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에 피 동백꽃은-소설 제 4부

2012.02.02 13:58

연규호 조회 수:676 추천:27

9장. 사랑의 계곡에서 며칠 후에 강중위에게 온 편지가 있었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순해로부터가 아닌 역시 달라트에 사는 '닌'에게서 온 것이었다. "순해야! 한 통만이라도 보내 주렴! 한 통만이라도...." 그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치며 달라트에서 온 닌의 편지를 읽었다. 분명히 닌은 강석호 중위를 사랑하는 심정이었다마는 강석호의 마음은 역시 흔들리지 않았다. * 10월이 되면서 통킹만에는 수많은 폭탄들이 투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맹호, 청룡부대의 용사들도 여기저기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죽어 한줌의 재가되어 쓸쓸히 한국으로 귀국을 하기도 하였다. -나트랑과 캄란으로 출장을 가서 하고 올 임무가 강석호 중위에게 생겼다.- "이것봐! 강중위? 나트랑에 가는 김에 실컨 술도 마시고 월남 꽁까이하고 질펀하게 놀다가 오라고! " 선배 군의관이 특별히 충고를 하여 주며 자기의 경험담을 들려 주었다. 그는 캄란을 거쳐 나트랑에 가서 예상밖으로 쉽게 임무를 완수하고 보니 꼬박 하루의 여유가 생겼기에 꽁까이를 만나기 보다 달라트로 가는 합승을 탔다. 다소 위험도 따른다고 말하는 것을 뿌리치고... 정글속을 지나기도 하며 고엽제, 오렌지에 의해 말라 버린 도로를 달려 달라트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한국사람, 강석호 중위를 보고 놀랜 것은 '닌'과 그녀의 가족들이었다. 역시 반가운 손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강중위는 또 한번 최대의 예우를 받았음은 물론 달라트의 명소들을 구경하는 기회도 갖었다.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챙이 넓고 큰 모자를 쓴 닌에게서 이국적인 정취를 받음은 물론 수많은 명소를 통해 월남의 한 단면을 느끼고 있었다. 쿠테타로 밀려난 고 딘 디엠 대통령의 동생, 고 딘 누가 살던 호화로운 저택을 보며 권력의 무상함과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고 이승만 대통령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도시 외곽에 위치한 월남 육군 사관학교의 건물이 아주 특이하였다. 옛날, 불란서 사람들이 지은 건물로 진한 주홍색의 지붕이 아주 은은하였다. 야자나무와 팜트리가 무성한 연못가에서 강중위와 닌은 돌을 던져 작은 파도를 만들어 보았다. 지나가던 생도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을 하여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닌이 특별히 데리고 간 계곡은 강중위의 일생에 결코 잊지 못할 그런 곳이었다. '아름다운 공원이요, 계곡이었는데 (사랑의 계곡)이라고 불리웠다.' (사랑의 계곡? The Valley of Love?) 달라트의 동북부의 산등성이에 있어, 그리 높지 않은 곳이었는데 그 입구는 우거진 정글로 쌓여 있어 마치 인조로 만든 동굴을 들어가는 듯 하였다. 바나나, 용설란 그리고 상록수 나무도 그리고 코코아 나무도 있었다. 가끔은 원숭이도 있는지 키득키득 거리는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공원 입구에 세워진 파고다와 불상은 사람들의 장래와 운명을 점쳐 주는 듯 하였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크고 작은 선물가계와 음식점들이 있었다.전쟁의 공포가 이곳에서는 전혀 없는 듯하였다. 아니 잊어버리고 있는 듯 하였다. 자세히 보니 입구에 있는 표지판에는 (사랑의 계곡, 탁 보이Thac Voi, 大象瀑布. 탁 프렌 Thac Prenn, 賓寧瀑布)입구 라고 길게 쓰여 있었다. (사랑의 계곡은 먼 옛날,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들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며 놀다가 간 곳입니다. 그리고 이 계곡에는 아름다운 폭포가 세 개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계곡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불자(佛者)의 동산인 룸비니입니다.) 과연 이곳에 있는 세 개의 폭포는 멀리 높은 산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모여 만들어진 호 수오이 방(Ho Suoi Vang ,黃金泉湖)호수에서 우람차게 아래로 쏫아 내려지고 있었다. "룸비니 동산이라구요? 닌?" 강중위는 닌에게 물었다. "예, 부처님이 계시는 동산인데, 저 멀리 인도인지 네팔에 있다고 하구요." "아! 석가모니의 낙원 동산을 말하는 군요? 기독교 신자들은 에덴 동산이라고 부르지요." "그래요. 룸비니와 에덴동산...." 마침내 닌과 강석호 중위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사랑의 계곡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열대 지방의 정글에서 먼 태고의 순수한 숨소리를 듣고 있는 듯 하였다. 멀리에서 본 폭포들이 눈에 띄였다. 그리고 그 폭포들 주위에는 무지개들이 선명하였으며 마치 둘의 미래를 약속이나 해주는 듯 하였다. '와! 이곳이 어디란 말인가? 여기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포성이 울리고 때로는 잔인한 베트콩들이 출몰도 한다는데.......과연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계곡이 전쟁터의 한 부분이란 말인가? ' 강중위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달라트, 그리고 사랑의 계곡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아무리 금강산이 아름답다고 한들, 여기 이 사랑의 계곡만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폭포수를 향해 손을 잡고 걸으며 강석호 중위는 닌에게 말하였다. "닌? 하노이를 가로지르는 강을 홍강(洪江, Red River)이라고 한다지요? 그리고 그곳을 동양의 빠리라고 부르며, 여기 달라트를 작은 빠리 (Little Paris)라고 하구요. 미국의 어디인지...미네소타인지 텍사스인지에 가면 홍강의 계곡(洪江의 溪谷, Red River valley)이 있다고 하던군요. 그리고 그 계곡에서 목욕을 하던 소녀와 그를 사랑하던 카우보이가 있다는구요." "그래요? 참 멋있는데요? 그림같군요. 목욕하는 소녀와 그 소녀를 훔쳐보는 카우보이? 꿈과 같군요. 강중위님? 우리도 언젠가는 그곳, 미국에서 만날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곳, 붉은 강의 계곡(Red River Valley)에 한번 같이 가요? 예? 나는 그곳에서 목욕을 하고... 강 중위님은 나를 훔쳐보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강석호 중위는 신음하듯이 대답을 하였다. "강 중위님? 한국이란 나라도 아름답다고 하던데요? 그렇죠?" "물론이지요. 한국은 아주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사시사철이 있어, 봄에는 새싻이 돋고 여름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가을에는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울긋불긋한 색깔을 보여 주고요. 겨울이 되면 하얀 눈이 오지요." "눈이라고요? 한 번 보고 싶군요. 그리고 단풍도... 강중위님? 보고 싶군요. 단풍과 눈을...이곳 월남에서는 볼 수가 없으니까요. 늘 얘기로만 들었으니까요." "그렇죠? 닌. 언젠가 꼭 보여 드리겠습니다. 꼭... 한국의 아름다운 산천과 그 눈을...." "고맙군요. 강중위님!" 둘은 자연스레 팔장을 끼고 걸었다. 얼마만큼, 걸어 가다보니 길은 셋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뿐인가 신기하게도 이곳에는 장사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전쟁의 와중에서도 인도에서 온 장사꾼들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궁굼하였다. 바나나를 파는 장사꾼들과 점을 치는 점쟁이들도 있었다. "강중위님? 여기에서 길이 셋으로 갈라지게 되지요. 이중에서 가운데 길로 곧장 가면 폭포수 앞으로 가게되나 다른 두 길은 사원(寺院)으로 그리고 공원으로 가게 되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느 길로 가렵니까? 닌?" "물론 우리는 가운데 길로 가 폭포수 앞으로 가렵니다. 강중위님! 그러니 여기에서 손을 놓고 길을 잃으면 우리는 영영 못 만나게 된답니다. 그러니 이 손을 꼭 잡으세요. 다른 길로 가면 안된다구요. 그러니 언쩐담...여기서 우리는 헤여지게 되겠지요. 강중위님은 퀴논으로 해서 한국으로 가게 되고...나는 여기에 이렇게 홀로 남게 되구요. 강중위님? 비록 한국으로 가시더라도 마음을 이곳에 놓고 가시면 나는 어쩌지요?" "뭐라고 했어요? 닌!" 순강 강석호 중위는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가시더라도, 마음일랑 제발 이곳에 남겨 놓지 말라구요!" -가더라도 마음일랑 놓고 가지 말라고 하는 닌의 말을 강석호중위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닌은 나를 사랑하는 구나. 진정으로...'- 그들은 드디어 폭포수 아래에 도착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서 우람한 폭포수를 바라다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고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대상폭포(大象瀑布)라고 쓰여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작아 보였으나 가까이에서 보니 폭포수의 우렁찬 물소리 때문에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이 들리지 않았다. 신혼 부부들은 그들의 장래를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진지해 보였다. "강중위님? 보세요! 여기에서 두 손을 모아 부처님께 소원을 빌어 보세요. 꼭 들어주실 겁니다. 이렇게요! 강중위님." 닌은 두 손을 모아 부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눈을 뜨고 강중위를 바라다보았다. (아- 마치 청주에 있는 그 성공회당에서 어린 소녀 한순해가 두손을 모아 예수님에게 기도를 하며 말하던 그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하였기에 강석호 중위는 그의 눈을 의심하였다. '어쩌면 이렇게도 비슷하단 말인가? 한순해와....') "무슨 기도를 하였나요?" 강중위는 닌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예, 부처님에게 강중위님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지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나도 두 손 모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강석호 중위도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무슨 기도를 드렸나요? " "예, 하나님께, 당신의 행복과 건강을 빌었지요." "그래요? 꼭 같네요. 부처님과 하나님에게 똑 같은 기도를 드렸군요." (그래, 똑 같은 기도를...마치 성공회당에서 한 순해와 같이 드렸던 그 똑 같은 기도를...) * 아름다운 사랑의 계곡을 걸어 나온 그들은 닌의 안내로 달라트 시내에 있는 대 성당에 가서 잠시 들려 성모 마리아상 아래에 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붉은 지붕과 높은 뾰쪽 탑을 가진 대 성당은 춘향 호수가 멀지 않은 시내에 있었다. 가끔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은은하였다. "카토릭을 믿으세요?" 닌은 뜻밖의 질문을 하였다. "카도릭이 아니고 개신교에 다니지요." "개신교에? 저는 강중위님이 카토릭 신자라고 생각을 하였지요. 왜냐하면 여기 월남에는 개신교가 거의 없으니까요. 저는 불교, 그렇지만 알고 보면 다 같은 얘기로군요. 천국에 가고, 극락에 가고...그렇죠?" "그렇군, 닌!" "강중위님? 언젠가, 제가 물었지요? 저같이 더럽혀 진 사람도 남을 사랑할 수가 있을 까요? 아니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수가 있을까요? 월남 사람들은 처녀가 한번 욕을 당하면 마치 더러운 곳에 가서 몸을 버린 것으로 생각하며 경멸하고 저주를 하기에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결혼을 하기도 어렵지요. 그런데 강중위님같은 분이 나를 순결하다고 하였지요. 그게 진심이세요?" "물론이지, 닌." 강석호 중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였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오늘 가셔야 하나요? 퀴논으로?" "그래야 되겠지요." "안돼요! 밤중에 가는 택시는 위험합니다. 어머니가 허락을 하셨습니다. 저의 집에서 하루를 주무시고 내일 아침 일찍 군 짚차를 타고 가시라고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잘 됐네요. 그런데 강중위님의 가족에 대해 물어봐도 되나요?" " 저의 가족에 대해서? 아! 보잘 것 없습니다. 원래 저는 북한(North Korea)에서 살다가 한국 전쟁중에 남한으로 피난을 나왔지요. 청주라는 곳에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지요. 어머니는 일찍이...내가 어렸을 때 돌아 가셨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성공회당의 수위로 일을 하였기에 성공회당의 신부님이 나를 도와주어서 가까스레 의사가 되어 이렇게 군의관으로 월남에 왔지요. 왜 왔느냐고요? 3년여 전에 플레이크에서 전사한 친구 성민의 원한을 갚아 주려고 자원하여 왔답니다." "어머나! 안됐군요. 친구가 여기서 죽었어요? 그럼 결혼도 안하고?" "예, 육군사관학교를 갓 나와 소위로 있다가 이곳 프레이크에로 와서...그만 베트콩 수색중에 전사를 하였답니다." "프레이크에서요? 그러면 애인은 있었나요?" "물론이죠. 한국에. 그런데 그 애인도 죽었습니다." "죽었어요? 애인도?" 닌은 마치 한성민의 애인이 그가 전사한 후 슬픔에 겨워 자살이라도 했다고 생각을 하였는지 갑자기 눈물 어린 목소리로 계속하여 말하였다. "강중위님? 월남이란 나라는 참으로 나쁜 나라이군요. 괜히 젊은이들을 이렇게 무참하게 죽이고 있잖아요. 권력자들의 영화를 위해서 말입니다." "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요. 정의와 자유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젊은이들의 피가 요구 될 때도 있으니까요. 월남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말입니다." "고맙군요. 강중위님? 고국에 애인이라도 있나요? 아- 미안해라. 자꾸 물어서..." (순간 강석호의 머리 속에는 갈등이 생겼다.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여야할지...분명히 애인은 있는데...사랑하는 사람은 있으나 그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결혼까지 약속을 하였으니... 한순해 그녀는 더 이상의 애인은 아니었다. 김종일과 미래를 약속한 사이이니... 그러나 강석호는 그녀에게 약속을 하였었다.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같이..기다리며 사랑하겠다고 마음 속으로 맹세를 하였는데...) "닌? 애인이 있느냐고요? 예, 있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애인이...." 뜻밖이었다. 강석호 중위는 있다고대답을 하였다. "그래요? 있군요! 예쁜가요?" 그녀는 몹시 실망한 듯이 목소리가 적어 졌다. "예. 닌, 당신처럼...." "나 처럼이라고요?" "그래요. 닌. 당신처럼...." "............" 마침내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날 저녁은 레. 사령관 부인의 배려로 아름다운 달라트의 저택에서 하루를 머무르게 되었는데 역시 동생 퀴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퀴는 역시 당돌하게 강중위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나, 강중위님이 내 아저씨라면 좋겠다. 아저씨라고 부를까요?" "아저씨라고? 그러면 안되겠는데...왜냐고? 누나하고 내가 친구가 되었으니까, 그래, 형님이라고 불러야지. 형님이라고..." "형님? 그래, 형님...." 너무나도 유쾌한 저녁이었다. 달라트의 밤은 역시 낮에 본 그 아름다운 경치를 모두 다 삼켜 버렸는지 고요한 적막이요 암흙이었다. 다음날 아침, 역시 레 장군이 주선해 준 짚차를 타고 퀴논에 있는 맹호 사단으로 돌아 왔지만 그의 귓속에서는 닌의 말이 울리고 있었다. (나처럼 더럽혀 진 여자도 사랑을 받을 수가 있나요? 고국에 애인이 있으세요? 나를 사랑해 줄 수가 있나요? 녜?) 강중위는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더럽혀 졌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물리적으로 당한 성폭행이 더럽혀 졌다는 말이라면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육체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순결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결코 더럽혀 진 여자가 아니기에 그녀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말해 주는 것이 바로 용서요 관용이라고 생각을 한다. 창조주가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기 위하여 그의 외 아들인 예수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 인간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100% 이해가 되며 믿어지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더럽혀 진 여자라고 보겠지만 용서의 눈으로 바라다 볼 때, 그녀는 순수하며 아름다운 여자였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순결한 여자야! 사랑의 계곡에서 본 그녀는 천사와 같았어. 그리고 폭포에서 떨어지는 이슬과도 같이 순결한 여자였어.) 문득 그는 그녀가 그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강중위님? 이 길에서 손을 놓고 다른 길로 가면 우리는 영원히 못 만난답니다. 그러니 내 손을 꼭 잡으세요. 꼭 잡으세요. 언젠가 미국에 있다는 '붉은 강의 계곡(Red River Valley)에서 만나요. 그리고 부탁입니다. 한국을 보여 주세요. 꼭. 그리고 강 중위님을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 닌! 한국을 꼭 보여 주지요. 그리고 미국에 있다는 그 붉은 계곡에서 만납시다. 언젠가는...." 강석호 중위는 대답을 하였다. * 달라트를 방문하고 돌아온 강석호 중위는 마침내 닌과의 관계를 김종일 중위에게 고백하였으며 김종일 중위도 닌과 강석호의 연인관계를 인정해 주게 되었다. "석호야! 정말 잘했다. 나는 너에게 말 못할 죄를 지었는데....닌과 같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다니, 잘 되었어. 축하해!" 뿐만이 아니라 한순해가 종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닌과 석호'와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젠 완전히 한순해에 대한 미련은 버려야 했으나 강석호 중위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한순해의 모습이 새겨 있었다. * 달라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퀴 호아 나병 환자촌(Qui Hoa 癩病 患者村)이 있는데 그곳에는 불란서 수녀들과 월남 수녀들이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기에 베트콩들도 이곳만큼은 결코 공격을 하지 않는 성역(聖域)이었다. 우거진 야자나무 숲길과 팜트리들이 이채로운데 중앙에 우뚝 솟은 십자가와 거기에 매달린 예수님을 보노라면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해도 마음이 평안해 지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곳이라고 하였다. 달라트 대학에 다니는 닌은 사회봉사로 이곳을 자주 찾아 왔기에 오늘도 강석호 중위를 만나 자랑스럽게 찾아 왔다. 닌은 강중위의 팔에 매달리기도 하였으며 팔장을 끼기도 하였다. 강석호 중위는 너무나 감격하였다. 왜냐하면 월남에 오기 전에 그녀와 청량리 로타리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강석호는 과감하게 순해의 손목을 잡았었다. 그러나 그녀는 강석호의 손을 뿌리치면서 말하였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오빠! 석호 오빠? 나, 그냥 걷고 싶어."라고 말하였을 때, 강석호는 땅이 꺼지는 것 같았으며 모욕감을 느꼈었다. 아! 순해야! 네가 나를 이렇게 무참하게 뿌리치다니....) 그런데 여기 월남의 아가씨는 자진해서 강석호의 손을 잡았으며 팔장을 끼기도 하였으니까.... 마침 지나가던 수녀가 둘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진해서 둘을 위해 사진을 찍어 주었으며 같이 찍기도 하였다. 그뿐인가 지나가던 다른 두 명의 수녀들까지도 부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저, 수녀님? 기도실은 어디에 있나요?" "기도실이요? 아, 천주님게 기도를 하시려구요? 저 쪽으로 가시면 작은 건물이 나오지요. 아마 기도실 문은 열려 있을 겝니다." 강중위는 닌의 손을 잡고 작은 기도실로 들어갔다. 기도실은 아담하며 아늑하였다. 그리고 마치 청주에 있는 그 성공회당의 기도실과 너무나 비슷하여 마치 청주에 와 있다고 착각을 할 정도였으며 손을 잡은 이 월남 여인이 마치 한순해라고 생각을 하였다. 문득 한순해와 같이 그곳에서 하였던 말들이 생각났다. ("석호 오빠? 여기 기도실에서 예수님께 기도를 하면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신다고 했어. 석호 오빠? 자, 여기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하자. 응?") "강중위님? 저, 제 손을 잡고 기도를 할까요? 기도를..." 문득 월남 여인, 닌이 강석호 중위에게 말하였다. "아! 예, 그럽시다." 강중위는 닌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았을 때, 기도실에 있는 마리아상이 이 둘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에게 죄 지은자들을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강석호 중위는 주 기도문과 그리고 월남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강중위님? 하늘이라면, 어느 하늘을 말하나요?" "아_ 월남의 하늘. 그리고 한국의하늘, 그리고 퀴논과 달라트의 하늘을 말하지요." "달라트의 하늘이라구요? 그리고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를 해 달라구요? 그러면, 저 베트콩들도?" "그렇소! 닌. 베트콩들까지도..." "예? 아, 그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군요?" "그렇습니다. 기독교의...그리고 히포크라테스도 그렇게 의사들에게 가르쳤지요. 남을 사랑하며 국적과 종교를 떠나 어느 환자라고 해도 돌보라고요." "강중위님? 한국의 의과대학도 사이공 의과대학과 같겠군요?" "물론이지요. 가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강중위님은 월남의 전쟁터에 와서 불쌍한 사람들까지도 고쳐 주고 있군요. 강중위이님? 나도 대민 봉사를 하러 여기 퀴 호아의 나환자 촌에 여러 차례왔지요만...사실 나도 어려서는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지요. 그런데 몸이 너무 약하다보니...." 강석호 중위는 말없이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나는 너무 부잣집에 그리고 권력층에서 태어났기에 이런 가난한 사회를 모르고 살아 왔지요.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는데, 강중위님은 어머니가 일찍 죽고 가난하게 살아 왔지만 의사가 되어 남의 나라에 와서 불쌍한 환자들을 돌보다니....강중위님? 존경스럽군요."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강석호 중위의 가슴에 안기었다. 그뿐인가 그녀는 울고 있었다. 강석호 중위는 가볍게 그녀의 얼굴과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천주교의 기도실을 둘러 싸고 있는 많은 성인들, 베드로, 스테반, 바오로, 그리고 성모 마리아가 이 둘을 바라다 보고 있었으며 증인들이었다.그리고 월남과 한국의 하늘에 계신 천주님도..... "강중위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를 요? 나를? " "예. 강중위님을?" "나도 그렇소." 마침내 강석호 중위는 대답을 하였다. 한순해도 사랑하지만 닌 당신도 사랑한다는 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 동킹만에 수많은 폭탄이 떨어졌으나 하룽베이에는 폭탄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월남전쟁은 결코 잔인한 전쟁만은 아니라고들 말하였다. 그리고 1969년이 되었으며 월남전쟁은 점점 더 오리무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달라트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닌'의 장래는 너무나도 뚜렸하였다. 졸업과 동시에 그녀의 아버지는 좋은 남자에게 결혼을 시키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월남의 3월은 아열대의 더위를 느끼게 하였다. "닌? 졸업을 축하한다. 이젠 좋은사람을 만나 시집을 가야겠지? 그렇지? 그래서 아버지가 아주 좋은 남편 감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이공에 사는 트랜 상원 의원의 아들인데 육군 사관학교를 나온 장교야. 아버지의 후배가 되고...아주 남자답고 앞날이 유망하단다. 너보다 6살이 더 많으며 지금은 사이공 경비 사령부에서 정보 일을 담당하고 있단다. 어떠냐?" "......................." "아니? 왜 대답이 없는거야? 너 혹시 달라트 대학에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거냐?" "........................" "어허! 아직도 대답이 없구나! 말을 좀 해 보려무나, 아니면 네가 승낙하는 것으로 알고 트랜 상원의원 댁과 접촉을 하겠다. 너는 나의 외동딸이야! 네가 누구인데...알겠니?" "예." 닌은 마지못해 대답을 하였다. "암, 그래야지." 아버지 레 장군은 흡족하였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월남의 정치적인 강자인 트랜 상원의원댁과 사돈이 된다면 레 장군의 앞날도 평탄하였기 때문이었다. 트랜의원과 레장군은 불교도를 대표하는 정치가와 군인으로 월남의 정가를 뒤 흔들 수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닌은 달랐다. (베트콩에게 무참하게 윤간을 당한 몸을 순결하다고 인정해 준 강석호 중위를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하였기에 그와 결혼을 하고 싶었으나 그는 한국 사람이니 어디까지나 국경을 넘는 풋사랑일 뿐이었다. 더구나 아버지에게 말을 한다고 해도 들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닌은 칸 트랜(Khan Tran)대위와 머지 않아 약혼을 하게 되었다. 이미 부모들 사이에는 결혼의 약속도 되었기에 노골적으로 사돈이 되고 말았다. 이런 사실을 닌은 편지를 통해 퀴논의 강석호 중위에게 알려 주었을 때, 강석호 중위는 또 한번의 슬픔을 맛보게 되었으며 슬피 울고 말았다. 마치 일년 전, 월남에 오기 전에 청량리 로타리에 있는 통닭집에서 한순해로부터 받은 절교의 선언을 또 다시 닌으로부터 듣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석호야! 맹호사단의 군의관이 바보처럼 울다니...울다니..." 친구 김종일 중위가 이 사실을 알고는 한 첫 말이었다. "석호야? 어쨋거나 미안하구나. 이번에도 실연(失戀)을 하였구나. 나는 너에게 늘 미안하게 생각을 하며 이번에는 참 좋은 아가씨를 만났구나라고 생각을 하며 위로를 하였는데....아무래도 석호야? 너는 여자 복이 없는거야!" 종일은 진지하게 위로를 하였다. "고맙다. 종일아!" "에라! 석호야? 나가자! 장교 클럽에 가서 맥주나 한잔하자꾸나. 어때? 가지!" 김종일은 석호의 팔을 잡아 끌었다. "아니야! 종일아? 그녀는 단지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거야. 그녀의 마음속에는 내가,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그녀가 존재하고 있을 뿐이야. 나 비록 홀로 외로워 마음이 무너진다해도 나의 마음에는 외로움 따위는 존재 하지 않아. 단지 육체적으로 힘든 것 뿐이야. 마치 네가 결혼하려고 하는 순해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도 내 마음에 존재하고 있을 뿐..." "..............." 종일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맙다. 종일아! 위로를 해 주어서...." "석호야 너는 정말로 닌과 순해를 사랑하고 있구나. 부럽구나." * 1969년 4월 어느날이었다. 강석호 중위는 달라트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숙명적으로 강석호 중위는 칸 트랜 월남 대위를 만나 소개를 받았다. 트랜 대위는 당당한 월남의 귀공자요, 장래가 촉망되는 권력의 핵심부위에서 크게 성장 할 그런 사나이였다. 그러기에 강석호 중위는 다소 위축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닌의 남편 감으로 아주 괜찮다고 생각을 하니 그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날 저녁은 할 수 없이 달라트 시내에 있는 '소피 호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퀴논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둑한 저녁이 되었다. 뜻밖이었다. 예고도 없이 닌이 강석호 중위를 찾아 와 서두르듯이 물었다. "강중위님? 나, 트랜 대위하고 결혼을 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나요?" "물론이지!" "그렇다면, 강중위님? 날 좀 꼭 포옹해 주세요. 예?" 강중위는 눈을 꼭 감고 서있는 닌을 꼭 안아 주었다. 따슷하였으며 가슴은 가쁜 숨으로 인해 벌렁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말하였다. "강중위님?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해 주세요. 비록 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해도...." "물론이지요." 그녀는 황급히 집으로 되돌아 갔다. 달라트의 집에는 그녀의 약혼자인 트랜 대위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강석호 중위는 달라트를 떠나 퀴논으로 돌아왔으며 다음, 다음날, 트랜 대위와 닌은 달라트의 저택에서 상원의원을 비롯하여 고위 관리들 그리고 장성들이 보는 앞에서 약혼을 하였다. 약혼이란 결혼을 전재하였으니 이젠 강석호 중위는 마음대로 그녀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와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닌은 이제부터는 트랜대위에게 속하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단지, '약혼을 축하합니다. 강석호 중위가.'라는 인사가 고작이었다. * 맹호부대가 아무리 용맹스럽다고 해도 월남 전쟁을 승리로 바꿔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1969년 5월이 되었다. 이제 2개월만 더 월남에서 근무를 하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며, 김종일 중위는 그가 사랑하고 약속했던 한 순해와 결혼을 하리라는 꿈같은 희망이 있었다. 뜻 박의 편지가 한국에서 날라 왔다. 물론 김종일 중위 앞으로 온 편지였는데, 보낸 사람은 김종일의 부모님에게서 였는데 아주 뜻 박의 편지였다. (청주 성공회당의 주임 신부이며 한순해의 할아버지인 한 신부님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라는 편지였다. 더 더욱 불길한 것은 할아버지를 잃은 한순해는 갑자기 말을 하지 않으며 우울해 지더니 마침내는 맥. 나이트 신부 가정이 그녀를 돌보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놀란 것은 김종일 중위 뿐만, 아니라, 강석호 중위도 마찬가지였다. '아- 한 신부님이 돌아가다니...그가 누구인데? 나의 아버지에게 직장을 주었으며, 나의 등록금도 도와주었으며...나의 은인이었는데... 더구나 나의 사랑하는 순해, 그리고 종일과 결혼을 약속한 순해의 할아버지인데..." 김종일과 강석호는 신부님의 장례식에 참석 못한 것이 너무나 한스러웠다. 더 더욱 한스러운 것은 이제 2개월 후인 7월 31일에는 월남에서의 복무를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사이를 못 기다리시다니.... 그뿐인가 한국에 있는 순해를 생각해 보니 더 더욱 암담하였다. (겨우 4살되던 그해 순해는 부모가 모두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하여 고아가 되었으며 할머니마저 다음해에 지병으로 죽었으며 그래도 의지하며 살아 온 오빠 한성민이 불과 23세의 젊은나이로 월남에서 전사를 한후, 그녀는 너무나 종일과 석호를 의지하며 살아왔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두 오빠가 떠 나버리면 누구를 의지하느냐고 하며 울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김종일을 결혼의 상대로 결정한 후 그가 월남전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려가 그녀를 위로하며 옆에 같이 있어 주어야 할 김종일은 더 더욱 마음이 아펐는지 며칠을 두고 말을 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혼자 울기도 하였을 때, 강석호 중위는 그를 위로 하기에 바뻤다. "종일아! 조금만 더 참거라. 곧 귀국을 하면 순해를 만나 마음'�위로하거라. 그리고 결혼을 하여 잘 살거라." "그래! 석호야. 고맙다. 고마워!" * 그리고 지루하고 원망스러운 1969년6월이 되었다. 강석호 중위에게는 처음 받아 본 편지이지만 어쨋든 강석호와 김종일에게 동시에 한국에서 온 편지가 있었다. 너무나 뜻박이었다. 보낸 사람은 마크. 맥.나이트(Mark McKnight)였다. "마크 맥.나이트?" 그렇다. 그가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편지: ( "강석호 그리고 김종일 중위님들 귀하. 저 마크라면 기억에 나시겠지요? 성공회당에서 가끔 같이 놀았던 미국 사람. 당신들은 너무 하였습니다. 가냘프고 외로운 여인, 순해씨를 이렇게 한국에 내버려 두고 월남으로 가다니요. 한 신부님이 돌아가신 후, 그녀는 정신적인 쇼크로 인해 병원에 입월 하였지요. 그리고 겨우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쌍한 그녀는 이제 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7월 20일 토요일, 청주 성공회당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하해 주세요. 당신들이 버린 순해를 나는 평생 책임지고 돌보아 주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결혼 후 우리는 신혼 여행으로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갑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칼리포니아이지만 아무래도 뉴욕에 가서 몇 년간 살며 더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7월 25일, 우리는 한국을 떠나게 됩니다. 듣기로는 8월초에 귀국한다고 하니 유감스럽게도 못 만나보게 되었군요. 두 분의 축하를 받아야 하는데...어쨋든 축하 해 주세요. 마크. 맥. 나이트. 드림." ) "뭐라고? 뭐라고! 순해와 마크가 결혼을 한다고?" 강석호 중위는 물론 김종일 중위는 울부짖으며 소리를 쳤다. "아니? 나와 결혼을 하기로 하였는데..무슨 소리야!" 김종일은 울부짖었다. 퀴논의 하늘이 너무나 캄캄하다고 느껴졌으며 멀리서 들리는 포성 소리도 이젠 김종일의 귀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 하였다. "축하를 해 달라고? " 말도 안되었다. 배신을 당한 입장에 축하라니... "순해? 네가 나를 배신해? 멀리 전쟁터에서 목숨을 지탱하기도 힘든 나를 , 이렇게 배신하다니..." 마침내, 김종일은 친구 강석호를 붙들고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다. 밤새 클럽에 나가 맥주. 위스키등 평소엔 입에 대보지도 않았던 양주를 밤새 마시며 김종일은 울고 울었다. "나를 배신하다니..나를..." 그러나 그들이 이곳 월남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7월 31일이 되어 한국으로 귀국하는 일 밖에는 없었다. 강석호 오빠를 배신히였던 순해가 이번에는 김종일 오빠를 배신하다니...... 이번에는 강석호가 김종일을 위로하여야 하게 되었다..... 인생의 아이로니였다. * 귀국 날 만을 기다리는 강석호에게 마침내 7월이 돌아 왔다. 이 달만 무사히 마치고 나면 그는 한국으로 되 돌아 가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1년 3개월이란 세월이 너무나 길고 허망하였다. (사랑하는 순해마저 떠나 버렸는가 하면 월남의 여인 닌마저 약혼을 하였고...그리고 8월 1일에는 결혼을 한다고 하니...아무 것도 그에게는 남는 것이 없었다.) 뜻 박의 편지가 강석호 중위 앞으로 배달 되었다. 달라트에 사는 닌으로 부터였다. 편지: ("사랑하는 석호씨! 급히 쓰는 편지이니 용서 해 주세요. 8월1일 트랜 대위와 결혼을 하여 그곳 시집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부탁입니다. 7월20일 토요일 저녁에 전에 머물었던 달라트의 소피 호텔에서 저를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고 귀국을 하세요. 꼭. 7월 20일 토요일날 저녁에. 달라트 소피 호텔에서요! 닌 드림.") "7월 20일, 토요일날? 왜 하필이면! 순해가 결혼을 한다고 하는 그날..." * 7월 20일은 천둥도 치며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친구 김종일의 도움으로 그는 토요일과 일요일의 외박을 허락을 받고 퀴논에서 달라트로 가고 있었다. 가는 길은 몹시도 험하며 위험하였지만 그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닌을 포기 할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달라트와 그곳에서 보았던 사랑의 계곡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허전하였다. 소피 호텔에는 예정보다 훨씬 늦은 저녁에 도착을 하였는데 역시 닌이 먼저 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준비하여 둔 포도주, 생선, 그리고 고기를 갖춘 저녁을 같이 먹으며 귀국과 결혼을 서로 축하 해 주고 있었으나 마음은 무거웠다. 그리고 닌은 쫒기듯이 이별을 고하였다. "안녕히 가세요. 이제 얼굴을 보았으니 내 평생, 강중위님을 잊지 않고 간직하겠어요." 그녀는 울면서 사라졌다. 너무나 허망하였다. 이렇게 이별을 할 바에야 오지 말 것을...아무런 사랑의 징표도 교환을 못하고... '어쨋든 아름다운 처녀였어. 그리고 사랑스러운 연인이었어. 부디 행복하게 살아다오. 언젠가 월남에 오면 다시 만나리라.' 강석호 중위는 소피 호텔에서 와인을 마시며 조용히 밤을 보내고 있었다. 달라트의 밤 하늘은 캄캄하였으며 멀리서 간간히 들리는 총성 소리와 천둥 소리가 강석호 중위를 애타게 하였다. (달라트! 그리고 닌!)은 그에게 있어서는 잊지 못할 이름이었다. 마침내 그는 모든 것을 잊고 단지 추억이라고 하는 앨범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침대에 누어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한 밤중이었다. 갑자기 문밖에서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중위는 깜짝 놀랐다. 혹시 베트콩이라도 아닐까? 그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노크 소리는 계속되었다. 가까스레 문을 열고 보니, '아!' 닌이었다. "아니! 닌? 웬일이야? 이렇게 비가 오는데..." 강석호 중위는 비에 흠뻑 젖어 떨고 있는 닌을 방으로 맞아 들였다. "강중위님? 아니, 석호씨? 나, 당신을 못 잊을 것 같아. 당신을 보내고 어떻게 살아간담? 석호 씨? 당신은 내게 말하였었지요. 나는 순결한 여자라고요..." "그랬었지. 닌!" "석호씨? 나를 이 밤에 안아 주세요. 버려진 여자가 아닌, 그 순결을 당신에게 드리고 싶어요. 당신만이 나의 순결을 아시잖아요. 그렇죠?" "그래. 나는 알아. 당신의 순결을..그러나, 안돼, 당신의 순결은 트랜 대위의 것이요. 내가 아니고..." "아니에요. 석호씨! 당신이에요. 당신은 내 평생에 처음 만난 남자입니다." "......................" "어서요! 어서!" 그녀는 강석호 중위를 포옹하며 울고 있었다. "그래, 그래. 닌. 나도 당신을 사랑하오. 당신을..." 소피 호텔에서의 밤은 비록 짧았지만 이 일로 인해 강석호 중위의 가슴에는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닌의 순결이 있었다. 둘 만이 알고 고히 간직한 그 순결의 비밀이 있었다. 평생을 기다리겠노라고 맹세한 순결과 사랑의 약속이 있었다. 사랑의 계곡을 손잡고 같이 걸어 가겠노라고 한 약속이 있었다. (천년(千年)을 하루(一日)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겠노라고 한 약속이 있었기에 강석호 중위는 평생을 기다리며 애태워야 하는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10장 월남에서 귀국한 후.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1969년 7월 31일, 강석호 그리고 김종일 중위를 태운 수송선은 퀴논을 떠나 남지나 바다를 북상하여 부산 항에 도착하였다. 8월 3일이었다! 일년 사개월 동안 월남에서 보낸 세월이 마치 전 인생을 보낸 듯 하였다. 월남에서 귀국만 하면 엄청난 희망들이 단번에 이루어 질 거라고 생각을 하였건만 막상 귀국을 해 보니 그들을 반겨준 사람이라고는 아버지 어머니뿐이었다. 평생을 기다리며 살겠노라고 맹세하였던 한순해는 마크라는 미국 사람과 결혼을 한 후 도망을 치듯이 불과 열흘 전에 미국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과연 월남에 가서 무엇을 하였던가? 친구 한성민의 원한을 갚으려고 하였는데, 그래? 그 원한을 갚았나? 아니었다. 아무 것도 갚은 것은 없었다. 복수? 무슨 복수를 하였나? 아무런 복수도 한 것이 없었다. 결국 이 세상에 복수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 복수라는 것은 없어." 강석호는 아무것 도 얻는 것이 없는 허송 세월을 한 일년 사개월이 안타까웠다. '아! 허송 세월이었어! 허송 세월!' -그보다도 김종일의 분노는 더 심각하였다. 그의 분노는 원한으로 발전하였다. 그를 배신한 한순해에 대한 생각을 그의 머릿속에서 몽땅 없애 버리겠노라고 하였으며 양조장 주인인 종일의 아버지는 한 신부에 대한 배신으로 지금까지 쌓아 온 가족같았던 우정도 모두 버리겠다고 하였다. 친구 한성민의 억울한 죽음을 갚아 주기는커녕 동생 한순해의 배신으로 인해 더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으며 새로운 원한을 만들고 말았다.- * 그런가 하면 강석호의 머릿 속에는 두 가지의 갈등이 더 깊어지고 있었다. (비록 본인은 물론 친구인 김종일을 배신하고 멀리 가버린 한순해에 대한 사랑은 동정심으로 변하고 있었다. '순해! 그녀는 두 오빠를 의지하며 살았는데 갑자기 죽은 할아버지로 인해 너무나 외로워 넘어지고 말은 것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정신의 이상을 느끼며 무참히 쓸어지는 그녀를 잡아준 마크에게 사랑을 느끼며 마지못해 그를 선택하였을거라고 생각을 하였다.석호와 종일 오빠가 필요 할 때 그들은 그녀의 곁에 있어 주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또 다른 연민의 정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한순해에 대한 미안함이 마침내는 죄책감으로 변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순해야!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너의 곁에 있어주지를 못했어. 미안하다. 네가 마크를 따라 미국으로 간 것을 나는 원망하지 않으마! 오히려 너를 축복하지 못한 내가 바보스럽구나. 용서하라. 순해야." 강석호 중위는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 순해에 대한 죄책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월남에 두고 온 닌에 대한 생각이 더 커지고 있었다. ("월남은 약 80년간 불란서의 식민지로 살아 왔지요. 나의 어머니는 불란서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나의 피속에는 불란서인의 피가 약 50%는 있다고 합니다.")라고 그녀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그렇다면? 나도 그녀와 결혼을 할 수가 있었는데...국제 결혼? 안될 것이 무엇인가?" 그러고 보니 월남에 있을 때, '한번쯤 용기를 내어 청혼을 했어도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도 났다. 어쨋거나 부산에 도착하였을 때, 그들은 각각, 육군 대위로 진급이 되었던 것이 그래도 일말의 위안이 되었으며 일주일간의 휴가와 의정부 후송병원으로 발령이 나있었기에 청주로 부모님들을 만나러 내려 갈 수가 있었다. 성공회당에서 수위로 일하는 아버지를 만나고 보니 일년 사이에 꽤나 늙은 듯 하여 보였다. 김종일의 아버지인 양조장 주인의 분노는 대단하였다. "무슨 일이 그래? 아니, 한 신부! 처신을 잘하여야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어도 그렇지. 아니, 맥. 나이트라는 미국놈 신부! 지가 무슨 보호자라고, 순해를 꾀 차 가지고 미국으로 도망을 보내다니..나쁜 놈들...나쁜 놈들!" 생각해 보면 강석호를 더 더욱 놀래게 한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역시 마크가 보낸 편지대로 순해는 7월 20일 토요일 날, 이곳 성공회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하였다.) '토요일? 7월20일?' 석호는 되 물었다. 토요일이라면? 달라트의 소피 호텔에서 강석호 중위와 닌은 마지막 이별을 하였으며 비 오는 밤 되 돌아 온 닌이 강석호의 가슴에 안겨 긴 밤을 보낸 그날 토요일이었다. 순해가 마크와 결혼을 하여 그의 품에 안기던 순간, 강석호 중위는 닌과 더불어 만리장성을 쌓았으니...이 무슨 운명의 작난이던가? 닌은 강석호의 품에 안겨 긴 밤을 보낸 그 토요일이었다.' 강석호 대위는 두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쾅쾅 치며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한성민의 원한을 갚아 주지도 못하고, 순해는 잃고 그리고 닌 마저 잃고 보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며 쓴 추억만 그의 가슴에 남아 있었다.) * 의정부 후송병원으로 귀대하기 이틀전, 김종일 대위는 친구, 강석호 대위를 반 강제로 청량리 로터리에 있는 그 통 닭집으로 데리고 갔다. 통닭집이라면? 강석호 중위가 월남으로 가기 일주 전에 사랑하는 순해를 데리고 가서 맥주를 마시며 사랑을 고백하였던 바로 그곳이었다. 그 때 그는 아주 참담하리만큼 비참하였던 푸대접을 순해로부터 받았었다. 거나하게 맥주를 마시고 보니 해롱해롱한 기분이었는지 김종일은 이렇게 결론을 지었다. "이것봐, 석호?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어. 다시 시작하는거야. 다시! 순해란 여자? 나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기로 했어. 야, 임마! 너도마찬가지야. 잊어 버려. 그리고 나를 용서하거라. 괜히 나 때문에 너, 순해를 포기 했었으니까...나 때문에. 어쨋건, 우리와 순해는 인연이 아니었나봐. 그러니 석호야! 부디 너도 잊어버리거라. 부탁이다." "그래, 잊어 버리자." 강석호도 동의를 하였다. 언제나 침착하며 자신만만하였던 김종일도 순해로부터 받은 배신이 꽤나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는지 그는 이렇게 결론을 짖고 뜻밖의 제안을 하였다. "야! 석호야? 너, 이제 주접 좀 그만 떨어라. 주접을.. 여기는 서울이야. 월남이 아니란 말여. 너, 정말, 외로워 계집 생각이 난다면 차라리 이곳 588, 사창가에 가서 젊은 여자하고 젊음을 발산해 보려무나. 너 혼자 가기가 쑥스러우면 나를 불러. 같이 가 주마." (주:588 사칭가란, 청량리 역 근처 전농동 588번지를 말하며 속칭 사창가임) "야! 임마, 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너, 여기가 어디 사이공인줄 아냐? 차라리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라구." "자식! 깨끗한 척 하지마! 청량리라고 하는 곳이 바로 이런데라구. 거지가 정거장 앞에서 잠을 자며 도둑이 우굴 거리고 마약과 술에 취한 사람들, 그리고 창녀들이 우굴거리는 곳...그래 섹스가 있는 곳이란 말여." "야! 종일아? 너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 그만!" "이것봐? 석호? 장가들기까지 너, 못 참겠으면 차라리, 여기 청량리로 와서 마음'�섹스라도 하란말여. 괜히 선량한 척 하지말고. 사실, 너나 나 생각해 보라구. 우리가 좋아했던 순해는 엉뚱하게도 미국놈을 따라서 가버렸어. 닭 쫒던 개처럼 된 셈이지. 나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 같았어. 그러나 나는 이제 깨끗이 잊기로 했어. 그리고 너, 석호! 닌이란 여자도 결국 사이공에 사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어. 그렇다면 너는 누구를 기다린다는 거냐? 누구?"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던 나는 약속을 하였어. 죽을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약속을? 누구와?" "그래, 순해와 닌이란 여자와..." "뭐라고? 너, 네 정신으로 말을 하는 거냐? 정말 너마저 돌았구나. 석호야? 그러지 말고 오늘 저녁 대왕코너 호텔에서 예쁜 아가씨나 품어 보자꾸나. 그리고 의정부로 가자! 석호야." "종일아? 네가 그러고도 순해를 좋아했다고 말을 하려느냐? 그리고 네가 정말 의사냐? 생각해봐? 언젠가 너를 정말 좋아하는 아름다운 백조(白鳥)가 네 앞에 나타나는 날, 너는 뭐라고 말을 하겠느냐? 자, 이만 가자! 의정부 부대로 돌아가 그곳에서 남은 임기를 마치자. 순해를 욕하지 마라. 그녀는 우리가 버린거야. 우리가 그녀를 남겨두고 월남에 가 있는 동안 그녀는 너무나 외롭고 무서워 마음이 무너졌던거야. 그 순간 그녀의 곁에 있어준 것은 바로 마크였어. 그러기에 그녀는 그를 따라 간 거야. 결국 잘못은 너, 그리고 나였어." "우리가 순해를 버렸다고?" "그래. 우리가!" "우리가? 맞아! 내가 잘 못하였어. 마음 약한 순해를 혼자 두고 월남에 가는게 아니었는데..." 종일은 눈을 지긋이 감았다. 후회 막급이었다마는 상황은 이미 끝난 셈이었다. * 세월이 약이라고 하였듯이 강석호, 김종일 육군 대위들은 의정부에 있는 후송병원으로 귀대하여 남은 일년을 충실히 복무를 한 후 마침내 1970년 5월 31일날 제대를 하게 되었다. 제대를 한 후 김종일 대위는 계획하였던 대로 한국 제일의 S 대학병원에서 외과 레지덴트(수련의사)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강석호 대위는 조금은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제대를 불과 일개월 앞둔 4월말, 청주 성공회당에서 수위로 일을 하고있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본 강석호 대위의 마음은 흔들리고 말았다. 멀리 강원도에서 청주로 피란 나와 가난하게 사는 동안 어머니가 죽었는데 이제 아버지마저 죽고 보니 강석호 대위는 영락없는 고아가 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는 숨 막힐 듯이 비좁고 아귀다툼이 심한 한국에서는 도저히 살아나기가 힘들 것 같았으며 더 마음이 아픈 것은 너무나 외로웠다. 아무도 그의 곁에 없는 외로움 뿐이었으며 외로움은 죽음보다 더 무서웠다. 마침내 그는 큰 결심을 하였다. "가자! 가. 멀리 미국으로...미국으로...그래 그곳에 가면 순해를 만날 수가 있으며 그리고 닌을 만날 수가 있다. 그래, 붉은 계곡으로 가자. 그곳에 가면 언젠가는 닌을 만날 수가 있을 게다. 닌을...." 1970년 5월 31일, 마침내 군에서 제대를 하였지만 우물주물 하였던 연고로 미국으로 가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기에 그는 일단 Y대학병원에서 인턴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열심히 노력을 하였다. 친구 김종일도 S대학 병원에서 역시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군 복무 3년동안에 동기 의사들은 이미 레지덴트 3년차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년후인 1971년 6월말 강석호 의사는 큰 이민 가방 두 개를 들고 멀리 뉴욕으로 찾아 왔으며 그가 시작한 것은 또 다른 인턴의 길이었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부르클린에 있는 다운스테이트(Down State University, Medical center)병원에서 였다. 험악한 동네에서 배고프고 졸리운 이민 의사의 길을 시작하였는데 어찌된 셈인가 그의 머릿속에는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며 떠나왔던 한국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한국을 잊어 보려고 하여도, 아니, 저주의 말을 하여도 조국은 조국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가방 속에 다음과 같은 시(詩)를 써 가지고 다녔다고 하였다. -시(詩): 검은 구름이 덮고 있는 도시에서 나는 이름 없이 살고 있다. 아무도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타국에 유랑하는 사람은 이름을 고국에 남겨두고, 부운 발로 이국의 거리를 떠돈다. 이제 서리 내리는 가을이 오고 아- 나는 돌아가야겠다. 나의 이름이 있고 눈물이 있는 고국으로 가을에는 돌아가야겠다. 가방 하나에다 여권과 고국에 갈, 여비를 넣어 놓고 살았다. 아들 딸 키우면서 이사를 자주 다니다가 언제 버렸는지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 가방이 남아 있고 푸르디 푸른 하늘에 새들이 자꾸 날아오른다. ( 기영주의 시에서)- * 의사 강석호! 그는 피 눈물 나는 노력을 하여 인턴과 내과 레지덴트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보니 그의 나이는 33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미국 내과 전문의사(美國 內科 專門醫師)가 되어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뉴욕, 퀸즈 후러싱( Flushing, Queens NY)에서 내과 개업을 하며 틈나는 대로 한순해를 찾았으며 텍사스에 있는 붉은 계곡에도 가 보았으나 한순해와 닌을 만날 수가 없었다. * 그리고 1985년 4월, 그는 외과 연수차 미국으로 온 그의 친구, 김종일과 같이 살고 싶어 뉴욕에서 칼리포니아, 가든그로브로 이사를 하여 그곳에서 내과를 개업하였다. 11장. 우울증 환자로 만나다니! 그리고 2003년 3월의 사건들을 계속해 보자.- * 그리고 보니 닥터.강은 지난 며칠 사이에 너무나도 뜻밖의 큰 사건들로 인해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1969년 7월20일, 월남 달라트에서 헤여진 닌의 동생, 퀴와 닌의 아들이라고 하는 제임스 누엔(James Nguyen)을 만나게 된 것도 눈물겨운 사건이었는데, 1969년 7월20일날, 마크와 결혼을 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순해를 이렇게 정신과 병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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