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불륜

‘불륜’의 ‘륜’은 '벗어날 륜’ 이라고 해석하는 인문학자들의 주장이 
틀린것 만이 아니다. 불륜은 기존의 무리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예술(문학을 포함)에서의 불륜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예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사랑의 본질은 ‘불륜’이라고 주장한다.
자식들이 커서 가족이라는 무리에서 벗어나 원래 가족에서 
떠나는것도 ‘불륜’이라 하겠다. 
예술에 있어서 ‘불륜’은 무리에서 벗어나는 감정을 다루기 때문에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또 다시 무리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작품에서 무조건 결혼을 시키지 않는것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장편 소설, 
<Doctor Zhivago>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의 체제가 아직 
살아있을 때 쓴것으로 의사 지바고의 주인공 Yuri(유리)는 소설에서
83세에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영화에서는 첫 장면 가득 채운 노란 데이지와 라라의 주제곡이 울려
퍼지며 200년전 러시아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의사 지바고, 유리는 아내인 착한 타냐(Tonya)와 
운명의 여인 라라(Lara)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이 또한 ‘불륜’이기 때문이다.
유리는 갈등하면서 라라와 타냐 사이를 오가면서 이중 밀회를 지속한다. 
유리와 라라의 관계를 알게된 라라의 남편이자 빨치산 간사인 파샤의 
지시로 유리는 빨치산 캠프로 끌려가 그들과 함께 생활한다.
유리의 가족들은 유리아틴으로 떠난다(유리아틴은 타냐의 고향)
라라가 거기에 있는것을 알지만 선뜻 다가 갈 수 없던 
두 사람은 결국 다시 만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 뒤 빨치산에 잡혀 강제 입산을 당한 유리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이리저리 방황한다. 
그 후 이복 형의 도움으로 생활하던 중에 전차를 타고 
가다가 걸어가고 있는 라라를 보고 내려서 황급히 뛰어가다 절명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라라는 내란통에 잃어버린 유리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찾기위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고..

어디 의사 지바고 뿐이겠는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등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들도 
불륜의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올 한해 한창 주부들의 가슴을 적셔주었던
<사랑하는 은동아>라는 드라마도 다르지 않다.  
박현수는 지은동에서 빠져 그의 눈에는 오직 은동이만 보였다.
은동의 입양으로 영문도 모른 채 헤어져야 했던 두 남녀는 10년 뒤, 
운명처럼 재회를 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해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한국의 최고의 배우로 성장한 지은호(박현수)는 
여전히 그의 첫사랑 은동이를 찾는데만 매달린다 (배우가 된것도 
은동이가 자기를 빨리 찾을수 있기 위한 방편이었다). 
 
모든것을 다 갖춘 남자가 한 여자에서 보내는 지고지순한 순애보.  
작 남녀 주인공이 함께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는데, 
변치 않는 은호(박현수)의 굳건한 사랑,
거기에 은동이는 10년전 사고로 인해 그 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고..
자신을 구하려다 하반신 마비가 된 남편 최재호가 맞물려서 
‘불륜’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아름다운 사랑의엔딩을 해낸다. 
많이 실망한 (좋게 좋게 끝내려는 작가에게 실망) 
시청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필자가 제일 최근에 읽은 전상미 선생님의 장편 소설, 
<작별의 끝에> 는 또 어떠한가.
가산 문학상과 미주 문학상을 수상하신 그 몫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셨다.
첫 시작부터 5년간 사랑을 한 남자 주인공 '날개'가 아무 통보없이 
연락을 끊어버려 여자주인공 '리아'의 자살로 시작되고 
맨 끝은 '날개'의 사랑이 진정이었음을 힌트하는
반전까지 숨가쁘게 전개된다.  

여기서는 '리아'는 남편을 잃고 혼자이지만 '날개'는 결혼했지만 
사실 결혼생활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리아'는 ‘불륜’이라는 단어를 놓고 갈등을 피할 수 없는 
모습이 그려진다. 한국 소설가 협회 이사장으로 계시는 
백시종님은 그녀의 소설을 이렇게 평한다.

-중략-   
전상미씨의 ‘작별의 끝에’는 소중한 작업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노년의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지나칠 수 있지만, 
주인공의 자살로 시작되는 추리적인 기법의 도입도 그러하고, 
가능한 사연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 망인의 흔적을 
기어코 찾고 마는 딸의 애절한 사랑도 그러하고, 
액자 소설로 불리는 또 하나의 스토리가  
스토리 속에서 봄날의 새싹처럼 힘차게 되살아나는 묘미도 그러하고, 
어떤 요인이 소설을 재미있게 하는가를 ‘작별의 끝에’서 처럼 
절묘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흔치 않은것 같다.   -중략-
  
전선생님은 이렇듯 남녀 사랑의 감정은 나이와 무관함을 
당당하게 표현하신 소설이다.
재밌고 쉬운것 같아도 뼈대가 있고 철학이 있는 그런 글 말이다.

이렇게 예를 들자면 일일이 다 열거 할 수가 없다. 
세계의 걸작들이 대부분 그러하기 때문에.
예술가들(문인들 포함)은 이런 ‘불륜’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표현 하고 
진부 하지 않게 승화 시키느냐가 끊임없는 숙제인것 같다. 
그래야 사람들은 감동하고 오래 기억해주는 작품으로 남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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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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