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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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생존은 전투다 / 수필

2021.07.12 20:18

민유자 조회 수:55

생존은 전투다

이른 아침부터 서너 시간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숨을 몰아쉬며 전투를 치르느라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아침나절 끝난 일이지만, 온종일 문득문득 생생하게 떠오르고 그 파장이 전해와 진저리를 친다.

 

 월요일은 쓰레기 수거 날이다. 언제나 일요일 저녁에는 쓰레기통을 대문 앞 길가에 내어놓는다. 월요일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에 나갔다가 경악할 광경에 온몸이 잠시 얼어붙었다. 검은 쓰레기통에 살진 하얀 구더기가 쌀 튀밥을 한 주먹 뿌려놓은 듯했다.

 

 불 난 데서 콩 튀듯 다시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와 비와 쓰레받기, 파리약 스프레이를 들고 뛰쳐나갔다. 스프레이를 마구마구 잔뜩 뿌리고 비로 쓸어내리고 쓸어 모아서 비닐봉지에 넣고 봉해 버렸다. 그런데 쓰레기통 안쪽 아래에서 계속 올라오는 파리의 유충을 막을 길이 없다. 스프레이는 파리에게는 약효가 있지만 유충에게는 전혀 소용없는 것이 이상했다. “어쩌면 좋지?”

 

 어렸을 때 비가 오면 길가로 나오는 지렁이에게 철없이 소금을 뿌리고 구경하던 생각이 번득 났다. 스프레이로 젖은 쓰레기통 안쪽 벽에 소금을 하얗게 뿌려두고 집에 들어와 15분쯤 후에 나 가보았다. 어느새 구더기는 소금의 방어 진지를 통과하여 밖으로 나오고 있다. “세상에 빠르기도 해라! 이걸 어쩌지?”

 

 머리를 짜내어 이번엔 식초를 뿌려봐야겠다고 3배의 강초를 두 부통에 담고 페이퍼타월을 적셔서 쓰레기통 벽에 줄줄 흐르도록 발랐다. 잠시 후에 나가보니 웬걸, 불퇴의 철군인가 용감성을 가진 구더기 군대는 돌격을 계속하여 여전히 쓰레기통을 기어올라 밖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사람 피부라면 화상을 입을 만한 강한 식초도 이놈들에게는 하나도 소용없었다.

 

“이제 무슨 수를 써보나?”

 

“혹시 크로락스를 한 번 뿌려볼까?” 크로락스를 쓰레기통 벽에 줄줄 흘러내리도록 뿌려두고 10분쯤 있다가 다시 나가보았다. 기가 막히게도 통통한 이놈들은 조금도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씩씩하게 물꼬물 다시 기어오르고 있었다.

 

 약할수록 강한 이치인가? 하잘것없는 미물이지만 치열한 생명력은 정말 강했다. 내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숨막히는 불볕더위가 여름 곤충에게는 원기 충천한 최적의 기후인가보다. 나약해질 대로 약해진 인간인 나는 보잘것 없는 구더기에게 이렇게 무참히 공격당하고, 쩔쩔매면서, 다 죽어가는 지경의 몰골이 된 것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었다. 어불성설이지만 난 전투에서 계속 밀리고 지면서 지쳐가고 있었다.

 

 쓰레기 수거차가 오려면 아직도 서너 시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내 어깨 높이의 무거운 쓰레기통을 밀고 당기며 쓸고 닦고 집안으로 들락날락 진이 다 빠진 난 더 이상의 속수무책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폭염을 무릅쓰고 계속 쓰레기통에 붙어 서서 줄곧 벌을 서려면 기진맥진하여 쓰레기통 옆에서 졸도할 지경이었다. “결코 단념도 포기도 할 수 없는 이 전투를 어찌한다?”

 

 우둔한 머리를 짜고 또 짜내어 생각해 낸 파리약도, 소금도, 강초도, 크로락스도 다 소용없었는데 의외로 밀가루가 신기하게 효험이 좋았다. 쓰레기통의 젖은 벽에 밀가루를 하얗게 뿌려주었더니 적진의 군대가 더 이상의 전진을 멈추었다. 안심하면서도 미심쩍어서 10분 간격으로 세 번을 확인했지만 적진은 고요하기만 했다. 이로써 전쟁은 깨끗이 끝났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생존의 전쟁은 끝날 수가 없다. 지금도 내 안에서, 내 주위에서 계속되고 있다. 요즘도 한창인 팬데믹 상황이 이를 확실히 말해 주고 있다. 개체로는 자생할 수조차 없는 작은 바이러스가 지구상의 온 인류를 쩔쩔매도록 위협하는 소동을 벌이고 있다.

 

 생명은 생로병사의 흐름을 타고 존재하고, 그와 함께 소멸과 생성의 수레는 지구의 공전, 자전과 함께 계속 돌고 있다. 생존은 전투다.

 

 https://youtu.be/vJ-XWkZgd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