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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초년병" 조선일보 김영문의 응접실 제 2 회
2019.09.27 05:19
이민 초년병
나는 한국에서 소설 쓴다고 버티고 앉아 있다가 주머니 속에 몇 푼 가지고 있던 돈 다 들어먹고 도무지 살아남을 길이 없어서 미국행을 결심했다.
출국하는 날 버스 안에서 텅 비고 우울한 마음으로 차창 밖을 응시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농부를 보았다. 그 농부는 자전거 꽁무니에 개를 한 마리 매달고 끌고 가는 것이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뼈가 앙상한 개는 자전거에 매어놓은 줄에 끌려서 허덕거리면서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무심한 농부는 목을 길게 빼고 헐떡거리는 개는 잊어버린 듯 그저 표정 없이 페달을 밟았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때 보았던 그 광경을 잊지 못한다. 그 개는 어쩌다가 개를 개처럼 천대하는 한국에서 태어나 그런 모진 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 농부는 어째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같이 살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모를까.
NWA 항공권을 6개월 할부로 사서 타고 알라스카의 앵커리지를 거쳐 시카고 공항에서 입국 신고를 했다. 이후 약 2년 동안을 나는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첫 번 째 취업을 하자 나는 NWA 항공사에 신고하고 그 후 6개월 동안을 꼬박 꼬박 월부금을 갚아서 외상항공권도 지불을 끝냈다.
첫 번 째 취업된 곳에서 첫 번 째 주를 일하고 나니 한국에서 몇 푼 가지고 왔던 현금은 동나고 나는 무일푼이 되었다. 첫 번 째 주의 임금이 두 번 째 주 금요일에 지불되므로 나는 그 두 번 째 한 주 동안을 점심 먹을 돈이 없어서 굶고 보내기로 했다. 내 옆에서 근무하던 봅 (Bob) 이라는 유태인 젊은이가 있었는데 내 눈치를 보더니 같이 점심 먹으러 나가자고 해서 나는 이미 점심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봅은 아무 말 없이 거의 강제적으로 내 팔을 끌고 밖으로 나와 회사빌딩 바로 앞에 있는 맥도날드로 가서 햄버거점심을 사서 안겨줬고 나는 허겁지겁 이것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인생을 살다보면 큰일이면서도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는 일도 있고 또 아주 작은 일이면서도 머릿속에 인각되어 지워지지 않는 기억도 있다. 나는 그 때 나를 끌고 나가서 점심을 사줬던 봅을 잊을 수 없다. 그 때 먹었던 맥도널드점심 또한 내 기억을 떠나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이민 와 자기도 몹시 가난했던 이 유태인 봅은 자기 고물차를 가지고 새벽에 수퍼마켓 빈 주차장에서 내게 운전연습을 시켜줬고 또 역시 그 고물차로 교통국에서 운전면허증을 획득하도록 도와주었다.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진정 곤궁에 처한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그 때 터득했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때를 돌이켜 생각하며 울고 있다.
봅. 너 지금 어디 있는가? 네가 어디에서 살건 무엇을 하건 아무쪼록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있기 바란다. 네가 나에게 보여줬던 친절을 미처 갚을 기회가 없이 헤어지고 말았구나. 나도 열심히 살고 있다. 네가 나에게 보여줬던 친절을 잊지 않고 있다.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생기면 네 생각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주려고 애쓰면서 산다. 하느님 앞에서 다시 만날 때 까지 우리 같이 행복하고 건강하자.
(2019년 9월 16일 월요일 조선일보 ‘김영문의 응접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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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먼 곳으로 떠나버린 김영문님, 참 아쉽군요. 이민 초기를 생각하신 거 보니 인생을 정리할 마음이 드신 거겠지요. 거기서도 열심히 행복하고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