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 콩밭떼기 만세

2. 황혼에 핀 연분홍 꽃이파리

 

이 콩밭떼기 앞에 행복의 꽃밭이 펼쳐질 기미가 쬐금 보이고 있습니다. 연분홍 꽃이 필라꼬 싹이 움트는 기라요. 그 얘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요.

우선에 급한 건 우리 사돈 양반 그레고리의 건강입니다. 암이라캐서 걱정을 억수로 마이 했거덩요. 천만다행으로 우리 사돈 양반 수술은 잘 됐다카네요.

요 암이라카는 놈도 순한놈이 있고 못된놈이 있는데, 다행히 우리 사돈 꺼는 순한놈이라고 해요. 유식하게 말해서 불행 중 다행인기라. 못된놈은 장기 안으로 침투를 해서 사람을 직이지만, 순한놈은 장기 바깥으로 실실 돌아 댕기면서 여기저기 붙는다 캅니다. 뭐라 카더라? 그 암세포 이름이··· 머더라? ··· 무커스라 카던가? 듣기는 들었는데 어려바서 가물가물합니다.

그래가꼬 마, 대장암 말기까지 갔다 카는데도 피똥도 안 누고, 배만 자꾸 아팠다 안 캅니까. 병원에서는 계속 장염이라꼬 항생제와 진통제만 줬다 카고요. 위장내시경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아무시랑토 않아서 그랬다나요? 의사가 돼 가꼬 우찌 그리 모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기 오데 말이나 됩니까? 눈 뜬 장님도 아이고!

 

한 번은 우리 딸이 지 남편한테서 들었다 캄서 그러데요.

우리 사돈 양반 그레고리는 외아들로 태어나 홀로 외롭게 자라면서, 어릴 적부터 항상 최고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눌려 산 거 같다꼬요. 그래서 아들한테도 똑같이 했지만 아들은 콧방구도 안 뀌었답니다. 아부지가 하버드 법대 가라꼬 밀어붙였지만, 판검사는 딱 질색이라, 단칼에 거절하고 육사를 지원했다지 뭡니까? 그 우에 대학원도 나왔는데, 학교에서 모두 지원을 해줘서, 아부지 신세는 일전 한 푼도 안 졌다 캅니다.

딸 또한 의사 되라꼬 무지무지 난리를 쳤는데도, 종교에 빠져 가꼬 선교사가 됐답니다. 밀어붙이고 야단친다꼬 자식이 오데 부모 맘대로 됩니까?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라예. 자식 이기는 부모 없지요.

우쨌든 간에 지금 보이 사돈 양반이 참 불쌍해요. 마음이 영 짠-- 합니다. 이노무 영어 때문에 미워한 기이 자꾸 맘에 걸리싸서 미안해 죽겠어요.

사돈 양반 퇴원하는 날, 딸을 따라 문병을 갔습니다. 세상에··· 우찌 그리 마이 말랐는지, 고마 눈물이 날라캐서, 참느라고 눈을 한 번 찔끈 감고 천장을 쳐다봤어요. 불쌍해 죽겠는 기라예. 내가 대신 아파주든가, 내 건강을 절반 뚝 떼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데예.

사돈 양반 그레고리가 나를 보고 씩 웃데예. 모기 소리로 뭐라 카는데, 영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요. 아버지 보니까 너무너무 반갑고 좋다는 말이라꼬 딸이 옆에서 통역해줬어요.

수술은 잘 되었고 곧 회복할 수 있다꼬 했지만 내 보기엔 영 아니라요. 그냥 저대로 슬슬 사그라져 먼지 맹키로 폭삭 까부라질 것 같아 계속 짠한 기라예.

, 그렇다! 산삼 싱싱하고 좋은 놈 몇 뿌리만 잘 대리 묵으모 벌떡 일어날 거 같은 생각이 퍼뜩 들어서 딸한테 얘기를 했더니만, 그것도 의사랑 상의를 해야 하고, 지금은 아마도 산삼을 묵으모 안 될 끼라면서 그냥 시큰둥했어요.

아이구 아부지, 그거 좋겠네요.” 하고 펄쩍 띠며 좋아할 줄 알았더니 그기 아니었어요. 산삼의 효력을 모리는 기이지요.

 

집에 있으면서도 사돈은 아무런 불편 없이 잘 있다고 했어요. 일본인 부인이 곁에서 일일이 다 시중을 들고 있고, 병원에서 간호사가 하루에 한 번 집으로 와서 상태를 봐준다꼬 합디다. 또 함께 사는 관리인이 집 관리를 다 해주고, 그 부인이 요리사 이상으로 음식을 잘 해서 보양식을 챙기준다꼬 항께네 참 다행이기는 합니다.

근데 보양식을 아무리 해주모 뭐합니까? 묵지를 몬 한다는데··· 그래도 안사돈이 즉시즉시 아주 맛있는 거를 따끈따끈하게 맹글어주모 쬐끔은 넘긴다고 해요.

수술을 할 수 있었고, 성공적으로 끝난 것만을 딸과 사위는 아주 큰 행운으로 여기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산삼은 좀 회복이 된 다음에 시도해 보자꼬 딸한테도 얘길 했어요. 내는 산삼을 직접 구해서 대리 묵는 거만 생각을 했는데, 알아보니까 먹기 좋게 맹글어노은 보약도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그런데, 결과는 꽝이 돼뿌렸어예. 대장을 마이 짤라내서 안 된다꼬 의사가 노오했대네요.

그것 참 이상하네요. 내는 그 반댑니다. 대장을 마이 짤라냈으니까 산삼이 더 필요할 것 같거덩요. 대장암을 장염이라꼬 오진하고, 계속 항생제만 처방해 준 의사들이 산삼의 효력을 우찌 알겠습니까?

 

근데, 이 와중에 사위가 독일로 발령이 났다지 멉니까? 3년을 나가 살아야 한대요. 지 아부지가 저리 아푼데 우찌 외국에 나가 3년이나 떨어져 있을 수 있나요? 그 안에 무신 일이나 생기모 우짤낍니까? 내 말은 아부지랑 같이 있는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마이 가지야 한다··· 머어··· 그런 뜻입니다. 아들이 옆에 있으모 아무래도 든든하게 의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 말입니다.

더구나 딸은 아프리카 선교지로 온 가족이 떠나삐리서, 아부지 아푸다는 소식 듣고도 몬 오고, 또 수술할 때도 안 왔다 캅니다. 멀리서 기도만 죽어라고 했다데요. 근데, 아들까지 떠나야 하니···

사위가 꼭 가야 하는 자리라 안 가모 안 된다 캅디다. 사위는 군인 외교관인데 국가기밀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네요. 내는 무식해서 나라 일은 모리지만··· 나라 일보다는 부모 일이 더 먼첨 아인가요? 암으로 마이 아프다는데!

우쨌든 간에 딸은 지 시아배보다 내 걱정 때문에 더 야단인 기라요.

아부지, 내가 없어도 잘 챙겨 잡숫고 몸 잘 돌봐야 합니다. 아부지 아푸모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내 걱정은 마라. 내는 건강에는 자신 있다. 세상에 내 같은 사람들만 있으모 의사들은 다 실업자 되고, 병원은 모두 진작에 문 닫았을끼다. 그라이 내 걱정은 말고, 드러누운 니 시아배 걱정이나 해라.”

아부지, 우리 시아부지는 옆에 릴리가 딱 붙어 있잖아예. 거기다가 톰이랑 데이지가 울매나 우리 시아부지를 위해 주는데요.”

릴리는 딸 시어매 이름이고, 톰과 데이지는 관리인 부부 이름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참 이상합니다. 우리 사위도 지 새엄마한테 이름을 불러요. 맞대놓고 릴리 릴리--” 하고요. 내 귀에는 너무나 버릇없어 보이고, 내가 안사돈 보기에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꼬요. 그런데도 본인들은 아주 자연스러운가 봅디다. 에이, 쌍것들도 아이고

다행히 손주 녀석들은 그랜 마. 그랜 마.”라고 불러요. 물론 내한테는 한국말로 하라버지, 하라버지하지요.

하루는 딸한테 니는 니 시어머이한테 와 이름을 부르노?” 했더니 이름을 불러주는 기이 그만큼 친한 사이라는 뜻이라나요?

그라모 다른 집 며느리도 시어머이 보고 이름 부리나?”

아입니다. ‘이라고 많이 부릅니다.“

그라모 니도 이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이가?”

그랬더니 딸이 더 친해지면요.” 그라면서 우물쭈물하더라꼬요. 그렇다면 이라고 부르는 기 릴리보다는 더 친하다는 뜻 아닌가요? 서양이건 동양이건 진리는 마찬가지인 겁니다.

잠시 뒤에 딸이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하데예. “내는어무이라고부르고 싶어예, 어무이라고

, 그 말을 들으니 고마 가슴이 팍 미어지는기라! 울매나 엄마가 그리웠시모자라면서 누구를 엄마라고 불러본 일이 없으니이기 모두 내 탓이지요, 내 탓! 참말로 미안하네요. 안사돈 보기도 더 죄송하고요.

생각해보모 내도 마찬가집니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누구를 아부지라고 불러보지 몬했으니참말로 아부지가 보고 싶네예. 딸은 지 어무이 보고 싶고, 내는 아부지 보고 싶고, 콩밭 매던 어무이도 그립고

 

딸아이는 지 시어매한테 이름 부르는 맹키고 관리인 부부에게도 이름을 불러요. “, 데이지!” 하고요.

톰은 키도 크고 덩치도 좋아, 내처럼 힘께나 쓰게 생겼어요. 정원일에서부터, 온갖 잡일까지도 척척 다아-- 잘 한답디다. 더러는 사람을 따로 쓰기도 한대네요. 수영장 청소는 전문가가 온답니다. 집이 크니까 일도 많겠지요.

톰도 흑인인데 뱃사공 사위처럼 아주 새까맣지는 않아요.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사돈집에서 같이 사는 시종이라고 하니, 어찌 보면 내랑 똑같은 팔자이기도 해요. 나 역시 이장님께서 가족처럼 거두어주셨지만, 본래는 새끼 머슴 아입니까?

내가 유복자로 태어나는 바람에 울 아부지 본 적도 없지만, 지금 와서 가마이 생각해본께 울 아부지는 이장님댁 상머슴이었을 거 같아예, 그랑께네 울엄마는 부엌데기이고, 내는 밭떼기이지요.

 

물론, 함께 사는 세 사람이 사돈 양반한테 진심으로 잘해주는 거, 잘 알지요. 어쩌면 자식들보다도 더 잘해줄 겁니다. 하지만도 사돈한테는 아무래도 핏줄이 더 땡기지 않겠습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 캤는데

우리 노인아파트에서도 그랍니다. 가끔 자식이 와서 용돈이라도 주고 가모 그 가치가 몇 배가 된다꼬요. 백 불이 천 불만큼이나 커지는 거지요. 돈에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 딸도 용돈을 잘 줍니다. 지는 그 돈으로 주로 노인들한테 밥을 사지요. 딸도 그걸 알고, 가끔 이리 말합니다.

아버지도 이제 노인이에요. 아직도 청년인 줄로 착각하고 너무 몸을 무리하지 마시고, 앞으로는 돈으로 하이소. 그것도 베푸는 거예요. 그 돈은 제가 다아-- 대드릴께예.”

 

사돈 소식이 궁금할 때는 독일에 있는 딸한테 전화를 해서 묻곤 합니다. 사돈 양반이야 내 손 안 닿아도 모든 게 잘 돌아가 불편 없이 살고 있을 터인데도 와 그리 생각이 나는지 모리겠어요. 내 눈에는 병색 짙은 사돈 양반이 자꾸만 얼른거리는 겁니다. 예전에 내가 잠시나마 미워한 기이, 미안하고,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암 수술 한 담에는 키모라는 거를 정기적으로 일고여덟 번은 받아야 되는데, 사돈은 딱 한 번 받고는 죽어도 안 받는다 캐서 중지했다 카네예. 죽어도 좋다 캤대요. 치료 안 받고 품위 있게 살다가 죽고 싶다고 했대네요.

? 품위? 품위가 뭐 얼어죽을 품윕니까? 우선은 살고 봐야 되잖습니까? 치료를 거부하다니, 그게 오데 말이나 됩니까, 어찌나 열불이 나는지 내가 고마 띠이가서 사돈한테 한바탕 해주고 싶었어요.

보소, 사돈 양반! 치료를 거부하다니 도대체 그기 무슨 소리요? 우선은 사람이 살고 봐야지, 안 그렇소? 당장에 병원 갑시다! , 요새는 백세 시대라 카는데, 와 병을 안 고치겠다는 거요, ? 뭐 죽어도 좋다꼬요. 사돈 양반은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는 말도 모르요?’

그러나 이노무 영어가 안 되니 우짜겠습니까. 딸이 있으모 덱고 가서 통역하라꼬 할 낀데 그것도 불가능하고요. 정말이지, 너무 열불 나서 통역사 하나 덱고 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꼬요 사람 목심이 걸린 일 아입니까?

한때는 사돈 양반 그레고리가 미워서··· ‘내는 영어 몬 해도 잘만 산다. 내는 영어 필요 없다꼬. 그라고, 니하고 내하고 무신 할 말이 그리 있겄노?’ 하고 큰소리로 한바탕 해주리라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는데, 그기 아니네요.

제기랄이노무 영어! 영어! 물론 치료를 받으라꼬 권유할 정도까지는 꿈도 못 꾸지요 그러나 가끔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힘내라는 말이라도 해주고 싶은 기라요.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도움이! 자주자주 찾아가고도 싶구요. 아푸모 외롭고 사람이 그립지 않겠어요? 더구나 피붙이는 다 멀리 있잖습니까?

 

젠장, 빌어먹을···, 내가 미국사돈 양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생길 줄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꿈에도 상상 몬 한 일입니다. 사돈 양반 생각해서라도 영어를 좀 배워야할 낀데, 그기 오데 마음대로 됩니까? 그래도 한 번 해볼랍니다. 영어도 사람 하는 일인데 내라고 못 할 꺼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요새는 카톡이라는 게 있어 가꼬 참 세상이 편하게 돌아가데예. 우리 딸도 수시로 전화를 합니다. 뭐 화상통화라 카던가? 와 그··· 얼굴 보고 전화하는 거 있잖습니까?

아부지 어디 안 아푸지예. 매사에 너무 무리하시지 말고 아부지 몸부터 챙기이소.”

그러면 나는 또 사돈 안부를 묻지요.

아부지, 우리 시아부지는 많이 좋아졌어예. 이제는 먹는 것도 정상이 되고 릴리랑 같이 산책도 하고 그래요. 체중도 좀 불었다고 해요.”

또 릴리야? 내 귀에는 거슬리지만, 우짭니까? 내 귀가 맞차야지요.

데이지가 그라는데, 릴리가 울매나 잘하는지 놀랄 지경이랍니다. 엊그제 화상통화했는데, 얼굴도 아주 좋아 보였어요. 목소리에 활기도 있구요. 데이지 말이 릴리 정성이 하늘에 닿았대요.”

그것 참 신기하지요? 키모를 안 받는데도 별 탈 없이 회복을 하고 있어 병원 의사들도 깜짝 놀라서 연구 대상이라 캤다네요. 진짜 그렇습니다. 내 생각에도 안사돈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식물은 농부 발자국 소리 듣고 자란다 카지요! 참말로 그래요, 정성만 있으모 비실비실 죽어가는 나무도 살릴 수 있지요. 내는 무식해서 잘 모르기는 해도,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네요. 지성이면 감천이지요, 지성이면 감천!

의사들 말입니다. 사돈을 대장암 말기까지 가게 맹근 것도 그 사람들 아입니까? 만일, 의사 시키는 대로 키모라는 걸 계속 받았시모 또 무신 안 좋은 일이 생겼을지 누가 압니까?

 

 

아이고, 세상에! 갑자기 돌발사고가 생겼습니다. 사돈한테가 아이라 관리인한테요.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 나무를 짜르다가 고마 땅바닥에 떨어졌다지 멉니까? 허리를 크게 다쳤고, 그 외에도 타박상을 억수로 마이 입었다고 해요. 몇 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때마다 하얀 이를 다 드러내고 활짝 웃으면서 내게 친절하게 대해줬어요. 말은 안 통해도 마음은 통했어요. 그 부인 데이지도 그렇고, 참 좋은 사람들입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하루는 사돈댁을 찾아가기로 맘을 묵었습니다. 예쁜 과일바구니를 사들고 집 앞에 다다르니 휠체어를 탄 톰이 마침 앞뜰에 나와 있었어요. 나를 보고 아주 반가워했어요.

사돈 양반 그레고리는 부인이랑 같이 병원에 갔다 카데요. 안사돈이 운전 몬 하는 거를 아는데, 누가 모시고 갔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두 팔로 운전하는 시늉을 하면서 후 드라이브?”하고 물었지요. 톰이 얼른 알아듣고 택시, 택시.” 하더라꼬요. 택시? 택시라꼬?

주인도 아푸고, 관리인도 아푸고··· 집도 마이마이 아파서 기가 팍 죽어 보이데요. 정원 꼴이 엉망인 기라요. 내가 그냥 샤악-- 잔디도 깎아주고 나무들도 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아 고마 말이 티이나오고 말았습니다.

말만 가지고 안 되니 손짓발짓 몸짓까지 동원했지요. 먼저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팍팍 치고, 풀 깎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아이 엠 까드나. 아이 엠 까드나, 유노!하고요. 그라고 텐 이얼스. . .”이라고 덧붙이며 열 손가락을 다 쫙 피고 10년이나 풀을 깎은 경험이 있다는 걸 강조했지요. 참 희한하게도 금세 알아듣습디다.

이렇게 시작이 돼서 그날, 내가 사돈집 잔디도 깎고, 나무도 다 손질을 했어요. 부숭숭한 잔디며 들쑥날쑥, 삐쭉삐쭉한 나무들이 새 단장을 하고 보니 내가 봐도 아주 깔끔했어요. 무엇보다도 모퉁이에 우거져 있는 잡초들을 다 없애뿌리고 나니, 들어올 때와는 달리 여엉-- 딴 집 같았어요. 톰과 데이지는 원더풀, 비우티풀을 연발했구요. 정원 다듬어 놓은 기이 그들 맘에 쏙 들어나 봅디다.

실은, 내가 잔디 깎으로 댕길 때, 손님 중의 한 분이 미용실을 경영하셨는데, 그분이 그랬습니다. 미용사가 되었더라면 아주 일류가 됐을 거라구요. 남자가요? 그랬더니 요즘은 남자들이 훨씬 더 미용 기술이 좋다고 해서 웃고 넘긴 적이 있습니다.

정말 저는 정원일을 즐깁니다. 일 손 놓은 다음에도 딸네 집 갈 때마다 정원 손질해 주면서 일을 즐겼는데, 딸이 외국으로 떠나고 나니 정말로 손이 근질근질해 죽겠네요.

일이 재미있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요. 기계도 예전 내 꺼보다는 최신식인지 힘 안 들여도 지 혼자서 방향까지 잡아가며 잘도 나가데예.

정원 손질 끝내고 야외 식탁에 앉아 햄버거까지 아주 잘 얻어먹었지요. 어쨌든 앞뒷말 다 잘라 먹고 굿, 굿, 베리 굿··· 델리셔스.” 하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하는 내 말을 그들은 다 알아 들었어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아주 기분 좋게 웃기도 하고, 부부끼리 큰 소리로 애길 나누며 즐거워했어요.

그 사람들 말이 정원사가 일이 생겨 몇 주째 못 오고 있는데 이제 곧 온다 캄서, 오늘 일 너무 마이해서 미안하다꼬, 담엔 그냥 놀러 오라고 그랬어요.

하지만 일을 해서 내는 더 좋았는걸요.

그들도 내 영어 몬 하는 거 알고, 아주 천천히 손짓발짓 해감서 행동으로 말을 했습니다. 근데 이노무 영어가 말하는 거보다는 듣는 기이 쫌 나아요. 일단, 뭣에 대해 말하는 거만 감이 잡히면, 그다음은 적당히 때리잡으모 노 프라블럼인 기라요. ....

 

막 가려고 일어서는데 우리 사돈 양반 그레고리가 탄 택시가 집 안으로 들어왔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딸 말이 그간에 많이 회복을 해서 산책도 하고 체중도 좀 불었다 카더마는, 그기 아인기라요.

운전사가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냈어요. 얼른 내가 사돈 양반 그레고리를 부축했어요. 노인 아파트에서도 휠체어 타는 분들을 모시고 병원에 댕기 봐서 내게는 아주 익숙한 일입니다.

그레고리가 씩 웃으며 온몸을 내게 맽끼데예. 휠체어에 앉으면서 댕큐!” 하고 나를 쳐다보는 얼굴에 어찌나 병색이 짙은지 가슴이 찡했어요. 안사돈도 많이 말라서 그 동글동글하고 오동통한 얼굴이 길쭉해졌더라꼬요. 그리고 기가 다 빠져나간 사람 맹기로, 살짝 건디리기만 해도 땅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어요. 수술하기 전에도, 남편 시중드느라 무리를 해서, 옆방에 입원까지 했던 거, 기억이 납니다.

온 집안 식구들이 저리 비리비리한데, 자식 둘은 먼 타국에 나가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사돈이 참 안 돼 보였어요. 저거들은 자주 화상통화 하고 사랑한다.’ 그러면서 안부 주고받고 있겠지마는 말로만 사랑하는 거,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아입니까?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해야 하는 기라요, 행동으로! 옆에서 도움이 돼야지요. 도움이! 자식들! 손주들이 자주 들랑낭랑해서 얼굴이라도 보여주모, 그것도 사돈한테는 기쁨이지 않겠어요?

멀리서 죽어라꼬 기도만 해봤자 그기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미안합니다.

 

관리인 부인 데이지가 휠체어를 밀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거를 지켜보고 있으려니, 와 그리 내가 슬픈지, 그냥 답답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차를 타려고 하는데, 그녀가 막 쫓아 왔어요.

댕큐, 댕큐.” 하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지고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어요. 그라고 그레고리, 릴리,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댕큐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을 보니 사돈이 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하라고 한 것 같았어요. 나는 잇즈 오케이, 잇즈 오케이. 노 프라블럼, 노 프라블럼,”이라고 반복을 했지요. 사실, 지는요··· ‘노 프라블럼이라는 말을 마이 써 묵십니다. 오데다 갖다 붙이도 적당히 잘 통하더라꼬요.

데이지가 다시금 댕큐라고 하는데, 다음에는 내가 운전을 해주자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리고 김 장로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어예.

앞서도 말했지만 나를 무공해인간이라고 하신 분 말입니다. 지를 좋은 사람 맹글어주시고, 또 자신감을 심어주신 분이 바로 그분입니다.

그분께서 언젠가 제게 그러셨어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모 속에다 담아두지 말고 밖으로 표현을 하라꼬요. 그래서, 장로님 말씀에 힙입어 운전이 필요할 때는 나를 불러달라는 말을 했어요.

넥스트 타임. 아이 드라이브. 노오 택시. 노 택시.” 하구요.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팍팍 치고, 운전하는 시늉을 하고, ‘노 택시할 때는 손을 내저어가면서요.

그리고 유 허즈반드 투. 아이 드라이브. 아이 드라이브.” 하고 톰이 병원 갈 때도 내가 운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린 금세 다 통했지요. 그녀는 오케이, 오케이.” 하고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아직도 손짓발짓 몸짓까지 동원해야 하는 내가 참 한심합니다. 사돈이 너는 미국 온 지 10년이나 됐는데, 어째 영어를 그리도 못 하냐?” 하던 말이 딱 맞는 말입니다.

김 장로님을 떠올리고 보니 갑자기 그분이 왈칵 그리워집니다. 몸이 안 좋아져서 얼마 전에 아들이 와서 뉴욕으로 모시고 갔거덩요.

아들네에서 같이 살다가 지금은 두 분 다 양로원에 계시다네요. 사모님도 마이 편찮으시다꼬 해요. 늙으모 몸이 성해야지··· 결국은 양로원 신세를 지는 분이 많아요. 우리 노인 아파트에서도 편찮으신 분들이 안 보이면 다들 양로원으로 갔다 캅니다.

 

집에 오자마자 바로 딸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말인즉, 사돈 양반이 그간에 많이 회복이 돼서 잘 걸어댕기고 했는데, 얼마 전에 산책을 하다가 고마 땅바닥에 주저앉는 바람에 엉덩이뼈가 뿌라져서 또 수술을 했다지 멉니까? 오른편 엉덩이 큰 뼈랑 주위의 작은 뼈도 몇 개 뿌라아졌답니다.

우째 이런 일이··· 관리인도 그렇고요.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쇠를 잘 박고해서 수술은 잘 되었으니, 회복만 되면 거뜬히 걸을 수가 있답니다. 딸한테는 내가 잔디 깎은 얘기는 안 했습니다. 그냥 병 문안차 갔다 카이 딸도 좋아했어요.

요새는 골프를 자주 치고 있는데, 가끔 가다가 허무한 생각이 듭니다. 사람 사는 기, 이기 아인데 하고요. 재미가 있어서 골프에 빠져드는 거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맹키로 골프에 미치모 안 되는 기라꼬, 내는 그리 알고 있어요. 사돈 양반 생각을 해서도 내가 풀밭에서 공이나 때리며 노니작거리고 있을 수야 없지요.

밤에 잠이 쉽게 안 와서, 가마이 누어 이런저런 생각을 한참 했습니다. 내가 일주일에 딱 한 번씩이라도 사돈집 정원일 봐주고, 병원 운전도 해주모 울매나 좋을꼬 하고요. 남 도와주는 것 맹키로 기분 좋은 일도 없지요. , 사돈은 남이 아니지, 친척이지, 가까운 친척!

그라고 퍼뜩, 수영장 청소는 남바왕을 소개하면 어떨꼬 하는 생각도 떠올랐습니다. 남바왕은 내가 잔디 깎으로 댕길 때 같은 집 풀 청소를 해서 알게 된 친군데, 사람이 정말로 구수합니다.

고향이 이북인데, 영어도 이북 억양을 넣어 웃기게 씨부렁거려서 배꼽을 잡게 하는 아주 재미나는 사람이라요. 영어 몬 하는 거를 모면할라꼬, 끄뜩하먼 엄지를 척 치켜들고 남바왕! 남바왕!”이라고 외치는 바람에 별명이 남바왕이 됐어요. 상대방 얼굴을 보고 대충 이때다 싶을 때, 탁 감을 잡아서 커다란 몸짓까지 하며 남바왕이라고 외치면 다 통하고, 상대방도 활짝 웃으며 좋아하더라나요?. 성실해서 믿고 일을 맽낄 만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모 얘기해 볼랍니다.

지금은 잔디 깎는 사람도 오고 풀 청소하는 사람도 오고 있으니, 물론 말을 말아야지요. 그 사람들 밥줄이 더 중하니까요.

한참 손 놓았다가 아까 낮에 잔디를 깎는데, 물 만난 물개 맹키로 어찌나 신이 나는지 풀밭을 훨훨 날아댕깄다니까요. 이런 맘도 모리고 딸은 아부지 무릎 망가진다고 못 하게 할 게 뻔합니다.

딸네 정원 손질해 줄 때도 잔디는 절대로 못 깎게 했습니다. 정원사가 정기적으로 왔고, 내는 그냥 나무들 다듬어서 더 보기 좋게 맹글어준 기라요. 옆집에서 보고 낼로 소개해 달라고까지 했는데 딸이 절대로 몬 하게 했어요.

 

병색 짙은 사돈 얼굴이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맘이 답답합니다. 답답한 기 더 답답한 거는 영어를 몬 해서 더 그런기라요. 톰하고는 뭐가 통하는 것 같고 맘도 편하고 하니, 이런 내 맘을 그한테라도 다아-- 표현을 할 수 있으모 울매나 좋겠습니까? ··· ···, 내가 이런 상황에 부닥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영어 몬 하는 기이··· ··· 천추의 한··· 그 정도는 아이라도··· 그 비슷한 그런 기분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너무나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가 영어에 통탈을 한 기라요. 물론 현실에서였지요. 꿈도 현실 아입니까!

! ! 꿈이었지만 우찌 그리 통쾌하고 기분이 좋은지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우리 사돈 그레고리한테 영어로 좔좔좔좔 말을 하는데, 꿈속에서도 내가 놀래서 뒤로 나자빠질 뻔 했지 멉니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납니만 유창한 영어로 씨부렁거렸다니까요. 그리고 또 관리인 톰한테도 머라꼬 한참 얘길 하고요

평소에 생각하던 거를 꿈에서 실천을 한 깁니다. 한데 그 꿈이 고만 금세 깨버렸십니다. 꿈에서는 그리 통쾌하고 행복하더니 깨고 보니 무척이나 허전하데예.

 

사돈 관계만 탁 빼삐리모 내가 영어를 해야 할 필요는 진짜 없습니다. 마켓에 가도 한국말, 쇼핑센터 가도, 병원 가도··· 다 한국말이 통하니까요.

하루는 한국마켓에 갔는데, 이층 분수 앞에서 장애우 모금행사가 열리고 있었어요. 보니까 청중들이 외국 사람도 꽤 있어요. 그라고 사회 보는 사람은 한국말을 주로 하면서 영어도 섞었는데 미국 사람 맹키로 유창하게 자알-- 했어요. 그러다가는 또 멕시코 말도 하는 거야요. 진짜 신기하데예.

저 사람은 머리 구조가 우찌 생겼을까 하고, 존경이 갑디다. 한데, 여자 둘이서 노래를 부르는 순서에서 굉장히 감명을 받았어요. 1절은 영어로 부르고 2절은 한국말로 불렀는데, 귀에 익은 곡이었어요. 제목이 뭐더라? 내가 학교는 마이 못 댕깄지마는 노래에는 좀 소질이 있고, 무슨 곡을 들으모 그 곡이 금세 귀어 들어와요. ! ‘유 레이즈 미 업’, 바로 그 노래였어요. 곡도 감동적이나 가사 역시 감동적이었어요. 찰말로 참말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귀에는 천사의 노래처럼 들렸어요. 둘다 나이가 한 50은 돼 보이는 중년여자였는데 날개만 달면 영락없는 천사였어요. 장애우들에게 사랑을 전하려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져 돕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샘솟았어요.

저 여자들에게 혹시 장애 자식이 있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기도 했지요. 살펴보니, 어쩌다 잔돈을 모금함에 넣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관심하게 지나쳤어요.

나는 커피가게로 달려가 커피를 사다가, 노래를 마친 두 여자에게 건네주고, 주머니를 뒤져 나오는 돈을 모두 모금함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장보는 걸 깜빡했지 멉니까? 노래 듣는데 정신이 팔려 장보는 걸 잊고 그냥 왔네요!

어쨌든 다 좋다, 나는 오늘 천사를 만났으니까!‘

 

 

딸 얘기를 들으니, 병원에서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집으로 온다네요. 톰한테도 물리치료사가 집으로 와서 운동을 시켜준다고 했어요.

딸한테서 안부를 듣고는 있지마는, 사돈 얼굴에서 병색이 좀 가셨는지, 또 관리인이랑 안사돈 상태는 우떤지가 참 궁금했어요. 내 눈에는 안사돈도 환자로 보였거덩요.

지난 번 갔을 때 관리인 부부가 담에 또 놀러오라는 얘기도 했고, 또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잘 돌아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또 가보자. 궁금해서 죽겠는데 못 갈 거는 없다 아이가. 하고 갔습니다. 집도 그리 안 멀어예. 행콕팍이라고, 우리 아파트에서 15분 남짓밖에 안 걸립니다.

관리인도 우리 미국사돈 양반 그레고리도 굉장히 반가워했어요. 아직도 둘 다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지만 지난번보다는 혈색이 좀 나아 보였습니다. 회색빛이던 사돈 얼굴 색깔이 마이 하얘지고요. 그런데 안사돈은 더 초췌해 보였어요. 어쩐지 걱정스럽데예.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드는 기 쫌 이상했어요.

정원사가 온다꼬 하는데 집 꼴이 별롭디다. 다들 몸들이 그러니 집을 예쁘게 가꾸고 어쩌고 하는 그런 맘이 시들하겠지요 자식들도 좀 왔다갔다하고 손주들도 띠이 댕기고 해야 집이 활기를 띨 터인데, 그 분위기가 완전 바람 빠진 풍선 같았어요.

내가 영어를 잘해, 재미나는 얘기도 해서 기쁨조 노릇을 하면 울매나 좋겠습니까? 내가 잘하는 거라고는 정원 손질하는 거밖에 뭐가 더 있겠습니까? 그들도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길을 터서 병문안도 할 겸 가끔 가서 정원 손질을 깔끔하게 해주었지요. 더러는 김밥도 사 가꼬 가고요. 한 번은 삼계탕과 갈비탕을 사 가꼬 갔어요. 사람이 넷이니 누가 묵어도 묵겠지 하고요. 설마 버리기야 하겠습니까. 근데 효과 백프로였어요. 안사돈이 삼계탕을 그리 좋아했대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삼계탕을 꼭꼭 사들고 갔지요. 산삼 생각을 또 했어요. 사돈에게 안 맞으면 안사돈한테라도 해줘야지 하구요. 일본 사람이니 산삼의 효력을 알지 않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간호사가 왔어요. 뜻밖에 한국 여자였어요. 참 반가웠습니다. 가늘가늘한 몸매에 아주 곱게 생겼더라꼬요. 어디서 본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어디서 봤더라?

그날도 정원 일을 좀 봐주고, 관리인 부인이 차려 놓은 햄버거를 맛나게 잘 먹고 막 일어서는데 간호사가 일을 끝내고 집 안에서 나왔어요. 안사돈이 따라 나오며 미스 명이라고 소개를 해주었어요,

미스 명? 아주 희귀한 성을 가졌군. 근데 쉰은 족히 넘어 보이구먼, 곱게 생긴 여자가 와 시집을 못 갔을꼬?’

! 그때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언젠가 한국 마켓 갔을 때, 이층 분수 앞에서 있었던 장애우들 모금행사에서 노래를 부른 바로 그 여자였어요. 천사! 천사! 바로 그 여자였어요. 두 여자가 이중창을 불렀는데, 참 감동을 받았었지요. 그날 내가 주머니를 탈탈 털어 있는 돈을 몽땅 장애우 모금함에 넣은 기억이 납니다.

보아하니, 안사돈과는 아주 친한 사이 같았어요. 딱 찝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둘 사이의 분위기에 은은한 사랑과 믿음이 흐르고 있다고 할까요?

어쩌다 보니 간호사랑 같이 길거리까지 나와서 간단히 인사를 하고 각자 차를 탔지요. 뭐가 그리 바쁜지 그녀는 부리나케 떠나데요. 한국 사람이라 내는 디기 반가웠는데 그녀는 그런 기색이 통 없어 보였습니다.

쌀쌀맞아 보여 말을 붙일 엄두도 안 나, 얼마 전에 노래 부르는 거, 봤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날 노래를 한참 동안 들었지마는 물론 간호사는 나를 기억할 리가 없지요. 글쎄요. 커피를 건네주기도 했지마는.

아파트 앞에 막 당도했는데, ? 내 앞에 주차를 하고 내리는 사람이 바로 명 간호사였어요. 얼떨결에 나도 차를 세우고 내렸지요.

근데 그 간호사 첫마디가··· 나 참! 기가 맥혀서··· “왜 날 따라오세요?” 글쎄, 그러잖겠어요? 말투가 우찌나 쌀쌀맞은지 찬물을 뒤집어쓴 거 맹키로 전신이 오싹했어요. 쌍을 약간 찌푸리고 나를 째려보는 얼굴이 성질께나 있게 생겼더라꼬요. 이런 여자, ‘아이고 무서바라.’ 하고 남자들이 도망가기 딱 좋지요. 이런 걸 올드미스 히스테리라 카나요?

세상에··· 분수 앞에서 노래 부를 땐 완전 천사였던 여자가 이리도 돌변할 수가 있 있나요? 악마 정도는 아니었으나 마, 그 사촌쯤은 될 것 같았습니다.

낼로 우찌 보고? 이거 원! 70고개를 바라보는 내가 여자 꽁무니를? 내는 젊디젊을 적에도, 아니 일평생을 통털어서도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는 남자라요.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오데요. 그러더니 금세 바로 말을 이었어요.

저한테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얼굴은 좀 펴졌으나, 이번에 완전 석고상이라요. 세상에··· 기가 맥혀도 유분수지··· 내기 첨 보는 여자한테 무신 할 말이 있겠습니까?

아닌데요. 내는 간호사님 따라 온 것도 아이고. 할 말도 없는데요? 요오-가 내가 사는 뎁니다.”

하도 기가 차서 아파트 건물을 가리키면서 말을 했지요. 물론 상대방 말투에 버금갈 만치 아주 퉁명스럽게요.

나는 이 여자 차가 내 앞에서 가는지 어쩐지도 모르고 집으로 왔거덩요.

간호사가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져 가꼬는 안절부절못하고 미안해 했습니다.

아이--- 죄송해요. 이를 어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어요. 저는 사돈에 관해서 뭐 궁금한 것이 있나 하고···”

사돈?’ 아마도 그레고리 진료 중에 내가 사돈이라고 애길 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너무 앞서갔네요. 서로가 오해를 한 거였어요. 무척이나 멋쩍었습니다.

사실, 사돈에 대해서 궁금한 기이 너무 많지요. 딸은 맨날 좋은 소리만 하지만 오데가 울매나 아픈 건지, 엉덩이 수술한 기이 다 나아서, 앞으로 진짜로 걸을 수가 있는 긴지, 또 사돈은 무신 생각을 우찌하고 있는 긴지, 다아궁금하니까요. 내는 마, 건강 하나는 타고나서 평생 병원 한 번 안 가보고 살았으니 아픈 사람 마음을 모르지요. 알 수가 없는 기라예.

 

한데, 간호사 아버지가 내랑 같은 아파트에 삽디다. 내가 잘 아는 분이었어요 몇 번 병원에도 모시고 간 적이 있는 분이었어요. 한국에서는 대학교수였다꼬 해요. 아 그라고 본께, 교수님 성씨가 명 씨네요. 90이 다 돼 가는 분이라, 몸은 약하신 데도 기억력도 좋으시고 아주 총명하십니다. 정부에서 영어 편지가 오모 지는 얼른 교수님한테 가꼬 갑니다.

부인이 딸처럼 젊어서 이상하다 했더니, 5년 전에 재혼을 하셨대네요. 그랑께네 80이 넘어서 재혼을 한 거라요. 놀랄 일입니다.

학교 때 제자였대요. 사모님 생전에도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사모님 돌아가시자마자 딱 달라붙어서 안 떨어졌대요. 옛날부터 교수님을 사모하던 터라 참으로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위한다꼬 합니다. 지한테 반찬도 가끔 해다 주십니다. 솜씨가 참 좋으세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혼자 살다 보니 아파트 할매들이 신세를 졌다 캄서 반찬을 가꼬 오기도 해요. 늙은 할매나 젊은 할매나 다들 내 보고 아저씨, 아저씨.” 합니다. 더러는 애교를 부리는 할매도 있지요. 내는 그런 거 마아, 딱 질색입니다. 이거 원··· 징그러바서···

교수님 부부께서는 유일하게 지를 공 선생이라고 불러줍니다. 아들 셋은 다 한국 살고 막내딸만 미국 있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 딸이 바로 사돈 간호사라니,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옛말이 딱 맞아요. 맞아! 그녀는 미국 와서 간호사 자격증을 땄지만, 병원에서 근무하지를 않고 파트타임으로 가정에만 파견을 나간다고 하네요.

사나이 콩밭떼기 인생 황혼에··· 이렇게 한 여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성질께나 있게 생겨 아이고 무서바라.’ 하고 남자들이 딱 도망가기 좋은 여자라고 결정타를 날린 바로 그 명 간호사라요. 하지만 천사였던 첫인상이 자꾸 생각나는 건, 또 무신 일인지··· ··· . 우찌 돼 갈긴지 내도 감이 안 잡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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