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4 00:23
이방의 봄
전희진
노루의 그루잠을 닮았다
자고 나도 끝없이 빠져드는 잠, 쏟아부어도 밑이 없는 잠 자고 나면 노루는 저만치 가고 나는 노루를 쫓아가지 못하고 또다시 잠에 들고 너를 만나기 전까지 빠질 데라곤 잠 밖에 없어
잠 속에서 잠의 의자에 걸터앉아 너를 기다린다 네 쪽으로 민들레의 앵글을 맞추고 꽃샘바람에 흔들리며 끝까지 가보는 일 민들레 가벼운 몸으로 저 멀리 흩어지는,
엘에이에서 피닉스 앨버커키 밀워키 선셋키로 퍼지는 잠 펴지는 잠, 잠의 일취월장을 꿈꾸는 일
너는 쫓기듯 훌쩍
그 땅을 떠나왔지
의지도 없이 숨 돌릴 마땅한 의자도 없이
떠나와서 잘 먹고 잘 살았지 그렇지 나는 잘 먹고 잘 살았지 수억 원 대 원어민 영어 과외를 않고도 이마에 부딪히는 모서리의 간판은 모조리 영어 싸구려 껌까지 영어였지
봄비 오는 날
수취인 없는 이국땅바닥에 들러붙은 아빠 아스팔트 금 간 틈으로 삐져나온 초록빛 엄마
바람 불어 초과한도 금액 위를 훌쩍 날아가는 오빠 꿈속에서 멋진 블론드영어를 쓰며 말하며 나는 영어의 몸이 되어갔지 저녁이 낙관을 찍듯 잠정 노을을 내렸지
2024년 <웹진 시산맥, 창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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