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의 어록/김덕남
2013.12.17 05:18
친정어머니의 어록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금요수필반 김덕남
“야야, 아무리 늙어가도 부부지간에는 각방을 쓰면 절대 안 된다.”
남편과 말다툼을 한 뒤, 냉랭한 공기를 걱정하시던 친정어머니의 당부였다.
“헌것이라도 신랑 넥타이로 허리띠를 하면 못 쓴다. 그러면 부부가 갈라선다는 말이 있단다.”
남편의 물건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비유였다. 남편을 어렵게 알고 공경해야 원만한 가정이 된다는, 부부의 도를 일깨워 주시려는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이었다.
“부엌칼을 상 위에 올려놓으면 부부 싸움이 난다.”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 때문에 남편이 과일을 깎다 둔 상위의 칼을 기겁하며 내려놓아 어머니의 어록을 따르던 나에게,
“오점봉 여사 딸이 아니랄까 봐 유난을 떠시네!”
라며 무식한 여자처럼 구는 나를 가끔 비아냥대던 남편도 그런 말 뒤에 숨은 뜻만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상위에 올려놓은 칼이 매우 위협적인 물건이 될 수 있어, 안전을 위해 조심성을 일깨워주시려는 말씀이었다. 이렇듯, 나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 주시던 어머니의 말씀은 모두가 오매불망 자식들의 화목한 부부생활을 염원하시던 간절한 심정에서 엮어진 것들이었다.
젊은 부부 3쌍 중 1쌍이란 이혼율 통계나, 증가 추세의 황혼 이혼 세태를 보면서, 남편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당신의 딸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예전 어머니들의 심정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밤에 피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로 소리도 못 내게 하시던 어머니는, 밤에는 절대 손톱깎이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다. 호롱불 아래서 살이라도 베면 어떨까 해서 만들어진 옛말을 대명천지인 오늘날에도 법전처럼 믿고, 우리를 나무라셨다.
어머니의 어록은 숱한 내용들로 이루어졌다. 결혼 초, 직장을 따라 시골에서 떨어져 생활하던 딸이 첫 임신을 했을 때, 당신도 직장에 매어 내 곁을 지켜줄 수 없어 노심초사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던 어머니다.
붉은 줄이 세로로 쳐진 누런 서한지에 20여장이나 되는 분량으로 써내려 간, 간곡한 당부의 편지글은 훌륭한 한 권의 가사문학이었다.
태중의 몸가짐과 해산 치레에 관한 수십 가지 덕목은, 산모가 조심하고 지켜야 할 일들이었다. 자상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늘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어머니의 그 마음을, 내가 첫 외손녀를 얻고 난 뒤에야 더 깊이 헤아릴 수 있었다.
‘불난 곳은 쳐다보지도 말거라’ ‘참새고기는 입에도 대지 마라’ ‘뜨거운 미역국에 젖꼭지를 먼저 담근 뒤 아기 입에 물려라‘ ’잿간에서 오줌을 누지 말거라’ ‘해산하면 남편 면양말로 얼굴의 땀을 문질러라’ ‘물건도 함부로 들지 말고, 신랑에게 부탁해라’ ‘애기 낳고 배를 문지르지 마라’ ‘젖 먹인다고 고개를 숙이지 마라’ ‘손목을 기대지 마라’ ‘삼칠일 동안은 절대 바깥바람을 쐬면 안 된다.’ ‘목욕도 해서는 안 된다.’ 등등.
삼복더위에 첫아이를 낳고도, 나는 보름이 넘도록 머리조차 감지 못했다. ‘벌어진 뼈 마디마디에 바람이 들면, 평생 골병이 든다’는 어록에 따르려 그랬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산모의 두 발목을 묶어 두는 병원 분만은, 너의 이모들처럼 무릎 삭신이 쑤시는 병이 드니, 온돌방 분만을 해야 한다‘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대로 첫아이는 양수가 미리 터져, 내 뜻이 아니었어도 대기하던 온돌방에서 자연분만을 했다.
소파에 머리만 대도 코를 골며 초저녁잠을 못 이기던 남편은, 힘든 공직 생활에서 은퇴한 뒤 TV시청으로 자정을 넘기는 일이 종종 있다. 먼저 잠든 내가 깰까 봐 조심조심 들락거리며, 뺏긴 조각 잠을 청하려 애쓰던 남편은 내 옆에서 늦잠에 빠져있다.
누워 이야기라도 도란도란 시작하는 날은 스르르 잠이 드는 나와 달리, 오던 잠이 달아나 버렸다며 또 일어나 컴퓨터방으로 간다.
"예민해진 잠을 보니, 이제 당신도 많이 늙었나 보네요.”
“우리 서로 편하게 각방 쓸까?”
라며 자기가 내 깊은 잠을 방해한다고 믿었는지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야릇하고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마주보며 껴안고 자던 20대 부부가, 세월 따라 자연스럽게 등을 돌려 자게 되고, 각방에서 잠들어도 무심하던 5-60대의 부부로 변해 가면서90이 되면 어디서 잤는지 조차도 모른다는 부부 잠자리를 풀어 쓴 유머가 있다.
부부심리를 제대로 꿰뚫은 비유라고 생각되어,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의 스킨십은 애정과 비례하며, 선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자는 송장이라도 남편 옆에서 훈짐을 느끼며 자야한다!”
어머니 말씀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도 부부는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며. 각자의 독립적인 공간에서의 생활과 이따금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잠자리도 배려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친정어머니의 어록에는 구구절절 지당한 말씀뿐이다.
새벽녘쯤 눈을 떴을 땐 이미 남편은 내 옆자리를 비운 채, 자기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지만, 나는 오늘도 남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손을 꼭 잡고 잠을 청한다.
(2013. 12. 17.)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금요수필반 김덕남
“야야, 아무리 늙어가도 부부지간에는 각방을 쓰면 절대 안 된다.”
남편과 말다툼을 한 뒤, 냉랭한 공기를 걱정하시던 친정어머니의 당부였다.
“헌것이라도 신랑 넥타이로 허리띠를 하면 못 쓴다. 그러면 부부가 갈라선다는 말이 있단다.”
남편의 물건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비유였다. 남편을 어렵게 알고 공경해야 원만한 가정이 된다는, 부부의 도를 일깨워 주시려는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이었다.
“부엌칼을 상 위에 올려놓으면 부부 싸움이 난다.”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 때문에 남편이 과일을 깎다 둔 상위의 칼을 기겁하며 내려놓아 어머니의 어록을 따르던 나에게,
“오점봉 여사 딸이 아니랄까 봐 유난을 떠시네!”
라며 무식한 여자처럼 구는 나를 가끔 비아냥대던 남편도 그런 말 뒤에 숨은 뜻만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상위에 올려놓은 칼이 매우 위협적인 물건이 될 수 있어, 안전을 위해 조심성을 일깨워주시려는 말씀이었다. 이렇듯, 나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 주시던 어머니의 말씀은 모두가 오매불망 자식들의 화목한 부부생활을 염원하시던 간절한 심정에서 엮어진 것들이었다.
젊은 부부 3쌍 중 1쌍이란 이혼율 통계나, 증가 추세의 황혼 이혼 세태를 보면서, 남편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당신의 딸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예전 어머니들의 심정에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밤에 피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는 말로 소리도 못 내게 하시던 어머니는, 밤에는 절대 손톱깎이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다. 호롱불 아래서 살이라도 베면 어떨까 해서 만들어진 옛말을 대명천지인 오늘날에도 법전처럼 믿고, 우리를 나무라셨다.
어머니의 어록은 숱한 내용들로 이루어졌다. 결혼 초, 직장을 따라 시골에서 떨어져 생활하던 딸이 첫 임신을 했을 때, 당신도 직장에 매어 내 곁을 지켜줄 수 없어 노심초사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던 어머니다.
붉은 줄이 세로로 쳐진 누런 서한지에 20여장이나 되는 분량으로 써내려 간, 간곡한 당부의 편지글은 훌륭한 한 권의 가사문학이었다.
태중의 몸가짐과 해산 치레에 관한 수십 가지 덕목은, 산모가 조심하고 지켜야 할 일들이었다. 자상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늘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어머니의 그 마음을, 내가 첫 외손녀를 얻고 난 뒤에야 더 깊이 헤아릴 수 있었다.
‘불난 곳은 쳐다보지도 말거라’ ‘참새고기는 입에도 대지 마라’ ‘뜨거운 미역국에 젖꼭지를 먼저 담근 뒤 아기 입에 물려라‘ ’잿간에서 오줌을 누지 말거라’ ‘해산하면 남편 면양말로 얼굴의 땀을 문질러라’ ‘물건도 함부로 들지 말고, 신랑에게 부탁해라’ ‘애기 낳고 배를 문지르지 마라’ ‘젖 먹인다고 고개를 숙이지 마라’ ‘손목을 기대지 마라’ ‘삼칠일 동안은 절대 바깥바람을 쐬면 안 된다.’ ‘목욕도 해서는 안 된다.’ 등등.
삼복더위에 첫아이를 낳고도, 나는 보름이 넘도록 머리조차 감지 못했다. ‘벌어진 뼈 마디마디에 바람이 들면, 평생 골병이 든다’는 어록에 따르려 그랬지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산모의 두 발목을 묶어 두는 병원 분만은, 너의 이모들처럼 무릎 삭신이 쑤시는 병이 드니, 온돌방 분만을 해야 한다‘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대로 첫아이는 양수가 미리 터져, 내 뜻이 아니었어도 대기하던 온돌방에서 자연분만을 했다.
소파에 머리만 대도 코를 골며 초저녁잠을 못 이기던 남편은, 힘든 공직 생활에서 은퇴한 뒤 TV시청으로 자정을 넘기는 일이 종종 있다. 먼저 잠든 내가 깰까 봐 조심조심 들락거리며, 뺏긴 조각 잠을 청하려 애쓰던 남편은 내 옆에서 늦잠에 빠져있다.
누워 이야기라도 도란도란 시작하는 날은 스르르 잠이 드는 나와 달리, 오던 잠이 달아나 버렸다며 또 일어나 컴퓨터방으로 간다.
"예민해진 잠을 보니, 이제 당신도 많이 늙었나 보네요.”
“우리 서로 편하게 각방 쓸까?”
라며 자기가 내 깊은 잠을 방해한다고 믿었는지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야릇하고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마주보며 껴안고 자던 20대 부부가, 세월 따라 자연스럽게 등을 돌려 자게 되고, 각방에서 잠들어도 무심하던 5-60대의 부부로 변해 가면서90이 되면 어디서 잤는지 조차도 모른다는 부부 잠자리를 풀어 쓴 유머가 있다.
부부심리를 제대로 꿰뚫은 비유라고 생각되어,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의 스킨십은 애정과 비례하며, 선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여자는 송장이라도 남편 옆에서 훈짐을 느끼며 자야한다!”
어머니 말씀에도 불구하고, 집에서도 부부는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며. 각자의 독립적인 공간에서의 생활과 이따금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잠자리도 배려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친정어머니의 어록에는 구구절절 지당한 말씀뿐이다.
새벽녘쯤 눈을 떴을 땐 이미 남편은 내 옆자리를 비운 채, 자기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테지만, 나는 오늘도 남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손을 꼭 잡고 잠을 청한다.
(2013.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