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訃告]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
2009.02.17 04:54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이 2월 16일 오후 6시 12분 노환으로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했다. 향년 87세. 김 추기경의 빈소는 명동대성당에 마련됐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추모메시지를 통해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 빛과 희망이 되어주셨다”며 “평소 추기경님께서 바라던 대로 이 땅에 평화와 정의가 넘치도록 마음을 모아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고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겸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 의료진, 김 추기경님 비서인 백성호 신부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며 “추기경님께서 ‘고통스럽지 않냐’는 주위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기위해 노력하셨다”고 전했다.
또 허 신부는 “추기경님께서 2-3일전부터 ‘나는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다’고 감사의 말씀을 전하시며 문병 온 신부님 수녀님들께 ‘사랑하며 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전했다.
평소 생명나눔을 강조했던 김 추기경은 지난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 때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바 있어, 선종 후 각막기증이 이뤄졌다
▣ 김수환 추기경 선종
□ 선종일시 : 2009. 2. 16(월) 오후 6시 12분
□ 빈 소 : 명동대성당
□ 입 관 : 2009. 2. 19(목) 오후 5시
□ 장례미사 : 2009. 2. 20(금) 오전 10시
집 전 : 정진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사제단 공동집전
□ 장 지 :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
□ 추도미사 : 2009. 2. 22(일) 낮 12시 명동대성당/ 집전 : 정진석 추기경
2009. 2. 22(일) 낮 12시 용인 성직자 묘역/ 집전 : 염수정 주교
□ 프레스센터 운영 : 명동성당 별관 만남의 방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약력을 살펴보면 1922년 대구 남산동에서 김영석 요셉과 서중하 마르티나 부부의 5남3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집안은 신유박해 때 순교한 광산 김씨 일파로 조부인 보현공이 서울에서 순교했으며, 유복자로 태어난 부친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8살에 부친을 여윈 추기경은 행상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린 어머니로부터 신부가 될 것을 권유받고 사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와 동성종합학교를 거쳐 일본 상지대학에서 유학을 하게 됩니다. 당시 학병으로 소집돼 죽음의 위기를 넘긴 추기경은 해방 후 성신대학에 편입하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도 성소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여러 은인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사제성소를 확인한 추기경은 전쟁 중 대구에서 신학과정을 마치고 1951년 9월 15일, 대구교구 사제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사제가 된 김수환 추기경은 안성 목성동 성당 주임신부를 시작으로 대구교구장 비서, 김천성당 주임신부, 성의 중·종합고등학교 교장으로 사목했으며, 1956년, 다시 한번 독일 유학길에 오릅니다. 귀국 후에는 가톨릭시보사, 현재의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역임합니다. 그리고 1966년 새로 생긴 마산교구의 초대교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주교 서품을 받게 됩니다.
2년 뒤에는 서울대교구장에, 다음해인 1969년에는 한국 교회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30년 가까이 한국 가톨릭교회의 수장을 역임하면서 힘없는 이들을 대변하고 정의의 편에서 민주화 운동에 기여합니다. 김 추기경은 특히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재임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로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1983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앞두고 인생의 가장 친한 벗이자 위안이었던 김동한 형님 신부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김 추기경은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은퇴함으로써 교회 수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 "항상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지난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은퇴한 김수환 추기경은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한 끝에 오늘 오후 6시 12분 급성 호흡부전증으로 선종했습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도 임종 직전 김수환 추기경의 병실에 도착해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현재 강남성모병원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소식을 접한 주교와 사제, 수녀, 신자들을 비롯해 언론의 발길이 이어져 어수선한 모습입니다. 서울대교구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함에 따라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오늘 오후 8시 30분 명동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인 장례절차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후 10시까지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을 명동성당으로 운구해 빈소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추기경의 시신이 명동성당으로 옮겨지면 장례가 치러지는 닷새 동안 매일 추모미사가 봉헌됩니다. 또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는 고인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신자들의 위령기도가 바쳐집니다. 선종 나흘째에는 고인의 시신을 안치하는 입관예식이 진행되고, 마지막날인 닷새째에는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가 거행됩니다.
------------------------------------------ http://cardinalkim.catholic.or.kr 홈페이지에서 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추모메시지를 통해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 빛과 희망이 되어주셨다”며 “평소 추기경님께서 바라던 대로 이 땅에 평화와 정의가 넘치도록 마음을 모아 추기경님의 선종을 애도하고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겸 문화홍보국장 허영엽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 의료진, 김 추기경님 비서인 백성호 신부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며 “추기경님께서 ‘고통스럽지 않냐’는 주위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기위해 노력하셨다”고 전했다.
또 허 신부는 “추기경님께서 2-3일전부터 ‘나는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다’고 감사의 말씀을 전하시며 문병 온 신부님 수녀님들께 ‘사랑하며 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전했다.
평소 생명나눔을 강조했던 김 추기경은 지난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 때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바 있어, 선종 후 각막기증이 이뤄졌다
▣ 김수환 추기경 선종
□ 선종일시 : 2009. 2. 16(월) 오후 6시 12분
□ 빈 소 : 명동대성당
□ 입 관 : 2009. 2. 19(목) 오후 5시
□ 장례미사 : 2009. 2. 20(금) 오전 10시
집 전 : 정진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사제단 공동집전
□ 장 지 :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 내 성직자 묘역
□ 추도미사 : 2009. 2. 22(일) 낮 12시 명동대성당/ 집전 : 정진석 추기경
2009. 2. 22(일) 낮 12시 용인 성직자 묘역/ 집전 : 염수정 주교
□ 프레스센터 운영 : 명동성당 별관 만남의 방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약력을 살펴보면 1922년 대구 남산동에서 김영석 요셉과 서중하 마르티나 부부의 5남3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집안은 신유박해 때 순교한 광산 김씨 일파로 조부인 보현공이 서울에서 순교했으며, 유복자로 태어난 부친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8살에 부친을 여윈 추기경은 행상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린 어머니로부터 신부가 될 것을 권유받고 사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와 동성종합학교를 거쳐 일본 상지대학에서 유학을 하게 됩니다. 당시 학병으로 소집돼 죽음의 위기를 넘긴 추기경은 해방 후 성신대학에 편입하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날 때까지도 성소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여러 은인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사제성소를 확인한 추기경은 전쟁 중 대구에서 신학과정을 마치고 1951년 9월 15일, 대구교구 사제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사제가 된 김수환 추기경은 안성 목성동 성당 주임신부를 시작으로 대구교구장 비서, 김천성당 주임신부, 성의 중·종합고등학교 교장으로 사목했으며, 1956년, 다시 한번 독일 유학길에 오릅니다. 귀국 후에는 가톨릭시보사, 현재의 가톨릭신문사 사장을 역임합니다. 그리고 1966년 새로 생긴 마산교구의 초대교구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주교 서품을 받게 됩니다.
2년 뒤에는 서울대교구장에, 다음해인 1969년에는 한국 교회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30년 가까이 한국 가톨릭교회의 수장을 역임하면서 힘없는 이들을 대변하고 정의의 편에서 민주화 운동에 기여합니다. 김 추기경은 특히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재임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로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1983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를 앞두고 인생의 가장 친한 벗이자 위안이었던 김동한 형님 신부를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김 추기경은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은퇴함으로써 교회 수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 "항상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지난 1998년 서울대교구장직에서 은퇴한 김수환 추기경은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한 끝에 오늘 오후 6시 12분 급성 호흡부전증으로 선종했습니다.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도 임종 직전 김수환 추기경의 병실에 도착해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현재 강남성모병원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소식을 접한 주교와 사제, 수녀, 신자들을 비롯해 언론의 발길이 이어져 어수선한 모습입니다. 서울대교구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함에 따라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오늘 오후 8시 30분 명동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인 장례절차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후 10시까지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을 명동성당으로 운구해 빈소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추기경의 시신이 명동성당으로 옮겨지면 장례가 치러지는 닷새 동안 매일 추모미사가 봉헌됩니다. 또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는 고인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신자들의 위령기도가 바쳐집니다. 선종 나흘째에는 고인의 시신을 안치하는 입관예식이 진행되고, 마지막날인 닷새째에는 명동성당에서 장례미사가 거행됩니다.
------------------------------------------ http://cardinalkim.catholic.or.kr 홈페이지에서 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영원한 안식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