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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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비.jpg

 

 

                                   북녘을 향한 창 (한국일보 금요단상 25.8.29)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250828/1578854

 

 

임진각에 도착했다. 이념의 경계에서 침묵하는 평화의 땅이다. 시부모님은 황해도에서 한국전쟁 중 14일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남하하셨다. 한 살배기 남편은 엄마 등에 업혀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넜다고 했다. 곧 돌아가리라 했던 부모님의 고향을 멀리에서 바라볼 기회를 얻은 남편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실향의 아픔을 지켜보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미국에서 자란 손주들에게 할아버지의 고향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곳은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는 민간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끝 지점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고, 곳곳에 세워진 벙커와 무장한 군인들을 보며 긴장했다. DMZ는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평화의 종을 품은 종각을 바라보며 낮은 언덕을 오르니 통일전망대가 투명한 자태를 드러냈다. 분단의 상징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공간이다.  

사면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서니 탁 트인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 저기가 북한 땅이 아닌가! 그리도 가고 싶어 했던 시부모님들이 태어나 자라난 고향, 조국의 땅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던 곳이라니. 유엔군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산천은 예나 다를 게 없는데 분단으로 겪은 상처를 기억한다. 흐려진 눈동자를 애써 감추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은 채 자리를 뜨지 못했다.  

휴전선 철조망 경계로 태극기와 북한 깃발이 펄럭였다. 멀리 개성이 보인다. 개성은 옛 고려 왕조 400여 년간 수도로서 3.8선 이남에 있었지만, 6.25 전쟁 이후 북한에 빼앗겨 북한 땅이 된 비운의 도시다. 개성 공단 안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의 검은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전기를 공급하던 송전탑이 남과 북의 색깔을 달리하며 서 있었다. 개성 공단으로 통하던 길이 막혔다. 차단된 모습을 보며 가슴 한편이 싸늘해지는 걸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여전히 시내를 에워싼 송악산은 멋진 자태를 자아내고 있는데.  

다음 코스로 제3 땅굴에 다다랐다. 모든 소지품을 맡기고 헬멧을 쓴 채 급경사진 지하로 들어갔다. 물기 젖은 굴속으로 발을 조심스레 디뎠다. 흙이 아닌 돌멩이로 에워싸인 터널 안을 걸으며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키가 작은 나에겐 서서 걷기에 충분한 높이였고, 옆으로 서너 명이 함께 할 수 있는 넓이였다. 지하 70m 아래에 1,635m 길이로 뻗었고, 그중 일부만 관람할 수 있었다. 이곳을 통해 한 시간에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단다. 경악스러움과 함께 힘들게 작업했을 북한 주민 모습이 겹쳐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 당시 땅굴의 발견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북한은 남침용 군사 작전의 하나로 휴전선 지하에 땅굴을 뚫어 기습적인 병력 및 장비 이동을 도모했다. 땀을 흘리며 헐떡거리고 걷는 많은 외국인에게 엄지를 번쩍 들어 보였다. 세계에서 민족 분단의 아픔을 가진 유일한 곳이지 않은가.

 숨을 고르며 휴게소에 앉았다. 머리 위로 날아오는 새들이 있었다. 제비다. 처마 밑 둥지 속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 주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고향 바람이 불어오면 떠나온 둥지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만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북녘땅! 하늘 위 북쪽 창을 열어 놓은 듯 새들이 날아간다.

 

 

 

(수필)   ​​​​​​북녘을 향한 창 

이희숙

 

 

임진각에 도착했다. 이념의 경계에서 침묵하는 평화의 땅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시부모님은 황해도에서 목회하시다가, 한국전쟁 중 중공군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14일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남하하셨다. 시어머니는 한 살배기 내 남편을 업고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넜다고 했다. 곧 돌아가리라 했던 부모님의 고향을 멀리에서 바라볼 기회를 얻은 남편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실향의 아픔을 지켜보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미국에서 자란 손주들에게 할아버지의 고향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곳은 북한 실향민을 위해 세워진 평화누리공원으로 군사분계선에서 7km 남쪽에 있는 민간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끝 지점이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고, 곳곳에 세워진 벙커와 무장한 군인들을 보며 긴장했다. DMZ는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평화의 종을 품은 종각을 바라보며 낮은 언덕을 오르니 통일전망대가 투명한 자태를 드러냈다. 분단의 상징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공간이다.  

사면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서니 탁 트인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 저기가 북한 땅이 아닌가! 그리도 가고 싶어 했던 시부모님들이 태어나 자라난 고향, 조국의 땅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던 곳이라니. 유엔군을 포함한 젊은이들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산천은 예나 다를 게 없는데 분단으로 겪은 상처와 슬픔을 기억한다. 흐려진 눈동자를 애써 감추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은 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한국 현실을 형상화하고, 실향민들의 고뇌를 드러낸 소설 속의 주인공을 만나는 듯했다.  

휴전선 철조망 경계로 태극기와 북한 깃발이 펄럭였다. 멀리 개성이 보인다. 개성은 옛 고려 왕조 400여 년간 수도로서 서울, 평양, 경주와 더불어 한국사를 대표하는 4대 도시다. 조선 시대 대표적 산업도시였다. 3.8선 이남에 있었지만, 6.25 전쟁 이후 북한에 빼앗겨 북한 땅이 된 비운의 도시다. 개성 공단의 폭파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의 검은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전기를 공급하던 송전탑이 남과 북의 색깔을 달리하며 서 있었다. 이젠 개성 공단으로 통하던 길이 막혔다. 차단된 모습을 보며 가슴 한편이 싸늘해지는 걸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여전히 시내를 에워싼 송악산은 멋진 자태를 자아내고 있는데.  

다음 코스로 제3 땅굴에 다다랐다. 모든 소지품을 맡기고 헬멧을 쓴 채 급경사진 지하로 들어갔다. 물기 젖은 굴속으로 발을 조심스레 디뎠다. 흙이 아닌 돌멩이로 에워싸인 터널 안을 걸으며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키가 작은 나에겐 서서 걷기에 충분한 높이였고, 옆으로 서너 명이 함께 할 수 있는 넓이였다. 지하 70m 아래에 1,635m 길이로 뻗었고, 그중 일부 북한 경계선인 265m까지만 관람할 수 있었다. 이곳을 통해 한 시간에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단다. 경악스러움과 함께 힘들게 작업했을 북한 주민 모습이 겹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땅굴의 발견은 그 당시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북한은 남침용 군사 작전의 하나로 휴전선 지하에 땅굴을 뚫어 기습적인 병력 및 장비 이동을 도모했다.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거나 사회 혼란이나 후방 교란을 시도 하기 위해서였다. 1974년 고랑포에서 처음으로 발견됐고, 이후 네 개가 차례로 발견되었으며 서부와 중서부 전선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땀을 흘리며 헐떡거리고 걷는 많은 외국인에게 엄지를 번쩍 들어 보였다. 세계에서 민족 분단의 아픔을 가진 유일한 곳이지 않은가.  

숨을 고르며 휴게소에 앉았다. 머리 위로 날아오는 새들이 있었다. 제비다. 동화 속에서 보았던 제비가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닌가. 처마 밑에 놓인 둥지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미 제비의 날갯짓을 보았다. 둥지 속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흙담 타고 흐르던 고향 바람이 불어오면 떠나온 둥지를 기억할 것이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 바다 위로 나는 새가 떠오른다. 3국 광장을 향해 떠나는 바다에서 은혜와 아이를 상징하는 새 두 마리는 주인공을 따라다닌다. 명준이 죽음을 맞이한 후 두 새도 사라진다. 광장은 주인공의 염원이었고, 새는 자유를 상징하며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 재생의 의미를 보여준다.

그들만이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북녘땅! 하늘 위 북쪽 창이 열려있는 듯 새가 날아간다.

 

(2,142글자, 63, 원고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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