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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 예찬 (Hits : 156, Vote : 16)

2009.02.14 18:53

박영호 조회 수:1172 추천:79

작 성  자  :
  박영호 [] [회원정보보기] (2004-08-24 18:32:04, Hits : 156, Vote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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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제      목  :
   물빛 예찬

나는 맑은 물빛을 좋아한다.
물은 원래 색깔이 없지만 없는 그대로의 맑은 물빛이 좋은 것이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빛깔이야 다양하게 많지만, 그래도 마음이나 영혼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빛깔은 단연 물빛인 것이다. 물이나 물빛을 달리 싫어할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물과 물빛을 좋아했다.
나는 원래 태생이 경상도 이지만 자라기는 전라도 땅에서 자랐다. 이유인즉 내 부친이 내가 만 세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나는 어머니 등에 업혀서 고향을 떠나와 외가가 있는 전라도 목포에서 자랐다.
철이 들면서 나는 부친은 물론 동기간이 아무도 없는 외톨이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고향마저도 먼 곳이라고 해서 늘 나 홀로 멀리 나떨어져 있는 듯한 외로움 속에서 자랐다. 그러한 나에게 그래도 한가지 다행스런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고향을 떠나오던 네 살적의 한두 가지 기억 속에서 어렴픗하게 떠오르던 고향의 한 모습을 기억해 낼 수가 있었던 점이다. 그 것이 바로 고향의 아름다운 물빛에 대한 기억이었던 것이다.
해가 지고 사방이 차츰 어둑어둑해 질 무렵, 어머니가 나를 등에 업으신채 다른 서너 사람들과 함께 냇물을 건너고 있었는데, 주위의 정경이 그림처럼 조용하게 아름다웠던 것 같고,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등에서 내려다 보던, 그 띄엄띄엄 놓인 징검돌 사이로 소리없이 흘러내려 가던 그 냇물의 맑은 빛깔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처럼 맑은 물빛을 결코 본 일이 없다. 그 물빛에 대한 내 기억은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기억하게된 두세 가지 기억 중의 하나로, 나는 이 기억을 마음 속에 꼭 붙잡아 두고, 부친이나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이 기억을 떠올려서 그리움을 달래곤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 기억 속의 맑은 냇물 빛은 내 가슴 속의 하나의 환영 같은 것으로 남아서, 늘 내 영혼 속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성장한 한참 뒤에 자신이 좀 짜증스러워질 때면 그 때까지도 내 영혼의 주위를 맴돌고 있던 그 물빛을 두고 더러는,‘그 놈의 물빛이 있어서 내 마음이 이리도 여리고, 남달리 외로움을 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스스로 자신을 원망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 맑은 물빛이 늘 내 영혼 속에 어른거리고 있어서, 내가 자랄 때 덜 방종해 지고 조금은 바르게 자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해서인지는 몰라도 난 물을 좋아하고 물빛 보기를 즐거워 한다. 그래서 맑은 물빛은 정녕 내 삶의 원천 같음 것이고, 내 영혼의 안식처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물빛 속에는 내 사랑과 꿈이, 그리고 내겐 없어서 그리도 그리던 누나가 숨어 있고, 가슴 저미게 그리워 오는 옛 여인의 얼굴도 있고, 얼굴을 모르는 내 부친의 얼굴도 그곳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물빛 속에는 내 인생의 모든 인적(人跡)들이 살고 있고, 나는 그곳에서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그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넘나들며, 귀향의 설레임과 재회의 기쁨을 맞보기도 한다.
이 물빛을 누가 명경지수(明境之水)라 했던가, 삶에 지쳐 마음이 허망해 질 때 , 그 물가에 앉아 맑은 물을 드려다 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모든 불안도 초조함도 노을 빛처럼 그 물빛 속에 침잠되어 평온한 마음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그렇다. 불빛은 눈으로 보지만 물빛은 영혼의 눈으로 보는 것이어서 그 물빛은 늘 우리 마습?슬픔이나 고통을 덜어주고, 패배의 흉한 모습도, 회한의 상처도 씻어주고, 고향 같은 어머니의 손길로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어 다시 맑은 영혼으로 돌아가게 한다.
또한 우리는 그 깊고도 맑은 물빛 속에서 자연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잠길 수도 있다. 별빛 달빛 내리는 소리며, 이슬이 내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달밤의 갈대숲 바람 소리도, 그리고 돌돌거리며 낮게 떨어지는 물소리부터 산곡간을 울리는 폭포 소리까지 모두 들을 수 있다. 나는 이런 물소리를 좋아하고, 또한 그 물소리를 닮은 여인들의 다정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물가에 앉아 그 물소리를 닮은 옛 여인들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두고 온 언어들을 홀로 반추하며 깊은 회한에 잠기기도 한다.
‘자연의 순리란’ 물의 순리를 뜻하고 악하지 않다는 말이며, 거슬리지 않고 순종하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래서 넓은 곳에 이른다는 영원 무구의 세계를 이르는 말인 것이다. 이 자연 법칙이 우주의 법칙이고 바로 신의 섭리이기도 하다. 노자의 도덕경의 중심 사상도 바로 이 물의 이치이니, 우리가 물의 이치를 알아서 이를 닮고 배워 살면 무리가 없고, 바른 삶을 살수 있으리라 믿는다.
옛말에 수지성청(水之性淸)이란 말과 수지성욕청(水之性欲淸)이란 말이 있듯이, 물은 원래가 깨끗한 것이 본질이고, 또 늘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성질을 지닌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본래는 깨끗한 것이지만, 세상을 살면서 자꾸 더러워지는 것이니., 우리도 물을 닮고 배워서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씻어내어 맑고 바르게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처럼 물을 좋아하고 예찬까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직까지도 물을 배워 닮지를 못했으니 부끄럽고 한심한 노릇이다. 이는 내 자신이 아직도 물빛을 눈으로만 보았지, 참으로 영혼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래도 나는 여전히 물을 좋아하고, 눈만으로라도 물빛 보기를 좋아하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노릇인가?



◈ 꼬리말 쓰기


오연희 (2004-08-25 02:40:51)  

제 마음이 맑은 물빛으로 물드는것 같습니다.
오늘 기분좋은 선생님의 수필 한편 덕분에
산뜻한 하루 시작할것 같습니다.
행복하십시요!^^*  

박영호 (2004-09-04 15:50:31)  

오시인님이 다녀가신지 십여일이 지난 오늘에야 남기신 글을 보았습니다.죄송합니다.
이곳 저곳에 글도 많은데 제 글까지 읽어주셨다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저도 오시인님 글도 열심히 읽고, 문안도 좀 드리고 해야 하는데... 그저 면목아 없습니다.
늘 기쁨을 남기고 가시는 <기쁨의 전령사> 님
부디 노동절 휴가랑 즐겁게 잘 보내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최령자 (2006-02-27 06:37:15)  

영호님의 글을읽고 서울분당에있는 탄천강물이 떠오릅니다. 저는 아침일찍 산책을하기위해 이 강가로나가 강물따라한시간 정자역까지 돌아오기한시간오리역집으로옵니다. 주위에사는 많은사람들이 걷기운동을하기위해 혼자서 둘이서 가족과함께들 많이나옵니다 아침엔 주로 애완용개를 데리고나온 사람도많고 점심때는 직장인 저녁엔 퇴근하고돌아
온사람들로 이탄천강을 즐기며 걷습니다. 강동편엔산으로둘러싸여 사철을 아름답게장식하고 흐르느가물위엔 수많은 오리떼들이 먹이를 찾기위해 열심히 움직입니다 동쪽에서 서쪽을로 가끔이어진 다리도있지만 징검다리가놓여진곳도있습니다. 맑은물빛은 아닐지라도 흐르는물위로 징검다리건느며 선생님의수필이 떠올라 다녀갑니다 더좋은글 많이쓰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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