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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을 돌아본다

2016.09.18 05:32

ysson0609 조회 수:213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삶을 돌아본다

 

9월도 중반에 접어들며 어제가 추석이었다. 이 미국 땅에서 무슨 추석이냐고 하겠지만, 우리 코리안들은 그래도 추석은 마음으로부터 괄시 못할 명절이다. 비록 미국 생활이 고향의 그것처럼 풍성하고 정겹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이 날이 되면 공연히 명치끝이 저릿해지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별처럼 떠오른다. 왜일까? 벌써 망팔(望八)을 바라보는 연륜의 안타까움을 어쩔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여기 저기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문득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과 박완서님의 말년의 해탈(解脫) 법문 같은 글귀 몇 토막이 눈에 들어와 얼씨구나 끄집어내어 그 분들의 그림자를 따라가 보았다.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할 수 있어 좋다. 그래서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그리고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다. 한겹 두겹 책임을 벗고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이 글은 몇 년 전 돌아가신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생전에 썼던 글이었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박경리 선생도 똑같이 이런 말을 했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두 분은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였다. 연세로 보면 박경리 선생이 연배지만, 어쩌면 두 분의 생각이 그렇게 비슷했을까? 돌이켜 보니, 두 분 다 여든의 앞뒤 연세에서 돌아가셨고 또한 자식들로 인해 마음 고통을 받은 것도, 그리고 조용한 시골집에서 삶을 마감했던 것도 모두가 비슷했다. 박경리씨는 원주의 산골에서, 박완서씨는 구리의 시골동네에서 노년의 침묵을 가르쳐 주면서 상선약수(上善若水) 같은 삶을 사셨다.

 

상선약수(上善若水)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두 분은 흐르는 물처럼 남과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 부쟁(不爭)의 삶을 살았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주변의 마음을 풍요롭게 했지만, 공을 과시하려 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흘러가는 강물처럼 부딪치는 모든 것들에게 배우고, 만나는 모든 것들과 소통하며 장강(長江)의 문해(文海)를 해쳐가며 그 글속에서 인생과 사랑을 말했다. 두 분은 노년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보여 주었고, 후배들에게 이렇게 나이 먹어야 한다고 조용한 몸짓으로 표현했다. 두 분의 노년의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지금 느끼건대, ‘자유그 자체였었다,

 

어떤 시인은 추억과 복고는 한솥밥을 먹는다. 하지만 명절이 되어 재래시장이든 백화점이든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짝퉁일 뿐이다. 태엽만 감으면 미래의 시간에 닿을 것만 같은 시계와 끊어진 길을 찾고 싶은 발자국, 누군가의 어깨를 내려놓은 가방. 다시 인연을 돌리고 싶은 다이얼 전화와 고슬고슬 오후를 뜸 들이는 전기밥솥. 아날로그와 한물간 디지털이 모여 앉은 풍물시장엔 제 시절로 돌아갈 내비게이션이 없다라고 노래했다.

 

그렇다. 제 아무리 한 시대를 누볐어도 누군가의 손에서 다시 재활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들. 나는 어느 쯤에서 한번쯤 재생될 수 있을까... 희망하지만, 그러나 젊음은 한번 쓰이고 나면 폐기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 안다.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이 땅에서의 주어진 시간은 오직 순간이기에 더러는 짧게, 더러는 조금 길게 살다 떠나갈 뿐이 아니겠는가. 욕심 부리지 말자.

 

이제 9월도 곧 갈 것이다...오늘이 어제가 될 것이며 그냥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자유로움으로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