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기억을 능가하나니…
- 백수복 목사님과의 인연을 더듬으며
오 정 방 원로장로
<온누리성결교회/시인>
그리던 조국에선 물난리가 나서 인명의 손실과 재산의 피해가 엄청 나다는 뉴우스가 끊이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8월 초 어느날, 나는 평소에 존경하고 있는 한국의 백수복 목사님으로부터 이멜 한 통을 받았다.
한 평생 목회자로서 사명을 잘 감당해 오신 목사님으로 특별히 문필사역에 전념하신 분인데 그 동안 편저서를 세어보니 총 111권이나 되어 지금은 문필사역 회고록을 집필 중이시라는 내용이었다. 10권의 저서도 채 못가진 나로서는 백목사님의 정열과 노력이
여간 부럽지 않았으며 존경의 염을 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내 붓을 잡아 축하의 뜻으로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이란 시조 1편(3수)을 써서
보내게 되었거니와 그 짧은 작품에 다 담지 못한 것들이 없지 않은지라 나도 목사님과의
인연을 이렇게 회고해 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필자의 발자취를 잠시 소개하는 것이 순서일지 모르겠는데 필자는 1980년 1월 첫주부터 백목사님의 서울신대 50기 동기생인 고 강달희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강남성결교회에 첫출석하여 세례를 받고 서리집사로 찬양대에서, 재정부에서 봉사하다가 1987년 9월, 송기식 목사님이 시무하실 때 태평양를 건너 미국 오레곤주로 이민을 와서 포틀랜드성결교회에 출석하였다. 이민4년 뒤에 성결교회 미주총회장을 지내신 고 김석규 목사님을 만나 오레곤제일교회 설립에 동참하였고 거기서 안수집사로 봉사하다가 1995년 1월, 동교회의 지원 아래 현 브라질의 쌍파울로 소재 대한교회를 시무하시는 이수명 목사님 가정과 지금의 온누리성결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으며 동교회에서 15년을 시무장로로 봉직했으며 2010년 5월, 7순을 맞으며 은퇴하면서 원로장로의 자리에 있게된 31년차 성결인 이라고 더듬어 볼 수 있겠다.
지금 회고해 보면 2004년 가을에 백목사님이 관여하시던 <역사와 문학> 제5호에 졸시 2편이 소개 되면서 첫 인연을 맺었고 그 뒤 꾸준히 소식은 끊이지 않은 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문필사역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 시조 및 수필로 등단하여 조금씩 글을 발표하던 나는 그 무렵 독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야욕, 고집, 생떼 쓰는 것을 작품으로 반박하고 저항하던 때였는데 어느 경로였는지는 잘 기억되지 않으나 그 가운데 2편을 그 잡지에 싣게 되므로부터 그 인연은 오늘에 이르렀거니와 백목사님도 일찌기 수필가로
등단하여 같은 글쟁이 였던 것도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제일교회에 출석할 때 백목사님의 따님 라미씨가 이 지역에 유학와서 우리교회에 몇년 출석하게된 것도 한 인연이며 2005년 성결교회 인물전 제9집에 백목사님이 평소 존경하던 은사이신 고 김석규 목사님의 인물전 집필을 내가 감당하게된 것도 그런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백목사님을 처음 뵈었던 것은 5년 전인 2006년 쯤이었는데 미주를 순회하시면서 이 지역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들려 서울신대 동문이신 임용근 주 상원의원 댁에서 머무실 동안 찾아 갔던 때였고 때마침 우리교회 설립 11주년 기념예배에 설교말씀을 부탁하게 되어 귀한 말씀을 증거하신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 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체구에도 말씀을 전하실 때는 쩡쩡 교회가 울리도록 열정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외에도 한 번 더 다녀 가셨는데 이곳에 오시면 교단 목사님들을 초대하여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좋은 대화를 나누며 이민교회 사역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신 자상함이
있으신 목사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 5월에 내가 나이가 차서 은퇴하여 원로장로로 추대되면서 교회에 기념 도서관을 세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을 때 기꺼이 200여권의 편저서 및 교단 관련 도서들을 모아 보내주신 그 고마움도 잊을 수가 없는데 지금도 출판된 서적이 있을 적엔
잊지 않고 우편으로 보내주고 있으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던 중 작년 11월, 미주지역 순회 마지막 일정에서 12일부터 15일까지 3박 4일간 내가 살고 있는 포틀랜드를 방문해 주셨을 때 우리교회 기념 도서관을 둘러보셨고 또 누추하나마 우리집에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셨기에 함께 며칠간 지내보니 너무나 소탈하고 인정이 많으심을 엿보게 되었다.
또한 미주성결교회 총회장을 지내신 이보현 목사님과 함께 백목사님을 모시고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윌슨빌의 한국전쟁기념비를 방문해 묵념하고 돌아온 것도 기억이 되는데 그만큼 동문들을 사랑하시고 사람을 아낄줄 아시는 마음씨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백목사님은 한마디로 활자에 대한 애착을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 매력까지 너무나 잘 아시는 훌륭한 저술가요 역사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기록은 기억을 능가한다. 아무리 훌륭한 기억이라도 당대가 지나가면 하나도 남지 않지만 활자화된 기록물은 수 십대를 걸쳐 오래 남겨져 후세들이 두고두고 읽게되니 이 문필사업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요 권장하며 대대로 이어나갈 사업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면서 백목사님의 귀한 뜻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기롤 기도해 마지 않으며 이 글을 맺는다. <2011. 8. 10>
- 백수복 목사님과의 인연을 더듬으며
오 정 방 원로장로
<온누리성결교회/시인>
그리던 조국에선 물난리가 나서 인명의 손실과 재산의 피해가 엄청 나다는 뉴우스가 끊이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8월 초 어느날, 나는 평소에 존경하고 있는 한국의 백수복 목사님으로부터 이멜 한 통을 받았다.
한 평생 목회자로서 사명을 잘 감당해 오신 목사님으로 특별히 문필사역에 전념하신 분인데 그 동안 편저서를 세어보니 총 111권이나 되어 지금은 문필사역 회고록을 집필 중이시라는 내용이었다. 10권의 저서도 채 못가진 나로서는 백목사님의 정열과 노력이
여간 부럽지 않았으며 존경의 염을 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내 붓을 잡아 축하의 뜻으로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이란 시조 1편(3수)을 써서
보내게 되었거니와 그 짧은 작품에 다 담지 못한 것들이 없지 않은지라 나도 목사님과의
인연을 이렇게 회고해 보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필자의 발자취를 잠시 소개하는 것이 순서일지 모르겠는데 필자는 1980년 1월 첫주부터 백목사님의 서울신대 50기 동기생인 고 강달희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강남성결교회에 첫출석하여 세례를 받고 서리집사로 찬양대에서, 재정부에서 봉사하다가 1987년 9월, 송기식 목사님이 시무하실 때 태평양를 건너 미국 오레곤주로 이민을 와서 포틀랜드성결교회에 출석하였다. 이민4년 뒤에 성결교회 미주총회장을 지내신 고 김석규 목사님을 만나 오레곤제일교회 설립에 동참하였고 거기서 안수집사로 봉사하다가 1995년 1월, 동교회의 지원 아래 현 브라질의 쌍파울로 소재 대한교회를 시무하시는 이수명 목사님 가정과 지금의 온누리성결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으며 동교회에서 15년을 시무장로로 봉직했으며 2010년 5월, 7순을 맞으며 은퇴하면서 원로장로의 자리에 있게된 31년차 성결인 이라고 더듬어 볼 수 있겠다.
지금 회고해 보면 2004년 가을에 백목사님이 관여하시던 <역사와 문학> 제5호에 졸시 2편이 소개 되면서 첫 인연을 맺었고 그 뒤 꾸준히 소식은 끊이지 않은 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문필사역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시, 시조 및 수필로 등단하여 조금씩 글을 발표하던 나는 그 무렵 독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야욕, 고집, 생떼 쓰는 것을 작품으로 반박하고 저항하던 때였는데 어느 경로였는지는 잘 기억되지 않으나 그 가운데 2편을 그 잡지에 싣게 되므로부터 그 인연은 오늘에 이르렀거니와 백목사님도 일찌기 수필가로
등단하여 같은 글쟁이 였던 것도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제일교회에 출석할 때 백목사님의 따님 라미씨가 이 지역에 유학와서 우리교회에 몇년 출석하게된 것도 한 인연이며 2005년 성결교회 인물전 제9집에 백목사님이 평소 존경하던 은사이신 고 김석규 목사님의 인물전 집필을 내가 감당하게된 것도 그런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백목사님을 처음 뵈었던 것은 5년 전인 2006년 쯤이었는데 미주를 순회하시면서 이 지역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들려 서울신대 동문이신 임용근 주 상원의원 댁에서 머무실 동안 찾아 갔던 때였고 때마침 우리교회 설립 11주년 기념예배에 설교말씀을 부탁하게 되어 귀한 말씀을 증거하신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 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체구에도 말씀을 전하실 때는 쩡쩡 교회가 울리도록 열정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외에도 한 번 더 다녀 가셨는데 이곳에 오시면 교단 목사님들을 초대하여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좋은 대화를 나누며 이민교회 사역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여주신 자상함이
있으신 목사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작년 5월에 내가 나이가 차서 은퇴하여 원로장로로 추대되면서 교회에 기념 도서관을 세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을 때 기꺼이 200여권의 편저서 및 교단 관련 도서들을 모아 보내주신 그 고마움도 잊을 수가 없는데 지금도 출판된 서적이 있을 적엔
잊지 않고 우편으로 보내주고 있으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던 중 작년 11월, 미주지역 순회 마지막 일정에서 12일부터 15일까지 3박 4일간 내가 살고 있는 포틀랜드를 방문해 주셨을 때 우리교회 기념 도서관을 둘러보셨고 또 누추하나마 우리집에서 모실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셨기에 함께 며칠간 지내보니 너무나 소탈하고 인정이 많으심을 엿보게 되었다.
또한 미주성결교회 총회장을 지내신 이보현 목사님과 함께 백목사님을 모시고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윌슨빌의 한국전쟁기념비를 방문해 묵념하고 돌아온 것도 기억이 되는데 그만큼 동문들을 사랑하시고 사람을 아낄줄 아시는 마음씨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백목사님은 한마디로 활자에 대한 애착을 누구보다 많이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 매력까지 너무나 잘 아시는 훌륭한 저술가요 역사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기록은 기억을 능가한다. 아무리 훌륭한 기억이라도 당대가 지나가면 하나도 남지 않지만 활자화된 기록물은 수 십대를 걸쳐 오래 남겨져 후세들이 두고두고 읽게되니 이 문필사업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요 권장하며 대대로 이어나갈 사업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면서 백목사님의 귀한 뜻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기롤 기도해 마지 않으며 이 글을 맺는다. <2011.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