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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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LA 4.29 살인사건

2020.04.11 16:20

이산해 조회 수: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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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로드니 킹 사건으로 촉발된 LA 폭동 사건(코리아 타운 약탈 방화 캡쳐) 



나는 엊그제까지 맥시코 티후아나(Tijuana)에서 사제(司祭)였던 아벨라르도 K. 로드리게스다.


내가 지금부터 밝히는 고백은 진실이다.

물론 나는 나의 고백을 영원히 감출 수도 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종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신부가 되기 위해 치루는 서품(敍品)예식에서 주교에게 말했다.

“한치의 거짓됨 없이 사제 일을 수행하겠다.”고……


하여, 비록 늦기는 했으나 이제 고백 하련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악행을 낱낱이 밝히겠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부터 28년 전이다. 

내 나이 18세가 되던 해였다. 

때는 1992년 4월 29일 수요일 저녁 6시.

로드니 킹 사건으로 LA 코리아 타운이 초토화 된 날이었다.


이 날 코리아 타운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폭력과 절도, 그리고 방화와 약탈행위를 당신도 기억할 것이다.


천사의 도시 LA를 발칵 뒤집어 놓은 로드 킹 폭행 사건 무죄 판결은 엉뚱하게 코리아 타운으로 비화(飛禍)돼 애꿎은 한인들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다름아닌 1992년 4월 29일 오후 3시, 배심원단이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경찰 스테이스 쿤과 티모시 윈드 등 4명에게 무죄평결을 선고(宣告)한 것이다. 


당시 TV로 재판을 지켜 본 LA 남부지역 내 흑인들이 흥분한 상태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평결 무효를 외치며 지나던 차량을 멈춰 세운 뒤 폭력을 휘두르고 도적질을 서슴치 않았다.


순식간에 폭도로 변한 이들 흑인들은 코리아 타운에 산재한 2,300여개의 한인 업소에 침입, 물건을 약탈하고 방화를 일삼았다.


한마디로 무법천지였다.


이로 인해 한인들은 약 4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재산 피해를 입고 망연자실했다.


나는 이날 저녁 흑인 폭도들이 코리아 타운에서 날뛰는 틈을 타 윌셔(Wilshire)가(街)와 버몬트(Vermont)사이에 위치한 리쿼스토어 M에 잠입했다.

그러고는 금전등록기를 지키고 있던 여주인 그레이스 강을 살해했다.


당시 여주인은 DVD 녹화기를 통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드라마에 몰두했다.


나는 그녀의 방심을 확인한 뒤 냉장고에 진열된 싸구려 코브라 맥주 한병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 맥주병을 디밀었다.


그제서야 나를 흘끔 곁눈질한 여주인이 성의 없는 말투로 ‘75센트’ 하며 가격을 알렸다.


순간, 나는 9밀리 세이프 엑션 탄환이 17발 장착된 글록 17(독일어:Glock17)자동권총을 꺼내 그녀의 이마에 한 방을 먹였다.


탄환을 먹은 여주인의 머리에서 초콜릿 빛과 흡사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나는 엉뚱하게도 뇌에서 뿜어내는 핏덩이를 보며 그녀가 평생을 이룩한 생의 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천둥같은 총소리가 울리자 어디선가 한 사내가 나타났다.

허리에는 앞치마가 둘러있었다.


사내는 잰 걸음으로 황급히 계산대로 다가왔다.

사내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여주인을 내려다보며 소스라쳤다. 

그리고 사내의 황망한 시선은 곧바로 나를 향했다.


하지만 나는 매우 침착하게 사내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도 총알을 먹였다.


목격자가 있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일을 끝낸 나는 리쿼스토어를 나서기에 앞서 계산대에 놓인 금전등록기를 부순 뒤 2백 달러가 넘는 현금을 끄집어 냈다.


다음으론 계산대 안에 가지런히 진열한 하드리쿼 가운데 꼬냑인 헤네시와 레미 마틴 두 종류를 챙겨 유유히 가게를 빠져 나왔다.


이 때 폭도로 돌변한 엄청난 흑인들이 인근 한인 가게로 침입해 닥치는 대로 약탈을 일삼고 았었다.


가전제품을 옆구리에 낀 흑인 사내가 내 곁을 스치며 엄지척을 해 보였다.

자신도 한 건 했다는 승리의 몸짓이었다.


리쿼어스토어를 벗어나 이번에는 한인 상가가 밀집한 올림픽 가(街)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볼일이 남아있었다.


나는 올림픽 블러바드 대로를 따라 걸으며 허리춤에 꽂은 글록의 탄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노리쇠를 한번 더 당겼다.

탄환을 약실에 장전키 위해서였다.


재빠른 걸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내가 찾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은 2층이었다.


개방형 통 유리로 장식한 사무실 입구에는 ‘급전 대부(貸付)’라는 큼지막한 한글 간판이 내걸렸다.


나는 불이 환히 켜진 사무실 입구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칸막이로 외부를 차단한 안에는 30대 중반으로 여겨지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아직도 밀린 사무를 보는 중인 것 같았다.


사무실로 들어선 나를 보고 여자가 말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내가 영어로 말했다.

“사장님을 뵈었으면 합니다만….”


여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닥거리고는 이내 뒤 켠에 위치한 방으로 갔다.

그리고 잠시 후 상체가 떡 벌어진 40대 중반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는 사무실 입구에 선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상투적인 말을 뱉어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내가 말했다.

“당신이 스티브 한 맞아?”

사내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내에게 시선을 주며 바지 뒷주머니에서 4X4 크기의 컬러사진을 꺼내 그의 면전에 디밀었다.

사진을 들여다 보는 순간 사내의 동공이 몹시 흔들렸다.

사진 속에는 이마에 총알을 박고 숨진 리쿼스토어 여주인의 모습이 필사(筆寫)돼 있었기 때문 였다.

사내가 말했다.

“이 사진과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내가 말했다.

“물론이지.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있어. 하지만 내 고객은 너와 이 아줌마가 은밀히 정사(情事)를 즐겼다는군.”

“이봐, 젊은 맥시칸 친구.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야? 생판 알지도 못하는 이 여자와 정사라니…..너, 미쳤냐?”

사내가 펄쩍 뛰며 삿대질을 했다.

나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허리 뒷춤에서 글록을 빼 거머진 뒤 총구를 사내의 이마에 겨눴다.

     

순간 사내가 기겁한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겁을 잔뜩 먹은 그의 눈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눈치였다.


나는 사내의 불안스런 모습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사내를 죽이러 온것이지 UPS 배달부가 아니었다.

더욱이 사시나무 떨 듯 온 몸을 떨며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목격자의 시선도 있지 않은가.


나는 사내를 향한 총구를 더 바짝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총구를 벗어나는 순간 우뢰 같은 소리가 사무실 안을 진동했다.


총알을 먹은 사내가 썩은 볏짚 쓸어지 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사내의 주검을 확인 후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조용히 그녀를 저격했다.

총알을 박기 직전 여자는 살려달라고 애원 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살인자에게 있어 연민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나는 매우 부유한 코리안 남성으로부터 사주(使嗾)받은 청부살인을 무사히 해냈다.

그리고 댓가로 챙긴 보수(報酬)는 궁핍한 내 주머니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는 식은죽 먹 듯 남녀 4명(원래 계획은 2명이었다)을 살해한 뒤 그 길로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달아났다.


나는 고향인 티후아나로 돌아와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를 시청했다.

혹시 내가 저지른 살인사건이 들통나지 않았나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허나, 그것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언론들이 시종일관 쏟아내는 뉴스는 하나같이 흑인들의 폭동 사건일 뿐 내가 저지른 살인사건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섣부른 예단(豫斷)이겠지만, 코리아 타운이 로드니 킹 사건으로 초토화 되자 내가 저지른 엄청난 살인사건은 자연스레 폭동 사건에 묻혀 유야무야 된 것이다.


한편 LA 코리아 타운 폭동 사건이 발생한지 28년이 지난 2020년 4월 지금에 이르기까지 LAPD는 내가 저지른 사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표명이 전혀 없었다.


내가 저지른 살인사건은 사건으로 전혀 기록된 바가 없기 때문 일 것이다.


하여, 나는 글록17 자동권총으로 희생당한 4명의 영혼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며 뒤늦게 나마 용서를 구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살인을 의뢰한 코리안을 이 기회를 빌어 고발할 것이다.


내가 그를 수소문한 바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아내와 정부를 청부살인으로 제거한 뒤 자신보다 무려 25살 아래인 여성과 보라는 듯 버젓이 살고 있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그는 현재 LA 코리아 타운에서 둘째가라 하면 서러울 정도의 재력가이자 덕망가(德望家)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나는 사제복(司祭服)을 벗고 범부(凡夫)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고향 티후아나를 떠나기에 앞서 살인할 때 사용한 글록17 자동권총과 색바랜 사진 두장 그리고 대우전자 제품인 소형 녹음기를 챙겨 천사의 도시 LA로 향한다.


천사의 도시에선 나를 학수고대 기다리는 인물이 있다.

LAPD 살인계 소속 한국계 미국인 스티브 혁(한국명:혁거세)형사다.

(계속)


이산해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