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그 때 나는
그 때 나는
갈대였네
따발총에 흐느끼며
한 방향으로만 쏠려가던
어김없는 갈대였네
노오란 하늘에
손톱 만한 나비만 떠와도
그것이 꼭 폭격기로 보였고
졸졸거리는 시냇물은
날 잡으러 오는 철없는 군대의
발굽소리였네
패랭이꽃뿌리처럼
흙 속에 묻혀있던 그 날은
차라리 붉게 타는
고추잠자리가 되고 싶었네
맑은 하늘 깊숙이 혈흔을 찍으며
날고 싶었네
그 때 나는
뼈만 남은 알몸으로
자유--- 평화--- 그 엄청난 소리를 지르는
목쉰 열 두 살의 울음을 울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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