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방
이월란
함께 했던 순간을 기억이라 부른다
우연이 낳은 황망한 필연의 아이라 부른다
국경의 봄을 꽃가루처럼 날아온 나비라 부른다
충혈된 두 눈으로 밤새워 건축했던 환상의 바벨탑이라 부른다
우주의 절반을 천국과 지옥의 정확한 경계로 흐르던 홍해라 부른다
상상임신의 비루한 분만실, 식자증에 걸린 어미개처럼 갓태난 기억덩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도 낳고 또 낳은 나의 나비들, 아이들, 바벨탑의 골격들, 홍해의 파도들. 침몰된 구간을 나는 알지 못한다. 살점이 흩어지던 핏빛 강맛을 알지 못한다. 유년의 카오스는 늪이어서 성장기를 유린당했고 곧바로 늙어버린 노쇠증은 너무 일렀다. 은하로 이어진 망각의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려 놓고도 내 불신앙의 단초로 자란 말미잘 같은 인간을 내 가슴둘레 만큼 키웠었다. 기억의 머리 위에 번쩍이는 관을 씌워두고 엎드린 노예근성으로 그리워했다. 고통과 그리움이 유물처럼 보관되어 있는 뇌관 속의 뮤지엄, 한번 씩 착란을 일으키는 날빛 사이로 찬란한 기억의 파편들이 도난 당하기도 하였는데 웨에엥웨에엥 사이렌 소리가 벌집을 쑤시면 현장에서 체포되고마는 거울 속의 나같은 어줍잖은 절도범의 얼굴을 보기도 했던 것인데. 내게로 뚫린 심장박동 소리 하나만으로 내장된 최첨단의 단세포 인간이 기거하는 날조된 기억의 쪽방.
그가 아직 살아 있다
2009-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