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7 22:58
죽음의 상자를 전시하는 사람
전희진
병을 나열하는 방식이 그가 사는 이유가 되었다
외출 때는 중절모를 눌러쓴다
최대한 깊숙이
그러나 그의 병은 쉽게 발각된다
몸 안에 갇혀 있던
불온한 징후들이 쏟아져 나와
그의 삐쩍 마른 몸 위로 물길을 낸다
약병들은 화장실 벽에 길게 늘어지고
죽음이 그의 어깨를 누른다
목과 무릎을 눌러본다
그는 생존한 채
장례식이며 입관을 미리 다 마쳤다
왼쪽 수의 주머니에 부의금마저 챙겨 넣었다
그의 아픈 몸이
죽음을 남발하던 그가
동서남북 지인들의 전화기통에 눌어붙으면
양치기 소년의 말처럼
그의 병은
아무런 중력도 갖지 않아
다소 쓸쓸해진다
서랍 속의 알약들이
알록달록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
염소나 반려견 하나 없이도 그가
하루해를 접듯
하루는 왼발
또 하루는 오른발
춤을 추듯 의기양양 집으로 향한다
알약 한 두 알씩 쏟아가며
죽음도 조금씩 전시하면서
-2025년 외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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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시(詩)를 대할 때마다, 이산해는 착각에 빠진다. / 마치 먼지 쌓인 유리창이 닦이 듯, 마음의 안쪽이 조용히 투명해지는 느낌 / 나는, 전희진 시인의 문장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해진다 / 분명 영혼의 깊은 저장고(貯藏庫)에서 길어 올려질테지 / 우아한 시인은 / 화려한 언어를 간직한 사람이 아니라, 언어가 되기 전의 진실을 끝까지 훼손하지 않고 품은 사람이;라는 것을 / 그래서 "죽음의 상자를 전시하는 사람"을 읽으면 / 덩달아 영혼이 맑아지는 것이다 / 시인의 언어가 아니라, 시인의 침묵이 나(이산해)의 영혼을 씻고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