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0
전체:
43,545

이달의 작가

오징어 찌개

2013.04.17 06:53

최영숙 조회 수:629 추천:123


   살이 통통한 오징어를 다듬다가 오징어 찌개를 좋아하던 삼촌 생각이 났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던 삼촌이 군대에 가 있을 때,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자주 위문편지를 보내곤 했다.

어느 날인가 나는 편지에, 삼촌이 휴가 나오면 오징어 찌개를 끓여 준다고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썼다. 나도 손꼽아 기다린다고 썼다. 거짓말이었다. 내 거짓말에 삼촌은 빨리 가서 먹고 싶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삼촌 편지를 읽으면서 이크, 하고 놀랐지만, 오징어 찌개 정도야, 하고 나는 곧 잊어버렸다.

  삼촌이 머잖아 휴가를 나왔다. 손꼽아 기다린다는 바로 그 날이었다. 삼촌이 막상 왔지만 나는 편지 쓸 때의 감정과는 전혀 다르게 반응하는 내 속 마음 때문에 서먹하기 짝이 없었다.

보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편지 속의 감정이 너무 포장 되어서 전달되었기 때문에 삼촌을 만난 순간 나는 삼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삼촌은 검게 탄 얼굴에 흰 이빨을 드러내면서, 야, 오징어찌개 먹으려고 포천에서부터 밥 굶고 왔다! 하고 날 향해 소리쳤다. 아뿔싸! 그제야 놀란 내가 부엌에 있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눈치를 보며 “엄마, 삼촌 오징어찌개 해주지, 그거 좋아하잖아.” 하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감자를 까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감자국도 좋아해.”
“그래도 오징어찌개 해주지, 응?”
간절히 말했지만 어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밥상을 받은 삼촌이 말없이 앉아서 감자 국에 풍덩풍덩 밥을 말아 먹는 모습을 곁눈질 하던 나는 삼촌이 측은해지고, 거짓말한 사실이 들통 나서 면구스러운데다가, 휴가 나온 국군장병에게 기껏 감자 국이나 끓여주는 어머니가 야속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삼촌은 애물단지였다. 오징어찌개를 얻어먹을 만큼 예쁜 짓을 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군대에 가서도 운전 사고를 내는 바람에 아버지가 돈 싸들고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후였으니, 다들 입을 다물고 삼촌을 멀뚱하게 바라 볼 뿐이었다. 아무튼 삼촌은 감자 국에 밥 말아먹고 씩씩하게 다시 돌아갔고, 그 후로 나는 삼촌이 제대할 때까지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시절에도 일기쓰기는 숙제였다. 사실 매일 일기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쓰는 일보다 쓸거리가 없어서였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는 날이 더 많았다. 아픈데도 없고, 밥맛도 좋고, 싸운 일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고, 생각도 없고, 그냥 하루하루가 심심해서 몸부림을 칠 지경인데 무슨 일기를 쓴다는 말인가.... 그래도 숙제였으니 최소한 반쪽은 채워야 했다.

그러다보니 살살 거짓말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할머니 짐을 들어드렸다든지, 복숭아 한 개 남은 것을 안 먹고 어머니를 드렸다든지, 거짓말 재료는 얼마든지 있었다.

만화가게에서 살다시피 한 일이나, 심부름을 피하려고 살살 꾀를 부려 깡통 차기 하러 나간 일, 그런 일은 숨기고, 아니면 결론 부분을 사실과는 다르게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참 좋은 하루였다.”라고 마무리 짓는 기술로 매끈하게 넘어 갈 줄도 알게 되었다.

  일기장 속에서 나는 잘못을 깨닫기도 잘하고, 부모님을 잘 돕고 공경하고, 동생들에게는 인내심 많은 언니였으며, 학교 친구들에게는 또래들보다 생각이 성숙한 모범생이었다. 선생님은 언제나 내 일기를 칭찬했다. 글짓기 반에 들어가서도 그런 류의 글쓰기는 계속 되었다.

그것이 재미가 되었고 나중에는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나가 장원을 하는 일까지 생겼다. 누가 내게 물으면 취미는 글짓기, 장기도 글짓기가 된 시점이 초등학교 3학년, 그때부터였다. 우습게도 거짓말로 쓴 일기가 글짓기의 선생이 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나는 삼촌한테 보낸 편지 사건 이후로 글로 남긴 거짓말이 얼마나 잊기 힘든 수치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 구절이 생각 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미안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가 글쓴이의 인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애물 단지였던 삼촌이 결혼을 하자 철이 들기 시작했다. 성실하게 자기 사업을 하고 알토란 같이 집안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작은 아버지란 말이 잘 나오지 않아서 앞에서 서성거리면, 너 삼촌한테 무슨 부탁 있어? 하면서 내게 먼저 말을 건넸다. 나는 얼른, 운동화 사야하는데, 바지도 없고, 하면서 칭칭 대었고, 삼촌은 피식 웃으면서 돈을 주곤 했다. 그러던 삼촌이 전기 감전 사고로 스물아홉 살에 죽었다. 삼촌의 작은 아들이 막 백일이 지났을 때였다.

  오징어 찌개에 감자를 넣으려다가 삼촌 생각을 다시 한다. 감자를 넣은 오징어 찌개이면 휴가 나온 삼촌에게 완벽한 음식이었을 텐데... 그 때 삼촌은 바보 같이 꾸역꾸역 감자 국을 먹으면서 왜 내게 아무 말도 안했을까? 거짓말인 줄 처음부터 알았을까?  

통통한 오징어 살이 목구멍에 걸린다. 사십 오년 전, 그 때 삼촌한테 했던 빤한 거짓말이 목에 걸린다. 거짓말한 일을 끝내 사과하지 못한 채 삼촌을 보낸 일이 목에 가시가 되어 자꾸  걸린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5 내 인생의 리허설 최영숙 2023.02.06 37
54 스스로 속이지 말라 최영숙 2023.01.24 24
53 자식도 마음 아파요. [2] 최영숙 2023.01.08 33
52 당신을 증명하세요. 최영숙 2022.12.30 23
51 열흘, 그리고 하루 (단편 소설) 최영숙 2022.01.02 130
50 댄스 패밀리 최영숙 2019.09.16 115
49 마른 떡 한 조각 [3] 최영숙 2015.10.30 249
48 크리스마스와 추억 최영숙 2014.11.28 203
47 고양이 발톱 file 최영숙 2014.11.04 229
46 크리스토 레이 마을 최영숙 2014.10.06 234
45 안전 불감증 최영숙 2014.04.30 281
44 이름 유감 최영숙 2014.04.30 248
43 분노 최영숙 2014.03.11 367
42 뿌리 최영숙 2014.02.04 495
41 푸른 색 접시 최영숙 2014.01.21 698
40 요십이 아저씨 최영숙 2013.05.30 510
» 오징어 찌개 최영숙 2013.04.17 629
38 크루즈 패밀리 최영숙 2013.04.07 433
37 바랭이 풀 최영숙 2013.02.23 828
36 착한 아이 서약서 최영숙 2013.02.07 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