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결혼 수정 연재 6

2012.07.12 14:14

김영강 조회 수:970 추천:156

아 버 지 의 결 혼


제 6 회



  “아버지, 돈하고 아버지 모시는 거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아버지가 돈이 한 푼도 없다 하더라도 정 계실 곳이 없으면 자식이 마땅히 모셔야죠. 그런데 지금 아버지는 그게 아니잖아요. 집도 있고 돈도 있고 부인도 있잖아요. 아버지가 우겨서 한 결혼이니까 그 결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끝까지 잘 살아야죠. 어쨌든 지금 아버지는 할머니하고 살아야 해요. 싫어도 할 수 없어요. 그만하면 할머니 아무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할머니하고 잘 살아야 오빠들도 자주 오지, 맨날 못 살겠다고 그러면 부담을 느껴 오기도 싫어한다고요.”

  아버지는 이야기를 듣는지 마는지 계속 큰아들 욕만 했다.

  “아버지, 아들네로 들어갈 생각 마시고 그 돈 가지고 아버지 펑펑 쓰고 사세요. 아니면 차라리 할머니한테 몽땅 맡기세요.”

  아버지는 또 젊은 놈, 운운하면서 그녀한테는 돈을 맡길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정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돈 관계에 생각이 엉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뒷바라지는 자기가 다했는데, 아들만 자식이고 딸은 자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가 야속하고 괘씸했다. 한데, 돈 3만 달러를 어디에 감춰놨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아버지도 은행에 비밀 박스라는 것을 가지고 있을까? 말이 나왔을 때 물어볼 걸 그 생각을 미처 못 했었다.

  느닷없이 자동차 한 대가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낡은 차였으나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도요타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두어 달 전에 그만 차가 서버렸다. 고치는 값이 너무 비싸, 버리다시피 차를 없애고 보니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아버지 전용 운전사였으니 차 한 대쯤은 사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한, 1만 달러만 있으면 쓰던 차라도 괜찮은 것으로 살 수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밤새 뒤척거리면서 정미는 한없이 치사해져 가는 자신이 비참했다. 그러나 기회 봐서 한 번 말을 꺼내보기로 작정을 했다.

  아버지는 기어이 작은아들 내외를 불러 본인의 의사를 밝혔다. 무슨 맘에서인지 돈 3만 달러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안 하고 다만 웰페어를 내놓으면 너희에게 좀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만 했다. 작은며느리는 분명하게 말했다.

  “아버님이 안 도와주셔도 저희는 잘사니까 그런 걱정은 조금도 마세요. 아버님이 할머니랑 정 못 사시겠다면 차라리 양로원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요새는 양로원이 많이 좋아져 내 집처럼 편안하다고 그래요.”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를 들먹거리면서도 작은며느리는 지극히 태연했다. 그 말씨도 아주 부드러웠다. 참으로 시아버지를 위해서 하는 소리 같았다. 아직도 건강한 시아버지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아버지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그야, 무능한 작은아들을 생각하면 암말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우두커니 앉았던 작은아들이 아내의 말에 당황했는지 얼른 아버지 계실 방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드디어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뭐 방이 없어? 옛날에는 단칸방에서도 늙은 부모 모시고 살았다. 다 그만둬라. 나 하나 나가 없어져 버리면 될 거 아니냐? 차라리 자결을 하겠다.”

  결혼 발표를 했을 때도 자식들의 반대에 자결을 무기로 들고 나왔던 아버지다. 이혼을 하겠다면서 또 자결을 무기로 들고 나왔으나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마침, 외출 중이던 숙자 씨가 들어오는 바람에 아버지의 노기는 그것으로 그치는 수밖에 없었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이상한 아버지다. 이혼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면서도 할머니한테 그 말은 절대로 안 한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나가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서도 이혼이라는 두 글자는 입에 담지 않는 것이다. 또 정미보고도 할머니한테는 일체 암말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는 아버지다. 괜히 자식들의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남편 말대로 정말 망령이 든 것일까?

  그 며칠 후, 내려가 보니 두 분이 사이좋게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아주 평화스러웠다. 돈을 숙자 씨한테 몽땅 줘버렸나? 한 번은 그녀가 없는 틈을 타서 아버지한테 돈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에게 돈을 맡겼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돈은 갑자기 무슨 돈이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정미는 아버지가 3만 달러 있다고 했는데 그게 지금 어디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아버지는 펄쩍 뛰었다.

  “내가 3만 불이 어디 있냐. 나 그런 돈 없다. 네가 3천 불을 3만 불로 잘못 들었나 보다.”

  그래도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잡아떼지는 않고 돈 액수를 10분지 1로 확 내리깎았다.

  “됐어요, 아버지. 아버지한테 돈이 있든 없든 간에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저 할머니하고 이혼하겠다는 말만 안 하시면, 아버지가 저한테 백만금을 주는 것보다 저는 더 좋아요.”

  아버지는 화난 음성으로 소리를 높이며 “알았다. 그거하고 살 테니 걱정하지 마라.”라고 역정을 냈다.

  “아버지, 그 말씀 예전에도 하셨어요. 이번에는 진짜예요. 큰오빠, 작은오빠 둘 다 아버지 못 모신다고 분명히 말한 거 기억하시죠? 작은올케 말대로 할머니하고 이혼하면 아버지 정말 양로원 가셔야 해요.”

  작은며느리한테서 힘을 얻었는지 드디어 정미의 입에서도 양로원이라는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뒤이어 아버지의 노한 음성이 온 아파트가 떠나갈 듯이 방안을 진동했다.

“지난번에는 감옥 간다고 공갈을 치더니 이번에는 너까지 양로원이냐? 왜 내가 네 신세 질까 봐 그러냐? 네 신세 안 질 테니 그딴 소리 하지 마라.”

  정미는 찔끔했다. 본심을 들켜버려 얼굴이 화끈거렸다. 쓰던 차라도 한 대 살 수 있을까 하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인 그날 밤을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 쓴웃음이 일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그녀한테 엎어져버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 가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정미에게는 불상사가 아닌 전화위복의 기회였다.

  언제부터인가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고 아랫도리가 찌릿찌릿한 느낌이 있었다. 화장실을 가는 횟수도 잦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이겠지 하고 대수롭잖게 넘겼었는데 그만 하루아침에 요도가 막혀버린 것이다. 방광결석과 전립선 비대가 요인이었다. 오래된 집의 하수도가 막힌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결석은 레이저로 깨뜨려 꺼냈으며, 비대해진 전립선은 마이크로웨이브 시술로 고온을 가해 지져서 축소를 시켰다. 시술은 완벽하게 잘 되었고, 요도도 뚫려 고통은 가셨는데 그 후의 일이 아주 번거로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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