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션/이의

2012.08.07 06:16

김학 조회 수:182 추천:2

내비게이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


  자동차들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길 박사와 동행하니 어디를 가든 망설임 없이 표시만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닿는다. 길 박사는 친절하게도 감시구간까지 알려준다. 운전자들은 풍경을 바라보고 동행자와 이야기꽃을 피우며 느긋한 자세로 운전을 한다. 아마도 언젠가는 핸들을 잡는 수고도 필요 없고 말로 운전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모르는 길을 가려면 지도를 펴고 가다가 그래도 모르면 차를 세워놓고 확인하면서 가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러니 요즘의 젊은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없을 듯싶다. 보릿고개시절을 얘기하면 라면이라도 삶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니 말이다.
길을 잘 알면 운전은 반은 했다는 말이 있다. 허나 길눈이 유난히 어두운 우리가족에게 내비게이션은 구세주인 셈이다. 낯선 길을 떠날 때 든든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지름길도 안내하고 장애물이 있는지도 가르쳐주니 도로위의 멘토인 셈이다.
미국에서 잠시 거주하던 때 길눈이 어두워 당황했던 사건이 생각난다. 거주지만 벗어나면 딱히 물어볼 데도 없는 쭉 뻗은 도로에서 당혹스럽던 일이 있었다. 대형 마트에 다녀오는데 길은 낯설고 어둠은 길을 덮어가고 있었다. 마침 주유소가 보이기에 길을 물었다. 그러나 소통이 여의치 않아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뒤에 알고 보니 R과 L의 발음에서 오는 혼돈이었다. 경상도 사람들은 ㅡ자 발음이 안 되어 ㅓ로 하듯, 우리나라 사람들의 R과 L의 발음이 정확하지 못한데서 온 불통이었다. 한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발음도 거뜬히 해내고 있으니 다행이다. 날은 이미 어둠에 묻히고 운전자는 자신이 없어 결국은 오던 길을 되짚어 원점으로 돌아가다 한인 슈퍼에 들어가 묻고서야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지금 같이 내비게이션이 있었으면 그런 추억거리는 없었으리라.
여행을 하다보면 내비게이션의 똑똑함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인간의 가는 길에도 내비게이션 같은 멘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된다. 물론 세상에는 곳곳에 훌륭한 길잡이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만 믿는 특성상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듣고 싶은 것만 가려들으니 어려운 게 인생살이라고 한다. 조금만 주의하고 신중히 생각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지난 일들이 덜미를 잡아 머리를 어지럽힌다. 내비게이션 같은 멘토가 내 옆에 있었으면 후회할 일들을 하거나 만들지도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형상이 있는 건 어느 것 하나 완전무결한 건 없지 싶다.
휴대폰이 없으면 집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을 찾지 못하는 현상을 어찌 볼 것인가. 편리한 기기들은 갈수록 스마트해지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아둔해져 간다. 문명의 이기가 앞으로 얼마나 인간을 편하게 해줄까.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을 모르는 척할 수만도 없다. 이렇게 편한 것만 좋아하다 보면 몸의 기능이 저하되어 기계인간에게 치이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은 나만의 기우일까!
                              (201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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