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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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크리스

2022.12.04 21:28

조형숙 조회 수:8

칠흑 같은 밤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널빤지를 잇대어 만든 벽은 옆이 꼭 맞물리지 않아  나무 틈새로 비가 새어 들어왔다. 사이가 많이 벌어진 곳은 비가 들이쳤다. 식구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벼란간 밖이 소란스럽다. 비탈 저 밑에서 사람들이 아버지 후안을 부르고 있었다. 놀란 식구들이 문밖으로 나왔을 때  "후안! 카르메니아가 미끄러졌어요. 내려와 봐요"  누군가 소리쳤다. 

"너희들은 기다리고 있어 다녀올게" 큰 형과 아버지가 회중전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빨래줄에 널려 있는 옷가지 들이 비에 젖고 있는 것이 불빛에 얼핏 보였다. 미끄러지듯 내려간 길 바닥에 검은 물체가 엎어져 있었다."까르메니아!! 눈 좀 떠봐 나야 후안." 절규하는 아빠의 외침이 언덕위의 아이들을 긴장시켰다. 크리스는 무섭고 두려워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손을 맞잡고 엄마에게 큰일이 없기를 바랐다. 엄마를 업은 검은 그림자들의 웅성거림이 아랫동네를 향하여 멀어지고 있었다. 
 
7살인 크리스천은 컴패션 후원아동으로 선택 받는 행운을 얻었다. 컴패션 센터(학교)까지는 30분을 걸어가야 한다. 혼자 산길을 가기가 심심하다. 형이나 누나 중에 누군가 선택되어 함께 다녔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하러 다니는 큰 형과 누나는 클래스가 없어 갈 수가 없다. 세살짜리 동생은 너무 어려서 갈 수가 없다. 크리스는 열심히 공부해서 기술고등학교에 가고 싶다. 졸업하고 좋은 곳에 취직하여 돈을 많이 벌면 엄마가 항상 집에 있어도 된다.  엄마가 돈벌러 나가지 않아야 엄마곁에서 동생과 놀 수 있다.   
 
학교는 넓고 깨끗해서 좋았다. 크리스천은 일주일에 두번 가는 학교가 늘 목마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보이지도 않는 학교 쪽을 내려다본다. 가파른 비탈을 뛰어내려 학교에 가고 싶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매우 따뜻하고 언제나 사랑으로 학생들을 맞아준다. 후원자들이 오는 날은 먹걸이도 많고 더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연극도 한다. 노래도 많이 부른다. 선생님이 늘 "너는 참 귀한 아이야"라고 말해 주었다. 학교만 가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무척 행복하고 좋다. 점심 시간은 특별한 음식을 먹는 즐거움에 기다려진다 
 
 크리스천의 가족은 엄마 카르메니아와 아버지 후안 그리고 9남매가 살고 있다. 일인용 침대에서 4명이  바짝 당겨 누워야 겨우 떨어지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다. 아버지와 큰 형은 바닥에 박스를 펴고 그위에 담요를 깔고 잔다. 옆 방에는 누나들이 일인용 침대를 함께 쓰고 있다. 기역자로 얼기설기 엮은 나무 침대에는 엄마와 세 살 짜리 동생이 잠을 잔다.
 
 엄마는 매일 또띠아를 90개씩 만들어 장터에 나가 팔고 있다. 또띠아는 옥수수 가루에 밀가루를 조금 섞은 다음 소금, 베이킹파우더, 식용유와 물을 넣고 함께 섞는다. 부드러워질 때 까지 잘 치대어 플라스틱에 싸서 15분을 둔다. 말랑말랑해지면 적당한 쿠기로 나누어 동그랗게 공모양르로 만든 뒤 밀대로 얇게 밀어준다. 크리스의 키만큼이나 높은 화덕에서 엄마와 누나는 동그란 또띠아를 구워낸다. 엄마는 저녁 7시에 또띠아를 들고 장에 나가 팔고 밤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 온다. 캄캄하고 좁은 길로 오다가 산 밑에 도착하면 가파른 흙길을 더듬어 집으로 올라와야 한다. 또띠아는 내다 팔면  하루 수입이 5불이다. 11명이 살아야 하는 가족에게는 턱없이 모자란다. 돈이 필요하다. 엄마는 시내에 나가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고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일을 주는 집 찾기가 어렵다. 일을 구해도 하루종일 청소하고  5불이상을 받기가 어렵다. 학교를 안다니는 형과 누나는 시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비가 오는 장터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까르메니아는 가지고 나온 또띠아를 다 팔아야했다. 어찌어찌 다 팔았을 때 밤이 꽤 깊어 있었다. 희미한 골목길을 지나 집이 있는 언덕 아래까지 도착했다. 이제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한다. 집의 불빛이 거의 가까워졌을 때 발이 진흙에 미끌어졌다. 순간적으로 어린아이 키만큼 자라있는 풀 줄기를 두 손으로 휘어 잡았다. 조금을 버티고 매달려 버둥거리자 비에 젖은 풀줄기가 흙을 빠져나오면서 카르메니아는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스치고 지나간 풀 줄기들로 손바닥은 다 까져서 피범벅이 되었다. 얼굴은 길에 박힌 짧은 나뭇가지들로 형편없이 구타를 당했다.  "살아야해 죽으면 안돼" 정신을 차리려는 카르메니아의 귓전에 들리던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비가 계속  떨어졌다. 
 
후안은 60살이고 카르메니아는 40살이다. 후안은 이제 힘든일을 할 수가 없다. 집에서 또띠아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키운다. 집 주위에 옥수수를 빙 돌려 심었다. 수확이 꽤 된다. 앞 마당에 싱싱한 토마토가 가지가 휘도록 달려 있다. 큰 나무에는 아보카도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과일 나무에서 얻는 열매로 근근히 식량을 채워간다. 크리스는 가끔 집 앞에 흐드러진 사르비아를 따서 쭈욱 빨았다. 달착지근한 맛이 좋았다.
 
집은 엄마 아빠가 손수 지었던 것으로 20년이 되었다. 산 중턱에 있는 집은 길에서 가파른 언덕을 위태롭게 올라가야 한다. 비가 오면 진흙이 무너져 내려 익숙하게 다져 놓은 길이 없어진다. 옆에 다시 새 길을 만들어야 한다. 엄마가 일하고 돌아오는 밤길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엄마가 언제나 집을 잘 찾아 오는 것이 어린 크리스천에게는 신기했는데 며칠 전 엄마가 미끄러져 누워계신 것이다. 비탈에서 미끌어진 후로 엄마는 기운 없이 하얀 얼굴을 하고 있다. 붕대를 감은 손과 두 다리는 미동도 하지 못했다. 눈은 허공을 헤매고  부운 얼굴에는 온통 자주빛이 된 상처들이 크리스천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 
 
크리스천은 학교에서 주는 점심을 먹을 수가 없다. 닭튀김을 보고 있는 데  엄마가 생각났다. 
"맛있는거 먹으면 엄마가 빨리 일어날 수 있을거야" 
크리스천은 음식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크리스야 왜 안먹고 있니? 어서 먹어"  
"선생님 배가 아파서 못 먹을 것같아요. 싸가면 안되요? " 
"그럴래?" "기다려봐. 내가 빈 그릇을 가져올게" 
"네" 
엄마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눈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배에서 꼬로록 소리가 났다. 오른 손으로 배를 한번 문질러 주었다. 배는 고프지만 엄마 점심을 들고 걷는 마음이 한없이 기뻤다. 
학교 앞에서 동네 아저씨를 만났다. 
"크리스야 엄마 괜찮으시냐? 나 지금 동네로 가는 길인데 태워줄까? 
"정말요?"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길을 아저씨의 낡은 트럭이 덜컹덜컹  움직였다. 창 밖의 나즈막한 산 위로 안개가 끼어 있다. 
 
과테말라의  코반은 일년에 6개월을 비가 오락가락한다. 그 덕분에 나무와 풀은 푸릇푸릇 생초록으로 잘 자라고 싱싱하다. 산을 따라 올라가면서  굽이 굽이 길을 내었다. 크리스천이 탄 트럭이  산비탈을 돌아 갈 때 소나무와 도토리나무가 바위 틈 사이로 자라 올라가는 것을보았다. 신기했다. 지름길로만 걸어 다녔던 크리스천에게는 시골길을 달리는 느낌이 온화하게 와 닿았다. 차를 타고 가는 동네는 걸어 다니는 동네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
크리스천은 엄마에게 드릴 점심 봉지를 가슴에 꼭 끌어 안았다. 아저씨 덕분에 빨리 엄마가 먹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며칠 전 후원자들이 가정방문할 때 가져다 준 선물꾸러미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포근하고 부드러운 담요는 단잠을 이루게 해 주었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노트와 연필, 영어로 된 동화책이 눈 앞에 펼쳐졌다. "아! 그래 엄마가 음식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크레파스로 그려야겠다. 예쁜 미소도 그려야지. 입술은 빨간색으로 칠하면 더 예쁠거야." 
엄마의 웃는 얼굴이 지나갔다. 파란 비행기가 하늘 위로 날아 올랐다. 빨간 자동차도 함께 날아 오르며 소리쳤다.
 
 "빨리 와서 우리랑 놀아요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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