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그해 겨울

2002.12.03 16:22

김명선 조회 수:1496 추천: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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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해 겨울 - 김명선 ┼
│ 오늘은 육이오 기념예배였다. 그녀는 육이오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가슴에 와닿는 게 있었다.아버지의 사망, 오빠의 실종같은 비극이 그녀를 울리지 않고는 못배기는 말하자면 큰 상처를 다시 헤집는 꼴이었다. 그런 혈족의 사망은 당시로선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과 막막함으로 아득하다가도 세월이란 약이 있어 저절로 잊고 살아가게 마련이다.
│ 그러나 첫사랑의 추억만큼은 새콤달콤한 것이어서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때가 되면 식초뚜껑을 갑자기 연것처럼 콧속으로 핑하고 강하게 올라오는 자극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녀는 설교가 끝난 후 헌금을 하려고 봉투를 꺼내다가 주보에 눈이갔다. 광고면에는 구역예배와 새 신자 소식란이 있었다.
│ 이씨네, 오씨네, 김씨네, 또 이씨네, 네가정이구나, 하다가 그녀의 눈이 한곳을 주시했다.
│ 이영호, 이수지, 이인화, 이기택, 이택성.
│ 이택성? 이택성? 꿈에도 못잊던 이름이 거기있었다. 참 이상했다. 동명이인일까? 이영호가 호주니까 그의 아들? 그러나...... 이기탁과 이택성은 돌림이 아니고, 형제치고는 좀 그렇고...... 정여사의 가슴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 1951년 1월
│ 평양탈환이란 소식에 통일이 곧 될 줄 알았던 국민들은 이차 퇴각이란 말에 다시 또 보따리를 이고지고 남으로 남으로 피란길에 올랐다.차를 얻어탈 수도 없었던 그녀와 식구들은 화물차칸에 짐짝같이 내던져져 피난을갔다. 그나마 못 얻어탄 사람들은 화통 위 기차 지붕에 매달려서 아슬아슬하게 타고가야했다.
│ 전쟁은 사정이없다. 사대독자 와아들이나 과부의 씨암탉같은 자식도 상관하지않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공부 잘하고 장래가 촉망되던 반장집 큰아들, 여학생 꽁무니나 쫓아다니던 여드름투성이 고등학생,허무주의에 빠져서 ' 니체'를 끼고 다방구석이나 죽이던 백수, 두메산골에서 흙이나 파던 떠꺼머리 총각들까지 훈련 한번 못받고 잡혀와, 처참한 동족상잔의 싸움터에서 이슬로 사라져갔다. 그래도 봄은 찾아와 꽃잎처럼 진 청춘을 통곡해줬다.피멍이 맺혀 빨간 진달래가 되었고, 주인없는 무덤가에 개나리로 피어 조화가 되주었다.
│ 여자들의 가슴 설레는 봄이라지만, 피난민들 은 누울곳과 먹을 것 걱정부터 해야했다. 학교는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고 입하나라도 덜자고 그녀가 한 일은 군병원 보조간호사였다.
│ 전선에서 밀려드는 부상병들을 간호하기에 손이 모자라는 군 당국은 고등학생들까지도 모아 군인들을 간호했다. 몇 안되는 군병원은 넘쳤고 병실은 없어 국가에선 지방 곳곳의 중고등학교 건물까지 접수해 환자들을 수용했다. ㅇ시의 농업고등학교 건물도 육군병원이 접수해버렸다.
│ 밤마다 정거장에는 괴물같은 기차가 기적소리도 못지르며 죽어가는 부상병들을 실어다가 쏟았다. 등하관제로 깜깜한 도시엔 피냄새와 신음소리만 하늘에 닿았다. 그나마도 병실은 찼고 복도에 놓여진 단가에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환자들이 그대로 죽어가도 속수무책이었다. 어떤 어린병사는 총알이 머리에 밖혀 엄마를 밤새도록 부르다가 새벽에 숨을 거두기도 했다.
│ 간호장교, 군의관들 그리고 학생 간호원들은 자다가도 기차가 도착했다는 사이렌이 울리면 뛰쳐나가 몰려드는 환자들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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