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어무이

2008.12.17 09:24

김진학 조회 수:887 추천:189

낡은 어무이 / 김진학


밤이 길면 겨울도 깊었다
댓돌엔 눈이 쌓여
고무신은 눈이 되었고
눈은, 선이 고운
동양화가 되었다
눈은 은밀했고
재봉틀은 달달거리며
눈 내리는 소리를 그려냈다

젊은 군인의 소매를 끄는
밤거리 여자의 강한 화장품냄새를 지나
품위를 따지는 롯데백화점 VIP코너를
하닐 없이 기웃거리다
라면 한 개만 사먹게 천 원만 달라는
영등포 역사 앞의 취한 노숙자 손 위에
오백 원짜리 동전 몇 개를 던지고
지하도를 건너 만난
어묵이 풍덩풍덩한 포장마차에서
어머니와 거친 손만 닮은
여자가 내주는 소주가
초저녁 겨울과 만났다
여자가 돌리는 국수틀 손잡이가
재봉틀 손잡이를 닮았다

아들딸이 있는 자식을 보고

'아저씨는 눈교?'

어머니는 너무 낡아
평생을 돌려 고장이 밥먹듯 하던
재봉틀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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