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 - 이호

2005.06.1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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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의 󰡔봄날의 텃밭󰡕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시인의 세계적인 시야다. 그의 시에서는 시인의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과 동시대의 세계적 사건들에 대한 관심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지구상에서 발발하는 문제점이나 물질문명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이성과 그 피해자들에게 공명하는 감성으로 무장하고 세계의 폭압적 질서와 몰자각한 현실에 대항하는 세계시민이다. 그것은 코스모폴리타니즘이다.
시인은 TV 드라마에 지나치게 열광하는 우중현상을 한탄하거나(「겨울연가」),이라크 전쟁의 시뮬레이션화와 그것을 보도한답시고 문제를 오히려 희석시키는 언론매체와 그에 놀아나는 현실(「놀라운 세상, 없다」)을 지적한다. 또, 비자연적인 컴퓨터피아를 슬퍼하거나(「컴퓨터피아를 위하여」) 아프리카 르완다의 내전으로 인한 기아와 난민을 애처로운 시선으로 묘사하고(「전갈자리」), 자본과 타락에 열중하는 도박도시와 그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한다(「라스베가스 순례」).
이쯤 되면 이 시인의 관심은 내부로 향해있기 보다는 외부로 향해 있으며 자신에 대한 관심보다는 타인들에 대한 관심 즉, 동시대적인 인간들 전체, 즉 인류로 향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 도처에서는 세계 공통어라고 불리는 언어의 어휘나 이국의 지명들과 함께 세계 곳곳을 누비는 시적 상상력을 만나볼 수 있다.
그것은 실제 시인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그런 것을 관찰하기 쉬운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는 그는 두 개의 나라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가 두 개의 나라를 살고 있다는 점이 그의 시를 특징짓는 요소가 된다. 젊은 시절 떠나 살게 된 자신의 고향 나라와 자기가 뿌리고 내린 이방나라. 시인은 그 두 개의 나라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그 두 개의 나라가 그에게는 갈등과 고뇌로 다가오기보다는 보다 넓은 시적 지평을 획득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그는 남북한의 문제도 분단 이전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 두 개의 조국으로 간주하기도 하는(「다섯 아버지」) 넓은 시각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외부로만 향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관심은 다양하다. 시선을 외부로 향하던 시인의 의식은 내부로도 향하고, 또 필연적으로 과거로도 향한다. 이 내부로 향한 시군들에서 시인은 자신이 뿌리내렸던 고향, 고국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권을 이루는 것은 민들레 연작시편들(「민들레1」~「민들레10」)이다. 아마도 시인의 시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물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민들레’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외부세계로의 관심이 자신이 날아가 안식할 곳에 대한 포자(胞子)로서의 휴머니즘적 코스폴리타닉한 인식관심이라면 내면적인 시선은 자기가 태어나 자기의 뿌리가 있었던 곳, 기원(고향, 지난 추억)에 대한 기원과 뿌리에 대한 존재관심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씨(기억의 DNA)를 가지고 바람결에 날아간 포자는 새로운 곳에 안착하여 꽃을 피우고 다시 씨를 만든다. 그래서 그 민들레에게선 언제나 마늘냄새가 난다. 그것은 디아스포라의 그것이다. 널리 날아가 흩뿌려지기. 그러나 그 흩날리는 민들레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관찰자만의 것일지도 모른다. 정작 민들레의 포자는 자기 전존재를 걸고 생존투쟁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그의 민들레 연작은 아름다우면서도 이민자적 삶의 어려움은 물론 삶 전체의 무게가 느껴지고 어조 또한 ‘않겠다, 되겠다’ 등의 강한 의지투 어조가 실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자기를 동정하거나 동시에 자기의 성공에 홀리고 있지는 않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시적 성과는 재외한인문학사에도 기술되어야 할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그의 시는 한편 가볍다. 무거워서는 산포될 수 없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가벼움은 경박한 것이 아니라 유머와 기지다. 반짝거리는 정도의 가벼움이 시를 읽는 자들의 긴장을 풀어주며 경쾌한 웃음과 재치를 느끼게 해 준다. 그렇게 그의 시는 산종(dissemination)중이다. 그의 시가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좁은 이 땅 밖에서도 민들레처럼 강인하고 아름답게 피어나길 바란다.

  --- <열린시학> 2005년 여름호, 이호 문학평론가의 "존재자들의 전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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