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이지엽, 김윤길

2005.11.16 14:34

solo 조회 수:1130 추천:60

(* 주; 아래 글은 '우리시' 홈피에서 퍼옴)

상지회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제 추억의 아주 큰 부분이지요
다음카페에서 방이 만들어 졌는데
뭐랄까 아, 그... 저, 맞아요
저는 요즘 아예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예요
그 친구 중에 김동찬이도 있고 김윤길이도 있는데
그 글을 여기 소개합니다/ 이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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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시인의 멜을 받고, 그의 홈피 게시판에 띄운 글
                        
                                         글쓴이:김윤길

.. 오월입니다.

출근해서 이멜을 열어보니,
연록의 풍경이 차창 밖으로 흐르는 기차역 그림이 떠있었습니다.
항상 눈매에 장난기가 넘치면서도 그윽함을 잃지 않는 옛 친구 동찬이가 보냈더군요.
느긋하게 그 기차를 타고서, 그 때....
70년대....
(아흐, '70년대'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저리는 그런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사직동에는 종로도서관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있지요.
도서관 지하에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식당 한쪽 구석은 칸막이가 되어있었죠.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선 참 독특한 냄새가 풍겨났습니다. 아마도 유부국수 국물에 도시락 찬밥 말은 냄새였을 겁니다.
그땐 국물만 따로 팔았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린 매주 토요일 오후에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학교는 달랐지만(경동, 중동, 보성, 경기, 성동, 배화, 동덕, 수도, 무학, 동구...., 아, 미아리 신설학교 서라벌 친구 승호도 있었군요. )
"상지"라는 '모임'(당시 유행하던 써클이란 용어를 우린 쓰지 않았죠)의 17기 동기였던 우리들은, 참 평범한 놈들이었죠. 그리구 촌놈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87년에 고인이 되신 김인홍 선생님.
처음엔 참 무서웠습니다. 도수 높은 안경 속에 만만치 않은 내공을 풍기는 매서운 눈빛이 아직도 서늘하게 떠오르는군요. 독서토론 할 때 말 잘하는 놈은 가차없이 벙어리 만들고, 떠듬떠듬 어눌한 놈은 부추기시던 호랑이 선생님....
그립습니다.
우린 고3 때까지도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아주 찐하게 밤샘을 했습니다. 특히 서울로 유학 온 촌놈들의 자취방과 하숙방을 전전하곤 했습니다. 아마 고등학교 3년 동안 외박일수가 300일은 족히 될 겁니다.
삼선교 골목 깊숙이 자리잡은 강희네 자취방에서 첫 담배를 배웠고 김포공항이 가까웠던 신정동 정휘네 자취방에서 첫 오바이트를 했습니다.
정릉 승호네 집에서 날밤을 세운 날이면 우린 오랜만에 포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경상도 가부장 법도가 유별난 승호네 집에서는 항상 한 상 가득 성찬을 차렸고, 승호 아버님의 일장훈시를 듣고 나서야 숟가락을 들 수 있었습니다.
고3 시절 어느날엔가 동찬이와 몇몇 친구는 우리집에 놀러와서 맛있게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런데 제 아버지는 친구네 학교인 경동고 학생주임 선생님이었습니다.

김동찬 시인의 게시판에 들어와보니 그 시절이 새삼스럽습니다.
이지엽 시인과, 이우용 군의 글도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초심을 잃지않은 동찬 군의 살아있는 시, 깊이있는 글들이 흐뭇합니다. 이역만리에서도 멋진 삶을 지속할 겁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이 실감나게 말입니다.
아, 수처작주가 무슨 뜻이냐고요?

Just here, now,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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