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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파>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수년간 유사한 테크닉에 관심을 보였던 화가들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이다.이 운동은 순수 색채의 고양에 주력했다.이 새로운 화법은
1899년, 그룹에서 주도적 인물이었던 마티스에 의해 시작되었다.야수파라는 명칭은 당시의 비평가 루이 복셀이 1905년 가을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가리켜 마치 "야수의 우리 속에 갇혀있는 도나텔로 같다"라고 평한데서 유래되었다.
이 운동의 동인은 귀스타프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마티스, 마르케, 루오, 앙리 샤를르 망갱, 샤를르카무엥 그리고 장 퓌이등과 '샤토'로부터
블라맹크와 앙드레 드랭, 그리고 프리츠, 브라크, 뒤피의 그룹이 융합된 것이었으며 네덜란드 화가 반동겐도 참여 했다. 그들은 고호, 고갱,
신인상주의, 세잔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 작품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색채는 때로는 세잔느처럼 공간 구성에도 사용했지만
대부분 감정 및 장식적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했다.
마티스<모자 쓴 여인>
src="http://cbingoimage.naver.com/data3/bingo_95/imgbingo_96/hyejungiii/15379/hyejungiii_10.jpg"
width=132 align=right> 망갱해안의 풍경Manguin, Henri Charles 1837∼1911 파리에서 출생한
화가. 파리의 국립미술학교(Ecole des Beaux-Arts)에서 모로에게 그림을 배웠다. 초기에는 시냐크와 쇠라 등의 점묘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1차대전을 피해 스위스에서 몇 년간 피난 생활을 했으며 돌아와서는 지중해 연안의 셍-트로페(Saint-Tropez)에서
지냈다.
< 입체파>
1900년부터 1914년까지 파리에서 일어났던
미술 혁신운동을 말한다.1908년 마티스가 브라크의「에스타프 풍경」이란 연작을 평하면서 '조그만 입체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유래되었다.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잇다. 입체파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회화의 전통인 원근법과 명암법, 그리고 다채로운 색채를 쓴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지양하고, 야수파의
주정적(主情的) 인 표현을 폐기한 대신 시점(視點)을 복수화하여 색 도 녹색과 황토색만으로 한정 시켰으며, 자연의 여러 가지 형태를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으로 환원, 사물의 존재성을 이차원의 타블로로 구축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피카소, 브라크등이 이 운동의 중심이었고 그 밖에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고, 화면의 구성원리를 추구하여 추상예술의 길을 열었던
쿠프카와, 비용, 뒤샹등이 있다. 입체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피카소게르니카

브라크포르투갈 사람

<표현파>
표현주의는 야수파, 초기의 입체파, 인상주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모방을 거부한 다른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비평가들이 1911년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1911년 마르크와 러시아 출신
칸딘스키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절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절대주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 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키르히너드렌스덴의 거리

놀데황금송아지의 춤
미래파 (FUTURISM)
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 운동을 일컫는다. 이 운동은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효시인데, 마리네티는 기존의 낡은 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기계 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다이내믹한 미를 창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자극되어 이듬해 2월 카를로 카라, 옴베르토 보치오니,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쟈코모 발라의 5인의 화가가 연명으로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미술운동으로 전개되었다.1미래주의의 커다란 공적은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까지 높였다는
것과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시도한데 있다. 이 유파가 뛰어난 조형작품을 낳았다고 할 수
없지만, 현대에 있어서 예술의 소재에 대해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 의의는 크다.
다다이즘
(DADAISM)
다다이즘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문명, 반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 정신이었다.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경부터 프랑스의 화가 마르셀 뒤샹이 만 레이와 함께
뉴욕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뉴욕 다다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으로는 소위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 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등이 시도되었던 점이다. 기계적, 성적인 이미지의 사용도 특색이다. 이들 수법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예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초현실파>
"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내재된 비합리적인 감정이나 잠재의식, 환상, 공상을
새로운 표현 기법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현실을 초월하려한 화피이다." 초현실주의는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 약 20년동안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던 전위적인 문학·예술운동으로,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등 20세기에 등장한 다른 전위운동에 비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동안 가장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논쟁적인 예술운동이었다.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려 했다.
초현실주의가 표현한 방법은 바로 "색다른 낯설음" 이었는데, 그 들은 일상 생활에서의 낯익은 사물들을 일상적 맥락에서 떼어놓음으로서 성취가
된다.또 한편 그들은 콜라주와 몽타주 기법 들을 이용했는데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물 들이 엉켜있는 작품에서 당혹스러운 결과를 도출해 낸다.결국
이들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꿈을 표현해 낸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상화되고 관념화되어버려서 똑같은 삶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더 넓은 인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 운동을 예시한 미술가들은 보쉬, 아르침볼드, 피라네시, 고야, 롭스, 그리고 연대에 와서는 르동, 키리코
등으로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면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보였다. 이 들과 비슷한 특징 때문에 샤갈 또한 이 운동의 선두주자로 언급된다.미로,
아르프, 마송, 에른스트같은 화가들은 프로타주와 꿈의 현실적 재생산 사이를 넘나드는 기법을 통해 시각적인 등가물을 창조하려고 했다.
<추상파>
" 현실적인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보다는 선, 형, 색채 등의 순수한 조형 요소만을
사용하여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 화파로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추상 미술의 언어적 의미는 재현하는 대상이 없는 구체적 예술이다.
최초의 완전한 추상화는 1912년 뮌헨에서 나타나지만 추상화 전개에 있어 가장 활동적인 의욕을 보인 작가는 네덜란드의 몬드리안과 러시아 출신의
칸딘스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활동한 말레비치 등이 있다.
1. 칸딘스키<청기사> 초기에 표현주의의 마티스로 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서 밝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였다. 표현주의 그룹
청기사를 이끌었던 그는 우연히 작업실에 뒤집혀있는 자신의 작품을 보고 경탄에 마지 않고 급기야 내용이 되고 있는 사물의 형태에 의해 순수한
조형미가 불가능하다는 알게된다. 칸딘스키는 작품을 통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순수한 미적 정서를 불러 일으키고자 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점을 시사하지도 나타내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단지 작품의 제목 자체의 관념들 처럼 미적 감성을 환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몬드리안<신조형 주의> 신조형이란 말 그대로 과거의 조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조형을 말한다. 몬드리안 등에 창간된
《데슈틸》이란 전위예술 잡지가 있는데 이 데슈틸 운동의 기본목표는 초자연적인 질서를 미적으로 표현할 보편적 조형언어를 탐구하는
것이다.신조형주의의 는 가능한한 개인의 주관적 정서와 개성을 제거하려고 하며 순전히 기하학적으로 표현된다. 그의 그림은 매우 이성적이다. 그의
그림은 순수한 색으로 채색된 직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조화로운 결합은 수학적인 원칙과 음악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쇤매커를 만나 조형수학을 접하면서 부터인데 수직과 수평선이 만나 만들어지는 기하학적 형태는 근본적인 모순의 해(解)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번갈아 우주적 힘과 관계하는 것으로 노랑은 햇빛, 파랑은 무한한 넓이의 공간, 빨강은 통일의 색이었다. 이러한 사상으로 그는
노랑, 빨강, 파랑의 구성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추상 표현주의 (ABSTACT EXPRESSIONISM
)
일반적으로 1940년대와 50년대에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미국 회화사상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회화의 한 양식이다. 본래
추상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해서 사용했던 말로,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드 바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의
초기작품에 대해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을 썼었다.이 용어가 부적당하다는 견해도 있어서 비평가가 해롤드 고젠버그는 액션 페인팅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추상표현주의는 서구 근대미술의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야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한
계보와 인상주의, 입체파, 기하학적 추상의 계보를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전통적인 추상은 구상 회화의 경우처럼 인간, 사물, 풍경등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삼각형이나 원 따위, 선이나 면에 의해 생성되는 형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은 현대 회화의 한 특성으로 화면은
원근감을 잃고 평면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라운드와 전경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구상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간에
지시성과 방향성을 거부한다.
미니멀 아트 (MINIMAL ART)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조형 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킨다. 여기서 최소한이란 일루전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회화의 감동,
마티에르의 풍부함 내지 자기 표현은 곧 예술이라는 신화를 기본으로 하는 종래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이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엘즈워드 캘리, 프랭크 스텔라, 도널드 주드, 케네드 놀런드, 잭 영거맨, 래리 푼즈, 모리스 루이스 등을 들 수 있다.
<팝 아트>
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발달하여 미국 화단을 지배했던 구상 회화의 한
경향이다. '팝'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포플러(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것이 유력하다.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제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미국의 팝 아트는 1950년대 초기의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났다. 미국의 팝 아트는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 작가로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를 들 수 있다. 미국의 팝 아트는 흔히 발견되는 일상적인 이미지나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있다. 팝 아트의 작가들은 일상의 이미지를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기호나 기호체계로
사용하고 있다.특히 앤디 워홀, 로히 리히텐스타인등은 사회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미키 마우스의 이미지 -을
작품 속에 도입함으로써 기초 체계와 그들 자신의 테마를 겹쳐서 표현하고 있다.
극사실주의 (HYPER
REALISM)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새로운 경향의 회화와 조각을 일컫는다.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특징으로 한다.주관을 적극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과 같이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데 주로 의미없는
장소, 친구, 가족등이 대상으로 취급된다.극사실주의는 본질적으로 미국적인 사실주의로, 특히 팝 아트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팝 아트처럼 평상의 생활 즉 우리의 눈앞에 늘 있는 진부한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팝 아트와는 달리 그것은 극히 억제된
것으로써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다만 그 세계를 현상 그대로 다룰 뿐이다. 대표적인 작가로 척 클로즈, 하워드 캐노비츠, 맬컴 몰리, 필립 펄
스타인, 시드니 틸림등의 작가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
포스트 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후기 모더니즘은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의 각 장르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포스트 모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건축 비평가들이었는데 이는 1960년대까지 유행하던 엄격한 사각형 형태의 양식에 대한
반발로 나온 건축물에 대해 쓴 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포스트 모던'적 경향이 분화되지 않은 과거의 예술을 소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예술은 모두 '포스트 모던'의 자격을 얻는다. 포스트 모더니즘 미술가들의 또 다른
주된 특징은 모더니즘 문화와 사고 방식이 세워놓은 엄격한 지배의 틀을 거부하는데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소통이 불가능한 정치, 문화, 전문화의
영역을 깨뜨리고, 삶과 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술에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끌여 들여 비판적으로 다룬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직은 확정된
일관성 있는 체계는 아니며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욕망에 의해 촉발된 회의주의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이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의 폐허를
헤치고 나가며, 모더니즘의 부정이라는 가시적인 대안을 세우려 노력한다
<비디오아트>
비디오, 즉
텔레비전을 표현 매체로 하는 예술로 1970년대 전반부터 성행한 현대 예술의 한 경향이다. 비디오아트는 크게 나누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예술적 가능성의 추구에서 생겨난 것과 형식주의적인 예술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것이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나
제작자보다도 감상자의 주체를 중시하는 정보의 개념에 기초를 둔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아직 확실한 형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영화의 연장, 또 한편으로는 예술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거기에 공간이나 환경의 구성과도 결부되어 있어 어떤 방향에 더
가능성이 있으며, 또 어느 방향으로 귀착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비디오 아트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장르로서 미술관이나 화랑 등에 전시되어
'움직이는 전자회화(電子繪畵)'라는 애칭으로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추상과 구상
그림에 있어서 추상과 구상은 모든 다양한 장르를 구분 짖는
하나의 척도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추상이 무엇이고 구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쉽게 말해서
추상이란 형상을 배제한 그림이고 구상은 형상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즉 미켈란젤로나 네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하여 고전적 그림들은 모두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상을 이해하는데는 커다란 어려움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그린' 그림과 '못그린' 그림을 구별해낸다. 미술적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자신이 맘에 들면 잘 그린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못그린 것으로 개인적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사람들은 누구든지 구상작품에 대해서
스스로의 평가의 잣대를 갖는다.
그러나 추상작품에 대해서 사람들은 입을 다문다. 이십세기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추상작품에
대해서 사람들은 난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제멋대로의 물감 장난 같은 그림들이 최고급 명화로 유명세를 떨친다.
그러한 그림들에 대해서 미술은 소외되지 않고 오히려 더 고개를 쳐들고 사람들에게 불안감마저 심어주고 있다.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처럼 미술은
사람들에게 어느덧 다가와 있는 것이다. 추상은 수학공식과도 같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이므로 한가지 공식을 모르면 다음공식을
풀 수 없는 것이다. 한가지 스타일이 유행하면 다음 스타일은 그이전의 스타일을 바탕으로 탄생한다. 이렇게 스타일은 스타일을 낳고 번식한다.
이렇게 어려운 추상의 공식을 알려면 모든 미술의 지나간 공식과 암호를 풀어야만 가능한 것일까?
당신 자신의 언어
추상은 언어와 같다. 그림은 붓으로 표현하는 언어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들을 자신이 속한 세계의 언어를 사용한다. 예술이란 지역적 특성 외에 시간적 상황이 적용된다.
만일 어떤 그림의 시대적 배경을 알지 못한다면 그 그림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언어를 배울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라. 당신이 지금 느끼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언어로 사용하라.
구상의 추상적 요소와 예술성.
예술은 근본적 요소는 표현이다. 추상이건 구상이건 모든 그림은
표현을 목적으로 한다.한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전형적인 구상작품인 고전작품의 예를 들어보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거의 추상적 요소가
없을 만큼 정교한 필치로 이루어진 구상작품이다. 문제는 그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많은 표현이 아니다. 섬세한 머리카락 실제같은 손 꼼꼼한 옷
주름..사진같은 배경..그러나 만일 모나리자에게 미소가 없었더라면 그 그림의 가치는 그렇게 크지 않았으리라. 구상이 가지고 있는 표현적 요소는
즉 사물을 정확하게 표현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표현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무표정하고 아무 생각도 없는 얼굴을 아무리
정교하게 그려도 그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
결국은 구상이건 추상이건 어떤 표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그 표현을 위해서 모나리자와 같이 정교한 구상이 동원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묘사보다 표현이 중요하다면
구상작품에서 묘사보다는 표현 쪽으로 중점을 둘 수 있겠고 그러다 보면 묘사는 점점 간략화 되어간다. 즉 구상에서 멀어지면서 점점 추상화
되어간다고 볼 수 있다.사진이 아닌 이상 모든 그림은 표현을 위해 구상적 요소를 죽이고 있는데 그 정도가 그림마다 다름은 물론이다. 결국은
이러한 것들이 완전한 추상으로 이어져가고 있는데 완전한 추상은 구상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그림이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그림은 완전추상이
아니라 구상작품에 속하지만 완전 추상은 간딘스키나 잭슨폴록 등의 경우를 들 수 있다.
표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구상인가 추상인가가 아니라
어떤 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 가이며 그 표현을 위해서는 때로는 구상이 필요하며 때로는 추상이 필요하다. 총체적 미술의 가치를 놓고 볼 때
어떤 것(추상 구상)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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