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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문 <축사> 김수영 시집 <바람아 구름아 달아>의 향기로움-최선호
2016.12.15 08:27
<축사> 김수영 시집 <바람아 구름아 달아>의 향기로움
최선호 시인, 문예비평가
시(詩)는 사랑하고, 그립고, 간절함에서 언어로 피어나는 뜨거운 서정(抒情)이다. 그 속에는 지극함이 있고, 절실함이 있고, 절절함도 있다. 언어로 표현되는 시의 경우라서 이미지를 어떻게 나타내느냐 하는 문제로 생략, 단절, 비유, 과장 등의 수법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는 마음의 감동에서 출발한다. 감동으로 출발된 시정은 어떤 외부형식에 사로잡힘이 없이 작품 내부로부터의 보다 강한 진실로써 호소한다. 시인이 가지는 진실을 형상으로까지 높이지 않으면 시적 감동을 지니기 어렵다.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아널드는 “시는 인생의 비평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시는 인생의 노래, 즉 인생을 살고 있는 시인의 노래이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시의 제재를 선택하여 구성할 때 어떤 각도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발전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다. 여기서 시적 감각을 나타내는 제재에 대한 구성상의 향방을 조율하는 발상이 요구된다. 만약 시의 구성작업 초기부터 그것이 안이하거나 애매모호하게 되면 아무리 정성을 기울일지라도 진실감을 명징하게 드러내기는 어렵다. 어느 시인이라도 현실 인식 위에서 시를 쓰게 마련이다. 따라서 시인은 상상력이나 사고력의 역할에 의해 그 느낀 바 대상의 본질을 표현함이 필요하다. 시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생활환경의 현실에 직면하여 끊임없이 주제를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으로 익혀진 시들은 거의가 서정시(抒情詩, Lyric)에 속한다. 서정시의 고전은 히브리 문학 속의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의 작품들, 그리스에서는 사포와 아나크레온의 작품들, 로마에서는 카툴루스와 오비디우스의 작품들, 이탈리아에서는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작품들, 프랑스에서는 라마르틴과 위고와 비니와 뮈세의 작품들, 독일에서는 괴테와 하이네의 작품들, 영국에서는 워즈워드와 셸리의 작품들이 서정시로 유명하다. 한국의 경우 신라의 향가, 근세조선의 시조도 서정시들이다. 특히 현대로 들어서면서 서정시는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한편, 모세, 다윗, 솔로몬을 비롯하여 브라우닝, 블레이크, 클로델, 쟘, 박두진, 박목월, 김현승, 박이도, 김소엽, 전재동, 고훈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신앙시는 절대적인 대상을 사모하고 숭배하며 신앙하여 위로와 안심 또는 행복을 얻고 죄 사함까지 받으려는 충정(衷情)으로 읊어내는 시들이다. 이런 시를 이름하여 성시(聖詩), 또는 신앙시(信仰詩)라고 이름을 붙여 왔다. 이런 면에 지극히 따뜻한 마음으로 접근해 있음을 김수영 시인에게서도 만날 수 있다. 서정시에서 인생의 감동적인 삶을, 신앙시에서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죄에 대한 용서와 은혜를 갈구하며 소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음에랴! 바로 이런 신앙시는 찬양이며 기도로써 하나님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성시로 성서에 나오는 히브리문학의 <시편>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한편, 서정시와 신앙시를 따뜻이 뿜어내고 있는 시인들이 나날이 그 수를 더해 가고 있다. 김수영 시인에게도 서정시와 신앙시의 향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럴 만한 넉넉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김 시인의 생애에서 얻어낸 결실이다. 기독교가정에서 믿음을 지켜온 김 시인은 한 발짝도 이 자리에서 물러서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미주에 와서 신학을 하여 목회학을 마치고 목회자가 되어 넓고 깊은 삶을 경험해 오고 있다. 이런 삶의 과정을 통해 참다운 생애를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뜨거움으로 가슴을 채워오고 있다. 그러므로 김 시인의 가슴을 퍼내는 서정과 신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너의 마지막 열정
나의 더러운 겉옷을 빨간 단풍 낙엽으로
물감 드리며 감싸 안는다
내 몸에서 단풍 타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단풍나무> 끝연
자연이나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물에서 자연스럽게 정서를 구해내는 문학이야말로 좋은 문학이다. “ 나의 더러운 겉옷을 빨간 단풍 낙엽으로/ 물감 드리며 감싸 안는다” 여기서 일반적 서정과 신앙적 정서를 겸하여 느낄 수 있지 않는가! 이런 시를 독자에게 선물하는 솜씨는 김수영 시인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단풍 자체는 붉게 타오르는 성령님의 모습이 아닐까. 성령님으로부터 감동함을 입은 영적 신앙세계를 표현한 색채가 바로 단풍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단풍 말고 또 무엇이 있는가. 이렇듯 온 세상 사람들이 이런 경지에서 살아간다면 세상은 단풍 든 가을 산처럼 한없이 곱고 아름다울 것이 분명하다. 김 시인의 시들은 이미 단풍처럼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물 들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스산한 가을이 와도
나 외롭지 않음은
나목처럼 헐벗은 나에게
그대의 따스한 온기가
단풍으로 옷 입히고
마음에 내리는 서리를 녹여
고목나무에 한 송이 꽃 피우는 일
사랑한다는 것은
속살까지 물이 드는 것이지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 바람에 흔들리다
발갛게 피멍이 들어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지
양파껍질처럼
벗기고 벗겨도
남는 것은 사랑의 흔적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그 흔적을 갖고
그대 만나러 먼 길 떠나는 것이지
-<사랑의 흔적> 전문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벗기고 벗겨도/남는 것은 사랑의 흔적”뿐인 것을 김 시인은 행간마다 한 자락도 놓지지 않고 꼬옥 거머쥐고 있다. 둘째 연의 “그대의 따스한 온기”는 사랑의 따스한 온기이다. 이 온기가 덧입혀 주는 단풍이야말로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신비하게 감도는 영위력(靈威力)에서 오는 색채인 것이다. 이토록 신묘한 색채의 “그 흔적을 갖고/그대 만나러 먼 길 떠나는 것”은 곱고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김 시인의 소망으로 가득 찬 인상적인 모습이다. 넷째 연에 “사랑한다는 것은/속살까지 물이 드는 것이지”라 했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움에 젖어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풍지처럼 파르르 떨던 마음이
조용히 바람이 잔다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아른거리고
모정의 깊은 강이 굽이쳐 흐른다
백자 항아리 꽃 그림 속에
어머니의 사랑이 밀물처럼 밀려오다
하늘에 걸리는 보름달
오랜 세월에도 빛 바래지 않고
어머니의 마음이 꽃가루처럼
내 마음에 묻어와
오늘도 너를 닦고 있노라면
고향의 아름다운 추억이 눈처럼 쌓이고
먼지 낀 내 마음에 국화 향기로 다가와
황홀한 순백의 눈꽃 속에
어머니와 나 함께 날개를 펴고
꿈나라로 여행가는 꿈울 꾼다
-<백자 항아리, 어머님이 주신> 전문
백자 항아리를 소재로, 그 모습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는 김 시인의 시안(詩眼)이 참으로 이채롭다. 더구나 “백자 항아리 꽃 그림 속에/어머니의 사랑이 밀물처럼 밀려오다/하늘에 걸리는 보름달”의 표현이야말로 김 시인 시 중의 백미(白眉)에 속하는 표현이다. 형이상(形而上)의 어머니의 사랑을 형이하( 形而下)의 보름달로 둔갑시켜 미적(美的)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놀라운 묘재(妙才)를 김 시인은 갖고 있다. 백자 항아리를 닦으며 이토록 풍부한 서정을 퍼내는 김 시인의 시세계는 매우 깊고 넓고 뜨거운 서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단번에 감지할 수 있다.
사랑으로 꽃을 피우시고
인내로 열매를 맺으시고
환희로 결실을 거두시던 어머니
해님처럼 밝은 마음
달님처럼 잔잔한 미소
별님처럼 영롱한 꿈을
늘 심어 주셨는데
자석처럼 나를 끌어안은
신비한 파장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나를 조용히 흔드네요
육이오 전쟁을 겪으시고
험난한 세대를 살으셔서
이마엔 주름살이 늘어나도
훈장처럼 자랑스러워 하셨네
인생에 어두운 밤이 온다 해도
당신의 사랑은 촛불처럼 마음 속에
꺼지지 않고 늘 불타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꽃으로
영원히 당신처럼
살고 싶습니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전문
“향기로운 꽃으로/영원히 당신처럼/살고 싶습니다”라고 노래하는 김 시인은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며, 어머니의 존경할 사실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다. 예로부터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말처럼 김 시인은 어머니의 모습을 꼭 빼닮았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빼닮았다 해도 어머니만큼은 어림도 없다는 판단이 자녀들이 가지는 생각이다. 김 시인의 어머니는 전란 통에도 좌절하지 않으시고 자녀들을 훌륭히 키우시고 아들딸 가림없이 모두 일류대학과 대학원을 졸업시키셨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주셨을 뿐 아니라 김 시인이 목회자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기도와 도우심으로 정성을 베푸신 분이시기에 “자석처럼 나를 끌어안은/신비한 파장/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나를 조용히 흔드네요”라고 노래할 만큼, 김 시인을 흔들어 차고 넘치도록 키우신 분이시기에 김 시인도 그런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절절한 고백이다.
황혼이 깃드네
내 인생의 뒤안길에
말없이 찾아온 낯선 나그네
슬픔과 회한과 고뇌 속에
얼룩진 나의 삶이었어
작열하는태양처럼
뜨거운 주님의 사랑이
밀물처럼 밀려와
내 영혼을 온통 불태우는데……
바닷가 모래 위에 새겨진 나의 발자취
하나 둘 셋……
나이테처럼 박힌 나의 연륜
뒤 돌아 보면 이쉬움 뿐인데
구주 되신 주님이
나의 영혼 깊은 곳에
주님 형상 이루네
오 주님!
이 기쁨 이 소망 이 평강
진주보다 귀하고 정금보다 값진 보배
무엇에다 견주리까
분수처럼 솟구치는 이 감격
가눌 길 없어
독수리처럼 푸른 창공을
마냥 날으고만 싶어라
-<노을빛 황혼> 전문
어느덧 고희를 넘기고 팔순을 바라보는 김 시인의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며 절절히 느끼는 생애의 연륜에서 주님의 은혜에 감동하고 있는 절실함이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다보고 가눌 길 없어 독수리처럼 푸른 창공을 날으고만 싶은 감동적 신앙의 외침이다. 황혼이 깃드는 인생의 저녁 때 주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오죽하랴!
“분수처럼 솟구치는 이 감격/가눌 길 없어” 독수리처럼 날고 싶은 몸짓이 김 시인의 솔직한 현실이다. 이토록 솔직한 고백은 아름다운 시의 바탕을 이룬다. 얼마나 진실하고 얼마나 절실하고 얼마나 절절한가. 이런 간절한 마음 위에 주님은 살아 계신다. 이는 신실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봄이 그리워
피어나도 수줍은 신부
마냥 떨구운 목줄기
하늘 한편 우러러 보고픈
봄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리다 마네
어찌 태어날 때부터 할민가
꽃다운 이팔청춘 어째고
처음부터 할미, 죽어서도 할미
할비 그리워 기다리는 마음
장미처럼 목타게 붉어도
못내 백발의 겉옷 벗지 못하는
할비만을 쳐다보는 한 가닥 사랑
굽어진 허리가 슬픈 운명
할비는 어디 가고 할미만 홀로 남았는가
산을 돌고 물을 건너 찾아 온 나그네
행여 할비인가, 굽힌 등 펴고
황망하게 달려가는 할미꽃
너를 보고 있노라면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나도 할머니 무덤가에 피어난 할미꽃
-<할미꽃> 전문
<할미>와 <할비>, 노인 여성과 노인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 <미>와 <비>의 재치로운 표현이 유머러스하다. 원래 여성은 <미>로 표현해 왔다. 할미, (지)어미, 아지미 등이 그것이다. “그 여자”를 “그녀”로의 표현은 순수 고유어가 아니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교수 박영준 소설가는 소설작품에 “그녀”를 “그미”로 표기한 적이 있었다. 또한 원래 남성은 <비>로 표현해 왔다. 할아비, (지)아비, 아재비 등이 그것이다. 김 시인은 이런 언어에서 느끼는 재치를 놓치지 않고 시적 적용을 하였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할미 모습과 같다고 “할미꽃”이라 이름한 것에서 연유했다. 할미와 할비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쉽게 이해되는 시이다. 김 시인은 독자를 향한 분명한 손짓을 하고 있다. 난해시가 아닌 알기 쉬운 시정으로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로 치면 흐린 물이 아니고 맑은 물이다. 물이 맑아야 내 모습이 분명하게 비쳐지지 않는가.
김 시인은 가시나무가 널려 있는 형극(荊棘)의 길을 살아왔다. 그 가운데서도 주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있는 놀라운 영안을 갖고 시집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래서 시집 제목을 "바람아 구름아 달아"라고 이름했다. 이는 형극의 길에서 가시면류관을 쓰신 주님을 그리며 태어난 꽃처럼, 그 향이 짙게 풍겨나는 서정시들이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김 시인은 자신이 주님과 함께 겪어온 고난의 삶에서 옥합에 가득한 나드(Nard)의 향기로움으로 독자들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끝으로, 김수영 시인의 멈춤 없는 정진으로 제2시집이 나오기를 기원하며 이를 축사로 가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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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목사님, 저의 시집 '바람아 구름아 달아'의 평론을 이곳에
올려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다시 읽어보니 감회
가 새롭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