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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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로부터 선물로 받은 책 한권이 '다음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을 먼저 읽느라 밀리다 보니 거의 반년이 지났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고 있는 그 책은 이용규 선교사가 쓴 “내려놓음” 이다. 이런저런 매스컴을 통해 기독신앙 에세이로 ‘많이 읽히는 책’ 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대충 들은 바로도 그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대 졸업, 하버드대 중동연구박사학위, 탄탄한 미래 그리고 명예와 직위, 제목이 눈에 들어올 때 마다 내려놓을 것이 많은 그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일 것 같아 은근히 불편했다. 내려놓을 것 별로 없는 지극히 평범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을것 같았다.

며칠 전, 애써 마음의 뒷전에 팽개쳐 두었던 그 책에 손이 갔다. ‘이젠 읽어야 될 때’ 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던 책의 표지에는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 큰 글씨로 적혀있는 책의 제목 ‘내려놓음’ 이라는 단어, 웬지 몸을 한껏 낮추고 싶어졌다. 내 가슴을 흔들기도 하고 또 잠잠하게도 할 것 같은, 굉장한 힘이 느껴지는 단어였다.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책 펴기를 늦추었던 것일까.

법정스님의 글 중에도 ‘무소유’ 또는 ‘비우기’ 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사람이 바르게, 빛나게,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이치는 종교를 초월해서 맥이 통하는 모양이다. 내려놓거나 비우거나 그 뜻은 모두 숭고하고, 본인에게나 타인에게나 선한 영향을 끼치기 위한 첫 걸음일 것이다.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어쨌든 대단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내려놓은 것이 그의 화려한 배경 만이었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감동 시키거나 새로운 각오를 갖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땅히 누려도 되는 세상적인 혜택들을 ‘부질없는 것들’ 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 깨달음을 주신 분의 뜻을 따라 몽골의 이레교회로 향한다. 오직 한 분께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있었던 그의 고백들이 너무 환해 눈이 부신다. 사랑하면 그리고 사랑을 받으면 내려 놓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그의 삶을 통해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선택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이라는 생각에 약간의 소외감이 느껴진다.

모든 우연과 사건을 오직 한 분의 뜻 안에서 해석한 점이 혹 신앙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못마땅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들려주는 ‘내려놓음’에 대한 그의 삶의 태도는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 있게 하고, 무엇보다 그가 나눠주는 마음의 평안은 우리가 진실로 추구해야 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 이민자들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온 사람들이다. 잘 나가던 지난날을 많이 품고 있을수록 그 좋은 날들이 발목을 잡아 새 출발이 힘든다는 것,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마음으로 연습만 하다가 끝나는 것은 아닌지 조금 염려스럽기는 하지만, 내려놓으면 채워진다는 이 간단한 공식을 내 삶에도 적용시켜 보고 싶다.

내려놓음의 열매는 오직 그분의 것이라며, 온 열정을 쏟아 부어 이루어 놓은 결과 앞에서도 ‘우리의 헌신 그 자체가 우리의 보상인 것이다’ 라는 그의 담담한 고백이 큰 울림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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