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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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요십이 아저씨

2013.05.30 23:11

최영숙 조회 수:510 추천:140

                   요십이 아저씨  

 

 일 년 이상 써 온 헤어드라이어가 고장이 났다.

며칠 벼른 끝에 스토어에 나가서 제품을 고르고 있는데 곁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돌아보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들 세 명이 머리 염색약을 고르고 있는 중이었다. 

 

“헐! 이걸 내가? 대박!” 

“야, 어때, 완전 짱이지!” 

“아냐! 쪽 팔려, 싫어”

“왜? 니 쌩얼에 이거하면 완전 짱이라니까.”

“너, 나 자극하지 마! 진짜 열폭한다. 짱 좋아하네, 완조온 멘붕이다, 토탈 멘붕.”

“아, 시끄러, 지름신이 왜 그래, 그냥 질러!”  

 

아이들은 의견 일치가 안 되었는지 집었던 물건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와들썩 떠들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나도 만져보던 헤어드라이어가 마땅치 않아 제자리에 걸어놓고 스토어를 나왔다. 

아이들이 하는 말의 뜻은 대충 알아들었는데도 정서가 따라가질 않는다. 

모국어가 분명한데 어딘지 쿰쿰하고 거칠다. 

마치 소고기국이 끓을 때 떠오르는 거품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걷어내고 싶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할머니 동네에 “요십” 이라는 키 큰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어른들이 다들 그 아저씨를 “요십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서야 나는 요십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성당에서 지어 준 세례명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귀가 들리지 않아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요십이 아저씨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어버버, 하면서 갑자기 크게 말하는 소리가 무서웠다. 

신기한 것은 마을 사람들이 요십이 아저씨의 말을 거의 다 알아듣는 일이었다. 

 

아저씨가 손짓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면 할머니는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도리깨를 빌려주거나 비료를 한 바가지 퍼주기도 하고, 그 집에 품앗이를 가기도 했다.

넷째 당숙은 구두쇠로 유명한 그 집에 가서 돈도 곧잘 빌려오곤 했는데, 원래 짓궂은데다가 장난기 많은 당숙이 요십이 아저씨와 말을 할 때 어버버, 소리는 물론 손짓 발짓을 하도 요란하게 해대는 바람에 그 광경을 처음 보는 사람은 오히려 당숙을 말 못하는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부지런하고 건장한 요십이 아저씨가 똑같은 장애를 가진 부인을 얻어서 마을 입구에 새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아저씨만큼이나 부지런하고 억척인 부인과 함께 힘을 합한 덕분에 돈을 꽤 모은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얼마 후에 아저씨가 부인을 때린다는 말이 마을에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요십이 아저씨 부인이 비명을 지르며 집밖으로 뛰쳐나오고 아저씨가 작대기를 들고 무서운 얼굴로 그 뒤를 쫓아 나온 일이 생겼다. 작은 마을은 삽시간에 두 사람이 질러대는 괴성으로 뒤덮이고, 놀란 동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면서 구경을 할 뿐이었다. 

 

“뜬쇠가 달면 무섭다더니, 요십이 얼굴 좀 보게!” 

“아이구, 어째! 저러다 사람 죽이겠다. 누가 좀 말려요!” 

 

요십이 아저씨가 도망치는 부인을 막 잡으려는 찰나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넷째 당숙이 요십이 아저씨를 향해 달려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키 작은 당숙이 요십이 아저씨를 가로막고 서는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당숙이 작대기를 들고 있는 아저씨를 향해 욕을 한 바가지 담아서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 

 

요십이 아저씨는 금방이라도 작대기로 당숙을 내려칠 기세였다. 그런데도 당숙은 발을 구르고 자신의 손바닥을 마구 두드리다가 아저씨의 가슴팍을 밀어젖히기 까지 했다. 요십이 아저씨도 내가 질세라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가슴을 치고 머리를 두드렸다. 

 

두 사람이 한참을 실랑이 하다가 어찌된 일인지 요십이 아저씨가 작대기를  내던지고 펄썩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얼굴을 쳐들고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금세 사람들은 요십이 아저씨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눈도 작고 얼굴도 작고 입도 작은 부인을 곱지 않은 눈길로 흘겨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인도 같이 철퍼덕 땅바닥에 주저앉아 으버버, 하고 울기 시작했다. 당숙은, 마누라 데리고 빨리 집으로 가라고 소리치면서 요십이 아저씨 등짝을 떠밀었다. 요십이 아저씨가 못이긴 듯이 훌쩍거리며 일어나 허정허정 앞장서고, 부인은 작대기를 집어 들고 멀찌감치 그 뒤를 쫓아갔다. 

 

사람들은 흩어졌고, 당숙은 마당 끝에 쭈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왜 그랬대요?” 

그때까지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은 채 내가 물었다.

“마누라가 몰래 친정집에 돈을 갖다 준대잖어...” 

“에에?”

“친정이 엄청 가난하대여.” 

“그래도...그건 좀 그렇다. 근데, 어떻게 요십이 아저씨 하고 그렇게 잘 통해요?.” 

“그럼 뭐, 어릴 때부터 주욱 같이 자랐는데... 옛날부터 가끔 저렇게 발광해. 글도 모르지, 말도 못하지... 어떨 땐 지도 나도 복장 터진다. 이제 말 못하는 사람끼리 살자니 오죽하겠냐...” 

 

 나는 낮에 스토어에서 만난 아이들을 생각했다.

왜 그 색깔로 염색을 하라는데 대박인지, 정작 염색을 하려는 본인은 그 색이 왜 쪽팔리는지, 더군다나 화장 안 한 민낯에 그 염색약을 쓰면 어떻게 완전 짱으로 보인다는 건지, 그것 때문에 왜 자극을 받아 열등감이 폭발한다는 건지, 

 

또한 어떻게 그만한 일이 정신 상태가 붕괴될 만큼 어마어마한 일인지, 저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표면적인 말로 소통을 하고도 재미있어서 큰 소리로 웃어댔다. 언젠가 저들에게도 혼자 견디기 힘든 일이 생겨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맘속을 털어놓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말해야 할 대상이 부모일 수도 있고 부부 사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형제지간, 친구지간일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고통으로 인해 내 마음 속에 일어난 일들을 멘붕이고, 열폭이고, 왕짜증 나는 일이라고만 표현한다면 요십이 아저씨처럼 가슴 속에 울화가 처덕처덕 쌓이지 않을까 염려 된다. 그러다가 엉뚱한 곳에서 폭발하지는 않을지.... 분명히 적합한 단어가 있는데도 그것으로 표현 못하는 것, 그래서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요십이 아저씨가 겪었던 고통과 다를 바 없다.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남은 물론이고 자신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해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상실감, 외로움에 부딪치게 된다. 

 

“이유 없는 반항”이라고 하지만 이유는 분명히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자신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봄이 끝나가고 여름이 오고 있다. 그러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덥고 가을에는 낙엽이 지고 겨울에는 눈이 온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다. 오늘은 기분이 좀 좋고 어제는 피곤했고 그저께는 그저 그랬다. 아침에는 아침밥 먹고 점심에는 점심 먹고 저녁에는 저녁 먹고 잠들었다. 

 

이렇게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말하는 버릇 때문에 우리가 외로워진다. 봄 속에도 치열한 다툼이 있고 여름 속에도 시원한 그늘이 있으며 낙엽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고, 눈 때문에 따스해지기도 한다. 파란 하늘이 오늘 내게 어떤 의미인지, 하얀 구름은 왜 오늘 회색인지, 아침에는 누구와 함께 또 뭘 먹었는지, 점심에는 또 저녁에는, 그렇게  말하고 묻고 들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외로운 것이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온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어느 때는 새가 말을 하기도 한다. 

 

옆에 있는 사람한테 툭 한마디 던져 본다.

“새가 말하네, 메신저, 메신저!” 말하고 보니 더욱 그렇게 들린다.

내 말에 상대방이 웃으며 말한다. 

“미쳤니, 미쳤니. 나한테는 그렇게 들리는데?”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가끔은 우울하게, 그리고 또 사색하게 만드는 속사람에 대해서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 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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