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2010.08.11 09:35

김명선 조회 수:1232 추천:87




                          행복의 조건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남편은 마치 삼십대 팔팔 뛰는 생선 냄새가 났다.
싫다고 엄살을 떠는 그이를 억지로 끌고 와 돌려 앉혀놓고 새로 나왔다는 ‘울트라 컴바인 불렉’  염색약을 처덕처덕 바르고 뒷머리를 상큼하게 깎아 내리는 미용사의 손길이 날렵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그가 좋아져서 등에 내 얼굴을 살짝 갔다대고 두 팔을 앞가슴으로 돌려 뻗어 안았다.   ‘돌아보지 말아요, 당신 뒷모습이 멋져.’
픽 웃는 남편은 콧등에 주름이 생겼다. 싫지 않은 양, 자기도 팔을 뒤로 돌려 내 허리 깨를 다독였다.  나는 그의 등에 얼굴을 대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살포시 익숙한  남편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내게는 없는 그만의 독특한 이성의 향기, 다른 어느 누구한테서 맡을 수 없는 개성적인 향기가 내 후각을 간지럽혀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니 사실은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일이 최근 생겼다고 하는 게 옳았다. 자다가도 깜짝깜짝 놀라 뛰어 일어나 넙적 다리 살을 꼬집고, 이게 꿈인가?,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아다오, 하고 중얼거렸다.  한번 눈이 떠지면 너무나 신바람이 나서 도저히 다시는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천당에 간다면 그렇게 기쁜지 가보지 못 했으니 알 수 없지만, 정말 난 너무 기분이 삼삼해 요새 같은 날만 있다면 천년이라도 이 풍진 세상에 살고 싶다. ‘ 돈을 마음껏 쓸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는 감히 상상해보진 않았다.
가능성 없는 일을 상상하고 미리 기분을 내는 것 같은 멍청한 시간 낭비는 안 했었다.
그러나, 사람 팔자 시간문제라는 옛말이 실감이 나는 요즈음이다. 하기서 처녀 때 친구가 손바닥을 펴보곤 날보고 후년에 돈벼락을 맞을 팔자라고 하던 일은 다른 것은 다 잊어도 가끔 머리에 떠오를 때가 있다.  기독교인으로서는 안 될 말이지만, 삶이 너무 힘들 때 가끔 그랬다. 그 말을 생각하곤 희죽 웃기도 했으니 말이다.
      바로 몇 달 전만 해도 우린 집세 낼 때마다 잔고가 달랑거려 부도 일보직전까지 가야 했다.  집세를 내고서야 눈, 비, 맞지 않고 아침 이슬에 젖지 않아도 또 한 달은 살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후유, 한숨을 쉬었던 것이다.  가난한 교사를 외딸 사위로 맞는 일이 못내 억울해 어머니는 그이를 행낭아범 취급을 했다.
‘ 선생질 십 년에 집도 한 칸 없는 놈..’    그에게 눈을 바로 뜨지 않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살아서 보았더라면, 아마 장래를 훤히 볼 줄 아는 딸의 혜안을 감탄했으련만...
하여간,  그 귀한 돈을 잘 벌어 주는 내 남편은 이 세상에 다시없는 보배요 자랑이었다.  그것도 조금 많이 버는 게 아니고, 엄청 많은 돈 말이다. 정말 순간 보였다 사라지는 백일몽도 아니오, 깨어나서 아쉽고 허무해지는 꿈도 아니었다.  
  남편은 너무 진중하며 꼼꼼하고 과묵하여 답답하다고 - 답답 사, 영도 사,  온갖 소리로 비아냥대던 나였다. 물론 속으로만 말이지만.  그런 그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이야...  어머니가 사람을 볼 줄 몰랐다고 나는 혼잣말을 한다.
그는 교육계에서 이 십 년을 썩은 사람이다. 아마 이민을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분필가루에 중독되어 어깨가 활처럼 굽은 초췌한 훈장 나부랭이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 아닌가?.
    가난했던 집안엔 항상 웃음이 없었다. 가난은 난이었다. 식구마다 얼굴이 찌그러진 쪽박처럼 우그러져 있었다.  걸핏하면 큰 소리가 났고, 짜증이 났다. 구질거리는 일상이 지겨웠고, 아무 것도 시원한 게 없어 답답했고, 앞이 안 보이는 일상 이었다.
그게 바로 수 삼 개월 전인데 지금은 같은 사람의 얼굴도 오백 촉 할로겐 램프를 켜놓은 듯 환해 보인다.  남편은 날 데리고 쇼핑을 가겠다고 번쩍거리는 벤츠 600을 문 앞에 갔다댔다.  난 오랫동안 그런 차를 타본 여자처럼 우아하게 사뿐히 차에 올랐다. 시트벨트를 ‘똑’소리가 나게 꽂고 다리를 포개 앉았다.
차체는 점잖은 신사처럼 둔중하고 그레이 빛깔은 반사되는 태양열에 번쩍 빛났다.
보이지 않는 센서가 장치돼, 온갖 옵션이 붙어있어 아주 편리했다. 차 안에서는 모찰트가 은은히 울려 퍼지며 고급스런 가죽냄새가 숨을 쉴 때마다 훅훅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유스드 카 딜러에 가서 구만리를 달린 헌 철마를 월부로 구입해도 황송하고 감격했지만, 이건 그런 것과 비교조차 할 게 아니었다.  그것도 현찰로 샀으니 진짜 우리 차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의 양팔이 저렇게 튼튼하고 믿음직해 보인 적도 없었다.
    남편은 겉으론 소심한 것 같아도 스케일이 큰 사람이다. 친구들의 우려하던 눈빛에도 불고하고 이 십 년 봉직하던 학교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미국행을 결심한 것만 봐도 따지고 보면 그의 미래를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에-돈을 못 벌 때, 그리고 이민 초기에-그는 소심해 보였고, 키 작고 깡마른 베트남인처럼 볼품없는 초로의 동양인이었다.
더구나 키 크고 허여멀건 서양인들 사이에선 보잘것없는 강원도 인디언이었다. 언제나 주머니가 달랑거리던 그는 매사에 너무 알뜰해서 한 푼을 쓸 때도 따지고 손끝이 발발 거려 나는 쨈보 째쨈보, 벤뎅이 뱃속이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여 중얼거렸다.
    남편은 노스 헐리욷 언덕에 우뚝 솟아 로스엔젤러스 시가지를 훤히 내려다보는 오래되고 고풍 찬란한 유명 일본 레스트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주차장으로 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가면, 옆으로 버킹검 궁전의 문지기 같이 금빛 술이 여기 저기 달린 제복차림의 주차원이 다가와 빳빳한 자세로 깊이 고개를 수그리고 키를 받아들 때, 난 정말 돈의 위력을 짚고 일어서려는 우쭐거리는 마음을 꾹꾹 눌러야했다.  짝퉁이 아닌 진짜 코부라 핸드백을 들고 코부라 구두 끝이 땅에 닿지 않도록 걸으면서 남편의 부축을 받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현란한 꽃무늬 기모노를 입고 게다를 신은 웨이트레스, 엉덩이를 요리조리 틀며 움직이는 걸음으로 상냥스레 다가왔다.  그녀가 ‘어서 오십시오,( 이랏샤이마세). ’우릴 예약됐던 좌석으로 안내했다.
음식도 상류와 중류 하류가 다른 것 같다.  배가 고파서 들어간 곳에선 량 많고 맛있으면 됐다. 갖다 놓기가 무섭게 반찬부터 허겁지겁 주워 먹고 배가 부르면 만족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음식을 먹으러 온 게 아니라 분위기를 먹으러 온 거다. 귀족적이고 고상한 분위기를 깨고 주책없이 기침이 났다. 감기 기운인지 약을 먹어도 멈추질 않는 기침이 혹시라도 고결한 분위기를 헤칠까봐 염려하여 얼른 손수건을 꺼내 입을 막는다.
  기모노를 입은 젊은 여자가 예쁘고 고급스런 접시 위에 새 먹이만큼 얹어 놓은 아페타이져를 갖다놓았다. 맛보다 빛이 고왔다. 이것저것 조금씩 기품 있게 맛을 보다보니 어느덧 주식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게 식사는 끝나고, 숭늉보다 못한 녹차가 대죽으로 만든 앤틱 찻잔에 반쯤 채워져 나왔다.
  아- 난 모처럼 고급음식을 먹고도 배가 안 불렀다.
의식은 부자가 됐는데, 아직 머리 아래선 빈궁의 때가 남아 된장국과 김치찌개가 생각났다.  점심 후에 그이는 베버리힐스 로데오 드라이브로 차를 몰았다. 이제야 정말 미국 사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전에는 못 와본 거리지만 촌스럽게 어릿거리지 않으려 침착하고 대담한 걸음걸이로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그래도 외국인 가게보다는 동양 여자가 서있는 한 상점으로 문을 밀고 들어섰다. 짙은 속눈썹 화장을 한 날씬한 미인이 앞으로 다가왔다.
‘ 어서 오세요. ’
     아- 그 여자는 한국말을 했다. 우리를 알아본 것이다.
‘ 어머- 한국인이시네...’
난 너무 반가워 깜짝 놀라 격도 없이 말을 걸어버렸다.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눈으로만 입어보던 고급스런 옷들, 그 중에서 녹색 실크 드레스를 만져보았다. 촉감이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웠다. 손톱으로 올이라도 긁을까봐 조심스러웠다. 어깨가 푹 파지고 가슴이 훤히 노출된 파티 복, 그 옷은 -이브 쎙 몽땅- 이란 디자이너의 이름과 5천불의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속으로는 깜짝 놀랐으나, 의연한 표정으로 얼굴색 하나 변치 않고 손을 놓았다.
‘ 왜요?, 어울리실 텐데, 최고품이에요,  이 디자인은 꼭 열 벌만 만들었기 때문에 더는 없어요, 이게 마지막 한 벌 남은 거예요, 한 벌은 배우 멕 라이언이 사갔고, 여덟 벌은 유명한 앵커나, 배우들이 나오기 무섭게 사갔어요.‘
  그녀는 마리 앙또와넷 왕비가 쓰던 것 같은 고전적인 장식이 달린 거울을 들이대며 옷을 내 가슴에 갖다 댔다.  나는 상류사회 귀부인답게 부드럽고 우아한 미소로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다른 옷으로 눈길을 돌렸다. 난 그만한 돈은 갖고 있었다.   백 속에는
한정 액이 이만한 옷쯤은 열 벌을 사고도 남을 크레딛 카드와 퍼서날 책, 그리고 현찰이 듬뿍 들어있었다.  돈이 없어 못 살 때는 부끄럽고 창피해 도망치듯 나왔지만, 지금은 그 정도쯤은 눈에 안차 안사니 부끄러울 게 없었다. 오만하고 점잖게 여러 가지 옷들을 구경하고 만져보았지만, 돈도 쓰던 놈이 쓸 줄 알고, 고기도 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난 도저히 그 비싼 옷을 살 엄두가 안 났다.  두둑한 백을 그대로 들고 남편에게 나가자고 할 때 난 더 당당할 수가 있었다.
‘ 당신 왜 안사지?. 그렇게 벼르고 사고 싶어 하더니?.’
‘ 나중에.... 뭐 곧 겨울이 곧 올 텐데, 철 지나면 세일하겠죠. ’
세일 아니면 안 사던 가난할 때 버릇이 은연중 나왔다.
    내 눈에는 도무지 옷 같은 게 없었다. 그렇게 화려하기만 한 옷을 입고 어딜 간단 말인가?.  나들이 나갈 곳도 없는 나다. 집안에서만 입기엔 너무 아깝고, 교회는 그런 옷을 입고 갈 곳이 아니고, 어디 파티라도 간다면?...  사실 난 아무리 고급 옷을 걸쳐봤자 더 이상 이성의 눈길을 끌만큼 젊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주제에 그런 옷을 사 입으면 주제파악을 하라고 은근히 식구들이나 주변인들이 돌아서 웃을 것 같았다. 바쁘고 가난하게만 살던 나는 사귀는 친구도 많지 않아 파티 같은 데도 갈 기회가 없었다.
난 옷을 안사도 산 것 보담 더 뿌듯했다.  난생 처음 남편이 건네주던 B. O. A.  크레딕 카드를 받으며 순간 어찌나 감격했는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부터 마음에 여유가 생겨 아무 것도 안사도 괜찮았다. 돈이 내 손에 있으니 언제라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무겁게 현찰을 들고 안 다녀도 됐다. 점심 한 끼를 먹고도 크레딧 카드를 북 긁는 부잣집 마나님답게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민 와서 줄곧 밟아대던 징그러운 재봉틀도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가 있다. 온종일 아무 일도 안 한다 해서 돈에 궁해질 염려도 없다.
                               *
  처음 컴퓨터 앞에 앉아 떠날 줄 모르던 남편을 향해 난 짜증을 냈다.
‘ 아니 당신은 어찌 그리 꼼짝도 않고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을 몰라요?. 그게 돈이 나와요?, 밥이 나와요?.’
‘ 가만, 기다려봐. ’
- 흥 천년을 기다려봐라, 고린 동전 한 푼이 나오나....-
난 속이 터져 남편 등 뒤에서 입을 비죽거렸다.
  선생질만 한 남편은 꾸준성과 집착력은 있지만, 융통성이란 것은 약에 쓸래야 찾을 수 없다. 남들은 이민을 와서도 장사에 천재적 솜씨를 발휘하고 사장이다 회장이다 하며 어디 하면 알아주는 동네에 에이커짜리 집을 사서 식구들 호강을 시키는데....
  맨 날 여편네 옷에서 실밥 떨어질 날 없이, 남의 옷 꿰매는데 매달려 부수수한 파마 머리가 엉키던지 성키든지 아랑곳하지 않는, 주변머리 없는 남자라고  뒤에서 눈을 흘겨줬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은 얼굴에 온통 희색이 만면하여 폭탄선언 같은 발표를 했다.
‘ 당신, 이제 고생 고만해, 그 동안 수고 많았어. ’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나, 난 멍하고 그의 턱에 희끗거리는 염소수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좀 뻐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또 기적 같은 소릴 했다.
‘ 우리도 이젠 넓은 집을 사고 차도 새로 장만합시다.’
  이건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다. 온종일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더니 남편의 머리가 살짝 돈 게 아닐까?... 난 겁이 덜컥 났다.
‘ 왜 그래 당신?,  어디 아파요?.’
  골샌님인 자기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괜한 허세를 떠나?. 하루아침에 흥부네 제비가 호박씨라도 떨어트리고 갔단 말인가?. 나의 멍청한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 보던 남편은 허허 웃더니,
‘ 내가 사 둔 주식이 이 백 배로 뛰었어.’
하는 게 아닌가.
‘ 몇 배요?. ’
‘ 15불에 사 뒀던 게 3000불이 됐으니 이백 배 아냐?. 우린 이제 부자야.’
‘....’
‘ 고생 고만 하라고 하나님이 복을 기마이 좋게 한꺼번에 내렸어.’
난 그 소리가 어딘가 머 언 곳에서 울려오는 천둥소리 같이 들렸다.  소리, 소리, 실감이 안 나는 소리, 저이가 정신마저 오락가락하는가? 꼼짝 않고 방안에만 있더니 머리가 과대망상으로 환상을 보았나?
‘ 당신, 믿어지지 않아서 그래?. 그렇지만 사실이야.’
  그 남자는 갑자기 내 남편이 아닌 딴 사람으로 보였다. 항상 보던 꾸부정하고 추레하고 무능하며 이불 속에서 방귀를 꾸어 구린내를 풍기는 남자, 입을 헤 벌리고 자다가도 잠꼬대를 하던 남자가 아닌 믿음직스럽고 능력 있는 멋진 나의 빠뜨롱이 된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의 생활패턴이 달라졌다. 비싸서 구경만 하고 지나치던 마켓으로 거침없이 식료품을 사러 들어갔다.
미국 식품이야 함량이 겉에 적힌 대로이고 훌륭한 영양가가 넘치지만, 좀 더 질 좋은 식품은 따로 파는 곳이 있었다. 나쁜지방과콜레스톨을제거하고진짜 영양분만 켜켜이 재 넣은 GOURMET FOOD 이란 게 있다.
  그 마켓은 유럽산 올리브유부터 고기도 슈퍼 등급만 파는 곳이다. 민주주의나라라고 대통령부터 일반 서민까지 다 똑 같은 음식을 먹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자들이 먹는 유기농산물이 그렇고, 델리는 근본적으로 질이 달랐다.
빵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도 처음 알게 됐다.
    남편의 재주는 과히 놀랍도록 발산되기 시작했다. 그는 타이밍을 잘 맞추는 센스가 있었다. 증권에는 반드시 시그널이란 게 있단다. 그의 조직적이고 학구적인 두뇌가 그 시그널을 잘 포착했던 것이다. 어느 것이 오를 물건이고, 어느 게 내일이면 물구나무서듯 거꾸로 낙하산을 탄다는 것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융자까지 받아 방방 떠오르는 별 같은 주식을 왕창 사 모았다.
여태까지 개천에서 용이 되려고 엎드려있던 이무기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소리가 그의 어깨에서 씽씽 나고 있었다.  참으로 주식 바람의 냄새는 훈훈하고 향기로웠다.
    월세가 싼 우리의 아파트는 후지고 낡아 지나가는 차의 진동으로도 티브이가 받침대에서 충을 추고, 자다가도 찍찍거리는 쥐 생원들의 러브파티를 자장가로 들어야 했다.  요사스러운 운명은, 우릴 미국식 달동네인 스키드로우 [빈촌] 에서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어 높은 산동네에 페인트 냄새도 마르지 않은 새집을 사게 만들었다.
정말새집은영어로고어져어스(Gorgeous)했다. 들여놓을 세간도 17세기 불란서 Rococo 풍으로 된 가구를 마음껏 골라 사들였고, 매일 집을 장식하는 즐거움이 삶의 목표처럼 됐다.  그럴수록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 교회에 갈 시간도 없었다. 복을 빌러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은 나 하나로 족했다.  나도 교회에 가 앉았어도 집이 궁금해 좀이 쑤셨다.  큰 복을 받고도 교회에 안가면 그 복을 뺏길 것 같아 나만은 꼬박꼬박 출석을 했던 것이다.
  아들 형준이 주니어 하이 스쿨을 졸업했다. 남편은 온갖 잡탕 인종이 다니는 공립학교가 아니고, 제복 입고 오이씨 같은 부잣집 아이들만 다니는 사립학교에 아들을 넣었다.  제 아비를 닮은 아이는 영리하고 똑똑해 첫 학기부터 인정을 받았고, 백인을 물리치고 학년 회장에 당선까지 됐다.  꾸겨지고 오그라들었던 고목 같은 내 가슴에 꽃이 활짝 폈다.  우린 그 소식을 코리안 소사어티에 알리고 싶어 한국일간지에 아이 얼굴과 함께 대문짝만한 광고를 냈다.
어딜 가나 누구하나 부러운 대상이 없었다. 지폐를 두둑이 넣은 봉투를 헌금함에 집어넣는 손이 당당했다.  이민 초기에 헌금함에 넣는 동전이 딸랑 소리를 내고 떨어지면 내 가슴도 딸랑 소리를 내며 퍼런 멍이 들었었다.  가난했던 나는 어디서나 기가 죽어 뒷자리만 맴돌았다.  하나님 앞에서도 우러러볼 면목이 없었다. 남들처럼 건축헌금, 선교헌금을 할 수 없었던 내 처지가 부끄럽고 죄송해 엎드리면 눈물부터 나왔다.  돈이 있어야 매사에 사람 구실을 하는 세상이다.
  나를 깔보고 멀리하던 동창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통이 닳도록 따르릉 거리며 나를 동창회 총무까지 하라고 추대했다.  나는 친구들을 초대해 그 동안 못 낸 턱을 내서 한풀이도 했다.  그들은 나를 보고 닷컴 재벌이라고 부러워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불교에서도 해탈이라는 말은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고, 기독교에서는 마음이 가난해야 천국을 볼 수 있다고 했건만, 난 아직 소꿉질 같은 이승의 삶에서 초연해지지 않는 물질의 욕심을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나보다.
물질이 없으면 삶이 괴로웠다. 너무나 불편했다. 가고 싶어도 못 가고, 먹고 싶어도 참아야했고, 졸리 운 눈을 까뒤집어 이쑤시개로라도 뻗쳐 놓고 재봉틀을 밟아야했었다.
젖과 꿀이 줄줄 흐르는 이 땅이라지 만, 우리 아파트엔 바퀴벌레만 끊임없이 기어 나왔다.  내일을 바라보고, 자손만대로 뿌리를 내리겠다고 참고 산지 어언 이십 년이다. 다행이 몸이 말을 잘 들어 줘 아무리 아파도 아스피린 타이레놀 한 알만 꿀꺽 삼키면 만병통치였다.  그러던 몸이 돈 냄새를 맡았는지 자꾸만  보챈다. 병원의 높은 문턱을 껑충 뛰어넘어 고명한 미국 박사의 진찰을 받았는데도 웬일인지 기침이 멎질 않고 캑캑거렸다. 까짓 기침쯤이야 코데인 물약 한술이면 퇴치가 됐어야하지 않을까...
  이젠 아파도 참거나 괜찮은 척 할 필요가 없다. 남편은 의사를 바꿔보라고 했다.
‘ 아, 비싼 인슈렌스 내고 있는데 얼마든지 좋은 의사 찾아가 봐..’
‘ 응 그래 엄마. ’
아들까지 따라서 부추겼다.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지 않아도 윤이 반드르르 나게 쓸고 닦고 살림을 해 주는 멕시칸 가정부가 시간마다 용과 인삼대추 생강을 끓여다 대령해도 기침은 마찬가지였다.  
의사가 엑스레이 촬영을 하자고 했다. 옷을 홀랑 벗고 가운만 걸친 채 차가운 철판에 젖가슴이 닿는 순간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공연한 짓을 하는 의사의 호들갑이 미웠다.  엑스레이를 수도 없이 찍었다. 의사가 일주일 후에 보자고 했다.
남편이 기분전환을 하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혹시 환경을 바꾸면 기침이 나을 지도 모른다고.
   난 가난의 때를 완전히 벗기 위해 들고 갈 소지품부터 멋진 것을 샀다.  몸에 착 달라붙는 실크불루진 바지와 불란서 일류 디자이너 로고가 박힌 티셔쓰를 입고 마후라를 멋지게 맨 나는 커다란 알이 붙은 명품 썬그라스를 이마에 걸친다. 그리고 이브 쌩 몽땅 여행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혼잡한 사람들 틈에 끼어 파리 행 비행기 트랩에 오를 때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해보는 호강이었다. 이민 올 때 멋도 모르고 비행기를 탔을 땐, 앞날이 불안하고 걱정이 돼 마음이 무거웠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이야말로 거기 앉은 외국인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외국 유람을 가는 게 아닌가.... 나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힐러리 여사 보다 못하지 않은 자세로 비행기 창문을 내다보았다. 우린 열일곱 시간을 날아서 파리 Challes De Gaulles 인터내쇼날 비행장에 내렸다.
  시내로 들어오니 거리는 깨끗하고 역시 오랜 전통의 도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티끌 하나 없이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호텔 로비에서부터  또 기침이 시작하려는 징조가 보였다.  내 몸의 오관이 유럽이라는 아름답고 역사 깊은 별천지에 깜짝 놀라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난 멀리 창문으로 노들 탑을 찾아보았다. 앞창에선 안 보였는데 옆으로 난 창에선 멀리 탑 같은 게 보였다. 그것이 노들 탑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여학교 때 너무나 감명 깊게 본 영화 -노들 탑의 곱추-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여행사 안내인이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로비로 집합하라고 했다. 그러나 난 밤새도록 기침을 해서 잠을 못 잤고, 피로가 겹쳐 도저히 여행 기분을 살릴 수가 없었다. 흥분을 한 탓인가, 캥캥거리던 기침이 화통을 삶아먹은 것 같이 컥컥 퍽퍽 나오면서 벌건 피가 섞여 나왔다. 따라서 가래침이 목젖에 걸려 도저히 남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기침은 나왔고 전신은 땀으로 목욕을 했다. 나중엔 한 번 기침을 하고 나면 애를 낳을 때처럼 혼절을 하고 몸엔 진땀이 쏟아졌다.
‘ 안 되겠군 여기도 병원이 있을 테니 의사부터 봅시다.’
    남편은 호텔의 안내로 병원에 날 데리고 갔다. 응급 처방만을 받고, 우린 여행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고 발길을 돌렸다. 가난할 때는 멀쩡하던 사지육신이 왜 갑자기 이렇게 삐끗거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벼르고 별렀던 유럽여행은 그렇게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남편은 그날로 날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하려던 참이라는 의사는 남편을 별실로 불러들였다. 궁금한 내게 남편은 구름이 잔뜩 낀 얼굴로 돌아왔다.
‘ 의사가 뭐래요?.’
‘ 뭐 별거는 아니고 좀 피로해 그렇다고 푹 쉬래.’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게 있는 것 같았다.
‘ 집에 갈래요.’
‘ 안 돼!, 좀 더 검사할 게 있대.’
    펄쩍 뛰는 남편의 모습에서 알았다. 뭔가 있구나, 죽을병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난 입을 다물어버렸다.
천치가 아닌 이상 그 눈치를 모를까봐... 하루에도 열두 번 피를 뽑아가고, 뉘어놓고 주사바늘을 뽑지 않는 간호사의 태도에서 알아챘다.  비로소 내 몸의 이상을 더욱 깨달았다. 무슨 감기 고뿔이 한 달이 지나도 안 낫고, 약을 먹어도 기침이 캥캥 거리냐 말이다. 거기다가 미열까지 있었다.
- 아, 이제야말로 살만해지니  몹쓸 병에 걸려 이대로 눈을 감아야 하나?.-
아들이 불쌍했고, 이렇게 잘난 남편을 혼자 두고 갈 수는 도저히 없었다.
더구나 이처럼 근사한 집을 사서 벌여놓은 살림에 대한 설레는 마음과 희망을 다 버리고 훌쩍 떠나버린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그보다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 지난 삶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아-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하나님을 무슨 낯으로 뵐 것인가?  아직은 아니다. 난 죽을 수 없다. 몇 년 만 더 살아야 했다. 하나님을 붙들고 통곡을 했다.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천사를 잡고 씨름을 하듯 나도 하나님을 밤이나 낮이나 부르며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삶을 고해 바다라고 한다. 그러나 내겐 험준하고 가파른 언덕이었다. 오르려고 발버둥 치며 내게 붙은 사지로 버둥거려 오르다가도 자주 미끄러져 내리던 언덕길이었다. 그나마 내겐 하나님이 성하고 튼튼한 사지를 주었기 때문에 망정이지 불행히도 어디하나 신통치 못했다면 나는 주르르 미끄러져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을 쳤을 것이다.   이제야 겨우 내가 바라던 정상을 향하여 힘차게 오를 여건이 생겼는데 난 이렇게 좌절을 해야 하나... 참으로 기막히고 서글픈 일이다.
     하나님 왜 나입니까?. 왜 날 벌써 데려가시려고 합니까?. 조금만 더 이 알공달공한 세상에 살게 해주십시오.  저 신통방통한 남편을 두고 갈 생각을 하면 도저히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뛸 수가 없습니다, 울부짖었다.  난 외로웠다. 기도부탁을 할 친구도 없었다. 교회 다닌 지도 십 년이 넘었지만, 소위 여 집사란 사람들과는 별로 가깝게 지내질 않았다. 나도 집사지만, 그들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여전도회다 뭐다 하는 곳에 가입하라고 성화를 대는 소리가 무서웠다. 근근이 벌어먹기도 힘든 내가 회비를 내고 시간을 내서 봉사를 하라고 할까봐 난 비실비실 그들을 피해 다녔다. 어쩌다 아는 얼굴이 가까이 오면 한번 꾸벅 절을 하곤 바쁜 척 꽁지가 빠지게 줄행랑을 쳤던 것이다.  
     그런 내가 몸에 몹쓸 병이 들어 이젠 영락없이 죽게 됐으니, 살려만 주신다면 남은 삶은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고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가소롭게도 맹세까지 했다.  남편은 그런 와중에서도 매일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앉아 마우스에 목을 걸고 앉은 뒷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얼굴은 안 보여도 뒷모습 만 봐도 그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는 게 부부다.
    일이 뜻대로 되는 날이면 그의 목이 끄덕끄덕 위 아래로 오르내리기도 하고 제비추리 있는 데가 번쩍 빛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화가 나거나 근심걱정이라도 생기면 그의 목덜미 삼겹살이 곤두서서 딱딱하고 심각한 기운이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염이 된다. 남편은 후두 엽을 살랑살랑 흔들며 어떤 불길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지금 그는 눈부시게 성공한 닷컴 재벌의 등판이 아니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이상스런 공기가 그의 머리 뒤 꼭지로부터 하지의 비구름처럼 뭉게뭉게 흘러나왔다.
‘ 여보 나 좀 봐요.’
대답이 없다. 못들은 것 같다. 아니 못들은 게 아니고 안 들었다. 뭔가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난 궁둥이를 들고 몸을 일으키면서 악을 썼다.
‘ 여보 !, 귀먹었어요?, 사람이 부르는데..’
그때야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 아- 왜 그래?.’
뭐 할 말이 있어 그런 게 아니고 날 좀 봐달라고 응석을 부린 것인데, 그의 기상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었던 거다. 이럴 땐 내 쪽에서 수그러들어야지 아니면 그의 입에 지퍼가 잠가질 수도 있다.
‘ 커피 타올까요?.’
또 대답이 없다. 난 제풀에 다시 누워버린다. 강력한 기침약이 날 다시 잠들게 했던 것이다.
    미국 경제는 세계의 돈을 다 긁어모으려는 듯 나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눈뜨면 또 새로운 신흥 재벌이 여기저기 비로 쓸어 모아도 될 성 싶게 우후죽순처럼 돋아났다. 우리도 그 들 뒤로 줄을 서서 그들의 뒤꽁무니를 바쁘게 따라 갔다.
그런데, 다음 날 나의 절대적 믿음과 존경을 한 몸으로 받고 있는 남편이 한숨을 땅이 꺼지게 쉬었다.
‘ 아니 당신 왜 그래요?. 뭐가 잘못됐어요?.’
‘.....’
‘ 말 좀 해요, 왜 그래요?.’
‘ 시끄러워, 좀 가만있지 못해?.’
    아- 저이가 무슨 일이 잘 안 되는 구나, 이럴 때는 입을 다물고 눈치를 보는 게 수였다. 난 입을 다물고 눈치만 살폈다. 미련하게 자꾸 남편의 심기를 건드리면 그는 정말 화를 낼지도 모른다.  전 같았으면 대뜸 한마디 대꾸를 하여 남편이라는 오죽잖은 권위의식에 도전을 할 일이지만,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나도 은근히 화가 났다. 목구멍이 간질거리면서 기침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캑캑, 칵칵, 진땀이 전신에 흐른다.
‘ 아, 약 먹어, 무슨 놈의 기침을 그렇게 해?.’
‘ 누군 기침하고 싶어서 해요!, 인정머리는 쥐뿔만큼도 없어.’
    이번엔 나도 화가 났다. 참았던 뿔다귀가 더는 못 견디고 폭발을 했다. 그 소리에 남편이 금시 풀이 죽는 것 같다. 이상했다. 그 정도의 소리에 어깨가 축 처지다니.....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던 그의 등판이 갑자기 힘이 빠진 것 같다. 당연히 반격을 가해 오리라고 대비하고 있던 나는 조용해지는 그의 태도에 어떤 불길함을 느꼈다.
‘ 여보 왜 그래?, 당신 기분 나빠?.’
‘ 가만있어 봐.... 그린스핀 영감이 이자율을 또 올렸어.’
‘ 그러면 뭐가 어때서?.’
‘ 이렇게 무식하긴, 아, 그러면 주가는 점점 더 내려가는 거야.’
‘ 어마, 큰일이네, 우리 주식은 괜찮아요?.’
‘ 괜찮을 리가 있겠어?. 벌써 반은 곤두박질 쳤는걸..’
‘ 어떡하지 그럼?.’
‘ 아마 일시적 현상일거야, 기다려봐야지.’
     남편은 끼니를 거르면서 컴퓨터 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도 불안해지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이 한층 심해졌다.  이제 겨우 살만해진다고 좋아했는데, 웬 이자율은 올린다고 법석일까?.  그러나 그 다음 날도 주식은 더 떨어지고 남편의 얼굴엔 내천 자가 한 획 더 그어졌다. 난 골방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며 떼를 썼다. 제발 우리들의 주식이 떨어지지 말게 해달라고.  하나님은 이번엔 귀를 막으신 듯 내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 하나님의 뜻이 아닌 모양이다.
남편의 온갖 통찰력과 센스를 동원해도 떨어져나가는 스탁을 잡을 도리는 없었다.
은행 융자까지 얻어 산 주식의 값이 반도 안 되게 내리니 은행에서는 돈을 강제로 회수해 가버렸다. 조금만 기다려준다면 다시 오를 수도 있으련만, 은행은 냉정하고 야박하게도 자기들의 돈 먼저 회수해 가버렸다. 이자와 비용을 갚고 남은 것은 본전의 십분의 일도 안됐다.  결국 우리에겐 땡전 한 푼도 남지 않게 됐다.
우린 다시 가난하고 고달픈 신세로 돌아왔다. 그러니 반이나 다운 한 집이지만, 워낙 크고 좋은 집이라 만만치 않은 월부금을 갚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집은 다시 차압이라는 방법으로 은행에서 뺏어갔고,  찬란하고 화려한 가구들은 고물이 되어 개떡 값으로 세켄 핸드 가구점으로 처량하게 팔려갔다.
    잠시 누리던 호강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을 맺었고, 남편의 어깨는 다시 축 쳐져 옛 모습으로 돌아왔다. 돌아앉은 그의 등이 젊어 보이지도 않았고 귀찮다고 물감도 안 들인 그의 뒷모습엔 어느 듯 흰서리가 앉은 황혼이 길게 꼬리를 늘이고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나의 목에서 그리도 끔찍이 기를 쓰고 캑캑거리던 기침이 씻은 듯 부신 듯 안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다시 또 배운 도적질인 옷 만드는 재봉 일을 하기 위해 처박아둔 재봉틀의 먼지를 털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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