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자화상
2009.08.03 05:44
■ 부끄러운 자화상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송민석
지난 3월부터 매주 수요일이면 기차여행을 한다. 새마을호를 타고 2시간 남짓 걸리는 여수-전주 간을 오가고 있다. 열차를 이용하면 직접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다. 열차카페에 앉아 커피 향과 함께 아름다운 섬진강 물길을 따라 사색에 잠기는 행복을 만끽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책을 읽으며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새마을호 열차를 탈 때 옆자리의 파트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석’이란 게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열차표를 살 때 ‘자유석’을 달라고 하면 된다. 10% 할인에 5호차에 한해 자기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는 매력적인 제도다. 소란스런 옆 좌석이나 출입문 옆자리에 앉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승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오히려 ‘지정석’보다 불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요즘 전라선에는 한여름 바캉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임시열차가 한 편 늘었다. 피서객들이 반바지 차림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열차 칸을 가득 메운다. 피서지에서 돌아올 때는 열차에 오르자마자 의자를 잔뜩 뒤로 제치고 곤한 잠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온갖 수다와 소란으로 귓전이 따가울 때도 있다.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유독 한국인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실감했던 일들이 새삼 떠오른다.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피서 길은 더 시끌벅적하다. 아이들은 제집 안방에서처럼 열차 통로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좌석에서 뜀뛰기를 하는 등 막무가내다. 이런 북새통 속에서 책을 읽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모처럼 떠나는 여행이니 그러려니 하고 참다가 다른 칸의 빈 좌석을 찾아가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랫동안 휴대전화를 주고받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동네 미장원 값이 싼지, 어느 집 식구는 건강식으로 무엇을 먹는지, 어느 회사 자금사정이 어떤지 따위를 원치 않아도 훤히 알게 된다. 별의별 시시콜콜한 남의 개인사를 듣고 있어야 하는 ‘간접통화’의 고통은 ‘간접흡연’의 고통만큼이나 짜증스럽다.
우리 집은 주변경관이 좋은 허름한 복도식 아파트다. 새로 단장한 거실에 앉으면 남해안의 탁 트인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창한 날이면 ‘가막만’의 올망졸망 자그마한 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가끔은 이웃에 대한 배려가 부족함을 보고 놀라게 된다. 위층 집 이불이 우리 집 베란다 시야를 가리거나 집 앞 아파트 복도에 쓰레기를 내어 놓는 경우를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내가 먼저 퍼스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민 모두가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양보, 친절, 질서에 앞장서자는 범시민운동이다. 그러나 간혹 지각없는 택시기사들을 볼 수 있다. 정지선에 서 있는 차 앞으로 ‘내가 먼저 퍼스트'라고 붙인 영업용 택시가 난데없이 파고들어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쏜살같이 내달릴 때면 떨떠름한 기분이 된다. 초보운전자들이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두렵다. 모두가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거리의 모습은 선진국과 거의 다를 바 없으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들이 우리 삶의 천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싶다. 물질문명에 걸맞은 정신문화가 아직 뒷받침되지 않고 있어서이리라. 선진시민의식 운운하면서도 아직도 피난길, 배고프던 시절의 행동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잘 가꾸어진 공원벤치나 후미진 골목길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을 볼 때 낯이 뜨겁다.
이웃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한 사회는 후진국이다.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다는 우리나라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숙한 시민사회란‘나'보다‘우리’를 생각하는 공동체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을 공유하는 사회이다.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 사회,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질서란 단순히 순서를 지키는 것만을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까지를 포함한 것이 아닐까. ‘운전할 때 가족생각, 주차할 때 이웃생각’ 이란 말이 곱씹을수록 가슴에 와 닫는다.
(09.7.31.)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송민석
지난 3월부터 매주 수요일이면 기차여행을 한다. 새마을호를 타고 2시간 남짓 걸리는 여수-전주 간을 오가고 있다. 열차를 이용하면 직접 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다. 열차카페에 앉아 커피 향과 함께 아름다운 섬진강 물길을 따라 사색에 잠기는 행복을 만끽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히 책을 읽으며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새마을호 열차를 탈 때 옆자리의 파트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석’이란 게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열차표를 살 때 ‘자유석’을 달라고 하면 된다. 10% 할인에 5호차에 한해 자기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는 매력적인 제도다. 소란스런 옆 좌석이나 출입문 옆자리에 앉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승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오히려 ‘지정석’보다 불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요즘 전라선에는 한여름 바캉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임시열차가 한 편 늘었다. 피서객들이 반바지 차림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열차 칸을 가득 메운다. 피서지에서 돌아올 때는 열차에 오르자마자 의자를 잔뜩 뒤로 제치고 곤한 잠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온갖 수다와 소란으로 귓전이 따가울 때도 있다.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유독 한국인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실감했던 일들이 새삼 떠오른다.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피서 길은 더 시끌벅적하다. 아이들은 제집 안방에서처럼 열차 통로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좌석에서 뜀뛰기를 하는 등 막무가내다. 이런 북새통 속에서 책을 읽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모처럼 떠나는 여행이니 그러려니 하고 참다가 다른 칸의 빈 좌석을 찾아가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랫동안 휴대전화를 주고받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동네 미장원 값이 싼지, 어느 집 식구는 건강식으로 무엇을 먹는지, 어느 회사 자금사정이 어떤지 따위를 원치 않아도 훤히 알게 된다. 별의별 시시콜콜한 남의 개인사를 듣고 있어야 하는 ‘간접통화’의 고통은 ‘간접흡연’의 고통만큼이나 짜증스럽다.
우리 집은 주변경관이 좋은 허름한 복도식 아파트다. 새로 단장한 거실에 앉으면 남해안의 탁 트인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창한 날이면 ‘가막만’의 올망졸망 자그마한 섬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그러나 가끔은 이웃에 대한 배려가 부족함을 보고 놀라게 된다. 위층 집 이불이 우리 집 베란다 시야를 가리거나 집 앞 아파트 복도에 쓰레기를 내어 놓는 경우를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2012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내가 먼저 퍼스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민 모두가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양보, 친절, 질서에 앞장서자는 범시민운동이다. 그러나 간혹 지각없는 택시기사들을 볼 수 있다. 정지선에 서 있는 차 앞으로 ‘내가 먼저 퍼스트'라고 붙인 영업용 택시가 난데없이 파고들어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쏜살같이 내달릴 때면 떨떠름한 기분이 된다. 초보운전자들이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두렵다. 모두가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거리의 모습은 선진국과 거의 다를 바 없으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들이 우리 삶의 천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싶다. 물질문명에 걸맞은 정신문화가 아직 뒷받침되지 않고 있어서이리라. 선진시민의식 운운하면서도 아직도 피난길, 배고프던 시절의 행동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잘 가꾸어진 공원벤치나 후미진 골목길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을 볼 때 낯이 뜨겁다.
이웃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한 사회는 후진국이다.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다는 우리나라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숙한 시민사회란‘나'보다‘우리’를 생각하는 공동체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을 공유하는 사회이다.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 사회,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질서란 단순히 순서를 지키는 것만을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까지를 포함한 것이 아닐까. ‘운전할 때 가족생각, 주차할 때 이웃생각’ 이란 말이 곱씹을수록 가슴에 와 닫는다.
(09.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