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섭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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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아메리칸 드림

2017.12.24 07:05

이효섭 조회 수:178

아메리칸 드림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이민자들은 김포를 떠날 때 혹은 인천을 떠날 때 아메리칸 드림을 가슴에 안고 왔습니다. 잠시 멈추시고 자신을 둘러 보십시다. 한국에서 바라보던 그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셨는지요? 지금 그 과정에 계십니까? 아니면 포기 혹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7080시절 이민 오신 분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오셨습니다. 저의 가정 역시였습니다. 가친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어 빈손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저는 청소년을 막 벗어나며 부모님 따라왔기에 막연히 엄청 잘 살기를 바라는 무의식의 욕망이   마음 속에 흐른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열심히 살아 왔을 뿐 내어 놓을 것이 없는 빈 손입니다. 사전은 아메리칸 드림을 미국 시민 누구나 새로운 의지로 열심히 일하면 성공하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있다고 정의합니다.

최근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두 사람을 보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습니다.

8년 전 일리노이 주 청사 귀퉁이에서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47세의 흑인이 있었습니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그 당시의 모습을 지역 TV들이 생방송을 하였습니다. 저도 일을 하면서 실황 중계를 보았지요. 그때 저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 상원위원으로 몇 년 정치활동을 하다가 일리노이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위원으로 당선되었지만 흑인인데 대통령이 되겠냐고 생각하였습니다.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되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 연설한 후 인기를 얻은 후 그 여세로 대통령을 꿈 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기적)을 성취하였습니다.

2011 4월 백악관 기자들의 만찬이 있었습니다. 기자들뿐만이 아니라 유명 인사들도 그 자리에 초대되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초임 기간 중에 끊임없이 구설수로 오른 하나는 그의 출생지 건 이였는데 이 것을 문제로 삼는 사람이 트럼프였습니다. 트럼프도 이 만찬에 초대되어 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트럼프를 찍어 농담을 하며 무안을 주었습니다. “나의 출생지는 더 이상 캐 묻지 말고 당신의 일이나 캐라, 그리고 연결하여 다널드 트럼프는 백악관을 새로이 만들 것이라며 백악관 앞의 기둥을 금 색칠하고 지붕 위에는 트럼프 이름을 쓴 조작된 영상을 보이며 온 사람들이 트럼프를 비웃게 하였습니다. 연이어 어떤 사람이 나와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나온다고요? 농담이지요라며 한번 더 비웃음의 대상으로 만들며 이어 갔습니다. 그때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된 후 그는 공화당에서 영향력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물 밑 작업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때가 그의 나이 육십다섯 이였습니다. 공화당내의 정치인들도 트럼프를 연예인 혹은 얼굴을 팔려는 기부자로만 이용 하려 하였지 실세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나왔을 때 수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언론도 미친자라고 혹평을 하며 비웃었습니다. 저 역시 그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수모를 당한 65세에 새로운 영역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나이 70에 이루었습니다. 수 많은 수식어가 붙은 아메리칸 드림을......

한 사람을 더 생각해 보려 합니다. 유태인 정신분석 의사로써 2차대전 중 나찌에 잡혀 종전될 때까지 강제 수용소에서 순간 순간 죽음을 대하며 살았고 부모와 형제와 아내를 아우쉬비츠에서 잃은 빅터 프랭컬입니다. 그는 인생은 어떤 것이 아니라 항상 어떤 것이 되는 기회라고 말 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 강제 포로수용소에서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인간의 몸뚱이만 남았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결정하는 기회는 계속 주어지고 있었다고 알려줍니다..

 다시 젊어지지 않는 나이에 들면서 자칫 아메리칸 드림도 저녁 노을 바라보듯 굿-바이 하기 쉬운 때가 되었습니다. 세인들 모두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미국의 현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을 보며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는 은퇴할 나이의 사람에게도 소수 민족인 우리에게도 우리의 결정에 따라 있다고 스스로 격려해 봅니다. 희망을 품고 40년 전의 꿈 다시 꿔 보렵니다. 나도 아메리칸 드림도  함께 살아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