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에 핀 동백꽃은 소설. 제 2부

2012.02.02 13:55

연규호 조회 수:590 추천:29

7장. 30년 만에 만나고 보니.... 다음날 아침. 닥터.강은 마크 맥,나이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정신병원에서 만난 후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분명 마크는 분명, 청주 성공회당에서 거지같았던 소년 강석호에게 강한 펀치를 날렸던 그 소년이었다고 확신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죠? 마크? 당신이 바로 그 맥.나이트였죠?" "그렇습니다. 제가 마크였지요. 그럼? 당신은 그...강석호씨?" "그렇습니다. 아-이게 얼마만입니까? 45년전이군요..." "와- 그렇군요. 닥터.강!" "그렇다면, 당신을 따라 미국으로 간 한순해씨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강석호 의사는 다구쳐 물었다. 그리고 문득 그에게 잊어버리고 말았던 쓰라린 과거가 생각났다. -( 1967년, 의과 대학을 졸업하면서 닥터.강은 투견에서 진 개가 꼬리를 내리듯이 친구, 김종일에게 사랑하는 순해를 양보하였었다. 김종일은 당당하게 순해와 연애를 하였으나 강석호는 깨끗이 양보를 하고 마음속에 품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음해, 1968년 5월 김종일과 강석호는 멀리 월남전에파병되어 퀴논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년여를 지내고 있었다. 1969년 8월, 둘은 월남전 복무를 무사히 끝마치고 귀국하기로 되었으며,귀국하면 김종일은 한순해와 결혼을하기로 약속을 하였었다. 비록 강석호 중위는 한순해를 포기하였었지만 그녀가 친구 김종일과 결혼을 하여 잘만 살아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었다. 그런데..... 1969년 7월이었다. 귀국하기 바로 이주전이었다. 철석같이 믿었던 한순해로부터 온 편지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날라 온 편지는 마크라고 하는 남자가 보낸 청첩장이었다. [마크 맥.나이트와 한 순해의 결혼식이 1969년 7월 21일에 청주 성공회당에서 거행됨] "뭐라고? 뭐라고? 순해가 마크와 결혼을 한다니!" 강석호는 물론 김종일은 소스라쳐 놀랐다. "아니! 순해가 나를 배반하고 마크와 결혼을 한다니!" 김종일은 소리를 쳤다. 그러나, 월남에 있는 동안 한순해와 마크는 7월 21일 결혼을 한 후 7월23일 미국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8월 3일 한국으로 돌아 온김종일은 자신과의 약속을 깨버리고 미국으로 가버린 한순해를 생각하며 울고 말았다. 그리고 이를 갈고 말았다. 김종일이 비통해 하는 모습을 보며 강석호도 비통하였다. 그렇다고 운명의 작난이랄까? 마지못한 결혼을 하여 미국으로 간 한 순해를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마침내, 김종일은 한순해를 단념하고 말았기에 닥터.강도 친구 김종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전문의사 과정을 이수하기 위하여 각각 Y의대와 S의대 부속병원에 취직을 하였다. 그러나 강석호는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비록 마크와 결혼을 하였다고는 하나 순해를 잊고 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가자! 미국으로...그녀를 따라 가자. 그녀와 결혼을 못한다고 해도 그녀와 가능한 가까이에서 살아보자. 아니 멀리에서라도 바라다 보면서..." 마침내 강석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자 큰 이민 가방을 싸고 말았다. 그리고 그가 찾아 온 것은 흑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뉴욕의 브르클린이었다. 검은 사람, 그리고 푸에르토 리킨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 유태인들이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는 부르클린에 있는 다운 스테이트 병원(Down State Medical Center)에서 그는 4년 간을 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순해를 기다리고 살아왔다는 말이다. 마음 깊숙이 쓰라린 추억을 간직한 채......)- * 그런데 어제 브레아 정신 병원에서 만났던 마크를 오늘 다시 만났다. 월남전쟁에 있는 사이, 순해와 결혼하여 미국으로 깜쪽같이 날라온 마크라는 사나이를... "마크? 말씀해 보세요? 당신을 따라 갔던 한 순해는 어디에 있는 거요?" "닥터.강?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었나요? 이미 만나지 않았습니까?" "예? 이미 만났다고요?" "예. 이미 만났지요. 그리고 치료도 하였지요. 나의 아내, 로즈, 맥나이트가 바로 한 순해란 말입니다." "예? 로즈가? 로즈가?" 못 믿을 말이었다. 우울증 환자로 말도 하지 않으며 이글어 진 얼굴을 한 그 여자가 한 순해란 말인가? 지난 30여년간을 기다리고 찾아 온 한순해가바로 로즈라니.....닥터.강은 너무나 실망을 하였으며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하였다. "아- 아-. 로즈가 한 순해라고요? 순해라고...." "그렇습니다." 마크는 대답을 하였다. * 돌이켜 보니 지난 30여년의 세월이 후회가 되며 허무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지난 30년이 눈 앞에서 아물거리고 있었다. 가난뱅이 강석호가 의과대학을 졸업한 것은 1967년 2월 21일이었다. 1967년 2월 21일! ------ 그 날은 아침부터 진 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간에 강석호는 Y의과대학을, 종일은 S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있었다.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강석호를 찾아 올 사람이라고는 가난한 아버지뿐, 다른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같은 시간에 부유한 양조장 집 아들 김종일이 졸업을 하는 S 의과대학으로 사랑하는 순해가 찾아가는 것은 뻔한 일이었기에 그녀가 꽃다발을 들고 찾아오리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석호는 동료 졸업생들과 같이 당당하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소리 높여 부르며 마침내 의사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 강석호를 꽉 포옹을 하며 말하였다. "장하다. 석호야! 못난 아버지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하였지. 미안하다. 아버지가 돈도 못 벌고 늘 가난하게 살며 등록금도 못해 주어서..." 그리고 그는 뜻밖에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닙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래? 너의 어머니가 너의 졸업을 보았어야 했는데..." "어머니요?" 순간 강석호는 죽은 어머니의 얼굴이 떠 오르고 있었다. 강원도 철원에서 피난을 나와 가난하게 살다가 죽은 어머니의 얼굴에서 한 여성의 사랑이 그리웠다. 어머니처럼 따슷한 여성의 사랑이 절실히 그리웠기에 강석호는 눈을 꼭 감고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 그는 목이 매어 살며시 어머니를 불러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석호오빠? 축하해! 의사가 된 것을...그리고 대견해요." 뜻밖의 일이었다. 지금 이 시간 S 의과대학 교정에서 김종일과 같이 있어야 할 한순해가 강석호의 앞에 이렇게 나타났으며 손에는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 있었다. "아니? 순해 아냐? 순해야!" 강석호는 그녀가 주는 꽃다발을 받아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한순해, 그녀는 여대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으로 진급을 하고 있었다. 그날 강석호는 그녀 앞에서 김종일을 제치고 처음으로 당당할 수가 있었다. '그래! 나도 드디어 의사가 되었어. 의사가...그리고 순해야 나도 너를먹여 살릴 수가 있어. 고맙다. 이렇게 나를 찾아 주다니... 종일의 졸업식을 마다하고...그래, 순해, 나는 평생 너를 사랑할거야.'라고 그는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졸업 일개 월 후, 강석호는 육군 군의관으로 입대를 하게 되었으며 그녀는 3학년으로 진급하고 있었다. 너무나 뜻밖인 것은? ( 대학병원에 남아 수련의사의 과정을 밟으리라고 생각하였던 친구 김종일도 역시 육군 군의관으로 입대를 하였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아니? 종일아? 군에 입대를 하다니? 대학 병원에 가서 수련을 받아야지!" 강석호는 너무나 놀라서 물었다. "아냐! 이유가 있어. 군의관부터 하고...수련을 할거야." 그의 입대 동기는 너무나 순수하였기에 강석호는 또 한번 더 놀라고 말았다. 강석호는 졸업을 하면서 가난에서 벗어 나 잠시 숨을 돌리고자 군에 입대를 하였는데 부유하며 성적도 좋은 김종일은 월남에서 숨진 친구, 한성민의 원수를 갚겠다고 일부러 육군에 입대를 하였다고 말하였을 때, 강석호는 또 한번 김종일의 큰 인간됨을 부러워 하였다.) 한순해는 군에 입대하는 김종일과 강석호 두 오빠를 위해 환송을 하여 주었다. 공주같은 순해는 분명히 두 오빠에게 말하였다. "종일 오빠, 그리고 석호 오빠! 몸 조심하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그리고 그녀는 뜻밖의 말을 하였다. "오빠들! 나는 전쟁을 싫어합니다. 전쟁 때문에 나는 부모와 오빠를 다 잃었습니다. 그리고 올케가 되었을 현숙, 언니도 잃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순해는 3년 전, 그녀가 사랑하였던 민 현숙 언니의 죽음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와의 관계는 언니 동생을 떠나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같은 청주출신으로 서울에 와서 같은 하숙집에서 살아온 그들은 오빠 한성민으로 인해 올케 시누이가 될 사이였었다. 그런데 현숙은 뜻 밖에도 자살을 하고 말았다. "왜? 언니는 죽음을 택하였을까? 성민 오빠가 졸업하면 결혼도 하고 잘 살수가 있었는데...왜? 죽음을 택하였을까?" 그리고 성민 오빠가 스스로 월남으로 자원하였을 때, 동생인 순해는 강력하게 말리지 않았던가? "성민 오빠? 월남에는 왜 가겠다는 거야? 왜? 거기 가면 오빠, 개 죽음을 당하는 건데. 왜 오빠가 개 죽음을 하여야 하는 거야?" 그리고 몇 개월 후, 성민 오빠는 월남에 파병되었다가 프레이크에서 전사하여 한줌의 재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국립 묘지에 묻치던 날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다. 순해는 한 줌의 재가 된 오빠를 국립묘지 한 귀퉁이에 묻어 주고 난 후 비틀거리며 국립묘지를 나오고 있었다. 앞이 캄캄하였으며 앞날이 암담하였기 때문이었다. 순해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먼 하늘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현숙 언니도 그리고 성민 오빠도 가버렸으니, 나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 순간이었다. 누구인가가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면서 말을 하였다. "순해야? 오빠가 옆에 있어주마. 언제까지나..." 아- 석호 오빠였다. 순해는 그를보면서 지금까지 참아 왔던 극도의 피곤과 외로움을 느끼며 석호에게 기대어 넘어 지고 있었다. 석호는 순해를 꽉 부축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데리고 그녀의 하숙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마치 일년여전 태릉 뒷산에서 민현숙 언니를 묻어 주며 현기증을 느끼며 쓸어 지려고 하였던 그 때도 공교롭게도 강석호는 순해를 부축하여 주었었다.) 그날 이후부터 순해는 말이 적어 졌으며 고독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다고 그녀는 말을 하였다. 고독이 무엇인지...그리고 홀로 외로워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그녀는 누구인가를 찾았다고 하였다. 그녀는 석호 오빠, 그리고 종일 오빠를 찾았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그녀는 석호 오빠나 종일 오빠가 늘 그녀의 주변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고 하며 울었다. 그런데 졸업을 한 신참 의사 김종일과 강석호가 군의관이 되고자 군에 입대하기 며칠전에 순해는 두 오빠들과 맥주집에서 송별회를 한일 있었다. "석호 오빠, 그리고 종일 오빠? 나를 이렇게 홀로 두고 최 전선으로 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라고 말하며 그녀는 울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군에 입대하는 두 오빠들에게 말하였다. "석호 오빠, 그리고 종일 오빠! 건강하세요. 그리고 나, 순해는 오빠들을 기다릴게요."라고. "기다린다고? 순해야?" 석호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마름 속 깊이에 묻어 두었다. "그래, 기다릴게. 순해야? 순해야? 너를..." 그리고 그들 오빠들은 육군에 입대를 하였다. 빽이 없는 강석호는 강원도 인제 산골로, 그래도 빽이 좋은 김종일은 의정부에 있는 후송병원으로 배치가 되었다. 훈련을 마치고 인제에서 몇 개월을 보낸 강석호 중위는 까만 얼굴을 하고 휴가를 나와 대학교 4학년인 순해를 청주에 있는 성공회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성공회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에서 만났을 때 강석호 중위는 제법 자신 있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비록 아버지가 성공회당의 수위에 불과 하지만 강석호 중위는 이제 당당한 의사요 한국의 육군 중위였으니까.... (그날의 만남은 너무나 인상적이었으며 강석호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돌계단을 걸어 올라간 강석호 중위와 졸업반인 순해는 성당 부속 건물에 있는 아담한 기도실에 같이 들어갔다. 아담한 기도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십자가와 유리창에 진하게 그려진 성인들만이 있었다. 말을 건 쪽은 순해였다. "석호 오빠? 여기에서 기도를 드리면 예수님이 모든 것을 들어 준대. 오빠? 모든 것을..우리도 기도하자!" 결국 강석호와 한 순해는 손을 잡고 기도를 하였다. "무어라고 기도를 했니? 순해야?" "엉, 오빠가 훌륭하게 잘 되라고. 오빠는?" "어, 나는 네곁에 같이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어. 네 곁에 있게 해달라고..." "내 곁에?" "그렇다니까?" 마침내 그들은 포옹을 하였다. 석호의 가슴은 둥둥 뛰고 있었다. '아- 내가 순해를 포옹하다니...' 그리고 석호는 순해의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창문에 새겨진 성인들이 바라다 보고 있었다. 그들이 증인이었다. "순해야? 나, 너를 기다릴게. 너만을..언제 까지나..." 순해는 말이 없었으나 그녀도 속으로 이렇게 다짐을 하고 있었다. "나도,,,석호 오빠..."라고. ) * 그리고 강석호 중위는 강원도 인제 산골 군부대로 돌아갔다. 말이 의무실이지 약도 부족하였으며 할 일도 별로 없는 곳이기에 졸병들이 해다주는 미꾸라지 탕과 두부를 곁들여 소주나 마시며 멀리 휴전선에서 왕왕 울려 나오는 인민군들의 판에 밖힌 선전이나 들어야 했다. "지상 낙원에서 위대한 수령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잘 산다고" 하는 인민군들의 철부지 같은 선전이나 들으며 세월을 보내느니 보다 얼마전 친구, 김종일이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한 말이 생각이 났다. "석호야! 우리 월남에 가서 일년간 복부를 하자. 죽은 성민의 원수를 갚는 마음으로 같이 가자!" 만일 안 간다고 하면 석호는 영락없이 친구 종일로부터 오해를 받게 되었다. 지난 몇 개월, 김종일과 순해는 대 놓고 데이트를 하였으며 마침내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를 하면 순해와 결혼을 하기로 하였다네..." 김종일은 어느날 석호에게 선언을 하였다. "그래? 축하하마!" 석호는 그렇게대답은 하였으나 그래도 마음 속에는 '만일 종일이가 결혼을 못하게 되면 그 다음은 바로 나다. 그러니 포기는 하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석호와 김종일 그리고 한순해는 삼각관계에 빠져 있는 셈인데 김종일 쪽으로 훨씬 기운 모양이 엉성한 삼각형이란 말이었다. 마침내, 강석호 중위는 김종일 중위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국민학교부터 대학 졸업 할 때까지 강석호는 김종일과 그의 아버지로부터 등록금을 받었기에 그들은 강석호의 은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은 한순해의 정신적인 문제였다. 그녀는 그녀의 곁에 든든한 강석호와 김종일 오빠가 있어야 했다. 만일 그들이 그녀의 곁에서 잠시라도 떠난다면 그녀는 그녀가 겪을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이들 두 오빠들도 알고 있었다. 강석호 중위는 어짜피 친구 김종일에게 양보를 하리라고 단념을 하였지만 혹시라도 맥.나이트 신부의 아들인 마크 맥.나이트가 눈에 맴돌고 있었다. "호랑이와 사자가 없는 사이에 늑대가 와서 강아지를 물어 가면 어쩌나?" 결국 강석호 중위는 또다시 한순해를 청주에서 다시 만났다. 비록 가난한 피난민이며 수위의 아들이기는 하나 당당하게 순해를 성공회당의 그 기도실에서 또 다시 만나 마침내 고백을 하였다. "순해? 나, 월남에 갔다 올게. 나를 위해 기도를 해 줘! 부탁이야. 부탁." "아니? 종일 오빠도 간다고 하던데...왜 석호 오빠도 가는 거야? 죽은 성민 오빠만으로 족하지. 안돼! 안돼!" "그래, 성민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 가는 거야. 딱 일년만..." "말도 안돼. 오빠들의 목숨이 그렇게 하잘 것 없어?" "아냐! 다녀 올게 순해야! 나를 기다려줘!" "아니? 두 오빠가 다 가버리고 나면나는 어떻게 해. 어떻게...." 불길하였다. 두 오빠가 다 가버리고 나면 그녀는...그녀는 결국 마크를 택할 지도 모르는데.... "순해야, 걱정마. 돌아오면...돌아오면...." "돌아오면?" 순해는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돌아오면....저...저...아무튼 아무대고 가지마..." 돌아오면 결혼하겠다고 하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말았다. 돌아오면 김종일과 결혼 할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1968년 5월 23일 강석호 중위와 김종일 중위는 월남으로 가는 수송성에 몸을 실었다. '맹호부대 군의관으로 퀴논으로 가고 있었다. 퀴논으로......' * 그리고 그 날, 1968년 5월 23일부터 강석호 중위는 한순해를 기다리는 운명의 사나이가 되었다. (월남에서, 고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와서... 그렇게 기다린지가 어느듯 34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는 그녀의 편지를 기다리며 그녀와의 즐거웠던 청주 성공회당과 기도실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며 살아온 물망초(勿忘草)였다. 아니 친구, 김종일의 그늘에 묻혀 낮에는 피지 못하고 밤에나 잠시 피었다가 지는 무명초(無名草)로 지금까지 살아 왔다는 말이다 물망초와 무명초의 인생이었다.) 그리고 34년 후...... 무명초처럼 한순해를 생각하며 기다려 온 그에게 나타난 한순해는 '친구 김종일의 아내가 아니었다. 역시, 역시하며 가슴 조렸던 미국 사람, 마크의 아내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두 오빠를 잊지 못하고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온 우울증 환자로 브레아 정신 병원에 입원하여 누어 있는 폐인이었다.' (평생을 기다려 온 공주, 순해의 모습이 이처럼 변하였다니...표정도 없으며 말도 없는 그녀의 얼굴은 며칠씩이나 세수를 하지 않아 꾀제제하게 때마저 낀 더러운 정신병 환자였으며 천사같이 우아하였던 그녀의 옛 모습은 원한과 저주의 한을 품은 듯이 이글어져 있었다.) 강석호, 아니 닥터.강은 믿어지지가 않았으며 로즈라는 그 여자가 제발 한순해가 아니기를 마음 속 깊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마크? 그렇다면, 저, 저, 로즈라는 그 환자가 당신의 아내? 그리고 한순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미안합니다. 로즈, 아니 순해는 이곳 미국으로 온 이후 늘 우우증에 빠져 살아 왔습니다. 모든 것이 다 나의 잘못이었습니다. 닥터.강!" 마크는 진심으로 사과를 하였다. "맙소사! 로즈가 진정으로 순해란 말입니까?" 닥터.강은 지금까지 참아 왔던 서글픔의 눈물을 왈칵 쏫아 버리고 말았다. '순해야! 순해야!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데...그래! 정신병 환자면 어떠냐? 더럽고 냄새나는 여자라면 또 어떠냐?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한시라도 잊은 적은 없어. 그래, 종일이도 가버리고...마크마저 너를 버렸다니, 내가 너를 보살펴 주마. 너와 성민, 그리고 너의 할아버지가 나를 도와 준 것처럼...이번에는 내가 너를 도와주어야 할 차례일 뿐이야. 순해야! 곧 달려가마. 너에게로.' 닥터.강은 브레아 정신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정신병동에 있는 로즈의 방으로 달려갔다. 금발의 간호원은 달려 들어오는 닥터.강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환자, 로즈는 많이 좋아 졌습니다. 이제 더 안 와도 될텐데... "라고. 닥터.강은 로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하였다. "로즈? 아니, 순해? 나야, 나! 석호 오빠! 석호 오빠. 나는 너를 기다려왔어. 지금까지 말여." "................." 역시 순해는 말이 없었으며 멍하니 닥터.강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순해! 나, 석호 오빠라고...석호 오빠!" "......................." 역시 순해는 말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눈을 굴려 잠시 그를 응시하더니 또다시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아- 우울증이란 이런건가? 보고도 모르는...과거를 이토록 잃어버리다니....' 닥터.강은 그녀의 손을 또다시 꼭 잡으며 중얼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순해를 확인만 하였을 뿐 아무런 목소리도 못 듣고 집으로 힘없이 돌아오고 말았다. (허탈하였으며 절망적이었다. 34년간을 기다려온 그의 연인 한순해가 폐인으로 정신병원에 누어 있다니....바보처럼 말도 않고.....) * 그 날 오후, 닥터.강은 정신과 의사, 제임스 야마시로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아주 간절하게 로즈(순해)의 정신병 치료를 부탁하며 지난 사연을 말하여 주었다. 야마시로는 많은 위로를 하여 주었으며 몇 가지 특수 처방을 제시하였기에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 날 밤, 닥터.강은 순해의 옛 사진들을 바라다보며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믿어지지 않는 그녀의 변모와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허무하였으며 갑작스레 늙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지난 34년의 세월을 보상받지 못함이 더 안타까와 그는 울고 말았다. "아- 이렇게 만나다니!" 그는 밤새 잠을 설치고 말았다. 8장. 달라트에서 만난 월남 아가씨. 브레아 정신병원에 있는 한순해를 만나고 온 그날 밤, 닥터.강은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 10여 일은 마치 지난 60년의 세월을 말해 주는 듯 하였으며 잠을 제대로 잔 날이 별로 없었다. 아침이 되었다. 남 칼리포니아주의 3월 말 답게 바람은 불었으나 다소 더운 듯 하였다. 아침에 배달된 신문을 읽다보니 '96명의 월남 피난민을 구해 준 영웅 정진성씨'가 월남 타운을 떠나 어제 한국으로 되 돌아 갔다고 하는 뉴스가 눈에 띄었다. "아! 정진성 선장님이 드디어 한국으로 가셨구나. 아니 거문도로..."그는 섭섭한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문득, 며칠 전 월남타운에서 만났던 '퀴.레'와 그의 조카가 되는 '제임스 누엔'이 생각났다. 그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이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기에 그는 진료실로 가는 것을 뒤로하고 월남 타운으로 찾아갔다. 월남말로 쓴 간판들 중에서 '웨스트민스터 월남 교회'를 찾을 수가 있었다. 맹인 목사인 퀴.레는 이곳 월남 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곳에 있던 그는 아주 반갑게 닥터.강을 맞아 주었다. 전통적으로 월남 사람들은 신교보다는 천주교를, 천주교보다는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곳 미국 사회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다. 아담한 미국 교회를 빌려 보는 교회였으나 맹인인 부목사를 위해 작은 방 하나를 사무실로 배려해 주었다. 닥터.강이 레목사를 오늘 만난 이유는 그가 바로 달라트에 있었던 두옹 레 장군의 아들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달라트 지역 사령관이었던 두옹.레 장군이 아버지가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달라트 지역 사령관을 역임하였으며 1975년월남이 패망할 때 구차한 항복보다는 죽음을 택하였지요. 권총으로 자살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퀴.레 목사님. 내 목소리를 알아듣겠습니까? 내 목소리를?" "예? 목소리를요? 그렇다면 내가 아는 분입니까?" "그렇소! 기억나십니까? 달라트에서 만났던 한국군 군의관 중위, 강석호 중위를? 강석호 박시를?" "강석호 중위? 아! 따이한 박시?" "그렇소. 칸송에서 베트공에게 납치 되었을 때 구하여 퀴논에서 달라트로 데려다 주었던 그 한국군 중위...강석호 말입니다." "아- 아- 기억이 나고 말고요. 얼마나 보고 싶었었는데 당신이...당신이 바로 그 강석호 중위란 말입니까?" "예. 그렇소," "와! 강중위님? 아니, 닥터.강? 당신이 여기에 계시다니...이게 정말입니까? 정말..." "그렇소. 퀴? 당신과 당신 가족은나에게 있어서는 잊지 못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강중위님? 당신은 우리를 구해준 은인이며 또한 우리를 파멸케 한 운명적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은인이라니? 그리고 파멸케 한 사람이라니?" "아- 강중위님? 당신은 마치 정진성 선장이 96명의 보트 피풀을 구해 주었듯이 우리를 베트공으로부터 구해 주었지요. 그런데 우리를 파멸케 한 것은...아- 차차 얘기를 하지요." 뜻밖이었다. 눈먼 퀴 목사가 바로 1969년 7월 말, 달라트에서 혜어졌던 그 소년이라니....벌써 33년 전... 공교롭게도 한순해와 이별한 1969년 7월이었다. 그렇다면 무슨 운명으로 이 두 다른 가족을 33년여 만에 다시 만나게 되다니.... 아름다웠던 한순해는 정신병자로서, 그리고 건강하였던 퀴는 눈먼 사람으로서 만나다니... 전쟁의 세월이 이토록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눈이 안보이시는군요? 퀴 레 목사님? " 닥터.강은 살며시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습니다. 맹인이 되었습니다. 1975년 6월, 보트 피플이 되어 남지나 바다로 쫒기듯이 나왔지요. 가까스레 정진성 선장의 구출을 받아 미국 7함대에 넘겨져 괌도를 거쳐 미국 칼리포니아에 있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살다가 이곳 웨스트민스터에 정착을 하였지요. 그리고 고등학교를 거쳐 UCLA에 진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2 학년 때였습니다. 갑지기 뇌에 종양이 생겼습니다. 뇌하수체 암이었지요. 수술로 목숨을 건지기는 하였으나 시신경을 잃고 눈이 멀었습니다. 절망이었지요." "UCLA에 다니다가?" "그렇습니다. 희망에 찬 대학생이었는데...한 순간에 절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지요. 마치 깐송에서 납치되어 죽게되었듯이...그리고 월남이 패망한 후 남지나 바다로 쫒겨나 바다에 빠저 죽게 되었듯이 말입니다." "레 목사님? 내 손을 잡아 보세요. 마치 깐송에서 구출되었듯이...그리고 남지나 바다에서 정진성 선장에 의해 구출되었듯이... 그래요. 그 때그 때 내가 당신의 손목에 기브스를 하여 주었었지요. 그리고 달라트에서 손을 잡고 이별을 하였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말했었지요. 언젠가 다시 만나자! 다시 만나자라고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났습니다." 닥터.강은 레목사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손은 따슷하였다. 순간 방문이 열리면서 동양 사람처럼 생긴 한 서양 여자가 차를 들고 들어 왔다. 놀랍게도 그녀는 레목사의 아내라고 스스로를 소개 하였는데 이름이 특이 하였다. [다나 벌티니(Dana Bertini)라고 하였는데 월남사람은 아닌 듯 하였다.] "나의 아내입니다. 보시다시피 월남 다낭에서 태어낫지요. 미국 사람과 월남 사람을 반반씩 섞은 아메라시안(Ameracian)이지요." "다나? 다나?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저, 저는 닥터.강, 아니 강석호 중위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남편이 자주얘기를 하였지요. 1968년 8월 어느날,달라트에서 후에(Hue)로 가다가 베트공에게 납치되어 깐송이라고 하는 마을로 끌려가 그곳에서 죽기 일보 전에 용맹스러운 한국 맹호부대에 의해 구출되어 퀴논으로 후송이 되었는데 그곳에서 앰뷰란스로 달라트에 있는 집으로 보내 질 때 보호하여 준 군의관이 바로 강석호 중위라고 하였지요. 그 때 그 군의관은 아주 친절하게도 절망에 빠져 죽으려고 한 누나를 구하여 주었다고 하던군요. 그리고 그 군의관과 누나는 서로 사랑을 하였노라고 하던군요. " "그렇다면, 그 누나란? 바로 닌(Nihn)이지요? 닌? 그렇죠?" "그렇습니다. 닥터.강이 사랑하였던 그 누나가 바로 닌이지요." "아- 퀴. 다나! 다나!" 닥터.강은 감격하여 눈시울을 훔치며 다나의 손을 잡았다. "다나? 닌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어디에 있느냐구요?" 다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잘모르고 계셨군요? 남편에게 물어 보세요. 차라리..." "예?" 닥터.강은 놀래서 물었다. 그리고 불길한 느낌이 전율처럼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닥터.강? 그 얘기라면 우선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천천히 얘기하십시다. 별로 얘기를 하고 싶지가 않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잠시 화장실에 간다고 문을 열고 나가니 그의 아내마저 덩달아 같이 나갔다. 시간이 꽤나 지났는데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닥터.강은 레 목사의 방을 나오는 수 밖에 없었다. 불길한 아침이었다. 그리고 울고 싶은 아침이었다. 60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기다려온 두 여인들의 소식을 알게 되었는데... 한순해는 정신병 환자로, 그리고 닌.레라는 월남 여인도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그런 운명을 갖고 있는 듯 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닥터.강의 인생은 물도 없는 개울에서 바보처럼 헛 바퀴만 돌고 돈 물레방아라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해지고 말았다. * -월남 교회를 나오다가 그는 문 앞에놓여 있는 작은 벤치에 앉아 두 눈을 감고 먼 옛날을 생각해 보니 마치 무성영화 시절의 영화처럼 지난 세월이 생각나고 있었다. (문득 36년 전인 1967년 2월 닥터.강이 졸업을 하던 그 날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는 너무나 지긋지긋 하였던 학창 시절의 가난에서 잠시라도 해방이 되고자 그는 무조건 육군 군의관이 되었다. 짝 사랑하던 한 순해와 잠시 이별을 한 후 그는 멀리 강원도 인제에 있는 의무실로 갔다. 그리고 그는 김종일의 간곡한 청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월남전에 참전하여 퀴논에 있는 맹호부대 의무실로 갔다. 물론 한순해는 그해 2월, 대학을 졸업한 후 미 공보원에 취직을 하였으며, 월남에 가기 전 그는 청주에서 감격적인 이별을 하였으나, 얼마 후 서울 청량리에서 만났을 때는 다소 상황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오빠를 기다리겠다고 하였던 순해의 태도가 다소 쌀쌀하였기 때문이었다.' 공보원에 취직을 하고 돈 맛을 보았는지 아니면 돈 있는 직장인과 같이 지나다 보니 가난한 군의관이 싫어진 듯하였기 때문이라고 오해를 하였다. 어짜피 삼각관계, 아니 사각관계의 구도 속에서, 가장 불리한 입장인 강석호 중위로서는 아무것도 더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용기를 내어 순해에게 마지막 사랑의 고백을 하였었다. 청량리에 있는 통닭 집에서였다. "순해야? 나, 월남에 가. 가 있는 동안에 자주 연락좀 하거라. 나도 네 편지를 기다릴게. 꼭. 꼭 편지해. " ".........." "왜 말이 없니? 너, 종일이 오빠한테는 편지를 하겠지?" "그래. 석호 오빠. 나, 나, 석호 오빠를 좋아했어. 그런데 이젠 우리는 소꼽장난이나 하는 사이는 아니잖아. 오빠가 갈 길과 내가 갈 길이 다른 것 같아. 그러니 기다리지 말라는 거야." "그럼, 순해야? 너, 나를 싫어 하니?" "아니! 오빠, 나 오빠를 사랑해. 오빠로서 말야." "그럼? 너, 김종일 오빠와...약속을 한거야?" "..........." "아- 대답이 없구나. 대답이 없는것을 보니 그런 모양이구나." 강석호 중위는 앞이 캄캄하였다. 며칠 전 김종일을 만났을 때 그는 분명히 '순해와 약속한 사이는 아니라고' 애써 부인하였을 때 그래도 강석호는 희망이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친구 종일과 순해는 교묘하게 강석호를 따 돌리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순해야! 월남에 갔다오면 나도 수련의사가 테니 한 일년만 기다려 줘! 일년만!" "석호 오빠? 바보같은 오빠들! 월남에 가서 죽은 성민 오빠 하나면 족해. 왜? 바보들처럼 월남에 가려는 거야! 나를 여기에 홀로 두고 가면 어쩌려고! 그러니 월남에 가서 죽던 살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그녀는 통닭집을 휙 뛰쳐 나갔다. 그리고 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타고 뒤도 바라보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아-아-" 강석호 중위의 은빛 같았던 희망이 송두리째 달아나고 있는 듯 하였다. 서글펐다. 그녀는 그의 모든 희망이었는데, 이토록 무심하게 사라져 버리다니... 울적한 마음에 그는 통닭 하나와 맥주 한 병을 더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희미한 가로등이 있는 청량리 정거장을 거슬러 비틀거리며 친구의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순간 강한 냄새가 강석호 중위의 코를 자극하는 가 했더니 어느새 짙은 화장을 한 요염한 처녀가 그의 팔을 잡아끌고 있었다. "군인 아저씨? 아니, 장교님? 재미 좀 보시려우?" "어-어?" 그의 눈에는 잠시 전에 사라져 버린 한순해가 그의 팔을 끌고 있다고 생각하고 보니 반가웠다. "아니? 순해 아냐? 순해?" "뭐라고요? 순해? 하하, 순해가아니고 나, 순영이요. 순영이." "순영이? 순해가 아니고?" "순영이요 " 그는 그 때서야 그녀가창녀임을 알게되었다. "이 아저씨 되게 취했구먼....실연이라도 당했수?" "그래. 당했어...." "그럼, 나하고 같네. 나도 실연을당했어. 망할 놈한테..." "그래?" 뜻밖이었다. 강석호 중위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다닥 다닥 붙은 초라한 집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희미한 등불이 있는 게딱지 같은 작은 방에서 바라다 본 그녀는 울고 있는 듯하였다. "왜 울지? 순해?" "순영이요. 순해가 아니고..." "순영이?" "아저씨? 애인이, 순해군요? 순해." "그래. 순해야 순해." "순해는 갔어요. 대신 여기 순영이가 있어요. 순영이가..." "뭐라고? 아, 나를 기다리는 처녀는 순해요. 순해." "자! 아저씨? 날 좀 안아주소. 이 옷도 좀 벗겨 주고..." "뭐라고?" "자! 여기 부라도...." "아냐! 순해!" 그는 주머니에서 지피는 대로 돈을 꺼내 그녀에게 던져 주고는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 순해가 아니고...나, 순영이요. 순영." 순영은 강석호를 향해 소리를 쳤다. "아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순해야. 순해. 언제 까지나 그녀를 기다리마..." 강석호는 심호흡을 하였다. 이마에서는 진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또 다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이것봐! 강석호? 차라리 돈 몇푼 받고 사랑을 파는 순영이가 더 순박한지 모르지...너같은 의사, 그래 거지 같은 너에게는 차라리 순영이 같은 창녀도 괜찮을거야. 그러니 다시 그녀의 집으로 가거라. 가서 순영이와 하루밤을 지내거라...') "아- 아- 아냐! 아냐! 순해를 기다리자. 비록 그녀는 종일에게 가겠지만 그래도 그녀를 기다려 보자.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리고 일주일 후 그는 친구 김종일과 같이 맹호부대 군의관으로 월남으로 갔다. * 1968 5월 23일!!! 마침내 강석호 중위와 김종일 중위는 월남, 퀴논에 있는 맹호부대에서 군의관으로 그들의 친구 고 한성민 대위의 원한을 갚기 위한 길고도 지루한 임무가 시작되었다. 퀴논이라고 하는 이국 땅에서 바라다 본 야자나무는 강석호 중위를 더더욱 외롭게 하였으나 그래도 친구인 김종일과, 비록 작기는 하나 에어콘이 갖추어진 BOQ에서 같이 생활을 하게 된것은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고는 하나 삼각관계에 있는 친구는 친구라기 보다도 적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강석호가 바라다 본 친구 김종일은 너무나 강력한 적수이기에 강석호는 이미 항복을 의미하는 개가 그의 꼬리를 내리듯이 강석호, 그도 그의 꼬리를 내린지가 오래이기에 마음은 편하였다. 그래도 한가지, 혹시라도 강적인 김종일과 한 순해의 사이에 돌발적인 사건으로 만에 하나라도 그들 사이에 틈이라도 생긴다면 다음차례는 기다리던 강석호의 차지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요행 심이었다. 퀴논에 도착한지 일주일만에 강석호 중위는 차분히 책상에 앉아 멀리 서울에 있는 연인(戀人)한순해에게 긴 편지를 썻다. -"사랑하는 동생, 순해에게 ! 마침내 월남 땅, 퀴논에 도착하여 나의 임무를 파악하느라고 편지를 쓰지 못하였어. 이곳에서 나와 종일 오빠는 군의관으로 열심히 일을 하여 먼저 저 세상으로 간 한성민 오빠의 원한을 갚고자해. 원한이라니? 그래 원수라고도 할 수 있으며 어찌보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이라고도 보아야겠지. ...........(중략) 순해야? 나, 이곳에서 너만을 생각하며 살고 있어. 너만을... 나 너만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아... 당당하게 일을 하다가 임무를 마치고 귀국 할 때까지 나를 기다려 주기바래.... 강석호 오빠가 1968년 5월 30일 " 그뿐인가 강석호 중위는 매일 같이 통신병을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 오는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한순해로 부터 오는 편지를... 그러나 두 달이나 지났으나 그에게 오는 편지는 한 통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퀴논과 호지명 루트사이에서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 전투가 있은 다음에는 의례 몇 명의 전사자나 부상자가 맹호부대 의무실로 이송되어 오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군의관의 일도 덩달아 바쁘기 마련이었다. 너무나 바쁘다보니 말로만 듣던 퀴논 시내에 있다는 술집에도 가 본 일도 없었으며 꽁까이들과 어울려 질펀하게 놀아 본 적도 없었다. 오로지 한국에 두고 온 "한순해'로부터 오는 편지를 한 통만이라도 받아 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두달이 지났는데도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하자 강석호 중위의 마음 속에는 검은 구름이 스치고 있었다. (월남으로 오기 일주일전에 청량리 통닭집에서 그토록 냉정하게 각자의 길로 가자고 선언을 한 후 무참하게 밖으로 뛰쳐 나가 택시를 타고 사라졌던 그녀의 모습이 떠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순해는 졸업 후 공보원에 취직을 하면서 마음이 변한 것 같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김종일과 대 놓고 데이트를 하고 있었음을 상기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약간의 암시를 하였었다. "석호 오빠? 석호 오빠와 종일오빠의 길은 다르잖아? 종일 오빠의 길도 생각을 해 주어야지. 나는 종일 오빠를 석호 오빠보다 먼저 알고 있었어. 그리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자랐어.") "김종일과? 종일이와?" 사실이 그러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였듯이 역시 그러했음을 알게 되는데 무려 3개월이나 지난 어느날이었다. 한방에서 생활 해온 김종일 중위가 나트랑으로 환자를 후송하러 가던 날, 평소에는 남의 물건을 훔쳐 보지 않았던 강석호 중위의 눈에 띈 몇통의 편지가 있었다. 김종일 중위의 작은 책상위에 놓여 있었던 편지였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김종일 중위가 눈에 띄게 고의로 놓고 간 듯 하였다. 서울에 있는 한순해가 김종일 중위에게 보낸 편지들이었다. 무려 10통이나 되는 편지 다발이었다. "아니? 아니? 순해가 보낸 편지들이구나! 종일에게만? 그렇다면 나 몰래 이 둘은 편지를 주고 받았구나....." 편지: -"사랑하는 종일 오빠에게! 나, 오빠가 보내준 편지를 읽으며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어요. 오빠? 건강하게 잘 지내야해! 그리고 나만을 생각하고 있다니 너무나 벅차. 오빠, 나도 오빠를 사랑해. 나도."- "아-아-" 강석호 중위는 심호흡을하였다. 그 순간 순해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온 편지를 읽으면서 강석호 중위는 한순해와 김종일의 관계를 깊이 알 수 있었으며 한숨을 짖고 말았다. 편지: -"종일 오빠? 나는 종일 오빠와 석호 오빠를 사랑하고 있었어, 아니 지금도... 그러나 생각해봐? 우리는 이젠 옛날 성당 계단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놀던 어린 아이들은 아니지. 나도 이젠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직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선택하여야 하지. 종일 오빠? 아니면 석호 오빠? 너무나 마음이 아파. 나로 인해 석호 오빠가 마음 아파하며 언제가 누구인가를 만나 결혼 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야. 나도 생각을 많이 했었지. 결국 나는 종일 오빠를 선택하기로 하였어. 왜냐구? 우리는 어려서부터 알아 온 사이였으며 할아버지와 오빠의 아버지 사이에 약속도 하였다고 하니... 그래서 나는 월남에 가기 전에 석호 오빠에게 '석호 오빠는 오빠의 길로 가세요. 나는 나의 길로 가겠으니'라고요. ......."- 편지를 읽으며 강석호 중위는 한순해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으며 그녀를 이해 할 수가 있었다. "그래, 순해야! 잘 선택하였다. 김종일은 나보다 똑똑하며 인간성도 좋으며 아버지도 부자이니....당연하지...그런데? 순해야 하필이면 나와 종일이었니? 왜? 종일과 그의 아버지는 나의 은인이었으니...내가 물러나는 것이 당연한지.... " 강석호 중위는 갑자기 솟구치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말았다. "순해야? 혹시라도 네 마음이 변한다면 내가 너를 기다리는 것을 잊지 말거라. 나는 너를 평생 기다릴 거야. 너를 바라보며 살거야." 문득 그는 소름끼치는 감정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인데...내게사실대로 얘기를 해주지. 깜쪽같이 속이려 들다니....' "아- 종일아! 행복하거라. 나보다 더..."그는 더 이상의 편지를 읽지 못하고 종일의 책상에 그대로 올려놓았다. 그 날 오후 또 한 통의 편지가 김종일에게 전달되었는데 역시 한순해로부터였다. 강석호 중위는 마치 컴컴한 터널을 헤치고 나온 기차가 넓고 밝은 또 다른 세상으로 질주해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나트랑에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종일 중위에게 석호는 진심으로 말하였다. "종일아! 진작 말해 줄 것을...진심으로 축하한다. 순해는 정말 좋은 여자야. 정말..." "어-어- 고맙다. 석호야! 알고 있었구나? 나와 순해와의 관계를?" "그래, 오늘 알게 되었어. 아무래도 너와 순해는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침내, 걸걸 하였던 삼각관계는 이토록 시원하게 해결이 되고 말았다. 비록 강석호 중위는 순해를 포기하였지만 마음 속에 있는 그녀에 대한 사랑은 더 깊고 견고하여 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이후부터 김종일은 그에게 오는 순해의 편지를 가끔 공개하여 주었다. * 뜻밖의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사건이란?" -사이공에서 북동쪽으로 약 3시간 정도 올라가면 달라트(Dalat)라고 하는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사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도시 중앙에는 아주 아름다운 호수가 있으며 도시 북동쪽에는 높은 산에서 떨어지는 아름다운 폭포가 여기저기에 있어 월남 제일의 관광지이며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도시이다. 이 도시 남쪽에는 월남 육군 사관학교가 있으며 그 맞은 편에는 달라트 지역을 방어하는 육군 사령부가 있다. 이 사령부의 사령관은 막강한 정치적인 배경을 갖고 있으며 장차 월남을 좌지우지할 그런 요직이라고 한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이곳 지역 사령관 두옹 레(Duong Le) 장군의 아들과 딸이 월남 중부에 있는 고도(古都), 후에(Hue)있는 외 할머니의 집으로 군대 짚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베트콩에 의해 칸송(Kansong)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로 납치 당하여 끌려갔다. 달라트 지역 사령관이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니 소문을 내었다가는 오히려 더 위험할 수가 있으며 만일에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는 크게 망신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지역사령관은 결국 퀴논에 있는 한국 맹호사단의 김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딸과 아들을 비밀리에 구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였다. 맹호 사단장은 흔쾌히 허락을 하였으며 용맹스러운 맹호 중대가 야간에 깐송을 습격하여 가까스레 레 지역사령관의 딸과 아들을 구출하여 퀴논에 있는 맹호 의무대로 후송이 되었다.- 구출된 레 장군의 딸은 금년, 21세의 달라트 대학의 여대생이었는데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베트콩에게 납치되어 깐송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무참하게 윤간(輪姦)을 당한 것은 물론 여기저기에 구타를 당하여 온몸에 멍이 들었으며 눈두덩이에는 핏자국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들은 금년, 8세가 되는 소년이었는데 역시 심하게 맞아 온몸에 멍이 들었으며 왼쪽 손목이 부러져 있었다. 다행히 소년은 캐스트를 하였으며 정신적으로도 회복이 되어 밥을 먹으며 말도 잘 하였는데 누나가 되는 그 여대생은 상황이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완전히 탈진이 되었으며 또 한 정신적으로 심한 수치심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자살을 하려고 하는 행동도 하였는데 수면제를 억지로 주사를 주어 진정 시키고 있었다. 베트콩들의 잔학상은 깐송 마을을 소탕하고 돌아 온 맹호 부대 군인들에 의해 밝혀졌다. '베트콩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월남 사람들을 잡아 팔과 다리를 자르기도 하였으며 무참하게 창으로 찔러 죽이기도 하였다고 말하였다.' 만일 맹호부대의 소탕전이 조금만 늦었어도 레 장군의 아들과 딸은 죽었을 것이라고 전해 주었다. 이런 것을 가르켜 '운명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행운이라고 하는지..' 장군의 아들과 딸은 맹호부대 의무실에서 입원을 하며 치료를 받은지 사흘이 되는 이른 아침에 장군의 아들과 딸은 앰뷰란스 편으로 달라트로 후송되게 되었다. 아침 군의관 회의가 끝날 무렵이었다. "강석호 중위! 귀관에게 특별 임무를 부여한다. 레 장군의 아들과 딸을 달라트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안전하게 후송하라! 그리고 몸 조심하라! 비록 앰뷰란스는 안전하다고는 하나 언제 어디에서 베트콩들이 튀어 나올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라고 병원장은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김종일 중위가 아닌 강석호 중위가 앰뷰란스를 타고 달라트로 가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고마웠다. 마침 울적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강석호 중위에게는 기분 전환도 되기에 마음에 약간의 흥분도 되었다. 앰뷰란스 앞자리에는 본부대 박중위가 권총을 차고 앉았으며 뒤편으로는 길게 양편으로 놓여진 자리 왼편 쪽에는 퀴.레라는 소년이 앉았으며 그 뒤편으로는 기관총을 어깨에 메고 뒷문을 뚫어지게 바라다보며 만일의 사태를 위해 경비를 하는 하사관과 그 맞은 편에는 강석호 중위와 가냘프고 몹시 아픈 듯이 지쳐 있는 월남 아가씨가 조용히 의자에 기댄채로 앉아 있었다. 퀴논의 맹호부대를 떠난 앰뷰란스는 야자수 나무 숲을 지나기도 하며 우거진 열대 나무 숲을 지났다. 간간히 잡초만이 우거진 황량한 도로를 지나기도 하였다. 앰뷰란스는 심하게 파진 길을 지날 때마다 털석 거리고 있었기에 의자에 비스듬히 누어 있던 월남 아가씨는 마침내 강석호 중위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는 듯 하였다. (-강석호 중위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잔다고 생각을 하였다. '여기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는 이 월남 아가씨가 바로 달라트 지역 사령관의 딸이라고 하니....그리고 달라트 대학의 여대생이라고 하니... 퀴논에 있는 술집에서 값싸게 웃음이나 파는 여자들하고는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을 하였는데...어쩌다가... 이 선녀같이 예쁜 아가씨가 베트콩에게 납치되어 무참하게 윤간을 당하였으며 온몸이 멍이 들도록 맞았다니.... ' 강석호 중위는 갑자기 분노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전쟁이라고는 하나 제 민족끼리 죽이고 강간을 하다니.... 강석호 중위의 눈에는 갑자기 핏 발이 선 베트콩들이 납치해 온 선량한 민간인들을 찢어 죽이는 모습이 떠오르더니 마침내, 몇 년전 플레이크에서 전사를 한 친구 한성민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죽은 한성민이 울고 있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는 친구인 강석호를 부르고 있는 듯 하였다. '아- 월남이란 나라도, 아니 한국이란 나라도 다를 바가 없구나. 나라는 반으로 갈라져 남과 북으로 대치하여 동족끼리 싸우고 있는 나라들...한심하구나. 한심해.' 그는 분단과 전쟁의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전쟁의 와중에서 그는 선녀같이 아름다운 여인이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는 '이 월남 아가씨'에 대한 동정심이 솟구치고 있었다. '선녀같은 아가씨! 아가씨가 나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들고 있다니....." 문득 그는 언제인가 감명 깊게 읽었던 알퐁스 도테의 단편 소설 (별)이 생각났다. 별- 별- 별- 그렇다 그 별이 지금 그의 어깨에서 잠들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프랑스 남방, 프로방스 지역, 리용이 가까운 어느 산 속에서 일어난 하룻밤의 얘기였다. 소년 목동이 깊은 산 속에서 양, 소염소등을 지키며 홀로 살고 있었다. 이 깊은 산 속에 이주에 한번씩 나귀등에 먹을 식료품과 일용품 실고 올라오는 주인집 하인을 만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람이 그리웠으며 저 아래 마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굼하였다. 어쩌다가 마을로 내려갔을 때 멀리서 주인집 아가씨를 볼 때마다 목동 소년은 선녀라고 생각을 하곤 하였었다. 언젠가 한번 선녀같은 주인집 아가씨를 만나보았으면 한이 없으련만.... 목동은 주인집 아가씨를 멀리 밤 하늘의 별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별들을 바라보곤 하였다. 북극성, 오리온 좌, 사자 좌, 그리고 우유같이 하얀 은하수를 바라보며 밤하늘에 들려 오는 풀벌레소리, 짐승의 소리들을 마치 아름다운 음악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주 하나님 지으신 세계, 그의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그리고 울려 퍼지는 뇌성...이 모든 것들이 목동의 친구였으며 그의 선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생겼다. 선녀와 같은 주인집 아가씨가 나귀를 몰고 산 위로 보급품을 갖고 올라왔다. "아니! 선녀같은 아가씨가...손수? 이렇게...." 목동은 감격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소 거만스러운 아가씨를 모시고 목장을 구경 시켰으며 마침내 그가 먹고 잠자는 목동의 숙소를 구경 시켜주었다. "아니? 이런대서 살았단 말이냐?" 아가씨는 뜻밖의 누추한 모습에 이렇게 물었다. "예. 여기에서 이렇게 누워 멀리 별을 바라다 봅니다. 그리고 밤에는 나무들의 소리와 집승들의 소리를 들으며 가끔 나타나는 맹수들을 불침번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멀리 저 하늘과 자연은 나를 가르쳐 줍니다." "그래? 그리고 그녀는 나귀를 몰고 다시 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아- 선녀 같은 아가씨는 가버렸구나..." 그리고 그는 선녀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그런데...그런데... 갑자기 내린 소낙비로 인해 산중에 있는 작은 냇물이 불었으며 계곡 물도 불어 그녀는 산 위로 다시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다시 내려가야 했다. 그녀는 불안하였다. 그리고 목동이 자는 그 침대에서 잠을 청하였으며 목동은 밖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바람 소리, 나무 소리, 짐승들의 소리, 맹수의 소리....결국 아가씨는무서워서 혼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목동이 불침번을 서고 있는 집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목동이 들려주는 별들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별- 별- 별들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자연은 너무나 순박하였으며 그 자연 속에서 자란 목동은 너무나 순결하였습니다. "별? 별이 그렇게도 아름답군요. 자연도..." 마침내 피로에 지친 아가씨는 목동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잠이 들었습니다. 목동은 생각하였습니다. '저 멀리 가장 먼 곳에 있던 저, 반짝이던 별이 길을 잃고 헤메다가 여기 산 속으로 내려와 목동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노라고.....) * "그래! 이 아가씨는 바로 저 남부 프랑스의 하늘에서 길을 잃었던 그 별이 여기 달라트로 가는 앰뷰란스에서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고 있노라...." 강석호 중위는 월남 아가씨가 마치 그 별이라고 생각을 하니 소중하였으며 잠에서 깨지 않도록 어깨를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베트콩의 잔인한 얼굴이 나타나더니, 아- 잔인하게도 선녀같은 아가씨에게 윤간을 하고 있었다. "예잇, 죽일 놈들!" 갑자기 강석호 중위는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웬일이십니까? 군의관님!" 기관총을 들고 있는 옆에 있던 보병이 물었다. 이 보병은 베트콩이 어느 곳에 출몰 한 것을 강중위가 발견하고 소리를 쳤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 아니요." 강석호 중위는 씁쓸하게 대답을 하였다. 문제는 지금까지 평화롭고 곤하게 강석호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던 월남 아가씨가 놀라 눈을 뜬 것이었다. "아니? 무슨 일이? 베트콩이?" 그녀는 공포에 떨며 말하였다. "아! 아가씨? 잠을 깨워서 미안합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만 제가 소리를 친 것은....죄송합니다. " "아- 그러세요. 다행이군요. 저는 베트콩이라도 출몰 한 줄 알고.... " "미안하군요. 저, 저는 군의관 강석호 중위라고 합니다. 이제 좀 안심이 되십니까?" "예. 군의관님. 저, 저는 '닌.레(Nihn Le)'라고 하구요. 이렇게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무슨 말씀을...저의 맹호부대가 한 일이었지요. 조금만 늦었어도 큰 일 날 번 하였었지요. " ".........." "닌이라고 하였지요? 아주 예쁘군요. 선녀처럼." "예? 예쁘다구요? 군의관님?" "그렇습니다. 아가씨!" "군의관님? 저도 한 때는 의사가 되고 싶었지요. 소아과 의사가.." "소아과를? 그런데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요?" "군의관님, 저는 달라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있지요. 시인이 되고 싶어서요." "시인이요?" "그런데, 군의관님? 이젠 저는, 저는......." 그녀는 말을 잊지 못하고 설움에 북밭쳐 울기 시작을 하였다. 그리고 강석호 중위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있었다. 앰뷰란스는 자갈길에서 심하게 흔들리자 순간 닌은 옆으로 쓸어 지려고 하였기에 강석호 중위는 그녀를 꼭 잡아 안아 주었다. 그녀는 베트콩에게 윤간을 당한 것으로 인해 심한 모욕과 치욕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녀는 그녀의 인생이 이젠 끝장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였다. "닌! 이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세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육체적인 모욕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정신적인 것 마저 잃어버리지 마세요. 닌! 나는 당신이 아주 예쁘고 순결한 처녀로..그리고 사랑스럽고 티가 없는 선녀로 보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깨끗하오. 그리고 순결하다오. 누가 뭐라고 해도." ".................."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당신이 순결하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니 마음놓고 편안하게 주무세요." "고마워요. " 닌은 눈물을 흘리면서대답을 하였다. 강중위가 한 말을 그녀는 어떻게 해석을 하고 들었는지는 모르나 마주 보고 있던 닌의 동생인 퀴가 누나를 대신하여 말하였다. "따이한 박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팔은 어떻게 되는 거지요?" "응! 퀴라고 하였지? 잘 생겼구나. 손목이 부러져 캐스트(기부스)를 하였는데 약 6주간, 고생 좀 하여야 겠구나." "6주간이나요? 6 주간....." 그는 다소 실망스러운 듯이 말하였다. * 오후 한 시경이나 되어 앰뷰런스는 달라트라는 도시에 도착을 하였는데 과연 아름다운 도시였다. 달라트! 달라트! 사이공과 퀴논의 중간쯤에 위치하며 다소 내륙으로 들어간 곳에 있어서 사방이 꽤 높은 산들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나무들이 우거졌기에 모든 것이 푸른색으로 생동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전쟁으로 인해 시달린 듯한 도시였다. 불란서 식으로 지은 아름다운 건물들에는 잡초가 여기저기에 민둥산처럼 흉물스러웠으며 파괴된 건물들을 통해 전쟁의 상처를 보는 듯하였다. 붉은 듯, 그러면서도 진한 주홍색의 지붕들과 하늘로 우뚝 솟은 팜트리들이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이국의 정취를 느끼게 하였다. 더 더욱 놀라운 것은 시내 한 복판에 산정호수와 같은 크기의 호수가 있었다. 맑은 물과 우거진 나무들로 둘러 쌓여 있는 '호 수안 후옹(Ho Xuan Huong, 春香湖)라는 호수가 닥터.강에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봄 향기라는 이름의 이 호수가 이토록 아름답게 도시의 중앙에 있다니, 더욱이 전쟁 중에도 이토록 맑은 물을 유지하고 있다니... 그리고 그 호수 주변에는 불란서 식의 건물들과 불교 사찰들이 여기저기에 있었으며 전쟁중인데도 유람선이 유유히 떠 다니고 있었다. "와! 월남! 그리고 달라트! 아름답구나, 아름다워!" 강석호 중위는 감탄을 하였다. 더 아름다운 것은 두옹 레 장군의 저택이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었으며 무장군인들이 기관총을 들고 주위를 지키고는 있었으나 집 주위에 핀 오색의 꽃들과 야자나무들이 어울려 마치 천국에 온 듯 하였다. 비록 월남의 장군이라고는 하나 두옹.레 장군도 역시 평범한 아버지였다. 무사히 살아서 돌아온 아들과 딸을 부등켜 안고는 울고 있었다. 한국에서 보던 부모들과 똑같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강석호 중위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성공회당의 수위로 일하는 아버지와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고맙소! 나는 달라트 지역사령관 레 준장이요. 내 자식들을 이렇게 안전하게 되려다 주었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각하, 저는 군의관 강석호 중위입니다. 저는 행정관 박 중위입니다." "자, 이리로 들어와 앉으시오. 간단히 차와 과일을 드시고... 저녁은 여기서 먹도록 하고. 그리고 푹 잠을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특별히 맹호 사단장, 김 소장님에게 보내는 선물이니 박중위가 꼭 전달하시고...과연 따이한 타이거! 대단하오!" 그날 오후와 저녁은 박중위, 강석호 중위, 운전병, 보병 하사 등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저녁이었다. 푸짐한 저녁과 술은 물론이고 월남 고위층이나 갖고 있는 불란서풍의 가구들과 특별히 '닌'의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닌.레!' 목욕을 하고 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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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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