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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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삶의 균형 / 수필

2021.07.12 14:08

민유자 조회 수:26

삶의 균형

 

 균형, 런스! 참 아름다운 말이다. 우리는 훌륭한 예술작품 속에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조화된 균형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한다. 균형이 깨지면 아름다움도 망가진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삶의 균형이 깨지면 불안해지고 행복은 그 찬란한 빛을 잃어버린다.

 

 둘째 손자가 카타리나섬에 다녀오는 날, 집에 들어오면서 검지를 치켜들고 우는 시늉을 했다. “아우 아퍼! 독수리가 내 손가락을 물었어요!” 곧추세운 검지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가 부리를 박고 손가락 끝에 얹혀 있다.

 

 기념품으로 사 온 이 독수리는 무게 중심이 부리 끝에 모여 있다. 독수리의 외양으로 보면 부리는 제일 앞쪽이고 몸체는 뒤에 있어서 부리 끝에 무게 중심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완벽한 무게 중심을 부리 끝에 두고 족한 위에 오뚝 균형을 잡고 선 독수리의 묘기가 신기하게 보여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있다.

 

 우리는 어쩌면 걸음마를 배우기 이전부터 애써서 균형감각을 키워왔다. 외줄을 타며, 평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떨어져 내릴 위험을 안고 비틀거려야 하는 광대처럼, 위험천만한 곡예를 멈출 수 없이 감내하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삶에서의 균형은 물리적인 평형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데에 있다. 개인적인 기호와 의무를 사회적인 인종, 문화, 관습, 종교, 철학의 관념에 어떻게 안배하고 접목하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루어간다.

 

 체력은 팔과 다리의 길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하루는 24시간으로 제한되어 있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쓸지, 내게 허용된 물질은 어디에 어떻게 소비할지, 인간관계는 어떻게 형성해 갈지, 순간순간의 선택은 이어지고 합쳐져서 인생을 직조해 낸다. 일차원도 아니고 이차원도 아니고 삼차원도 아닌 다차원의 복합적인 영향을 분별하여 선택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은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른 선택은 방향을 비뚤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허나 심사숙고할 충분한 시간의 여유가 없음에도 우리는 순간순간 숨차게 밀려오는 선택의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때로 우리가 절치부심 골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모를 일이 종종 생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진퇴양난에서 끙대지만 시간은 동정심이란 눈곱만큼도 없이 매정하다. 기다려주지 않고 달려가 버린다.

 

https://youtu.be/_mR0gvnyCxU

 

 삶의 균형은 평형이 잘 잡혀야 하지만 평형은 평등하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균일하고 균등하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보고 느끼기에는 크고 무거운 일이 실제로 작고 가벼운 일에 중요성과 가치를 양보해야 할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다양한 색깔과 크기와 비중이 어우러져서 대비와 대칭, 보완으로 조화를 잘 이룰 때에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우선과 차선의 순위가 분명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은 것, 싫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을 면밀히 저울질해서 선택하고 실행해야 한다.

 

 때로 개인 삶의 균형이 깨질 때는 가정의 틀이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삶에 균형이 너무 크게 깨져서 그 파급이 가정의 틀을 넘어서면 사회가 보루가 되어야 한다. 법과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사회 균형이 깨진 물결이 너무 거세면 나라까지 흔들리게 된다. 이에 예술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삶의 균형도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말인지 절감하게 된다.

 

 균형은 잘 잡아놓아도 세파와 풍파에 곧 밀리고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을 재간은 없어도 균형이 아주 깨져버리는 불행을 맞지 않으려면 개인에게는 가치관의 확립이, 사회에는 건전한 제도가, 국가에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요구된다.

 

 둘째 손자가 카타리나에서 사 온 독수리 미니어처를 나무젓가락 끝에 얹어보았다. 10도쯤의 기울기로 이쪽저쪽 기우뚱거리며 빙그르르 돌다가 오뚝 멈춰 섰다. 날개를 활짝 편 모양이라 마치 나는 듯, 뾰족한 끝에 얹힌 모양새가 다시 봐도 신기하다.

 

 때로 큰 국난이나 사회적인 불안 상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불굴의 역경을 딛고 두각을 나타내는 선견지명이 있는 인물이 나타날 때가 있다. 이런 위인들은 벼랑 끝에 서 있을수록 밤하늘의 별처럼 길이 빛난다. 이들의 선견지명은 어쩌면 확고한 가치관의 정수를 한눈에 알아보는 비범한 투시 역량이 있고, 이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거침없이 희생할 수 있는 결단력과 실행 능력이 있었던 결과이리라.

 

 나 같은 범인은 개인 삶의 균형, 좀 더 나아가 가정의 균형만 잘 잡아나가도 성공한 인생이다. 가정 안에서 사랑과 존중, 격려와 타협, 책무의 분담, 비전의 공유를 잘 조화시켜 매끄럽게 꾸려나가는 일만도 벅차다.

 

균형 잡힌 가정에서 뿌려진 씨앗들이 대를 거르는 동안, 누가 알랴? 인류에 보이 되는 거목이 생성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