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4 13:54
<서평>
<눈물 속에는 미소가 있다>- 방동섭 시집
혜천 방동섭 시인의 시집 <눈물 속에는 미소가 있다>를 정성들여 읽었다. 시인의 詩初와 60편의 시, 그리고 시 해설이 135쪽의 하드커버에 실려 나의 시선을 집요하게 긴장시켰다. 시를 읽는 동안 모래사막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시에서 잡티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어쩌면 한없이 메마른 공간 같기도 했다. 나의 시선 속에 “아하! 참된 시는 이런 것인가”하는 다짐을 갖기도 했다. 그런 중에 삭막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방동섭 시인의 시는 상징과 생략이 지나치지 않았나 싶었다. 시 전체를 살펴보아도 시심(詩心)에서 출발한 시상(詩想) 그대로를 직선화(直線化) 시켰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그것은 시적(詩的) 수사력과 정서의 승화가 여지없이 초월되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어쩌면 이토록 직선적일까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적 수사력을 훌쩍 뛰어넘어 있다는 생각에서다.
살
한 점,
피
한 방울,
모두
귀하건만
삶
전체를
송두리째
주고 간
그대여
삶을
전적으로
부정한
그대는
삶에 대한
무한
긍정이다
살
한 점,
피
한 방울,
모두
긍정이다
무한
긍정이다
- 방동섭의 <무한 긍정> 전문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에겐 부정이 없다. 모두 긍정이다. 그래서 예수는 십자가를 지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고 고난 중에 긍정의 삶을 살았다. 이것이 ‘무한 긍정’이다. 이것이 방동섭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속에는 방동섭 시인의 믿음의 세계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토록 ‘무한 긍정’이란 언어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두 말없이 직선화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오직 자기의 길만 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생애는 오직 긍정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방동섭 시인은 시인이기 이전에 목회자로서 하나님 말씀을 외쳐오고 있는 목회자이다. 목회와 함께 시력(詩歷)을 쌓아올린 결실이 이렇게 무한 과일을 맺어 실하게 영글게 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이 뜨거운 믿음을 바탕으로 쌓아올리는 시력에서 나오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시인의 음성이다. 그러므로 방동섭 시인의 시도 무한 긍정에서 우러나는 절묘한 음성이다.
그때 세상은
눈물 흘리고 있었다
우주를 집어삼킨
깊은 어두움
침묵의 무게에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형체도 없고
의미도 없는
어두움의 세계로
한 줄기
빛이 흘렀다
어두움은
모자람이 아니라
존재가
부정되는 것임을
빛이
가르쳐 주던 날
의미의
세계가 열렸다
방동섭의 <창조 1> 전문
태초의 우주는 카오스(chaos)의 혼돈상황이었을 것이다. 숨조차 쉴 수 없는 어두움뿐인 세계에 여호와의 말씀이 ‘빛이 있으라’ 하셨기에 과연 환한 빛이 우주에 가득했다. 형체도 없고 의미도 없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빛은 모든 형체와 의미를 드러내어 모자람이 없는 세계를 활짝 열었다. 창조의 신비를 확실하게 돋보인 비밀의 폭로이며 하나님의 원대한 능력을 드러내는 찬양이다. 간단하고 소박한 표현이지만 우주의 개벽을 알리는 신비가 역력히 빛나고 있다. 방동섭 시인은 큰 소리 없이 조용하고 은은한 모습으로 엄청난 사실을 노래하는 묘재(妙才)를 발휘하고 있다. 큰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엄청난 변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창조 1>은 시행(詩行)을 타고 나온 줄줄이 철학적 가르침이 아닌가. 엄청난 신비로움이 시 정신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이 시와 함께 이런 의미의 세계로 침잠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가을은
고독한 실존
그 찬란함이
서글퍼지는
언덕에서
누군가 기다린다
가을이
묻어버린
고독의 비밀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이 있을 뿐
가을은
몹시 아프다
- 방동섭의 <가을은 몹시 아프다> 전문
방동섭 시인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분명 가을의 시인이다. 일 년 4계절 중 가장 시와 가까운 계절은 아마도 가을일 것이다. 감상적 낭만이 절절이 흐르고 감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여지없이 쥐어짜고 밤에도 잠들지 못하도록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가을 밤. 분명히 방동섭 시인은 가을에 붙잡혀 있는 시인이다. 몹시 아픈 가을이야말로 방동섭 시인과 가슴이 맞닿아 있는 절기이다. 그래서 방동섭은 이미 시인이 되어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아픈 가을은 방동섭 시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하지 않는다. 이 아픔이야말로 역설적인 아픔이므로 방 시인은 그만큼 30배, 60배, 100배의 기쁨을 누리고 사는 시인이다. 그는 가을과 맞닿아 있는 가을의 시인이기에 가을이야말로 방 시인의 천국이다. 방 시인은 가을의 소망이 있는 시인이다. 풍성한 가을이야말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참으로 좋은 때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창
열어 제치면
길모퉁이에
살고 있는
시는
내 영혼이다
시는 느낌
생각이 아니다
시는 보이는
보려는 것이
아니다
얽힌 인생
처절한 몸부림
시가 침묵하면
무엇이 있어
읊조리나
인생은
어차피 시 한 줄
시 아닌
인생은 없으니
방동섭 시인은 참으로 놀라운 시적(詩的) 감각을 가지고 있다. 냄새도 없고, 소리도 안 나고, 빛도 색깔도 없는 한낱 삼중고를 앓고 있는 듯한 글줄에 불과한 시를 오케스트라보다 더 우렁차고 감동스러운 인생에 바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이런 시를 ‘내 영혼’이라니, 시의 위치를 이토록 높게 올려놓은 시인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신라시대 향가(鄕歌)인 혜성가(彗星歌)에서 별의 위치를 사람의 위치보다 높게 표현한 시구(詩句)는 있을지라도 ‘인생은 어차피 시 한 줄’이라 노래한 시인을 필자는 이제 처음 만난 듯하다. 우리네 인생을 시 한 줄에 비유한 시인의 시심(詩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최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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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de to joy.
밭 한 뙈기/ 권정생,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것은 없다.
하나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된다.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지식산업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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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의 이 시는 충주에 있는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의 무덤가에 조그만 시비로 세워져 있다. 12살차 띠 동갑인 두 분의 우정은 너무나 절절하고 아름다워서 그동안 주고받은 편지글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우정의 순수함과 고결함에 감동치 않을 수 없으리라. 두 분이 수십 년 동안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글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훔쳐보는 사람으로서도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오덕 선생은 임종 직전 일절 조문객을 받지 말고 부고도 장례 이후에나 알리라고 가족들에게 유언했다. 다만 자신의 무덤 가까이에 세울 시비 둘을 지정했는데, 그 하나가 권정생 선생의 <밭 한 뙈기〉고, 다른 하나가 자신의 시〈새와 산〉이었다.
모든 생명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평소 선생의 지론이고 바탕사상이었다. 선생은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 생태주의자임은 물론 기독교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로도 평가받는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란 시가 있다. 행과 연을 나누지 않고 붙여 옮겨본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존 레논의 ‘이매진’을 떠오르게 하는 시다. ‘이매진’은 반 이데올로기와 반전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이다. 가사는 전혀 현실성이 떨어진다 싶을 정도로 혁명성이 짙다. 권정생 선생께서 생전에 이 노래를 알고 들으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만약 내용을 알았다면 ‘내 취향일세!’ 그랬을 것 같다. 이매진의 가사처럼 선생이 꿈꾸는 나라는 작고 소박해서 행복한 나라이다. 무소유, 무계급, 무정부의 나라, 국경도 인종차별도 없는 나라, 모두가 한 형제이고 평등하며 아무도 다스리지 않고 다스림을 받지도 않는 나라, 오직 하느님의 법칙대로 사는 나라. 선생은 그 불가능한 꿈을 현실에서 온힘으로 살아냈고 글로 남겼다.
선생께서는 이미 주신 것을 가지고 함께 나눠먹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경제정의나 사회주의적 복지라는 말로 표현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외부자의 눈에는 선생의 삶이 ‘자발적 가난’으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그런 감정의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톨스토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정성으로 ‘가난한 삶’이 행복으로 이끄는 원천임을 믿고 실천했다. 선생은 그렇게 자신의 생각대로 지상의 오두막 흙담집에서 평생을 민들레처럼 낮게 엎드려 살다가 빗물에 씻긴 ‘강아지똥’처럼 온몸이 으깨지고 바스라지고 녹아서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어느 봄날 빌뱅이 언덕에 노란 단추 같은 꽃들을 화르르 피우고서 마침내 홀씨가 되어 바람타고 훨훨 어디론가 날아갔다. 올해가 권정생 선생 타계 10주기이자 탄생 80주년이다. 신문사 특집을 앞두고 이 성자의 이름을 기쁘게 호명한다.( 해설,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