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11 21:47
1. 종이저택
푸른 심장을 가졌지만 나는 구겨지기 쉬워요
이천 육백 스퀘어 피트
당신의 조바심만큼의 넓이
흰 종이 위에서 펜촉이 그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공간을 품지요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심장
선과 선 사이
틈마다
봄빛이 들이쳐서 가늘게 떨리게돼요
내 몸 구석구석 활기로 가득 찬,
당신이 나를 불러준다면
지금은 그저 약간의 공터, 바람만 드는
아무도 집이라 봐주지 않지만
그건 오늘의 편견
나는 평면이란 완벽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태아처럼 손이나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대신 나는
잉크로 숨 쉬는 벽
바람으로 세운 계단입니다
집을 둘러싸며 피어날 몇 그루의 꽃나무 곁에서
당신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려요
당신이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앞으로 다섯의 계단이 펼쳐지고
창문과 벽이 입체적으로 세워지고
집안에는 새로 칠한 페인트 냄새가 감돌아요
문을 열면
작은 현관이
좁은 복도가
햇살을 끌어안은 거실이 생겨나요
당신이 나의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침대가 놓인 방으로 거듭나요
당신이 나를 사랑이라 불러준다면
*김춘수의 ‘꽃’
-시와정신 2025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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