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지러운 세상
오정방
개신교 찬송가 중에 이런 찬송이 들어있다.
256장이다. 3절과 4절은 생략하고 1절과 2절을 적어보면
이렇다.
< 1절>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자여 어이할고
<2절>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 있나 믿는자여 어이할고
이것은 52년 전인 1952년에 석진영 작시, 박재훈 작곡으로
발표되었던 찬송가다. 작시자 석진영 여사는 6, 25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당시의 부산은
수라장과 같았고, 신자들 가운데서도 어려운 현실을 잘 극복하지
못해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작시자는
이 현실을 보고 ‘믿는 자여 어이할꼬’하며 깊이 탄식하였던
것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여기저기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림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이런 시를 쓰게 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요즘들어 왜 이 찬송이 자꾸 입에 흥얼거려지는지 모르겠다.
고국의 뉴스를 듣고 보기가 짜증이 날 지경이다. 하나같이
답답한 소식뿐이다. 남의 나라 얘기야 여기 말할 것이 없고
내나라 한국에서는 정말 왜들 이러시는지?
국론은 양분되어 있어 국력은 말이 아니다. 약할대로 약해져 있다.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게 되었고 일본은 아직도 독도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최고 통치자도 독도
명칭을 일본처럼 ‘다께시마’라고 호칭해 구설수에 올라 있다.
IAEA는 비엔나에서 최근에 개최한 이사회에서 한국이 핵투명성을
밝히고 있음에도불구하고‘80년대 초 우리 과학자들의 핵 연구에
대해 아직은 깨끗한 결론 없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사 논쟁은 또 어떤가. 역사가가 역사를 써는게 아니라 정치
하는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과거사를 어느 틀에 맞춰 이끌어 가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며 국회의원이 된
어느 여성의원은 그 독립운동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단다. 그가
오히려 친일했던 사람을 잡는다고 앞장서서 치맛바람을 날리고
있다가 망신을 당했다. 보안법을 지켜야 한다, 폐지해야 한다로
또 난리다. 국가 원로들을 포함한 쳔 오백명이 넘는 사회인사들이
나라를 걱정해 한자리에 모여 궐기를 하였는데 당국자들은 귀담아
들을 생각은 않고 뒷방 노인들의 잠꼬대 정도로 폄하했다.
수도 이전은 또 어떤가?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하고라도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었다면 또 모르거니와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여기저기서 죽겠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한숨소리만 더 높아가고 있으니 아 정말 어찌할꼬? 어찌할꼬?
믿는자여, 말하노니 지금은 마땅히 기도할 때다.
<2004. 9. 22>
오정방
개신교 찬송가 중에 이런 찬송이 들어있다.
256장이다. 3절과 4절은 생략하고 1절과 2절을 적어보면
이렇다.
< 1절>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자여 어이할고
<2절>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 있나 믿는자여 어이할고
이것은 52년 전인 1952년에 석진영 작시, 박재훈 작곡으로
발표되었던 찬송가다. 작시자 석진영 여사는 6, 25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그 때 당시의 부산은
수라장과 같았고, 신자들 가운데서도 어려운 현실을 잘 극복하지
못해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작시자는
이 현실을 보고 ‘믿는 자여 어이할꼬’하며 깊이 탄식하였던
것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여기저기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림을 안타까워한
나머지 이런 시를 쓰게 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요즘들어 왜 이 찬송이 자꾸 입에 흥얼거려지는지 모르겠다.
고국의 뉴스를 듣고 보기가 짜증이 날 지경이다. 하나같이
답답한 소식뿐이다. 남의 나라 얘기야 여기 말할 것이 없고
내나라 한국에서는 정말 왜들 이러시는지?
국론은 양분되어 있어 국력은 말이 아니다. 약할대로 약해져 있다.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게 되었고 일본은 아직도 독도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 최고 통치자도 독도
명칭을 일본처럼 ‘다께시마’라고 호칭해 구설수에 올라 있다.
IAEA는 비엔나에서 최근에 개최한 이사회에서 한국이 핵투명성을
밝히고 있음에도불구하고‘80년대 초 우리 과학자들의 핵 연구에
대해 아직은 깨끗한 결론 없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사 논쟁은 또 어떤가. 역사가가 역사를 써는게 아니라 정치
하는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과거사를 어느 틀에 맞춰 이끌어 가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며 국회의원이 된
어느 여성의원은 그 독립운동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단다. 그가
오히려 친일했던 사람을 잡는다고 앞장서서 치맛바람을 날리고
있다가 망신을 당했다. 보안법을 지켜야 한다, 폐지해야 한다로
또 난리다. 국가 원로들을 포함한 쳔 오백명이 넘는 사회인사들이
나라를 걱정해 한자리에 모여 궐기를 하였는데 당국자들은 귀담아
들을 생각은 않고 뒷방 노인들의 잠꼬대 정도로 폄하했다.
수도 이전은 또 어떤가?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하고라도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었다면 또 모르거니와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여기저기서 죽겠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한숨소리만 더 높아가고 있으니 아 정말 어찌할꼬? 어찌할꼬?
믿는자여, 말하노니 지금은 마땅히 기도할 때다.
<2004.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