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친구

2022.02.19 18:17

조형숙 조회 수:25

바람이 몹시불고 비마저 내리는 이른 아침 Sakura Garden에 들어섰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노인 아파트다. 비맞은 나무를 스치는 공기는 맑고 신선하다. "오하요" 안내직원 료코상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란히 서있는 두개의 엘리베이터중 하나가 열린다. 안에는각각 자기의 워커를 잡은 사람들이 인사한다. 처음 보지만 서로가 미소지으며 공손하게 인사하는 이곳 사람들의 눈빛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깨끗하게 청소된 3층의 긴 복도를 지나 오른쪽 끝방의 문을노크했다.  "어서와요. 많이 기다렸어요. 와줘서 고맙습니다." 하며 고마키상이 두 손을 흔들고는  또 양손을 모으고 "아리가토"를 반복했다. 

고마키상이 병원갈 때 여러번 도와드렸었다.  친절하고 고운  일본 여인이다. 아주 건강했는데 며칠 전 샤워하다가 미끄러져 머리와 팔꿈치를 바닥에 부딪혔다.  병원을 다녀왔고 큰 이상은 없으나 목 보호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얼마동안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고마키 상은 93세가 되었지만 서랍에 가득, 책상위에 가득있는 병원서류와 일반서류를 손수 구분하고 정리한다.  세라믹클래스에서 컵이나 접시를 만들어 식탁을 장식한다. 자신이 만든 아주 작은 인형과 뜨개질한 옷들, 잘 정리된 부억의 서랍들, 일본인 특유의 정갈함이 집안 곳곳에 묻어있다.

이 곳은 하루 세번의 식사가  준비 되어 있고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어 각 사람들의 건강을 체크 해주고 있다. 식당에는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 있고 고마키상의 테이블에는 두명의 팀원이 더 있다. 세사람이 다 성품이 좋아 다른 테이블에서 부러워하고 또 기회가 되면 이 테이블에 오고싶어 한다고 했다. 그들은 깔끔하고 친절하며 서로를 칭찬해준다. 
 
오후에는 영화를 함께 본다. 옛 영화를 보는데 주인공의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고마키상도 생각이 안난다고 했다. 영화가 끝이 날때 쯤 "아 생각났어요 스티브 맥퀸" 내가 소리치자 "맞아요 맞아" 박수를 치며 알아낸것을 함께 기뻐했다. 고마키상이 몸이 아프면 나도 함께 아프다. 심한 주사로 종아리부터 엉덩이까지 붉은 반점과 가려움증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손끝으로 살살 긁어주면 시원해하고 행복한 얼굴로 "아리가토"라 반복한다. 나도 시원하다.
 
일본여행 갔을 때 첫인상이 좋았다. 조용한 전철안에서 책을 읽고 뜨개질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들의 생활습관과 절약정신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칙중심, 정직하고 자존감 높은 국민의식을 통해 어떤 삶이 행복한지 배우게 되었다. 한번 신세를 지면 끝까지 잊지 않는다. 말이 상냥스럽고 잘 웃으며 침착하고 질서정연하다. 엉클어진 두나라의 복잡한 관계가 있음에도 그들의 태도는 닮고 싶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때 배운 일본어가 지금 일본인과 일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나이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고마키상과 나는 만나면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는다. 나는 그녀를 도울 수 있어 기쁘고 그녀는 도움을 받고 감사해 한다. 빨리 회복되기를 원하고 성심을 다한다. 같이 영화를 보고, 대화가 통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우리는 친구다. 그녀는 나의 좋은 어른 친구다. 좋은 하루, 행복한 하루, 남을 돕는 기쁨이  따스함으로 가슴 가득 퍼져온다. 국가를 초월한 친구같은 마음이 좋다. 사람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넓어지면 내면의 삶에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어 좋고 많은 경험을 통한 지혜를 배울 수 있어 좋다. 나도 지혜로운 어른이 되기위해 맑은 정신과 바른 태도를 가꾸는 일을 어른친구에게서 배운다. 아쉬워 하는 친구 고마키상의 모습을 뒤로 하고 아파트의 문을 나서는 자동차 위로 아직도 세차게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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