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KNOWN 作
천세궁(天世宮)
14만4천교 교주 천세인(千世人)은 가쁜 쉼을 연거푸 몰아 쉬고 있었다.
광적인 예배집전때문 였다.
2시간에 걸쳐 치룬 집전 의식이 끝나자 교주는 서둘러 천세궁(天世宮)으로 향했다.
천세궁은 교주의 집무실을 일컫는다.
천세궁은 회당에서 1백여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교주는 집무실을 향해 걸으며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억제하지 못했다.
이마에도 땀이 솟구쳤다.
교주는 뒷주머니에 구겨 넣은 손수건을 꺼냈다.
그러고는 땀을 닦아내며 속으로 말했다.
“빌어먹을! 어젯밤에 너무 무리를 한 탓이야.”
가파르게 숨을 헐떡이며 집무실에 들어선 천세인은 가죽 소파에 다가가자 마자 그대로 널브러졌다.
교주가 썩은 볏집처럼 널브러지자 한 무리의 여성들이 그의 곁을 에워쌌다.
일명 12천사 궁녀로 불리는 여신도들이었다.
이들은 교주의 곁에서 여비서 역할과 은밀한 시중을 병행하며 수발을 들고 있었다.
12천사 궁녀들은 14만4천교에 속한 여신도 10만 여명 가운데서 엄선된 미녀들의 집합체였다.
18세부터 22세로 구성된 이들은 늘씬한 몸매와 빼어난 미모를 겸비했다.
12천사 궁녀들은 몸에 붉은색 실루엣 천으로 제작한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이들은 교주의 지시는 무조건 따랐다.
설령 교주의 요구가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해도 싫은 기색을 드러낼 수 없었다.
왜냐?
교주 천세인은 다름아닌 예수의 분신이기 때문 였다.
따라서 교주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는 이들이었다.
교주의 말은 곧 하늘의 말씀이며, 절대적 힘이었다.
이처럼 전지전능한 교주에게 누가 감히 대적하려 하겠는가.
하여, 그의 말을 거역하거나 댓글를 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배짱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절대자(교주)의 힘을 신봉하는 12천사 궁녀들 역시 자신들의 임무를 당연시 여겼다.
이들은 소파에 널브러진 교주에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교주의 팔과 어깨 허벅지 등 온 전신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12천사 궁녀들의 나긋나긋한 안마 서비스를 받고 있는 교주는 서서히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그런가 하면 여신도들의 보드라운 손길이 근경(根莖)을 스칠 때마다 가파른 쉼을 내뱉었다.
12천사 궁녀들의 안마는 대략 30여 분에 걸쳐 행해졌다.
덕분에 비로소 몸이 풀린 교주 천세인은 가죽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후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여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샤워를 해야겠다. 오늘은 누가 나를 씻겨주지?”
교주는 그러고는 일렬로 나열한 12천사 궁녀들을 곁눈질했다.
순간, 이들 가운데 두 여신도가 대열에서 앞으로 나왔다.
앳된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몸은 풍만하고 늘씬했다.
두 여신도가 나서자 교주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오호! 두 천사가 오늘 나의 은총을 받는 날이구나. 그래 어여 가자. 내가 너희를 천국으로 데려가마.”
교주 천세인은 기다렸다는 듯 두 여성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천세궁 안에 설치한 자꾸지로 향했다.
천정과 벽을 온통 거울로 장식한 욕실에 들어선 교주와 두 천사가 몸에 걸친 가운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변신했다.
곁에 선 두 천사가 교주를 샤워 탑으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교주의 몸구석구석을 씻기기 시작했다.
나긋나긋한 여성의 손길이 피부를 자극하자 뜨거운 피가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몰렸다.
천정에 부착된 거울이 교주의 몸을 추상적으로 반영했다.
교주 천세인은 올해 나이 70세 였다.
교주 천세인
한편 14만4천교 회당 밖에서는 1백 여명의 중년 남녀들이 바삐 움직였다.
이들은 손에 쥔 확성기와 꽹과리를 요란스레 울리며 교주를 향해 육두문자를 퍼붓고 있었다.
파마머리를 한 40대 중반의 여자가 확성기를 통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천하의 둘도 없는 색골이자 사기꾼 사이비 교주 천세인아! 감언이설로 내 어린 딸을 꼬드겨 입교 시킨 뒤 몸 시중을 들게 한 네 놈이야 말로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다”하고 말한 뒤 덧붙여 “지금 당장 내 딸을 돌려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육중한 철문으로 굳게 닫힌 회당 건물안에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냥 묵묵부답이었다.
아니, 오히려 내 딸로 지목된 해당 여성이 회당 출입문 입구에 나타나 자신의 부모 형제를 향해 ‘마귀는 물러가라’며 목청을 돋구는 해프닝을 빚었다.
이처럼 14만4천교 신도들이 부모 형제를 배척하면서까지 광신적으로 교주를 추종하는 이유는 가히 불가사의 한 현상이었다.
말그대로 교주 천세인이 하늘의 힘을 지니고있어서 인가?
아니면, 그에게 남다른 카리스마 또는 영험한 능력이 있어서 인가…
종교계에서는 14만4천교를 대표적인 이단으로 취급했다.
한마디로 사교(詐巧)집단이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무엇때문인가?
기성교단에서 금기시하는 신성모독을 교주 천세인은 버젓이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예수의 분신이며 수시로 하나님과 상통한다는 요설(饒舌)로 혹세무민한다는 것을 꼽았다.
정통교단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이비 이단 행위를 버젓이 자행하며 돈벌이 수단으로 예수팔이를하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자신(교주 천세인)의 입맛대로 왜곡해 신도들을 현혹시킨 뒤 맹신자로 탈바꿈 시키는 허무맹랑한 사기죄를 저질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도들에게 거둬들인 천문학적 숫자의 돈을 착복하는 등 종교인으로써 범하지 말아야 할 패륜적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했다.
하지만 기성 교단의 이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14먼4천교의 교세 확장은 오히려 파죽지세로 팽창하는 추세였다.
14만4천교의 신도 수는 모두 20만 여명에 달했다
그리고 신도의 성별은 이랬다.
#여신도 12만 여명
#남신도 8만 여명..
년령별 분포는
#20대에서 30대 남녀 신도수가 전체의 약 35프로를 차지 #40대는 대략 10프로. 그리고 50대에서 60대가 신도수의 절반에 해당됐다.
신도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현직 정치인을 비롯해 관계와 / 법조계 / 학계 / 연예계 / 금융계 / 언론계 종사자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이 14만4천교를 떠받들고 있었다.
이들 계층 인물들 가운데는 이름만 거론해도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하지만 실명을 거론할 경우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탓에 언론에서도 이 대목은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만 여명의 광신도를 아우르고 있는 교주 천세인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따랐다..
그가 오늘날 국내 최대의 사교 집단을 이끌 수 있게 된 배경의 원천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신도들 말마따나 그가 지구별에 오기 전부터 천계(天界)의 인물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모세가 그러했듯이 지리산에서 신의 계시를 받아 하늘나라 사업을 펴게 된 것일까?
뿐만 아니라 그가 백마를 타고 올 예수의 현신(現身)이어서 인가?
아무튼 형편없는 신비주의로 14만4천교를 이끄는 천세인의 과거를 되짚어 보면 저질 코미디와 3류 드라마를 버무린 한편의 희극이라 할 수 있다. .
이 대목과 관련해선 황당하고 허무맹랑한 일화가 넘쳐나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한다.
화제의 중심에 선 14만4천교에 대한 가십은 외국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미국 남부에 위치한 세계적인 종교분석학술지 ‘싸이언스 해븐’은 세차례에 걸쳐 14만4천교의 실태를 심충 취재해 기술했다.
싸이언스 해븐 편집진은 14만4천교와 교주 천세인을 교차 분석한 결과를 이렇게 평가했다.
“14만4천교의 맹신을 통해 우리는 ‘하늘나라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런가 하면 국내 유수의 언론도 14만4천교와 교주 천세인을 집요하게 추적해 다양한 르뽀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언론이 저마다 요란스레 폭로한 기사는 알맹이는 없고 두루뭉실한 기승전결로 독자들을 우롱한 낚시기사(?) 수준에 그쳤다.
때문에 14만4천교의 실상에 목말라 있던 시청자들은 울화통을 터뜨리며 언론사에 악플을 줄줄이 달았다.
독자들이 그토록 원하는 교단과 교주에 대한 팩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진 채 되려 신비감만 증폭시키는 아이러니를 낳았을 뿐이었다.
그나마 베일에 쌓인 14만4천교와 교주에 대한 심층취재기사를 다룬 유일한 언론 매체는 대한민국 최대의 일간지 정론직필 단 한곳이었다.
이 매체를 통해 교주 천세인의 실제 근황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론직필이 주말 특집으로 편집한 2부작 “14만4천교는 이단인가, 아니면 핍박 받는 교단인가?”라는 헤드라인 박스 기사는 시정인(市井人)들의 관심을 촉발시키며 설왕설래를 낳았다.
신문 특집판에 게재한 자료 사진 속 교주는 나이보다 30년은 젊게 보였다.
올해 나이 70세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이처럼 매우 젊게 보이는 그의 얼굴은 수차례에 걸친 성형수술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로 통했다.
교주의 몸바르기수술은 비단 얼굴만이 아니었다.
기형적인 대물로 소문난 고깃덩이 역시 자연산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라 했다.
“밤을 즐겁게 만드는 마이다스 손”이라는 광고 문구로 잘 알려진 비뇨기 전문 유명 여의사가 만든 걸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14만 4천교와 교주에 대한 갖가지 풍설은 저잣거리를 가십으로 도배했다.
인터뷰
한편 최근 들어 14만 4천교를 집중 취재한 정론직필(正論直筆)탐사보도부에 뜻하지 않은 전화가 걸려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덮쳐 온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을 즈음이었다.
상대는 다름아닌 14만4천교 대변인 이었다.
사내(社內) 교환실을 통해 연결된 전화를 받은 곽정환 기자가 말했다.
“정론직필 탐사보도부 곽정환 기잡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상대가 말했다.
“저는 14먼4천교 대변인인 요한 킴입니다. 현재 곽부장님께서 탐사보도부 기자들과 함께 저희 성부(聖父)님과 교회를 취재해 신문에 발표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사는 가짜뉴습니다. 하여, 중요한 사안을 가지고 전화를 드린겁니다.”
“그렇습니까? 계속 말씀하시지요.”
“단도직입적으로 전해드립니다. 저희 성부님께서 곽부장님을 만나자고 하십니다.”
순간, 곽기자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단 한번도 언론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교주가 나서서 만나자는 전갈을 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였다.
때문에 대변인이란 자의 전언을 접한 곽기자가 화들짝 놀란 것은 당연했다.
전화 송수화기에 귀를 바짝 밀착시킨 곽기자는 통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을 고룬 뒤 이내 정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네 성부께서 저를 뵙자 하시니 기꺼이 응하지요.”
상대가 말했다.
“저희 성부님 청을 받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성부님을 뵐 시간과 장소는 부장님의 스마트 폰 메시지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곽부장님께서도 스마트 폰을 사용하시지요?”
“물론입니다. 삼성 갤럭시 노트 11 최신형입니다.”
전혀 뜻하지 않은 상대와의 통화를 끝낸 곽정환 기자는 서둘러 탐사보도부 소속 기자들을 호출했다.
2020년 3월 1일 일요일 저녁 6시. 14만4천교 천세궁(天世宮) 접견실
최고급 대리석과 금도금, 그리고 각종의 호화 장식품으로 치장한 접견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됐다.
접견실에는 12천사 궁녀로 불리우는 앳된 여성들이 분주한 발걸음을 오가며 시중을 들었다.
곽정환 기자와 마주보고 앉은 교주 천세인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동안이었다.
얼굴에는 주름은 커녕 잡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세 살배기 피부처럼 매끈했다.
당초 인터뷰 조건으로 사진 촬영이 금지된 탓에 교주의 모습을 카메라에 필사(筆寫)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었다.
인터뷰 직전 기자들이 소지한 스마트 폰도 비서들이 양해를 구한 뒤 모두 수거했다.
심지어는 교주를 수행하는 남녀 보디가드들이 기자 개개인의 몸수색도 마다하지 않았다.
혹시 몸속에 비밀스런 장비를 숨겼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 였다.
이처럼 교주의 수족들이 보인 철통보안으로 인해 교주의 일거 수 일 투족을 영상에 담는 일은 낭패로 돌아갔다.
그나마 거둔 수확은 교주의 육성을 기자 수첩에 글로 옮겼다는 것을 크게 위안 삼았다.
코발트 색 정장에 붉은 와이셔츠와 흰색 넥타이로 몸치장을 한 천세인은 가죽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꼰 채 거만한 자세로 곽기자를 흘끔흘끔 곁눈질 했다.
노타이에 캐쥬얼 정장을 한 곽기자 곁에는 탐사보도부 소속 백혜련 기자가 앉아 있었다.
인터뷰 내용을 속기하기 위해 부장과 동행한 것이다
백기자는 특히 속기(速記)에 능했다.
인터뷰어인 교주와 기자들은 충무로 무비스타들을 뺨칠 정도로 눈부신 외모의 12천사들이 내 온 다과를 즐겼다.
그리고 사회문제로 크게 대두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견을 잠시 나눴다.
바이러스 확산과 관련해서는 14만 4천교의 책임론도 지적됐다.
물론 이 문제는 인터뷰에서 다룰 주요 사안이었다.
따라서 곽기자는 이 질문과 관련된 항목을 빨강색 펜으로 밑줄을 표기해 두었다.
대략 10여 분에 걸쳐 티타임을 가진 뒤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착수했다.
곽기자가 거만한 자세로 자신을 곁눈질하고 있는 교주를 향해 말했다.
“교주께선 스스로 자신을 예수의 분신이라 했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순간 교주의 비서실장이라는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곽부장님! 우선 인터뷰에 앞서 성부님에 대한 호칭을 신중히 하셔야 합니다. 방금 성부님을 ‘교주’라 칭하셨지요? 하지만 그같은 호칭은 적절치 않습니다. 교주가 아니라 성부님이십니다. 앞으로는 성부님이라 고 하세요. 제 말 뜻을 이해하시겠지요?”
비서실장이란자의 느닷없는 지적에 당황한 곽기자는 내심 불쾌했으나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왜냐하면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곽기자는 비서실장의 지적에 동의한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잠시 중단된 인터뷰를 이었다.
“조금 전 질문한 내용에 대해 성부께서 답해 주시지요.”
교주가 말했다.
“곽부장도 잘 아시다시피 나는 예수의 환생이오. 세상 마지막 때인 이 시기에 타락한 악인들을 징벌하기 위해 지구별에 온 성부다 이말요.”
“스스로 성부라 지칭하는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입니까?”
“곽부장! 혹시 당신도 종교가 있소?”
“무신론잡니다.”
“무척 세속적인 사람이구먼. 인간은 누구나 종교를 신봉해야 하오. 그래야만 자신과 세상이 모두 평화롭지. 특히 나를 섬기는 자는 영생불멸 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모든 것은 얻을 수 있소. 어디 그뿐인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 기왕 당신과 내가 이렇게 인연이 닿았으니 곽부장도 14만4천교에 입교하시오. 당신 같은 인물은 하늘나라에서 큰 일꾼으로 쓰일 것이오.”
“교주, 아니…성부께서 나를 그리 여기시니 영광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다시 원론으로 돌아가지요. 내가 알고 있는 성부는 카톨릭 또는 개신교의 하나님 아닙니까? 물론 예수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고요. 헌데 속세에 하나님이 존재하다니 마냥 헷갈릴 따름입니다.”
순간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은 교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곽부장도 속물이구려. 시회의 최고 식자층이란자가 어찌 이다지도 어리석단 말인가.당신은 요한복음도 읽어보지 않았소?복음서 1장 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지. ‘빛이 어둠에 비쳤으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 구절은 다름아닌 나, 천세인을 지칭 한거요. 요한이 2천 년 뒤 열릴 후천시대(後天時代)의 구세주인 나를 지목한것이다 이 말이지.내 말 뜻 이해가 가오?”
곽기자가 정색한 표정으로 되받았다.
“전혀 납득이 안됩니다. 마치 삼류 소설을 대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곽기자가 비아냥성 조소를 표하자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있던 비서실장이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보시오. 곽부장님. 감히 성부님 면전 앞에서 ‘삼류소설’ 운운 하다니요. 당장 그 말 정중히 취소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인터뷰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어요.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한 비서실장은 거만한 자세로 고개를 재치고 천장을 올려다 보고 있는 교주의 눈치를 살폈다.
비서실장이 과잉반응을 드러내며 신경질을 부리자 곽기자가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의 질문이 다소 거칠었다면 양해해 주십시오. 기자들의 질문 행태가 의례히 그렇지요. 직업적 습관 때문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비서실장이 말했다.
“그건 곽부장님의 사정 이고요.지금 이 자리는 예수님께서 계신 천세궁이란 사실을 인지해 주세요.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하면 말 조심하시라는 부탁입니다.”
이처럼 용어 선택에 따른 실랑이로 인터뷰가 잠시 어색해 졌다.
그러자 비서실장과 눈을 마주친 교주가 그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비서실장. 손님을 모셔놓고 그리하면 쓰나. 잠시 곽부장을 겪어보니 소문대로 다혈질이구먼. 나한테는 곽부장 같은 승부사가 절실히 필요한데…이번 기회를 빌어 나와 손잡는 것 어떠신가?”
“사적인 견해는 잠시 미루고 계속 말씀 하십시오.”
“가만 있자… 내가 어디까지 말했나?”
“성부님. 요한 복음 1장 4절을 말씀하셨습니다.”
비서실장이 허리를 90도 꺾어 예를 표하며 말했다.
“오호, 그랬던가… 그래요. 요한이 기록한것처럼 작금의 세상 인간들도 내가 하늘에서 온 것을 전혀 믿으려고 하질 않아. 어둠의 자식들이 빛인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지. 이는 2천 전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나타나 하늘나라의 사업을 펼쳤을 때 예수를 미친 자 취급을 한 것과 같은 거야. 물론 나의 어린 양(14만4천교인들 지칭)들은 내가 하늘에서 온 예수의 분신이란 사실을 철석 같이 믿지. 왜냐하면 요한 계시록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곧 올 자, 재림 예수니까!”
“막연하게 그리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내가 이래서 성부다’하는 확증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 하시나요?”
백혜련 기자였다.
곽기자 곁에서 속기를 하고 있던 백기자가 불쑥 끼어든 것이다.
백기자의 이같은 돌발 행동은 실수에 의한 것이었다.
즉, 나서지 말아야하는 위치를 벗어난 것이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곽기자가 눈짓으로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데스크의 환기를 알아차린 백기자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두 사람의 일거 수 일 투족을 곁눈질하던 교주가 백기자를 향해 넌지시 능을 쳤다.
“여자분 성함이 어찌되오?”
“백혜련 기잡니다.”
“아름다운 이름이구먼. 이름 뿐만 아니라 얼굴도 곱고. 보아하니 백기자도 종교에 관심이 많은 듯 싶은데, 혹시 믿는 종교가 있소?”
백기자가 말했다.
“물론이예요. 예수님을 따르고 있죠. 개신교 신자예요.”
교주가 반색하며 말했다.
“오호, 방금 나를 따른다고 했나? 그 말을 들으니 매우 흐믓하오. 인터뷰가 끝난 뒤 내가 백기자에게 할 말이 있소. 그리 아시오.”
“….?”
느닷없는 사견으로 인터뷰가 변방으로 빠지자 곽기자가 재빨리 분위기를 되돌려 놓았다.
곽기자가 말했다
“조금 전 했던 말을 계속 이어주시지요?”
곽기자의 주문을 받은 교주가 다시 비서실장을 바라보며 ‘이봐, 내가 조금전 무어라 했나?’하고 물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비서실장이 공손한 자세로 교주가 말 한 구절을 되새겼다.
비서실장의 말을 알아차린 교주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곽부장의 의구심에 찬 질문에 대해 내가 이 자리에서 비난할 것은 못되오. 지금 곽부장의 표정은 마치 예루살렘에서 마주친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소. 괴변과 요설에 능통한 이들은 시종일관 예수를 능멸하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게 했소. 헌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바리새인들로 말미암아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란 존재임을 확신 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오. 예수 사후 전세계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받아 들이고 믿고 있다는 것을 곽부장도 깨달아야 합니다. 이같은 세상의 변화는 하나님 즉 예수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지. 그리고 그 능력이 지금 후천세계로 지목된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소. 그 일을 바로 내가 하고 있는거요.”
곽기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곽기자가 침묵하자 교주가 말 잔등에 올라탄 기수처럼 구라에 박차를 가했다.
“이보시오, 곽부장!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혹(謎惑)과 혼돈(混沌)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나를 향해 의구심을 품고 있겠지. 허나, 그리 복잡하게 마음을 쓸 필요가 없소. 당신도 의심하지 않고 나를 예수의 분신으로 받아들이면 비로소 만사형통을 누리게 될거요. 원래 선지자는 자신의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지. 왜냐하면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오. 그래서 종교계와 언론 심지어 시민단체들까지 나서서 나를 싸잡아 비난하고 사이비 교주입네 하며 공격을 일삼고 있는 것입니다.”
곽기자가 말했다.
“정통 교단의 그같은 주장에 대해 그동안 본인은 이렇다 하게 반론을 제기하거나 맞대응한 경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
“곽기자가
방금 저들을 정통 교단이라 했소?(교주는
이 대목에서 잠시 뜸을 들이며 몸 비서들이 내 온 홍삼차를 몇 모금 들이켰다.그러고는
양손가락을 모아 깍지를 낀 자세를 취하며 다시 입술을 움직였다.)도대체
하늘 사업을 펴고 있는 종교 단체들이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햐며 ‘너는
사이비’다 ‘우리는
정통교단이다’운운하는 것이야 말로 하늘을 욕되게 하는거요.
여타 교단들이 나를 공격하는 이유는 간단하오.
시기심 때문이지. 나를
따르는 양들(신자)이
많아 그렇소. 이처럼 내가 자신들보다 뛰어나게 하늘 사업을 펼치고 있기에 저들이
허접스런 질투를 하는거요.”
곽기자가 말했다.
최근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교단체가 벌이고 있는 사이비 교단 척결 운동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 대목에서 교주는 상체를 곧추세우고 목청을 돋구었다.
“전혀 동의하지 않소. 오히려 이들의 비틀린 행태를 측은하게 여길 뿐이오.”
곽기자가 말했다.
“14만4천교의 교리가 정통 교리와 전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세무민의 교리를 앞세워 세상을 현혹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름이 뭐합니다 만 현재 14만4천교가 채택해 사용하는 교제 ‘내시경(來時經)’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인 신구약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재편집한 것이란 지적이 압도적입니다.”
교주가 정색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곽부장도 내시경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왜죠?”
“내시경을 제대로 탐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교주 천세인이 곁에 앉아 있는 비서실장을 눈짓으로 불렀다. 그러고는 귀엣말로 속삭였다. 순간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황급히 사라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에 손에는 금으로 표지를 입힌 두툼한 책 한권이 들려 있었다.)
교주가 비서실장으로부터 책을 넘겨 받고 말했다.
“이보시오, 곽부장. 내가 이 책을 선물 하리라. 다름아닌 내시경이오. 내가 3년에 걸쳐 하늘의 계시를 받아 집필한 하늘의 말씀이라오. 이 내시경이야 말로 책 중의 책이며, 성서 가운데 압권이지. 이 성경은 현재 전세계 지도자 급 인사들이 애지중지 하며 탐독하고 있소. 특히 금을 입힌 이 성경은 매우 귀한 것이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지. 나와 돈독히 친분을 맺은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의 전직 정치 지도자를 비롯한 전세계의 유명 인사들이 이 성경을 소지하고 있소. 뿐만 아니오. 국내에서도 전 청와대의 고위 인사들과 유명 정치인들, 연예계 스타, 그리고 명망을 갖춘 학자들도 내가 집필한 이 성경을 보물처럼 여기며 간직하고 있소. 왜냐? 이 내시경이야 말로 하늘의 소리를 고스란히 녹여 낸 경전이기 때문이지. 이 자리를 빌어 곽부장에게 이 성경을 선물 하겠소. 부지런히 읽어 보시요. 이 성경을 다 읽고 나면 나, 천세인이 과연 예수라는 사실을 깨달케 될거요.”
곽기자가 말했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뭡니까?”
교주가 대답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곽부장에게 말하지. 우리 몸에는 영(靈)과 혼(魂)이 함께 존재하오.”
곽기자가 말했다.
“나도 알고 있는 대목입니다.”
순간 교주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곽기자를 곁눈질했다.
그러고는 못마땅하다는 어감으로 말했다.
“이보시오, 곽부장. 당신은 어찌 그다지도 성질이 급한가…내가 미처 답을 하기도 전에 불쑥 끼어들어 말을 자르다니 말요. 당신은 마치 가롯 유다와 같소.그도 곽부장처럼 다혈질이였소.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다시는 나의 말을 자르거나 끼어들지 마시오..’
곽기자를 향해 까칠하게 말한 교주는 넌지시 좌중을 훑어본 뒤 말꼬리를 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영은 성령(聖靈)이오.알기 쉽도록 표현하면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닮았기에 성령을 지녔다는 말이오. 우리가 흔히 ‘마음이 뜨겁다’하는 것은 영이 뜨거운 것이기 때문이오. 반대로 인간의 생각을 지배하는 혼은 차갑소. 생각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 때문에 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것이오. 만약 혼 역시 영처럼 뜨거운 기운이라면 절대로 악을 생각할 수 없소.”
곽기자가 말했다.
“말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교주가 말했다.
‘역시 곽부장의 성급한 성격은 알아줘야겠구먼. 내 성언(聖言)의 핵심은 다름아닌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거요. 그리고 예수의 현신(現身)인 나를 따르라는 것이오. 그러면 비로소 천국으로 들어설 수 있소.”
곽기자가 말했다.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겠으나 방금 하신 말은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립니다.’
이 대목에서 교주가 발끈하며 말했다.
“이봐요, 곽부장. 당신도 속물근성이구먼. 당신의 혼은 온통 부정과 비아냥 그리고 질투로 가득하오. 이같은 현상은 곽부장의 혼이 얼음장처럼 차갑기 때문이오. 하여 내가 곽부장에게 뜨거운 성령을 기름 부어주겠소. 거들먹거리며 잘난 채만 했던 바리새인처럼 그들을 닮은 당신의 혼을 구원해 드리지. 그러니 나를 따르시오.”
14먼4천교 교주 천세인과의 인터뷰는 무려 3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됐다.
이날 인터뷰에서는 14만 4천교의 아킬레스건으로 통하는 #교단 재정문제와 #교주의 문란한 사생활 #폐쇄적인 교단 운영 #정치판에 암암리에 뿌린 비자금 조달, #14만4천교 해외 교단과 관련된 사조직 비리 등 매우 예민하고 날카로운 팩트가 집중 거론됐다.
하지만 교주 천세인은 노회(老獪)한 교주였다.
특히 자신의 비리와 관련된 첨예한 질문공세가 이어질 때마다 교묘하게 답을 피해갔다.
그런가 하면 시정에 빈번하게 회자되고 있는 난잡한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그답지 않게 핏대를 세우며 대응했다.
‘어떤 개XX들이 그같은 가짜뉴스를 난발하느냐?’며 시장잡배들이나 할 법한 육두문자를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교주 천세인은 인터뷰 말미에서 앨범을 펼쳐 자신과 함께 사진을 찍은 국내외 유명인사들을 거론하며 은근히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교주는 사족(蛇足)을 곁들인 장황한 설명을 늘어 놓으며 사진 가운데 하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곽기자도 아시다시피 이 인물이 누구랍디까? 나는 새도 떨어드린다는 정계 2인자 아뇨? 헌데, 이 양반도 내 앞에만 서면 오금을 저리지. 쉬운 말로 나를 두려워한다는 뜻이오. 나는 그런 존재요. 이미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알파요 오메가란 말요.”
이날 국내 언론사 최초로 인터뷰에 성공한 정론직필은 기사를 서술형식으로 재 편집해 특집으로 내 보냈다.
탐사보도 특집판 두 면을 가득 채운 기사에서 14만4천교 교주 천세인은 자신에게 가해지고 있는 시중의 루머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특집판 인터뷰 기사가 신문 가판대에 깔리자 종합 일간지 정론직필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순식간에 신문이 동이 나자 정론직필은 윤전기를 풀가동해 신문을 추가로 3쇄까지 찍어냈다.
한편 신문 가판대에 진열된 정론직필을 집어 든 시민들은 저마다 신경질을 부리며 신문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시민들은 마치 사전에 입을 맞춘 것처럼 너나할 것없이 곽기자의 인터뷰 장면 사진을 꼬나보며 유치한 인간으로 몰아붙였다.
‘
교활한 사이비 교주 천세인이 건넨 두둑한 촌지에 기자가 가롯 유다처럼 영혼을 팔아 교주의 혹세무민을 고스란히 지면에 소개했다’는 휠난이었다.
이처럼 인터뷰의 파장이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자 이를 의식한 편집회의에서도 탐사보도 특집판이 천세인의 판을 깔아준 꼴이 됐다는 비난이 속출했다.
국내 언론사 최초로 특종 보도를 했음에도 오히려 한바탕 곤욕을 치룬
특집판 헤드라인은 이랬다.
“자칭 재림 예수, 천세인 언론을 통해 최초로 입을 열다”
그리고 부제는 이렇게 세팅했다.
“자신은 빛으로 세상에 왔으나 어둠의 자식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강변’
(계속)
이산해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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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는 전개, 탁월해요!
비 피해 없이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