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결혼 7 (마지막 회)

2012.07.14 14:43

김영강 조회 수:1055 추천:156

아 버 지 의 결 혼


제 7 회



  일주일 정도는 카테터(catheter, 방광의 요도에 연결하여 소변을 제거하는 기구)를 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소변을 자주 비워내야 하니 여간 귀찮은 노릇이 아니었다. 정미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녀가 아버지를 내팽개치고 계속 나가다니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집안에 이혼의 물살이 소용돌이 쳤는데도 숙자 씨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내색이 없었기에 더 불안했다. 이제 겨우 아버지의 마음이 가라앉은 듯한데 숙자 씨가 반전으로 치고 들어오면 정미는 그대로 당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지 않는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어 불안감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숙자 씨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야, 쥐도 새도 모르게 ‘에라 이때다.’ 하고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꼼짝도 않고 숙자 씨를 부려먹었다. 어찌나 엄살을 떠는지 참 뻔뻔하기도 했다. 본인이 해도 될 일이었으나, 아버지는 카테터를 달고 있다는 자체를 역겨워해 내려다보기도 싫어했다. 숙자 씨는 묵묵히 그 시중을 다 들었다. 노인 학교에도 가지 않고 일체 외출을 삼가면서 시간에 맞추어 약을 대령했다. 접촉 부위에 염증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라 항생제를 하루에 세 번 씩 챙겨먹어야 하고, 그 외에도 처방약을 시간 맞춰 먹어야 했다. 그동안에 병원도 멀리 하고, 약도 모르고 산 그에게는 참으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약은 독이라며 평생 비타민 한 알을 안 잡수신 분이다.

  조마조마하던 정미의 가슴은 조금씩 진정이 돼 갔다.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의사가 말한,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아버지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카테터를 떼버렸었는데, 그날 밤 또다시 응급실로 향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시 카테터를 달고, 이번에는 열흘 이상을 견뎌내야 했다.

  어느 할아버지는 좀 편해 보려고 재혼을 했는데 도리어 거꾸로 된 예도 있었다. 여자가 꼬랑꼬랑 아파서 할아버지가 그 시중을 들어야만 했다. 튼튼한 숙자 씨,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잠시라도 그녀를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숙자 씨는 참으로 아버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정미는 음식을 만들어 여느 때보다 자주 내려갔다. 그리고 “시중들기 힘드시지요?” 하고 고맙다는 말로 그녀를 추어주었다.

  “할아버지가 약도 제 때에 못 챙겨 잡수시는데 어떡해요? 이런 시중은 얼마든지 들 수 있으니 괜찮아요. 호. 호. 호. 호. 나한텐 도리어 전화위복이 됐다고요.”

  밝은 얼굴로 소리 내어 웃는 그녀를 바라보며 정미도 따라 웃었다. 전화위복? 그럼, 이런 시중이 아닌 저런 시중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전화위복’은 정미이게도, 아버지한테도, 또 숙자 씨에게도 다 해당이 되는 말이 되었다.

  그 후부터는 자식들보다 숙자 씨가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아버지는 이혼에 관해 거론하지 않았다. 숙자 씨가 웰페어 못 타는 것을 늘 불평했는데, 그 돈을 받을 날도 가까워오고 있으니 그것도 이혼을 거론하지 않게 된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정신은 흐려져도 이해타산에는 밝아만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하나, 어쨌든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은 틀림없다. 응급실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병원 출입이 잦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아들 둘이 늙어 가는 모습이 측은해서 더는 이혼 소리를 안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천하를 손에 넣을 듯이 기세가 등등하던 큰아들도 지금은 완전히 기가 꺾였고, 작은아들은 형보다 더 늙어 보인다. 자식들을 들들 볶으면서도 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 훤하다. 세 부자의 얼굴이 그냥 삼 형제 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 똑같은 얼굴이 되어간다. 걸음걸이와 목소리도 어쩜 그렇게도 닮았는지, 옆으로 스칠 때는 느낌이 똑같아 누가 누군지 분간이 어렵다.

  이제는 모두들 자신의 인생에 쉼표를 찍는 일이 빈번해져야 한다. 정미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리에 앉아 쉬며, 온 길을 돌아다보면 발아래 까마득한 저 길, 참 많이도 왔다. 여기저기 아프고, 어떤 땐 밥해 먹는 것조차도 귀찮다. 깐깐한 남편에 매이다 보니 가끔은 한 달만이라도 좋으니 과부가 되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튼튼한 숙자 씨가 아직까지는 내색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이다. 그것도 자기밖에 모르는 90 노인 치다꺼리를 해야 하니 말이다. 조강지처도 아닌 처지에.

  오랜만에 정미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이번에는 숙자 씨도 동행이다. 웅장한 철문을 들어서니 눈앞에 탁 트인 푸름에 정미의 가슴도 활짝 열렸다. 코끝을 스치는 싱그러움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큰오빠가 하와이로 떠나면서 차를 주고 갔기에 정미의 기분이 더 날아갈 듯 상쾌하다. 그것도 새 차나 다름없는 캐딜락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보험 등등 차에 드는 모든 비용은 큰오빠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아버지와 정미의 섭섭했던 감정이 차 한 대로 다 풀려버렸다.

  호숫가에는 하얀 오리 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한없이 펼쳐진 파란 잔디 위에 즐비하게 늘어선 소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군데군데 장식해놓은 조각들은 그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산등성이에는 무성한 잎사귀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그곳의 숲 향기가 향수처럼 달콤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 달콤함에 이끌려 눈부신 햇살이 숲을 향해 달려들어, 잎사귀들은 반짝반짝 눈망울을 굴렸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묘지, 그곳에는 생명의 힘이 용솟음 쳤다. 묘지의 의미와는 상반되는 생명력이었다. 정미는 죽은 이들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한껏 마시며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자리 잡은 이곳 글렌데일 묘지는 동양인이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시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 비문들을 둘러보면 중국 사람들을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성씨가 숱하게 많이 눈에 뜨인다. 어머니의 산소는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전망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신 떠나고, 여기 이 사람이 나를 잘 돌봐주고 있고, 또 앞으로도 내 옆에 계속 있겠다고 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나도 이제 당신 곁으로 갈 날이 머지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늘 그랬듯이, 어머니와 마주앉아 주고받는 식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정미가 같은 아파트에 살아 많이 의지가 된다는 말은 올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큰아들이 좋은 차를 정미한테 주었으니 당신도 기뻐하라는 둥, 숙자 씨의 존재에는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정미가 민망해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그녀의 손을 잡는데 갑자기 콧잔등이 시큰했다. 얼른 고개를 젖혀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떠가고 있었다.

  떠가는 구름 속에 환히 웃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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