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안소니 퀸 같은 김동찬 시인을 우리 시단에 소개한다. 이미 기성시인으로 저명잡지의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찬 시인을 새롭게 우리 시단에 소개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욕심이다. 아주 오래 전에 나는 모 시인으로부터 김 시인을 소개받았는데, 김 시인은 그때 내게 퍽이나 싱거운 얘기를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이야기를 여기에 적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거주하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 지 거의 한 달이 되어서야 배꼽을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싱거운 얘기는 지독한 해학이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그 싱거운 이야기는 해학이 아니라 굉장한 철학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싱거운 이야기는가끔 나를 아프게 찌르기도 했다. 김 시인은 나보다 고수였던 것이다.
   김 시인은 등단을 한다든지 어는 줄에 기댄다든지 소위 문단의 기류나 편향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미주에서 아직도 토요일마다 <글마루>라는 모임에서 고원 선생을 모시고 문학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 점은 쉽게 확인이 된다. 그는 그저 글을 좋아하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무엇을 해본 적이 없는 순수한 남자이다. 그는 자신의 시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전혀 징징거리지 않고 아예 관심도 없이, 썩어빠진 이 시단을 그저 빙긋이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에 우연히 그의 시 몇 편을 접하게 되었는데, 나는 예전의 그 싱거운 이야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순식간에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김시인의 문법인데 나는 그것에 묘한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시 <큰비>나 <봄날의 텃밭> 같은 것이 그러하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삶의 연원이 되는 고통이나 절망, 혹은 핏줄의식 같은 것이 깔려 있지만, 일단은 소박한 일상의 매력이나 해학의 즐거움으로 읽힌다. 나는 이러한 시적 변용이 그의 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시에서 배운 바가 있다면 코메디언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웃어서 죽어버릴지라도 자신은 끝까지 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코메디가 단순한 코메디에 그치지 않고 삶의 뒤통수를 때리는 날카로뭉ㅁ으로 번득일 대까지 조급하지 않게 지켜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름을 숨기는 지혜로움과 지독하게 끈질긴 기다림의 명수가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의 감취진 발톱을 현대시가 다시 찾아내 선보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의 활약을 기대한다.

-- 월간 <현대시> 2002년 7월호.
   연속 특별 기획 <현대시가 다시 찾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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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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