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23 12:20

바람의 길 4

조회 수 3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바람의 길 4



                                                                이 월란





바람이 오라하면 나 따라가겠어요
맨발로 허겁지겁 따라가다 멈칫 뒤돌아도 보겠어요
눈먼 꽃들이 나 대신 울며 따라도 오겠지요
이름을 잊어버린 꽃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고
친절히 타일러 돌려보내도 주겠어요
가다 가다 한가한 가랑잎에 한 두 줄씩 시를 써주고
졸고 있는 꽃이파리 희롱하다 붙들려 시껍도 하고
허기지면 설익은 열매 뚝 따 먹으며 즐거이 배탈도 나겠어요
아, 바람이 오라 손짓하면 나 따라가겠어요
버려진 낡은 의자에 앉아 삐그덕 삐그덕
늙은 세월의 등이라도 긁어 주겠어요
별이 하릴없이 내리는 호반에선 나도 건달처럼 놈팡이처럼
천의 손가락으로 얌전한 호면을 휘저어 파문을 놓고
황혼의 햇살을 따라 냅다 도망질도 치겠어요
바람 속에 남은 눈물 마저 다 뿌려 주고
더 이상 젖지 않을 마른 소맷자락 나폴거리며
머리칼 헝클어진 광녀의 걸음으로 밴둥밴둥 돌아오다
그렇게 세월을 허비했다 혼쭐이라도 난다면
저 바람 탓이라 배시시 웃고 말겠어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45 검증 김사빈 2008.02.25 189
444 사유(事由) 이월란 2008.02.24 89
443 이의(二儀) 유성룡 2008.02.23 197
» 바람의 길 4 이월란 2008.02.23 333
441 illish 유성룡 2008.02.22 92
440 心惱 유성룡 2008.02.22 108
439 삶은 계란을 까며 이월란 2008.02.22 489
438 노을 이월란 2008.02.21 99
437 바람서리 이월란 2008.02.20 247
436 봄을 심었다 김사빈 2008.02.20 114
435 눈꽃 이월란 2008.02.19 76
434 곱사등이춤 이월란 2008.02.18 234
433 깡패시인 이월란 황숙진 2010.03.01 881
432 플라톤 향연 김우영 2010.02.24 1208
431 박성춘 2010.02.23 748
430 지나간 자리는 슬프다 강민경 2010.02.20 760
429 아빠의 젖꼭지 (동시) 박성춘 2010.02.17 939
428 인센티브 박성춘 2010.02.17 711
427 낡은 공덕비 성백군 2009.12.25 717
426 네 둥근 가슴에 붙들리니 강민경 2009.12.16 792
Board Pagination Prev 1 ...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