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 콩밭떼기 만세

1. 미국 사돈과 무공해 인간

 

제 이름은 밭떼기올시다. 울 엄마가 밭 매다가 나를 낳았답니다. ‘밭에서 얻은() 아이, 그래서 밭득이’, 유식한 동네 어른은 문자를 써서 전득(田得)이라고 부르기도 하시는데, 마을사람들은 찐드기보다는 밭드기가 부르기 좋다며, 그냥 밭떼기라고 부르지요. 그러니까, 울 엄마는 부엌데기, 나는 밭떼기···

갱상도 저--- 두메산골 구석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울 엄마가 밭 매다가 갑작스레 진통이 와가꼬, 고만 내가 세상바깥으로 티이나왔다 아입니까. ‘티이나왔다는 표현이 얼라 낳는 거하고는 여엉-- 안 어울리지마는 내한테는 딱이라예. 보통 아낙들은 죽을똥 살똥 배가 아파 열 시간 이상이나 뒹굴다가 얼라를 낳는다 카드마는, 내는 순식간에 쑥 나와뻐맀다 합디다.

그라이 마, 내는 태어날 때부터 효자인기라, 효자.

 

 

, 내 성씨는 공가올시다. 우리 아부지 조상이 공자님이었는지 성이 공가라네요. 미국 사람들은 아무리 알켜 줘도 이라고 부릅니다. “하이, 미스터 콩!”

그라고 이름도 버트라고 불러요. “버트 콩하구요. 밭떼기는 어렵다고 버트라고 부르겠다기에 그러라고 했어요. 실은 내가 버트 랑카스타 이름은 알거덩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랍니다. 근육에! 남성미에! 직입니다. 직여요.

내 자랑하기가 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요··· 사실은, 내도 남성미가 넘쳐요. 지금 이 나이에도 주먹을 불끈 쥐고 팔에 힘을 팍 주모요··· 알통이 툭툭 불거져 나와요. 그러니까니, 버트란 이름이 내한테 잘 어울린다, 그 말씀입니다. 얼굴은 그 반에 반도 못 따라 가지만요.

나는 지금 미국 엘에이라 카는 도시, 코리아타운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지만, 미국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 일도 있습니다.

 

아마도, 울 어머니가 나를 나으신 데가 콩밭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나는 <칠갑산>라는 노래를 들으모 나도 모르게 눈물부터 납니다. 왜 있잖아요,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하는···

그라니까네, 내가 태어난 바닥부터가 푸른 들판이었다는 기지요. 아무런 공해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푸른 들판···!

이건 나중 얘기이지만 나를 무공해 인간이라고 이름 지어준 분이 계십니다. 내가 존경하는 장로님입니다. 무공해 인간! 그래서인지, 나는 한팽생을 초원을 누비며 살아왔습니다.

 

 

한국에서는 밭떼기 농사꾼, 미국 와서는 마당쇠 가드너로 자연을 즐기며 훨훨 날아 댕겼다 아입니까. 요새는 마, 느즈막에 팔자에 없는 골프를 배워 가꼬 또 풀밭에서 놀고 있네요.

그런데 울 아부지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없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나와 보니 벌써 안 계시데예. 죽었다 카데요.

그러니까니 나는 유복자라예. 한데 그만 울엄마까지 내가 일곱 살 때 죽어뿌맀이니, 내 신세가 우찌 됐겠습니까?

다행히 엄마가 식모살이 하던 집에서 나를 거둬줘서 결혼할 때까지 그 집에서 살았지요. 머슴살이였으나 따뜻한 밥 맥이주고 입히주고 재워주며 잘해줬어요. 초등학교까지 학교도 보내 주고요. 지금 나이가 70이 낼 모렌데도 어릴 적 기억이 우찌 이리 생생한지 놀랠 지경이에요.

그 집은 동네에서 존경받는 이장님 댁이었어요. 이장님도 사모님도 나를 이뻐해 주고, 또 동네 어른들도 내 칭찬을 많이 해줬어요. 다들 참 좋은 사람들이었지요. 내가 부모 복은 없어도, 인복은 억수로 많았던 거 같습니다. 남이 보모 우라지게도 불행한 팔자라 하겠지만, 나는 그때 행복했어요.

돌을 씹어 묵어도 거뜬한 건강을 타고나, 기운도 무지 쎄서 동네 궂은일은 내가 다 해치웠답니다. 또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며 매사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남한테 도움도 되고 해, 내 자신도 뭔가 입이 째지게 좋아 싱글벙글 할 때가 많았거덩요.

그런 중에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우리 두메산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어요. 나무꾼과 선녀······ 그 기적이 내게 이라진 거라예. 더구나 딸을 얻었을 때는 그 행복이 절정에 달했다 아입니까. 그리고 딸 덕에 미국에까지 오게 된 겁니다.

늘 아내를 가슴에 품고 살았지만 요즘은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아내 생각이 더 절절합니다. 아내는 우찌 됐냐꼬요? 묻지 마이소. 벌써부터 눈물 날라 캅니다. 이따 천천히 얘기할게요.

 

이렇게 이산 저산 아리랑 고개는 다 잘 넘어왔는데, 이 나이에 그만 꼬부랑 고개에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세상 편한 팔자가 된 요즘에 내가 여어------- 쏙이 부글거리서 몬 살겠습니다. 꼴 뵈기 싫은 놈이 하나 생기서 골치가 아파요. 아파. 그레고리라는 놈 때문입니다. 내 사돈, 즉 내 딸의 시아부지라예. 물론 미국놈이지요. 내 이름의 원조인 버트 랑가스타 말고 내가 아는 배우가 딱 한 사람 더 있는데, 그 배우가 바로 그레고리 팩입니다. 근데 꼴 뵈기 싫은 놈이 왜 하필이면 내가 좋아는 미남 배우 이름을? 에이 기분 나빠! 그레고리 펙한테 미안하게 시리···

··· 미안합니다. 사돈한테 자를 붙여서요. 그놈, 그 새끼라고 부르모 딱 좋컸구만··· 이제부터는 그레고리라는 이름 넉 자만 사용하겠습니다. 젠장, 빌어먹을··· 나는 무식해도 예의는 지킬 줄 안다꼬요.

근데 그가 어찌나 날 무시하는지 웃깁니다. 웃겨요. 말은 몬 알아들어도 그 표정에 다 써 있거덩요. 얼굴을 찡그리고 비웃는 것이 역력히 표가 나요. 똥이나 밟은 거 맹키로 내만 보모 얼굴이 만발이나 일그러진다니까요.

촬리한테도 마찬가집니다. 촬리는 딸네가 키우는 강아지라예. 손자 녀석 둘이서 어찌나 좋아하는지, 진짜 가족이나 다름없는 개입니다. 그런데도 촬리가 옆에 얼쩡거리면 발로 툭툭 차면서 고 어웨이. 고 어웨이.” 하고 냅다 소릴 질러요. 절루 가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개도 그레고리를 좋아할 리가 있나요? 그를 보면 고개를 쓰윽--- 돌리고 눈치를 보며 실실 피하지요. 하지만 내가 가모 꼬리를 흔들며 내 가슴팍까지 팔짝팔짝 띠이오르면서 좋아해요. 그러면 나는 촬리를 덥석 안아주지요. 한 번은 그레고리가 질색을 하더라꼬요. 균 묻는데요. , , 뱅균 말입니다.

그렇게 건강관리를 잘 하는데 지는 와 그리 비리비리 합니까? 그레고리는 키만 훌쩍 컸지, 삐삐 말라 가꼬 내가 한 손가락으로 툭 건디리기만 해도 아마 픽 쓰러질 겁니다. 젠장, 상상만 해도 쏙이 씨언하네요. 밥도 아주 쬐끔밖에 안 먹어요. 우찌나 입이 짧은지, 하도 깨작깨작해싸서 남도 입맛 떨어지게 해요.

어떤 땐, 어디 아프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몸 건강이 안 좋으면 사는 게 힘들고, 만사가 구찮으니 정신 건강도 자연히 나빠지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사돈이라는 작자도 맘에 안 드는 거지요. 고아에, 초딩에, (초딩이라는 건 요새 배운 말입니다. -- 들이 초딩, 중딩 고딩, 그라데요.) 평생을 노동이나 치고 살았으니 말입니다. 사람 무시하는 못돼먹은 있는 것들에게는, 나 같은 거 충분히 무시당할 대상이 되지요. 거기다 영어도 빵점이고요.

 

 

그레고리가 날 무시하는 첫째 이유는 내가 영어를 몬 하기 때문인 거 잘 압니다. 아예 앞에 대놓고 무시해요. 한 번은 그럽디다.

미국 온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너는 왜 그리 영어를 못 하냐? 유 언더스탠? 유 언더스탠?”하고 두번 세번 반복을 하면서 알아들었냐고 확인을 하는 거예요.

꼭 죄인 취조하듯이 눈 똑바로 뜨고 내 얼굴에 시선을 쏘지 않겠어요? 내 참 기가 맥히서··· 친한 친구 사이에도 이런 말은 삼가야 예의 아닌가요? 사돈한테 이기 오데 할 말입니까? 내가 말을 좔좔 몬 해서 그렇지, 무슨 뜻인지 대충은 때리 잡거덩요.

그때는 아무 말도 몬 하고 어떨 결에 벙어리 모양 넘어갔으나, 집에 와서 가마이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미치겠더라꼬요. 한국말로라도 퍼부어 줬어야 하는 긴데 말입니다. 지금에야 생각이 나네요.

? 내가 영어 몬 해서 니가 머어-- 손해 본 거 있나? 내는 영어 몬 해도 하나토 불편한 거 없다이. 잘만 살고 있다꼬. 인심 좋고 물 좋은 한국 타운에 살고 있고, 또 길만 건너모 마켓이고, 식당이고, 안경점이고, 병원이고 간에 없는 기 없다꼬. 또 한국 사람들이 운영을 하니 영어 잘해도 영어 쓸 일도 없다 아이가. 그라고······ 니하고 내하고 무신 할 말이 그리 있겄노? 내는 영어가 필요 없는 사람이라꼬. 우리는 요오··· 엘에를 뭐라 카는지 아나? 대한민국 서울시 나성구라 칸다.’

아 참, 자랑도 좀 해야 되겠지요?

내는 말이다. 영어는 몬 해도 봉사는 마이 하고 산다. 차 없는 노인네들 내가 다 모시고 댕기면서 편리도 봐주고 그란다 아이가. 가마이 본께 니는 물도 한 잔 니 손으로 안 떠다 마시데··· 마누라가 머어-- 니 종인 줄 아나?

그라고 니, 내 골프 치는 거 알제? 내 골프 점수가 울맨지 아나? 니가 들으모 너무 놀랠 끼라 말 안 할란다.‘

사실 골프 치는 거. 이제 막 시작해서 겨우 재미가 붙었지만 점수는 엉망입니다. 그러나, 사람 무시하는 것들 앞에서는 뭐든지 잘하는 처억-- 해야 해요. 노인네들 모시고 댕기는 것도 하나토 자랑 아입니다. 한 아파트에 살고, 시간도 있고 하니 마땅히 도와드려야지요. 하지만 그레고리 같은 인간 앞에서는 이런 말도 하며 한 번 뻐기 보는 거지요.

그러면 그는 아마도 스피커 잉글시쉬 스피커 잉글리쉬.’ 그럴 겁니다. 그라믄 내는요--- 이리 말할 겁니다.

니 지금 머라 켔노? 스피커 잉글리쉬? 스피커 잉글리쉬? 내 영어 몬 한다꼬 니 입으로 니가 말해노코 그기 무신 소리고? 금세 니가 한 말도 기억을 몬 하나? 니 치매 걸맀나?’

갱상도 악세트를 아주 강하게 넣어서 해대모 그가 놀래 자빠지겠지요? 아이구-- 해대모 안 돼요 안 돼. 딸한테 영향을 끼치면 안 되니까요. 말은 쎄게 해도 표정은 부드러워야 합니다. 그리고 싸악 웃고요. 좋은 소린지 나뿐 소린지도 분간을 몬 할 정도로 마이마이 웃으감서 얘기해야 돼요. 딸이 들으모 안 되니까, 딸 없을 때, 딱 기회를 잡아서 그럴 낍니다.

··· ······ 도대체 이노무 영어가 뮈길래 내가 이리 사돈한테 창피를 당해야 하나요? 그렇지만 이기 다 내 탓인 거 압니다. 미국에 살라 카모 영어를 해야지요. 아암, 해야지요. 아무리 영어가 필요 없다꼬 자신을 위로해도 미국에 사는 이상, 좔좔 말은 몬 해도, 영어는 할 줄 알아야지요.

근데 그기 오데 맘대로 되나요? 내같이 무식한 놈은 두 번 죽어도 그기 안 돼요. 그래도 불편 없이 잘 살고 있으니 그냥 이대로 살랍니다. 행복은 지 맘에 있다 안 캅니까. 젠장····· 주눅 들어봤자 내만 손해지요.

그라고 또····· 내가 팽생을 노동 치고 살은 것도 은근히 무시하는 것 같아요. 노동은 신성한 직업 아입니까? 언젠가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았어요. 감동을 받고 위로와 격려를 받아, 안 잊어 묵고 있지요.

지식과 지혜는 다른 것이다. 학교를 못 다니고 가방끈이 짧다고 해서 삶의 지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이다.’

처음에는 금방 몬 알아들었는데, 나를 덱고 댕기면서 가드너일을 가르쳐 주신 분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어요. 그분은 교회 장로님으로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훌륭한 분입니다. 여러 가지로 내가 참 많이 배웠어요.

내가 늘 많이 배워서 고맙다고 그랬더니, 한 번은 그분 말씀이 나한테서도 배울 점이 있다꼬 그러잖겠어요? 깜짝 놀랬습니다. 부끄러바서 혼났어예.

그라고 내 보고 세상 때가 묻지 않은 무공해 인간이라 그랬습니다. 내가 놀래서, 팽생을 흙 파고 살았는데요? 그러니까 장로님 말씀이 그기 아이고 마음이 깨끗하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보고 참 순수하다 캅디다. 정직하고 성실하다면서 칭찬도 마이 해주었어요.

내가 태어난 곳도 푸른 들판이고, 농사꾼에다 가드너에다, 이기 다 풀과 나무들과 연관이 있으니 무공해 인간이라 캐도 별 무리는 없겠다 싶네요. 아이쿠, 미안합니다. 이런 거를 자화자찬이라 카나요?

그날은 하루 쟁일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 했지요. 나도 쓸모 있는 인간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위는 군인 장교입니다. 한국에 파견 나왔다가 피엑스에서 일하는 딸을 만나 홀딱 반한 거였어요. 사위는 한국에서 그리 오래 안 살았는데도 한국말을 곧잘 해요.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다음에 그 우에 있는 대학원도 나왔답니다. 그러나 우리 딸은 대학을 못 갔어예. 빼가 뿌사지더라도 대학을 보낼라 캤는데, 딸이 안 갈라 캅디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탁 취직을 해뿌맀다 아입니까. 인자는 지가 돈 벌어서 아부지 편케 해준다꼬요.

결혼식은 한국에서 미팔군 외교구락부에서 올렸는데, 그때 사돈이 왔었어요. 사돈도 내처럼 부인이랑 사별을 했답디다. 근데, 이름 그대로 진짜 그레고리처럼 잘생겼었어요. 그때가 한 15년 전쯤이었어요 런데 사람이 그동안에 우찌 그리 변할 수 있습니까? 아주 폭삭 늙어뻐려 완전 딴 사람이 돼버렸지 뭡니까?

 

내가 미국에 첨 왔을 때, 그레고리는 일본에서 살았어요. 거기서 유명한 회사 높은 사람이었다 카대요. 공부도 마이 해서 무신 박사라고 합디다. 아주 똑똑하고, 일을 잘해서 일본회사에서 뽑아간 거라네요. 그리고는 한 일 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고 미국 집으로 온 겁니다. 무신 복인지 둘째 마누라는 잘 만났습디다. 남편 옆에서 모든 시중을 다 들어 주더라꼬요. 물도 한 잔, 지 손으로 갖다 마시는 걸 못 봤다니까요.

안사돈은 일본 여자입니다. 일본에서 재혼을 했다는군요 키가 자그마하고 얼굴이 동그랗고 하얀 게 한국 여자하고 똑같이 생겼습디다. 일본 여자들이 남편한테 그리 잘 한담서요?

그러니까,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 곧 일본으로 가고 또 재혼도 하고 그랬네요. 뭐가 연때가 척척 잘 맞았네요. 이런 말 하모 사위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지가 좋아하는 여자, 아무런 부모 반대 없이 결혼에 꼴인했으니 잘된 거 아닌가요?

한국 사회 같으모 우리 딸, 상대방 부모한테 아마 디기 당했을 겁니다.

미국 온 다음에는 한국 테레비를 즐겨 보는데, 드라마 본께 자식 결혼 반대가 우찌나 판을 치는지 장난이 아입디다. 여기는 엘에이이지만 한국하고 똑 같아예. 딸이 디렉 티비라는 거를 넣어줬는데,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방송을 해요. 그것도 체널이 무지 많아요.

하여튼 자식 결혼에 부모가 딱 붙어 가꼬 감나라 배나라 하면서 오망가지 간섭을 다 하데요. 자식이 좋아서 죽고 몬 사는데, 부모가 와그리 반대를 해요? 아주 죽기살기로 반대를 합디다. 상대방을 불러 앉히 놓고 ! 니까짓 게 감히 내 아들을 넘봐? 좋은 말, 할 때 내 아들한테서 떨어져!” 하고··· 좋은 말은커녕, 목에 핏대를 세워감서 온갖 폭언을 퍼부으면서 그랍디다.

반대하는 조건은 말하나마나 뻔하지요. 누구는 머어-- 그리 되고 싶어서 그리 됐겠어요? 더구나 요즘 주위를 둘러보니 외국 사람하고 결혼한다 카모 부모들이 거의 다들 반대하데예.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요. 인종 차별은 한국 사람이 미국 사람보다 더 하는 거 같아요.

한 가지 기막힌 사실이 있습니다.

사위 여동생이 선교사인데, 아프리카로 파견 나갔다가 거기서 그만 원주민과 사랑에 빠졌던가 봐요, 그것도 아무것도 볼 거 없는 뱃사공하고요.

그 전직 뱃사공······ 진짜진짜 쌔까맙디다. 미국에서 흔히 보는 흑인들과는 영--- 다르더라꼬요. , 기분이 참말로 묘하데예··· 그라니까 그 새까만 사람이 내하고 친척 아입니까? 가마이 보자, 우예 되노? 내 딸의 남편의 여동생의 남편··· 그라모 촌수가 우째 되는기고? 아무튼 친척인기라요, 친척!

그란데 가마이 보니까, 이 아프리카 친척이 우리 사돈하고, 그라니까 자기 장인하고 말이 통하는 기라요. 발음은 엉터리 같아 뵈는데 둘이 떠들고 낄낄 웃고 그라는 기라요. 우와 미치겠데! 나만 몬 하는 기라, 나만!

, 망할 놈의 영어가 사람 죽이네!

사위 여동생은 대학까지 나왔다는데, 그 아프리카노는 별로 교육이 없다 카데예. 그래도 영어는 잘 통합디다.

가마이 있자, 그라모 이 집안이 우찌 되는 기지요? 아메리카 백인에, 코리아 한국인에, 제페니스 일본인에, 아프리카 흑인에··· 이거 원! 인종 박물관이 돼 삐맀십니다. 그래요. 그거 참 잘된 기라예. 우리는 섞이야 됩니다. 인종이 골고루 잘 섞이야 종자도 우수해지고 차별도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풀도 나무도 그렇더라구요. 생판 다른 기 우찌 합해져 가꼬, 예쁜 꽃도 피고 맛있는 과일도 열립디다.

인생도, 자연도 참 희한합니다. 그 멋지고 예쁜 하얀 여자가 우락부락하고 못생긴 쌔까만 남자와 결혼을 했으니 말입니다. 생긴 것도 쌩판 다르고 등등, 정말 안 맞을 것 같은데, 가족하고도 잘 어울리고 또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으니, 인연은 인연인 기라예. 선교사와 뱃사공·····

우찌 본께 내 경우랑 참 비슷합니다. 선생님과 농사꾼······

언젠가 한 번은 장로님한테 선생님 얘기를 했더니, 그게 바로 숭고한 사랑이라 그랬어요. 숭고하다는 어려운 말도 장로님으로부터 배웠답니다. 장로님은 그렇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늘 내게 힘이 됐습니다.

 

 

사실은 처음에, 우리 사위······ 딸보다 나이가 12년이나 위이라 좀 꺼려했어요. 그런데 딸이 좋다 카는데 우짭니까? ‘반대 반짜도 못 꺼내 보고 좋다좋다 캤어요. 이리 될라꼬 그랬는지 이상하게도 미국놈인 거는 별로 거부감이 안 듭디다. 근데 지금은 진짜로 좋습니다. 우리 사위 최고, 최곱니다.

그러니까니··· 가마이 참으라꼬요. 아니지요 당하고만 있으모 자꾸자꾸 더 무시해요. 한 번은 말할 겁니다. 싸아악--- 웃으감서···, 때로는 할짝할짝 웃기도 하구요. 나는 다 참고 살아도 무시하는 거는 몬 참습니다. 내가 앞에서 못돼먹은, 있는 것들이라고 말했지만, 있다고 다 못돼먹은 건 절대 아입니다. 못된 것들이나 못돼먹었지···

--쪽 베블리 힐인가 뭔가 하는 동네는 진짜 있는 사람이 사는 데 아입니까. 집이 울매나 큰지 몰라요. 그런 집 주인들도 나한테 다 친절하고, 잘해줬어요. 절대로 무시 안 했어요.

목마르다고 사이다도 내다주고, 정원에 있는 오렌지며 레몬도 맘대로 따 가라고 그랬어요. 저 역시 최선 다해 열심히 일했고요. 잔디 깎고, 나무 다듬고 해서 정원 이쁘게 가꿔놓으면 꼭 내가 무슨 예술작품이나 맹글어논 거 맹키로 기분이 억수로 좋더라꼬요. 일이 재미있기도 하고 사는 보람도 느꼈어요.

주인들 인심도 좋았어요. 월급 마이 줌서 팁도 듬뿍듬뿍 줬지요. 연말에는 꼭 금일봉을 챙겨주고요. 내가 영어를 몬 해도 우린 다 잘 통했어요.

영어가 필요한 곳이 딱 한군데 있긴 있어요. 공공기관입니다. 그러나 딸이 일일이 덱고 댕기며 척척 처리를 해줍니다. 내가 딸 하나는 기차게 잘 두었습니다. 그기 다 아내를 잘 만난 덕 아니겠어요? 딸이 지 엄마를 쏙 빼닮았어요.

 

 

내 아내는 정말로 천사였어요. 내가 서른 살이 다 돼 갈 즈음에 산골 초등학교에 여선생이 하나 왔습니다. 부산 여잔데 교육대학 나오고, 산골 구석에 발령을 받아 온 거였어요. 참 부지런하고 희생적인 여자였어요. 낮에는 학교에서 애들 가르치고, 저녁에는 동네 어른들한테 글을 가르쳤어요. 산수도 가르치고, 우리나라 역사도 가르치고요. 특별히 노래를 참 잘했어요. 동네 어른들께선 노래 배우는 거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동요를 가르치면서 흔히 알려진 우리나라 가곡들도 가르쳤는데, 그녀가 풍금을 치며 노래를 부를 때는 진짜진짜 천사였습니다.

무슨 인연인지 그 여선생이 내가 사는 이장 집에서 묵고자고 했어요. 들판에서 홀로 피어 바람에 하늘거리는 하얀 코스모스 같은 여자였어요. 보호본능이 절로 우러나는 연약한 여자였지요.

그런데 하루는 새벽에 사모님이 나를 막 흔들어 깨우데요. 안절부절못하시고, 선생님이 열이 펄펄 끓으니 빨리 뱅원에 가야된다 카더라꼬요. 나는 선생님을 업고 죽기살기로 띠었습니다. 울매나 땀을 흘리는지 내 등이 다 젖었어요. 내 땀, 선생님 땀이 범벅이 됐겠지요.

폐렴이래요. 폐렴! 약한 몸에 너무 무리한 탓이었어요. 다행히 사모님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쉽게 회복을 했어요. 그라고 선생님은 집에 안 가고 산골에서 오래 살았어요.

근데 그만 나무꾼이 선녀를 사모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를 우짭니까? 말도 안 되는 말인 거 잘 압니다만 그기 어디 맘대로 되나요? 선생님도 그랬어요. 내가 곁에 있으니 많이 의지가 된다면서 참 든든하다꼬요. 선생님은 내가 보호를 해주어야지 혼자선 세상 살기 힘든 여자였어요.

말도 몬 하고 혼자서 울매나 끙끙 앓았는지 몰라요. 그런데 실로 상상도 못 한 기적이 일어났어요. 선생님도 나를 좋아하고, 동네 사람들도 다 도와주어서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꿈인지 생신지 공중에 붕 떠서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지요.

선생님 집에서 울매나 반대할까 하고 걱정도 마이 했는데, 다 무사 통과됐으니 나는 행운아인 게 틀림없어요. 선생님은 숨겨진 딸이었습니다. 어느 부잣집 혼외자식으로 태어났는데 아부지라는 작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대네요. 어무이는 일찍 죽었데요. 그래도 아부지 쪽에서 공부는 시켜줬답디다. 거기서 끝이라예. 결혼 때도 꼬빼기도 안 비쳤어요. 나한테는 그기 도리어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을 했지요.

 

이장님은 이 밭떼기한테 밭떼기도 떼어주시고, 집도 한 칸 마련해 주었어요. 내 집, 내 땅에서 나는 최고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애들 가르치고 야학도 계속했어요. 몸이 쇠약해 야학은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저녁에 야학 가는 재미로 산다는 그들을 마다할 수가 없었어요. 다들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그만두면 안 된다 안 된다 했거덩요.

그러다가 결국은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떴십니다. 딸 하나 낳아 노코 그만 가뿌렸어요. 나도 탁 따라 죽을라 카다가, 갓난쟁이 딸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어요. 딸을 위해 더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한창 젊은 남자가 우찌 혼자 살 끼냐꼬, 딸을 위해서라도 새장가를 들어야 한다꼬 했지만 어림없는 소립니다. 재혼할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습니다. 선생님이 팽생 내 맘속에 살아 있는데, 우짭니까.

내 딸은 사모님이 키워줬어요. 동네 아낙 젖동냥에서부터······ 친손녀처럼 잘해줬어요. 이 은혜는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아도 다 못 갚습니다. 부모 없는 나도 거두어주시고 내 딸도 거두어 주시고요.

지금도 딸은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사모님을 무지 좋아해요. 두 부부가 여기 미국에 다녀가기도 했구요.

 

요즘은 그레고리를 통 볼 수가 없네요. 추수감사절 때도 아들네에 안 왔더라구요. 요시······!! 오기만 해봐라···! 하고 벼르고 있는데도 안 와요. 크리스마스 때는 오겠지요?

사실 딸은 이런 내 맘을 하나토 몰라요. 딸도 지 시아배가 아부지 무시하는 거 알긴 해요. 그러나 나는 아무 시랑도 안타꼬, 아부지는 괜찬타꼬 시침을 뚝 떼고 말을 하지요. 내가 고생하며 지 하나 키운 거 알고, 어찌나 아부지한테 신경을 쓰는지, 나는 그게 걱정이랍니다. 그냥 나몰라라 하모 좋겠어요.

내가 미국에 온 것도 딸이 아부지는 지가 모시야 한다꼬 어찌나 고집을 피우는지··· 그래서 온 겁니다. 결혼 하자마자 초청을 하겠다는 거를, 그래도 몇 해는 끌었지요. 미국 와서, 바로 가드너일을 배우러 댕길 때도 딸이 울매나 반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노동일은 인자 고만 하고 편히 살아야 한다꼬요. 60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우찌 놉니까? 더구나 타고난 건강에 농사일로 빼가 굵어 힘이 넘치는데요?

그리고 내한테는 노동일이 천직인데 우짭니까?

나는 지금도 실컨 일 더 할 수 있어요. 여전히 건강은 만점입니다. 그런데 딸이 아부지 평생 노동치면서 고생했는데, 이제는 제발 일 손 놓으라고 하도 성화를 해서 그 재밌는 가드너 생활을 청산했다 아입니까. 일 더 하모 몸이 다 망가진다꼬 말입니다.

역시 딸의 성화에 못 이겨 골프를 시작하게 됐는데, 이건 더 재미가 있네요. 땅 파는 일이 내게는 참 적성에 맞나봅니다. 농사꾼에 가드너에 골프에··· 이기 다아---- 땅 파는 일이잖아요? 거기다 초원을 누비니 장로님이 지어주신 무공해 인간하고도 어울리네요. . . . .

 

노인아파트에 살다 보니까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이 참 많습디다. 여기저기서 나를 불러대서 아주 바빠요. 남 도와주는 것도 참 재밌고 신나는 일입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짐을 들어다 주기도 하고, 서랍 삐그덕거려 안 닫치는 것도 고치주고, 저 우에 못 박아서 달력도 걸어주고요. 그중에서도 운전해 주는 일이 제일 많아요.

자꾸 내가 노인! 노인! 하는데 그러고 보니 내 나이도 노인 축에 끼이네요. 테레비 보니까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카데예. 한데 나는 내가 노인이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아직도 서른아홉? .... 착각 속에 삽니다. 용서해 주이소!

우리 노인아파트는 미국 정부에서 보조해 주는 8층짜리 건물인데, 호텔처럼 번듯하고 좋습니다. 거의 다 한국 사람들이 살아, 한국 사람들 모임도 있고 운영위원회라는 것도 있어 참 편리합니다. 작년에는 내보고 회장하라 케서 절대 몬 한다 그랬지요. 뒤에서 도와주는 일은 울매든지 한다 그랬어요.

그레고리가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 초청을 해서 사돈집에 한 번 가 봤어요. 세상에··· 집이 우찌나 큰 지요······ 내가 잔디 깎던 베블리 힐 집들 같았어요.

그 집은 내가 풀 깎던 집 맹키로 일주일에 한 번씩 정원사가 오는 기 아이라, 아예 정원사가 한 집에 살면서 집 관리를 해준답디다. 저거 할아부지 때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집이라 카데요.

집은 그리 커서 뭐합니까? 나는 노인아파트 내 보금자리가 훨씬 더 좋습니다.

 

지난 추수감사절에도 얼굴을 안 비친 그레고리가 크리스마스 때도 안 나타났어요. 내가 벼르고 있는 거를 아나? 하고 씩 웃음이 나오네요. 인자는 마음이 다 누그러졌습니다. 그래봤자 머합니까? 꼬부랑 영어가 내 입에 착 달라붙어 쎄가 맘대로 살살 잘 돌아가모 또 모릴까······ 농담입니다. 농담. 하도 답답해서.

시간이 약입니다. 한참 눈에 안 보이니 웬일인가 하고 도리어 걱정이 돼요. 오데 아픈가 하고요.

 

그런데 어느 날, 딸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나쁜 소식이었어요. 내 예감이 맞았어요.

그레고리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부인까지 옆방에 입원을 했다지 뭡니까. 남편 간호에 무리를 해 지쳐 쓰러졌대네요.

더 놀라운 소식은 그레고리가 그간에 대장암을 앓고 있었다는 겁니다. 자식 걱정할까 봐, 비밀로 해 왔는데 병이 위중해져서 저절로 알게 됐대요. 마누라만 알고 그 시중을 다 들었다는군요.

고통이 디---- 심했답니다.

어쩐지 오데 아픈 사람 같다-- 했더니마는······.

사돈 미안합니다.’

마음이 급해졌어요. 빨리 병원에 가 봐야지 하고요.

딸이 거의 매일 병원에 출퇴근을 하는지라, 그다음 날로 바로 병원을 향했어요. 먼저, 꽃을 사러 꽃집에 갔어요. 그런데 가마이 생각해 보니 무신 꽃을 좋아하는지도 모리겠고··· 도대체 내가 사돈에 대해서 아는 기 아무것도 없데예. 꽃도 우찌나 종류가 많은지 고르기가 힘들고, 병문안에 무신 꽃이 어울리는지도 모리겠고요.

딸한테 여차여차 묻고, 꽃집 주인이 추천해 주는 꽃을 둘러보고 있는데, 저쪽에 구석에 태극기와 미국 국기가 커다란 통에 수두룩 꽂혀 있는 게 눈에 띄었어요. 두 나라 국기를 나란히 꽂아 놓은 꽃바구니도 있었고요. 꽃과 두 나라 국기가 참 잘 어울렸어요. 색깔도 딱 두 가지 배합으로 두 국기와 조화를 맞추고 있었어요.

언뜻, 내하고 그레고리 둘이서 얼싸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따! 바로 저거다!’ 싶었어요.

꽃바구니를 옆자리에 잘 모시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사돈! 여러 가지로 다 고맙소! 그리고 참 미안했소이다.

맘 단디이 묵고 꼭 이겨 내이소! 다 나으모, 내랑 쏘주 한 잔 씨언하게 하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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