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진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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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죽음의 상자를 전시하는 사람

2026.01.27 22:58

1 조회 수:18

죽음의 상자를 전시하는 사람

전희진

 

 

병을 나열하는 방식이 그가 사는 이유가 되었다

외출 때는 중절모를 눌러쓴다

최대한 깊숙이

그러나 그의 병은 쉽게 발각된다

 

몸 안에 갇혀 있던

불온한 징후들이 쏟아져 나와

그의 삐쩍 마른 몸 위로 물길을 낸다

약병들은 화장실 벽에 길게 늘어지고

 

죽음이 그의 어깨를 누른다

목과 무릎을 눌러본다

그는 생존한 채

장례식이며 입관을 미리 다 마쳤다

왼쪽 수의 주머니에 부의금마저 챙겨 넣었다

 

그의 아픈 몸이

죽음을 남발하던 그가

동서남북 지인들의 전화기통에 눌어붙으면

양치기 소년의 말처럼

그의 병은

아무런 중력도 갖지 않아

다소 쓸쓸해진다

 

서랍 속의 알약들이

알록달록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

 

염소나 반려견 하나 없이도 그가

하루해를 접듯

하루는 왼발

또 하루는 오른발

춤을 추듯 의기양양 집으로 향한다

알약 한 두 알씩 쏟아가며

죽음도 조금씩 전시하면서

 

 

-2025년 외지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