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3 18:41
참, 아쉬운 사람
한성덕
세상을 살다보면 아쉬운 사람이 더러 있다. 좋은 감정이 넘쳐 아쉬운 사람이 있는가하면, 2%가 미흡해서 마땅찮아 아쉬운 사람이 있다. 전자는 오래 있을수록 좋고, 후자는 어서 떠나는 게 낫다. 전자는 늘 함께하고 싶지만, 후자는 있으면 있을수록 꺼끄러기 같은 사람이다. 좋아서 아쉬운 사람으로 살아야하는 이유다.
내게도 참 아쉬운 사람이 있었다. 인물, 경력, 인생배경 등이 귀인이었다. 학문적 가치나 정치적 소신이나 사회적 명망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 어떤 경쟁자와 겨루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출중한 인물이었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하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 경력도 있고, 국회의원과 민선 경기도 지사도 거쳤다. 여기에 민주화 운동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었으니 그리 흔하지 않은 이력이다. 어떤 사람 앞에서도 꿀림이 없어 보이고, 이미지가 깔끔한 만큼 겉과 속이 깨끗하고 참신성이 있어 보였다. 모든 면에서 존재감이 확실해 그 분을 무척 좋아했었다. 이 나라의 큰 어른이 되기를 열망한 것도 사실이다. 아슬아슬한 중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기대치는 굳건했었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역시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사람이 목적지까지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보았듯이, 토끼는 달리기 실력을 과시하며 앞만 보고 달렸으나, 느림보 거북이를 얕보며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니 거북이가 이긴 것은 당연하다. 거북이는 ‘느림의 미학’으로, 토끼는 경쟁사회의 ‘낙오자’로 비유되기도 한다. 순발력이 있는 토끼는 쉬엄쉬엄 가는 거북이를 이기지 못했다. 토끼는 자신의 빠름을 과신했다. 쉼이 보약이나 과신은 독약이다. 그래서 적당한 쉼이 필요하다.
돛단배의 돛은 항해하는데 필수도구다. 바람을 안고 달리는 돛은, 기능에 따라서 분류되기도 한다. 보통 날씨는 순항의 돛, 열대기후는 여름용 돛, 사납고 거친 날씨는 폭우용 돛, 그리고 경주할 때는 경주용 돛을 단다. 돛만 있으면 되는가? 반드시 닻이 필요하다. 닻은 배를 멈추거나, 한 곳에 두기위해서 필요한 도구다. 줄을 매어 물 밑바닥으로 갈아 앉히는 묵직한 쇠갈고리를 가리킨다. 이와 같이, 돛은 가게하고 닻은 멈추게 한다. 사람 역시 가는 것과 쉬는 것이 적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닻 없는 배는 덧없는 인생에 불과하다. 물론 바람이 잦아지면 멈추겠지만, 닻 없는 배는 브레이크 파열된 자동차와 같다.
지금껏, 바른미래당 대표였던 S를 두고 한 말이다. 이제야 비로소 다 내려놓았으니 마이웨이(my way)는 끝난 셈인가?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손짓하면 냉큼 달려올 최측근도 떠난 마당에서 누구를 붙들고 무슨 대화를 하겠는가? 그의 끝말에서, ‘한 사람의 평당원으로 민생정치와 실용적 중도정치 발전을 위해 바칠 것’이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씨알이 먹힐 것 같지 않다.
실은, 일과 쉼을 적절히 분배하는 그분의 모습을 보았다. 허나 번번이 타임을 놓쳤다. 순발력이 아쉬웠다. 당적을 몇 차례 옮긴 게 옥에 티요, 철새 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정치기반이 약한 것도 흠이었다. 이 거물급 정치인을 사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정치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정치인?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던 고독한 노인? 아니면, 정치인으로서 속도감에 실패한 사람? 하여간 궁금하다. 끝 무렵에는 노욕으로 치부된 게 아쉽고, 이제는 나이가 발목을 잡으며 아예 푹 쉬라는 듯해서 더 아쉽다.
그분은, 내 가슴에 담아 둔 몇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나도 모든 미련을 버리련다. 인생은 짧고 이름은 길다. 나도 모든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자로 살고 싶은데, 인생길에서 그렇게 산다는 게 이리도 어려운가?
(2020. 3. 1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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