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의 침입

2017.03.29 09:57

김수영 조회 수:117

새캐비넷.jpg

                                                               새로 설치한 부엌 캐비넷

무법자의 침입

 

   무법자가 몰래 집안으로 들어와 큰 손실을 입혔다. 무법자를 발견하고 재판하지 않고 즉결 심판을 내려 모두 사형에 처했다. 나를 잔인하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내 사정을 들어보면 나를 동정하게 되리라. 집 주위에 땅굴을 파고 그 속에 몰래 숨어 있다가 비가 온 후 모두 기어나와 우리 집을 포위하고 말았다.

 

   이 무법자는 이상하게도 나무를 갉아 먹고 산다. 처음 보는 이상하게 생긴 이 흰개미 떼들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집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나는 전화를 걸어 집중 사격을 전문업체에 부탁했다. 집 주위를 돌아가면서 외벽에 구멍을 뚫어 살상 약을 뿌리고 콘크리트 바닥을 뚫어가며 약을 살포했다. 일 년 동안 잠잠해서 몰살했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적군에 포위되었을 때 방심은 금물이고 절대로 안심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얼마 전 봄철이라 집을 대청소 하려고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먼지를 쓸어내고 진공 기로 청소했다. 마지막으로 부엌을 청소하고 부엌 싱크대 뒤쪽을 청소하려고 밑에 있던 설합장을 옮기는 데 엄청난 많은 양의 배설물을 발견하고 아연 실색했다. 이 무법자들이 유리창 담을 뛰어넘어 집안으로 기어들어 올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카운터 탑 밑을 들여다보니 합판을 하얗게 갉아 먹었다. 보이지 않는 부엌 캐비닛 안쪽은 얼마나 갉아 먹었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몇 년 전에 다른 주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터마이트 공격으로 깡그리 집이 폭삭 주저앉은 사진을 ‘Life’ 잡지에서 보고 그 위력에 매우 놀란 적이 있었다. 부엌에서 일하다 조리대가 갑자기 무너지면 어떻거나 걱정이 되어 전문업체에 전화해서 약을 샅샅이 뿌렸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모두 캐비넷을 뜯기로 하고 이틀 걸려 모두 거두어 냈다. 받침대와 기둥들을 엄청 갉아 먹었다. 일반 개미보다 두 배 정도 큰데 무슨 강철같은 이빨을 가졌길래 그렇게도 단단한 나무를 갉아 먹을 수 있을까. 인간은 크기가 수십만 배 커도 사람 이빨로 나무를 갉아 나무를 망가트릴 수 없다. 그렇게도 작은 벌레가 어쩌면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인간에게 줄 수가 있을까. 벌레 혼자 힘으로는 삽시간에 그렇게 많은 양의 나무를 갉아 먹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많은 벌레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공격하니 사람이 감당키 어려운 피해를 보는 것이다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이 조그마한 벌레와 선전포고를 하고 싸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니.

 

   펄 벅 여사가 쓴 소설 대지속에 나오는 메뚜기 떼의 습격은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줘 농장주인 소설의 주인공은 그 충격으로 병들어 죽게 된다. 작년 가을에 우리나라에도 전남 해남에서 발생한 메뚜기를 닮은 많은 풀무치 떼가 농작물을 덮쳐 엄청난 피해를 준 바 있다. 이처럼 많은 곤충은 식물을 먹어 치우거나 사람을 공격하여 피를 빨아 먹어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터마이트는 바싹 마른 나무를 갉아 먹어 나무로 지은 집에 사는 인간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힌다.  

 

   무슨 이빨을 가지고 있길래 딱딱한 나무를 굴 파듯이 갉아 먹을까 궁금하여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보니 집게 같이 생긴 뾰족한 이빨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나에겐 불가사의한 곤충일 수밖에 없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톱으로 썰어야 잘리는 그 딱딱한 나무를 밥 먹듯이 먹어 치우다니 고약한 놈 같으니…..

 

   이번 전쟁을 치르느라 엄청 고생은 했지만, 부엌이 매우 아름답고 깨끗해졌다. 송장을 모두 치워버리고 약을 뿌리고 또 뿌리고 철저히 단속했다. 모두 새 단풍나무로 캐비닛을 만들었으니 무늬가 예쁘고 짙은 갈색이 안정감을 주며 단풍나무의 향기가 마음을 감미롭게 해준다. .

 

   새 캐비닛을 바라보노라니 그동안 소탕작전을 벌이느라 받았던 스트레스가 싹 가시어진다. 이번 전쟁을 통하여 터마이트에 대해 많이 알게 되어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날아다니는 터마이트와 지하 터마이트(Subterranean Termite)  두 종류가 있다는 것도 알았고 우리 집 터마이트는 지하 터마이트라 텐트를 칠 필요가 없다고 하니 그래도 퍽 다행한 일이라 생각이 든다.

 

 

     땅굴 속의 무법자야. 덤비려면 덤벼 봐. 이제는 절대로 속지 않으리라. 너의 전술 법을 아는 이상 미리 공격하리라. 암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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