며 그의 발아래 엎드려 참회하듯 애걸했다.

아인 다 컸으니 힘들 것 없잖아. 당분간만 당신이 맡아. 자릴 잡고 곧 데리러 올 게. 당신은 아이들 때문에 희생하지 말고 원하는 삶을 살아 봐.”

   그 소릴 듣던 아내는 갑자기 얼굴색이 파랗게 질리면서 소릴 질렀다.

, 아이가 뭐 당신의 소유물이기나 된 것 같군, 아이 아빠라고 한 게 뭔데? 열 달 배 아파 낳아 내 몸의 진국을 빨아 먹여 키운 자식이야. 당신이란 남자는 한 숟갈도 안 된 정액 한 방울 흘렸다고 권리 주장하는 거야? 애들 걱정은 집어치워. 이제 집 나가면 다신 내 앞에 나타날 생각 말고, 어딜 가서 죽든지 살든지 맘대로 하라고.”

연극하듯 애걸하던 아내가 돌변하여 표독스럽게 뱉어낸 말들이었다. 그는 대책 없이 그녀의 악다구니를 들으며 예정했던 날짜를 앞당겨 집을 나섰다.


 

*


 

   어딘가에 있을 보금자릴 찾아 보헤미안이 된 남자는, 부르르 떨며 떨어지는 꽃잎이 몇 번이나 반복하는 사이, 저녁놀에 날아드는 늙은 물새처럼 외롭게 전국을 헤매고 다녔다.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며 아니 어디쯤 있는 줄도 모르면서 그는 이 거대한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 자기가 갈망하던 자유의 쓴맛을 몸으로 체험하며, 때로는 고향집의 포근함을 그리워도 했었다. 이제 와 뒤로 물러서려고 해봐야 물러설 곳도 없다. 그의 형편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나아질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운명 앞에 떨며 마지막 용기를 다해 앞만 보고 달려갈 뿐이었다.

달리면서 그는 그의 몸속에 장애물처럼 울퉁불퉁 자릴 잡고 있던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가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향한 마음이 분노였는지, 무관심이었는지 잘 생각이 안 났지만, 남자는 그녀를 미워한 적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의 마음 속 깊이에서 증오가 지옥 불처럼 지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참담하던 마음이 꽁꽁 뭉쳐 부스럼 딱지가 돼 굳어 있었던 것이다. 정처 없이 아는 이 없는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면서 남자는 식구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려보며 지글거리는 분노를 하나하나 꺼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의 가슴엔 지금 폐결핵을 앓고 난 자리처럼 뻥 뚫린 공동이 생겨나고 있다. 그것은 그의 몸에서 떼어낼 수도 없고 잊을 수도 없는 빈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그 빈자리에는 휭휭 바람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몬태나 주에서 경험했던 그 추운 겨울보다 더 허허로운 것이었다.

   지난겨울은 지독히도 추웠다. 그는 처음 들렸던 몬태나 주의 겨울을 대비할 줄 몰랐다. 하이웨이에서 눈보라를 맞아 시계(視界)가 영점일 때 그는 앞뒤를 분간 못해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눈보라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윙윙거리는 바람소리가 창문을 때리면서 자동차가 양옆으로 요동을 쳤다. 천지는 온통 컴컴해졌고 길은 완전히 동강 나 있었다. 나중 안 일이지만 그런 경우를 대비해 담요 같은 보온할 물건을 꼭 차에 준비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차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히터의 눈금을 한껏 올렸지만, 차는 스르르 시동이 꺼졌다. 인적도 없는 벌판 위 좁은 차안에서 고개를 자라목처럼 두 다리 사이에 파묻고 몸으로 몸에서 빠져나가려는 체온을 지켜야했다. 컴컴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차창에 들러붙어 꽁꽁 얼어가고 있었다. 어려서 뜨뜻한 아랫목에 누워 아침이면 올려다보던 고향집 들창에 하얀 성애 꽃이 피던 게 생각났다. 어떤 것은 나비 같고 어떤 것은 꽃 모양으로 아름다웠었다. 밤새 식구들의 숨결에서 나온 수증기가 날아가 붙은 들창은 어린 그에게 공상의 날개를 한껏 피게 해주었다. 곧 해가 달아오르면 녹아 없어질 성애지만, 그에겐 겨울 아침에 피는 여러 가지 무늬 꽃들이 미래의 환상이었고, 어떤 꿈을 가져다주었었다.

   밖은 점점 눈보라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바람까지 윙윙거려 차가 날아갈 듯 흔들렸다. 갑자기 꽝하고 차가 들썩했다.

번쩍 눈을 떠보니 바람막이로 의지하고 있던 나무 가지가 꺾어져 차의 본넷을 치는 소리였다. 남자는 그걸 보아도 꼼짝을 못하고 망연히 그냥 앉아 있었다. 차가 뒤집히거나 굴러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냥 차와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비로소 처음으로 자기가 외톨박이란 것을 깨닫게 됐다. 배가 고파도, 잘 장소가 마땅치 않아도, 자유 때문에 불평 없이 지냈고, 휘황한 도시의 번잡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당장 눈바람을 피할 장소가 아쉬웠다. 발끝이 싸늘히 얼어오고 있었다. 손이 곱아서 가슴에서 끄집어 낼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잠이 솔솔 쏟아졌다. 절대로 자면 안 돼. 끔뻑하고 고개가 떨어지면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다. 남자는 눈꺼풀을 뒤집어 까며 자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얼마를 흘렀는지 자신도 모르는 새 잠이 들어버렸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부연 시야에 들어 온 얼굴은 한 번도 본 일 없던 백인 노인의 얼굴이었다.

정신 차리게 이런데서 자면 얼어 죽어요.”

“......”

자 내 차에 타게. 우리 집으로 가서 쉬어요.”

   놀라 벙벙해 눈을 비비는 그에게 노인은 따뜻한 웃음을 보여줬다. 밖엔 어느새 눈이 그쳤고, 언제 그랬던가 싶게 하늘이 맑다.

노인의 집은 작지만 아늑한 거실이 있고, 벽난로엔 벌겋게 장작이 타고 있었다. 난로 위벽엔 황금색 액자 안에 죠지 워싱톤의 초상화가 고색창연하고 엄숙하게 걸려있었다.

노인의 이름이 스미스였다. 스미스 씨는 눈보라가 치는 날엔 꼭 하이웨이에서 한 두 사람씩 얼어 죽는 것을 알고 커다란 눈 트럭을 끌고 구조를 나간다 했다. 일주일을 그 집에서 묵으면서 그는 동상에 걸릴 뻔했던 다리를 구할 수가 있었다. 따뜻한 마사지와 민간요법으로 다정히 간호하는 미세스 스미스의 친절을 잊지 못해 스미스가 경영하는 주유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는 동네의 허름한 모텔에다 거처를 정했다.

   킹 스트릳에 있는 그 모텔은 지은 지 오 십 년도 넘는 오래된 건축물이었다. 워낙 튼튼하게 쌓아올린 석조건물이라 겉은 아직 백년도 더 버틸 것처럼 둔중해 보였지만, 안은 여기저기 헐고 낡아서 손댈 곳이 많았다. 걸핏하면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물이 새고 하수관이 막혔다. 더운물도 나오는 시간이 자나면 샤워를 하다가도 냉수 세례를 받아야했다. 겨울엔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황소바람이 뼈 속까지 시리게 만들어 그는 옷을 겹겹이 껴입고 자야했다. 다행이 여름이 길지도 몹시 덥지도 않아 바퀴벌레는 없지만, 쥐들의 극성은 아무도 막지 못했다.

   한밤 중 부스럭 찍찍대는 생쥐들의 파티소리와 수놈에게 쫓기는 암놈이 지르는 기성에 그는 깜짝 놀라 깨곤 했다. 처음엔 그 소리에 약이 올라 잡겠다고 쥐덫을 놓거나 쩍쩍이를 사다가 놓아보기도 했지만, 놈들은 그런 것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먹이만 살짝 먹어치우곤 잡히질 않았다. 그는 쥐들의 통로가 될 만한 길목마다 쩍쩍이를 놓아두었는데, 하루는 재수가 없는 쥐 한 마리가 걸려들어 버둥거리고 있었다. 버둥거릴수록 몸엔 강한 풀이 달라붙었다. 강한 풀판을 떼어버리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쥐가 애처로워 그는 하마터면 떼어줄 뻔했다. 그가 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눈과 쥐의 빨간 눈길이 마주쳤다. 쥐는 원망스런 눈길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의 가슴에 어떤 연민이 뭉클 솟아오르면서 쥐가 몹시 가여워졌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회색 털이 자꾸만 풀에 엉켜 그로서도 도울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쥐는 힘이 다했는지 똥을 한 번 찍 갈기더니 그만 축 늘어지고 말았다. 그는 쥐를 잡았다는 통쾌감보다 불쌍하고 안쓰러워 다신 쥐를 안 잡겠다고 생각했다. 축 늘어진 쥐의 귀여운 발끝이 백열등 아래서 반짝 빛났다. 그가 죽은 쥐를 위하여 비닐봉지로 관을 만들고 장례를 지내겠다고 쥐를 집어 들었다. 그때 그는 쥐의 가슴에서 퉁퉁 불은 분홍빛 젖들이 봉긋 솟아오른 것을 발견했다. 그는 죽은 쥐가 어미 쥐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어딘가 새끼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그때부터 새끼들을 찾으려고 천장과 다락을 모두 뒤졌으나 찾질 못했다. 그의 마음엔 이미 어미를 죽인 죄의식으로 가득 찼다.

   그날 밤이었다. 짹짹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직 털도 안 난 분홍색 쥐새끼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의 침대 아래에 여섯 마리가 오그르르 모여서 서로 몸을 비비며 생기지도 못한 젖가슴을 찾고 있었다.

그  는 가슴이 짠해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래서 놈들을 보자기에 싸서 자기 침대에 올려놓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다가 젖 대신 쥐들에게 핥아먹게 했다. 그는 쥐들을 위하여 상자를 구해 집을 만들어줬다. 매일 퇴근하면 새끼 쥐들에게 밥을 주면서 털이 나고 자라 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들이 싸놓은 배설물들을 치우면서도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고, 어미를 죽인 값을 하는 자신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했다.

깨끗이 먹고 잘 들 놀아라.’

   그는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 쥐들을 돌보며 아이들에게 하듯 인사말까지 했다. 쥐들은 어느새 이가 났고 상자를 쏠아댔다. 상자 밖으로 나와 그의 단벌 바지의 아랫단을 여기저기 쏠아 세탁소에 맡겨 다시 기워야했다. 그래도 친구가 없는 그에게 쥐들은 즐거운 동반자였다. 주유소에서 출납을 맡아 일하는 헬렌 말고는.

그녀는 서양 여자가 그렇듯 아주 성격이 명랑했고 적극적이었다. 그녀의 친절의 한계가 어디쯤이 우정인지 동정인지 분간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스미스 씨의 조카딸이었다. 이혼녀인 그녀는 음식을 하면 정성껏 담아다가 그에게 주고 아침마다 손수 커피를 끓였다.

어느 날 남자가 감기몸살을 앓아 일을 못 나갔다. 오랜 방황과 추위로 영양부족까지 겹쳐 기진맥진해 쓰러졌던 것이다. 그 날 밤, 헬렌이 닭죽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 가지고 찾아왔다.

웬일 야, 여길.”

어디가 아파? 많이 아파?”

   예기치 않던 그녀의 방문에 그는 당황했다. 냄새가 날 것 같은 홀아비 방의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꼴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그를 보고, 그녀는 편하고 아늑하다고 치우려는 그를 말렸다. 그녀의 인정이 고마워 남자는 일어 나 죽을 마셨다. 그런데 그때까지 조용하던 침대 밑에서 쥐들이 난리를 쳤다. 음식 냄새를 맡은 쥐들이 상자 속에 그냥 있질 못하고 입을 쫑긋거리며 찍찍거렸다.

- 마이 갇.”

   미안하고 부끄러워진 그가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오 비유티풀!”

   그녀가 손을 뻗어 쥐 한 마리를 잡아들었다. 징그럽다고 질색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귀엽다고 들고 온 크렉커를 잘게 부셔 쥐에게 먹였다. 오물거리는 동물의 입이 사랑스럽다고 입을 맞추며 얼굴에 대고 즐거워했다.

당신이 동물을 사랑할 줄 몰랐어. 나도 햄스터 두 마리를 기르는데.”

   그녀는 남자를 양팔로 안고 당신을 좋아한다는 소리까지 했다. 다음 날, 그녀는 고양이밥을 사들고 왔다. 몸도 어제보다는 거뜬해졌기 때문에 까칠한 턱수염을 밀고 샤워를 막 끝낸 순간, 여자가 문을 노크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팔을 내밀어 포옹했다.

홀드 온 미, 아이 러브 유.”

   그녀의 열에 뜬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마르고 차가웠던 그의 입에 꽃잎처럼 향긋한 여자의 입술이 포개질 때 그는 정신이 멍해지며 꺼졌던 성선(性線)에 불꽃이 확 당겼다. 남자가 여자를 그대로 쓰러트렸다. 태고 적부터 치러지던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남자는 벌겋게 성난 자기의 연장을 그녀의 몸속으로 깊이깊이 침투시켰다. 순간 그녀는 형언할 수 없는 환희에 젖어 으흐흐 우는지 웃는지 모를 소릴 질렀다. 여자는 물이 많은 여자였다. 여자는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찾아왔고, 그때마다 둘은 삶에서 오랫동안 배제됐던 성의 즐거움을 다시 찾아 맘껏 즐겼다. 그녀의 요구는 지칠 줄 몰랐다. 그는 힘이 달렸지만, 돈을 지불하지 않고 하는 섹스는 여자의 비위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녹초가 된 그에게 여자가 기운 나게 하는 거라고 에너지 드링크제를 주었다. 새벽이 밝도록 지칠 줄 모르고 서로를 탐하면 다음 날 기진맥진해서 일을 못 나갔다. 그러면 그녀가 다시 찾아들었다. 그는 약으로 버텼다. 약은 나날이 그 양이 늘어났다. 둘은 일터에서도 백치 같은 행동을 하면서 남의 이목 같은 것은 아랑곳 않고 입을 빨거나 몸을 어루만지고 퇴근시간만 기다렸다. 여자는 이 멋진 동양 남자를 자기 품에 안고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오로지 밤이 오기만을 고대하는 그녀는 남자의 손길이 닿는 구석구석을 생각만 해도 몸이 짜릿짜릿 했다. 그러나 남자는 겁이 났다. 약이 없으면 아무 의욕도 없이 늘어져버리는 자기 몸이 이런 생활을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까?

약 기운이 돌면 자기도 모르게 미쳐버리는 자신이 겁이 났다. 몸속의 온갖 정열을 다 태우고도 모자라 약으로 지탱하는 자기 모습을 보고 그의 마음 속 깊이 잠재해있던 이성이 눈을 뜨고 그를 힐책하기 시작했다.

   아- 난 이러다가 어찌 될 것인가?

그는 약이 없으면 견딜 수 없도록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게 중독이란 것이구나. 난 여길 떠나야한다. 한없는 상념에 빠져 그는 침대에 엎드려 아래로 오른 팔을 떨군 자세로 상자에 나있는 작은 구멍을 들여다봤다. 몸이 제법 커버린 쥐들이 나무판자를 덧댄 상자의 벽을 긁어대고 있었다. 그가 상자의 뚜껑을 활짝 열어 젖혔다. 놀란 쥐들이 상자에서 뛰쳐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떠나라, 떠나는 거야. 이제 어디 건 네 종족들과 몰려다니는 거다!

암갈색 음모 몇 올이 떨어져 있는 메트레스에서 아직 남아있는 여체의 온기가 침대아래서 올라오는 냄새와 맞물려 코를 찌르는 악취로 둔갑했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시간을 보기 위해벽시계를 올려봤다. 머리가 빙빙 돌며 시계바늘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숨을 잠시 멈추고 눈을 둥그렇게 떠보았다. 그러나 시계 바늘은 자꾸 겹쳐 보였고 머리가 띵했다. 그는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안정을 취하다가 욕실로 들어갔다. 세면대 위 거울에 낯선 남자의 흐릿한 영상이 들어왔다. 혼을 잃어버린 듯한 남자가 거기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그 비루먹은 사나이의 얼굴은 자기얼굴이었다. 그는 얼굴에 대고 말을 걸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여기 서있니?’

네가 원하던 게 겨우 이것이었니?’

너는 헬렌을 정말 사랑하는 거니?......’

   아니, 아니지. 절대로 아니 야, 단호하게 영상의 사나이가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 젖는데, 집을 나올 때 장모가 뱉은 말들이 한 자 한 자 춤을 추듯 떠올랐다.

흥 어디 감춰놓은 계집이 있는 모양이군, 그렇지 않으면 멀쩡한 처자식 두고 집을 나가다니!’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머리를 두 손으로 쥐어뜯었다. 그는 헬렌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려고 눈을 감아보았으나 잠시 전 나간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고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얼른 지워버리려고 머리를 흔들었으나 그 얼굴들은 점점 커지면서 한꺼번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양손으로 두개골을 잡고 벌레를 떨듯 머리를 털었다.

- -’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욕실로 갔다.

여자를 떨어버리듯 그는 손에 비누를 쏟아 두 손으로 비벼 머리에 붓고 북북 긁고 헹구고 또 헹궜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헬렌에게 알리지도 않고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

 

   아직도 터널은 일보도 진전이 없었고, 그 동안 참았던 요의( 尿意 )로 방광이 터질 듯 했다. 그는 가만히 차 문을 열고 몸을 구부려 의자 아래로 내려앉으면서 물건을 끄집어냈다. 무성하게 덮여있는 음모 사이에서 성기를 끄집어내어 밖에다 포물선을 그었다. 그의 그것은 장소가 마음에 안 들어 조금 분출을 하다간 멈추고 또 조금 흐르고는 멈추길 한동안 계속했다. 일이 끝나자 그는 몸서리를 한 번 흠칫 쳤고 차 밖으로 그것을 툭툭 털어 본래에 있던 자리로 집어넣었다. 어느 듯 손목시계 바늘이 3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까 봤을 때 열 두 시 오 십 분이었으니까 적어도 그는 터널 안에서 2 시간 이상을 허비한 셈이다.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술래바퀴를 뱅뱅 돌며 귀향길을 찾고 있는 그가 가는 길이 언제 열릴지 모르겠지만 차 속이 아무리 답답해도 지금 그는 벗어날 수가 없다. 터널이 뚫리면 그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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