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파블로 네루다

2008.07.13 06:09

박경숙 조회 수:523 추천:40




파블로 네루다 「추억」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마르 비뇰레라는 괴벽스러운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비뇰레씨는 아르헨티나의 농경학자였는데, 떨어질 수 없는 친구인 암소를 끌고 다녔다.(…) 그 당시 그는 <암소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암소와 나> 등등의 괴상한 책을 출판하였다. 국제 펜클럽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첫 대회를 열었을 때, 빅토리아 오캄포를 비롯한 작가들은 비뇰레가 암소를 끌고 나타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경찰에 경호를 요청, 회의가 열리고 있는 플라자호텔 주변의 거리를 차단하여 이 엉뚱한 사람이 자기 친구를 호화스러운 장소에 끌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축제가 한창 열이 올라 작가들이 그리스 고전문학의 세계와 그 현대적 의미를 토론하고 있을 때, 이 위대한 비뇰레가 돌연히 암소를 끌고 나타나 그 소가 토론에 참여하고 싶은 듯이 음매 하고 울어젖히자 모든 것이 끝장났다. 그는 암소를 거대한 수하물 마차에 몰래 싣고 도심에 들어옴으로써 경찰의 경계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한번은 비뇰레가 레슬링 선수에게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프로선수에게 호언장담을 하고 시합하는 날, 정시에 루나 공원에 소를 몰고 도착했다. 소를 구석에 매어두고 요란스러운 윗도리를 벗고 캘커다 스트랭글러와 대전했다.(…)직업적인 레슬러는 비뇰레에게 느닷없이 덮쳐 순식간에 시합장 바닥에 그를 때려 눕히고 한 발로 문학계의 황소의 목을 찍어 눌렀다. 둘러싼 군중은 시합을 계속하라고 휘파람과 야유를 퍼부어댔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비뇰레가 신간서적을 하나 냈다. 제목은 <암소와의 대화>. 나는 그 첫 페이지에 나와 있던 독특한 헌사(獻辭)를 잊을 수가 없다. 기억하는 대로는 ‘이 명상적인 작품을 2월24일 밤 루나 공원에서 내 피를 요구하며 울부짖던 4만 마리의 개새끼들에게 바친다’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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