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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결혼 35주년

2017.12.24 06:52

이효섭 조회 수:1185

결혼 35주년

 

며칠 전이 결혼 35년 되는 날이었다. 잘 지났다. 무사히 잘 넘겼다 라는 말이 더욱 적합 할 것 같다. 집사람도 나도 몇 주 전부터 기념 일이 오니 무엇을 하나 부담을 가졌는데 둘 다 일을 하기에 선뜻 뭘 계획하지 못하였다. 또 작은 아이가 올해 가을 타 주에서 결혼을 할 예정이기에 그 곳으로 여행을 두 세 차례 해야 할 형편이고, 집안의 큰 일을 위해 우리의 생활이 축소 되어야 했었다. 결국 우리의 결혼 35주년이 되는 날 나는 치과에 가서 이를 고쳤고 집 사람은 머리를 하러 미장원을 찾았다. 그렇게 여느 하루와 다름없는 조용한 일상이었다. 치과 의자에 누워 의사를 기다리며 온갖 생각에 빠져 들었다. 세월이 이렇게 사람을 변하게 하는구나. 이날을 어찌 이렇게 아무런 잔소리도 듣지 않고 조용히 소리 하나 없이 지날 수 있지? 집사람이 포기를 했는지 봐 주는 건지…… 첫 해에 땀을 뻘뻘 흘리며 곤혹을 치른 일이 멀리 배가 지나 가듯 아련하였다.

순진한 남녀의 행진이었다. 당시 시골 같은 작은 도시, 한인도 손꼽을 정도인 도시로 부모님과 함께 일찍 이민을 오게 되었다. 집사람도 몇 년 후에 왔다. 적령기가 되면 무조건 결혼을 해야 되는 줄 알고 있었던 때였다. 집사람은 먼저 온 오빠가 결혼 하자고하니 모든 것을 믿고 나를 따라 결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까이 살아 가고 오면서 보고 싶다 사랑한다 등등을 읊었겠지만…… 결혼 후 우리는 직장을 찾아 타 주 대도시로 떠나갔다. 가족계획은 생각할 줄도 몰랐고 결혼 했으니 애기는 응당 가져야 하는 줄 알았었다. 첫 애를 놓고 두 달이 되니 결혼 1주년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신혼 살림을 휴스턴에서 시작하였는데 집 사람이 해물을 좋아하기에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갈베스톤이라는 항구 도시로 저녁시간에 갔었다. 그 날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어물시장이나 해물 식당을 찾으러 온 저녁을 헤매고 다녔었다. 두 달 간난아기 데리고 결혼 1주년을 엄청 기대하며 남편을 믿고 왔는데…… 내 귀 안이 빨간 홍시가 되어있었다. 물론 그날 밤은 나에게 더욱 깜깜했고 엄청 긴 밤이었다.  그리고 이 미국에는 일 년 내내 특별한 날이 왜 그렇게 많은지? 상술에 포장된 이 모든 날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자들은 어찌 그날이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지……

큰 누님이 작고하신 후 나는 4남내의 형제가 있다. 지난 어머니 날에 4남매 부부 8명의 카톡 방에 들어갔을 때 남자들은 모두 조용한데 4명의 여인들만 아침부터 서로 Happy Mother’s Day 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었다. 이때 나는 확실히 알았다. ! 여인들은 자기네들끼리 라도 특별한 날을 Celebrate 하려 하는구나 라고. 남자와 여자가 외형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모두 잘 알지만 머리 속 대뇌의 프로그램이 그렇게 다른지는 함께 산지 35년이 지난 이제야 조금 이해되는 것 같다. 젊은 남자들이 여인을 보고 고백하는 사랑은 정복적인 소유 본능의 에로스다. 결혼은 목적 달성의 정점이고 결혼 후에는 가정의 매니저로 신분 변화가 일어난다. 시카고 트리뷴지 생활 면에 결혼하고 집을 장만한 신혼 남편이 아내의 생일 선물로 뒷마당 패티오 의자를 샀다가 고생했다는 기사를 읽고 웃은 기억이 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와 같이 무지한 남자들이 무수히 있는 같다.

지난 35년 중에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시간들이 많이 떠오르지 않는다. 저렴한 월세 아파트에 살면서 큰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가 가장 아름답게 그려진다. 어떤 정신과 상담 의사의 표현대로 그 이후로는 숙제만 하다가 35년을 지나온 같다. 결혼하였기에 경제적 해결의 숙제. 자식을 낳고 또 낳았기에 육아 하는 숙제, 다리 건넌 가족과의   문제 해결 등등.  여의사이며 수필가인 저자도 짊어진 숙제가 너무 버거워 이혼을 하려는 마음까지 먹었었다고 고백한다.  결혼을 했으니 사회적으로 한 집에서 살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지만 진정 두 얼굴이 서로 마주보고 마음을 서로 다독거린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루 24시간 가운데 자는 시간 빼고 일하는 시간 빼고 사회생활 빼고 한바탕 싸우고 난 후 벗어나고 싶은 시간까지 빼고 나면 간직하고 싶은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결혼 35년 동안의 그 기억하고 싶은 시간을 모아 봐야 며칠이나 될런지…… 이것이 결혼 35년의 결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하고 빼서 제로라면 결과는 늙어진 나 자신 뿐이다. 결혼 기념일 아침 출근을 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하고 긴 시간 살아줘서 고맙다고 서로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가족 카톡 방에 큰애는 “35년동안 잘 사셔서 감사합니다”. 작은애는 ㅋㅋㅋ 수고하셨어요라고 문자를 보내 왔다. 저들이 뭘 안다고……

우리 가족과 며느리 될 아가씨와 함께 얘기하는 카톡 방에 결혼 선배로서 경험담을 올렸다. “아빠로서 경험 없이 너희들을 어설프게 키워 미안하다. 너희도 결혼해서 애 놓고 키우면 아이는 자라면서 아빠 엄마가 절대자처럼 보이지만 너희들도 역시 경험 없는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 모든 면에 부족한 삶을 살아간다. 이때가 가장 힘든 시간들인데 서로 연애 할 때처럼 서로 존중하며 양보하며 살아야 한다. 결혼했다고 해서 내가 너, 네가 나 되는 것이 아니고 또 내가 너의 것이, 네가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 결혼이란 너희 둘의 공통점이 커지고 강하여지고 좋아지도록 살아가는 것이란다. 연애 할 때처럼 서로 존중하며 살아라. 상대의 생각을 짐작으로 결정하지 말고 기념일은 꼭 기억하여라. Marriage does not mean that I become you, you become me nor I am yours, you are mine. You are still you and I am still I am. However it allows two of you make your common personality bigger stronger and better together. Respect each other as if you are dating prior to getting married. Assume not he/she will think as you do. Remember special days even if it cost you.

솔직히 앞으로 35년을 더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 남았는지 모르는 삶의 년 수를 생각하면 지난 35년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 시간 이였는지를 절감한다. 그런데 그 시간을 뒤돌아 보면서 허전한 감정을 갖는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메멘토 모리 라는 라틴어가 있다. 중세에 승려들이 사원에서 도를 닦으며 주고 받은 인사 말인데 죽음을 생각하고 오늘 하루를 살라는 말로 알고 있다. 이제부터 하루 하루를 가득히 살아 결혼 40주년 결혼 50주년을 맞을 때 나와 집사람의 가슴 바구니에 사랑 가득, 아름다운 추억 가득 담겨 있도록 다짐해 본다.

결혼 36주년을 기다리는 마음이 벌써 설렌다.

 

이효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