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6.11.23 13:23

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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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61121) 소담 채영선

 

간밤에 영하로 내려간 날씨로 가을을 연출해주던 메이플트리와 뽕나무 파란 잎사귀까지 인정사정없는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키가 큰 나무에 일찍 걸어놓은 옆집 깜박이 불이 잘 보이라고 그런 걸까요. 가릴 것 없는 숲에 빤작이는 은하수가 골목길에 깔려있습니다. 옆집과 우리 집은 견우와 직녀입니다.

 

발이 빠지도록 쌓인 나뭇잎 위로 살그머니 차를 몰고 기어서갑니다. 월요일에도 초대형 마트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며칠 뒤 감사절이 민족 명절이기 때문이지요. 야채 코너 오픈 냉장고 안에 펌킨 파이가 쌓여있습니다. ‘반값이네.’ 제일 큰 명절 감사절에 대부분 좋아하는 펌킨 파이를 누구에게나 먹이고 싶은 마트는 커다란 프라이팬 사이즈로 파이를 만들어 반값으로 팔고 있습니다.

 

저거로 할까?’ 펌킨 파이 여섯 개와 감사절 기념으로 칠면조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옆집, 옆에 옆집, 옆에 옆에 옆집, 건너 집, 그리고 매일 들여다보고 사는 옆집에 1년에 한번 나누는 인사입니다. 오는 길에 들린 옆집에서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주 건너보면서 모르고 있던 일, 집주인은 수술을 받고 발목에 붕대를 감았답니다. 허리도 아픈 분이 새벽에 잠을 설치고 깨어 있기도 했던 것을 우리는 이유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도 깜박이 불을 일찍 걸어놓고 그랬나봅니다. 환한 얼굴로 우리를 초대하겠다고 하는 노신사를 위해서 더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파이를 받는 손자 친구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위해서 자주 스쿨버스 정거장에 나가 기다리는 자상한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건너 집에는 세례 받은 딸을 축하하기 위하여 다른 주에서 부모님이 와 계셨습니다.

 

인사를 주고받고 악수하고 웃으며 해피 쌩스 기빙!’ 이라 말하고 돌아서지만 그 여운은 참 오래가는 것을 느낍니다. 생각나면 기도하고, 불이 켜졌나 확인도 하고, 차가 들어왔나 지나치면서 들여다보는 것뿐이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 내 속에서 익어가는 것이 있나봅니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정원 앞마당에 깜박이 불을 걸려는 마음이 급하기만 합니다.

 

계단 가드레일에 깜박이 불을 감고 소나무와 카나디안 파인트리 위에, 그리고 가시나무 사철나무에 늘어놓으니 저녁이 되어갑니다. 어두워지면 들어오는 시간조정장치에 6시간으로 정했습니다. 그 시간이면 밤 11시까지는 반짝거릴 것입니다. 전기가 알아서 들어오고 나가는 장치를 만들어준 발명가에게도 고마울 뿐입니다. 이 간단한 장치가 없다면 추운 겨울에 나가서 일일이 키고 끄고를 반복해야할 텐데 필요한 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언제나 신세를 지고 살아갑니다.

 

을 지불하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요즘,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길들여 놓았을까요. 미안한 마음,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을 빚으로 여기게 되어서 그것을 갚아 빚에서 빨리 자유롭게 되기 위한 것은 아닐까요. 화폐가 없었던 시대에는 무엇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달했을까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면 당연히 떠오르는 것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입니다.

 

가인의 제사는 내 손으로 지은 농작물을 내 손으로 드려서 감사를 갚아 빚진 마음에서 자유롭게 되고 싶은 욕망은 아니었을까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생명으로 희생 제사를 드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다시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으며 그것을 시기한 가인은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인 것입니다.

 

붉은 몸으로 태어난 세상에서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시는 것을 받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은 갚는 것이 아니며, 갚아지는 것도 아니며, 갚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은 불에 덴 자국처럼 늘 마음 깊이 지니고 살아가야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든, 육신을 빌어 태어나게 하신 부모님께든, 감사해야할 누구에게든 무엇으로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의 표시를 말로, 글로, 포옹으로, 무엇인가를 드림으로 기념품처럼 살짝 점을 찍는 것이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아무리 큰 것을 드려도 작은 것을 나누어도 감사한 마음은 덜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언제나 감사의 빚을 지고 살아내는 것이 사람의 살아가는 도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모님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슬픈 일도 굳은 일도 잊어버리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가면 그것이 가장 존귀한 인간의 모습일 것입니다.

 

저녁을 먹고 나도 그 파이 조금 먹어 봐야지.’ 평소에 쓰지 않는 포크를 찾느라고 싱크대 서랍 안에 손을 넣고 더듬다가 오른 쪽 약지 손끝을 베었습니다. 하필이면 서 있는 칼날에 말이지요. 찬송가를 부를 시간인데 제일 많이 사용하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그만두지.’ 마음이 여린 남편은 충고를 합니다. ‘내가 질까봐?’ 유난히 즐거운 날입니다. ‘왜 이렇게 힘이 나지?’ 여름 여행 후부터 나도 모르게 줄은 체력 때문에 기운이 모자랐는데 시간이 지나가도 힘이 납니다. 오늘 이토록 힘이 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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