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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새해맞이

2017.12.20 05:07

paulchoi 조회 수:120

 

새해맞이

 

 

또 새해를 맞는다. 한 번도 기다려 본 적 없는 새해가 해마다 나를 찾아와 주었다. 내 유년의 발을 잠그고 놀던 시냇물의 흐름같이 그렇게 잔잔한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곤 했다. 다정한 손짓이나 우렁찬 나팔소리도 없이 묵묵한 모습으로 와서 내 귀에 속삭여 주는 것이다. "아름답고 위대한 꿈을 지니고 살라".

 

나는 새해를 맞을 때마다 엎드려 기도를 올린다. 잔잔하고 묵묵한 모습으로 새해는 나를 찾아와 주지만 새해를 맞는 나는 잠시라도 잔잔하거나 묵묵할 수가 없다. 오히려 안팎으로 더 분주하기 이를 데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토록 엄청난 세월의 선물을 또 받는구나!" 생각하면 눈물이 솟구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의 내 허물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기 때문에 가는 해와 오는 해의 시간의 갈피에 엎드려 눈물어린 기도를 올리며 나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는 해에 대한 마무리와 새해를 맞을 준비에 골몰하다가 새해의 품에 안겨지곤 했을 따름이다.

 

"천명을 아는 나이"라는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여러 해를 더 지났으니, 나를 세상에 보내고 풍성한 햇살로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늘을 우러러 내 모습을 대명천지에 세워 보자는 소박한 꿈도 지녔어야 할 만한 나이를 넘긴 지도 오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또 한 번의 새해를 맞는 감격과 함께 내 건강 모두를 동원하여 "대 자연 울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지천으로 깔려 있는 풀잎들의 숨소리.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로부터 밤이 오고 가는 소리와 새벽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바람 천둥 비와 눈이 내리는 소리들의 의미에 귀 기울여 내 생애에 부족한 부분을 더 채우는 작업을 해야겠다. 산과 바다와 하늘 돌과 흙과 파도를 내 심령의 세계에 불러들여 나와 자연이 더욱 친화하는 한 해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이웃들을 향해 더욱 밝은 눈을 뜨고 그들의 가슴과 내 가슴이 진정으로 통하는 정다운 다리를 놓아가야겠다.

 

내 생활이 허락하는 대로 시간을 얻는 대로 산을 오르고 바다로 나가리라. 산에서 바다에서 울려오는 우렁찬 숨소리와 미세한 음성을 들으리라. 그 울음들을 모두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내 생활의 한복판에 꽃으로 피워 보리라.

 

지금의 나는 이민의 땅 허허한 광야에 서 있다. 가냘픈 풀잎으로 서서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바람 불면 바람을 맞는다. 추우면 얼어 있다가 더우면 땀도 흘린다. 지진이 나면 지진과 함께, 폭동이 일면 폭동과 함께 떨기도 하고 분노도 하고 더러는 눈시울도 적시면서 칼날 같은 이 현실을 달리고 있다.

 

밤이면 밤마다 날이면 날마다 희끗희끗 머리칼이 변하고 나도 모르게 내 육신은 노쇠해 갈지라도 나를 찾아오는 새해만은 늘 젊고 아름답고 위대한 모습으로 내 생애를 동행해 주고 있다. 진실과 용기로 이 세월을 따라가노라면 언젠가는 내 가슴에도 한 송이 꽃이 피어나 주리라 믿는다.

 

순수하고 밝고 위대한 영원으로 가는 한 길목인 이 새해에 작은 티끌 하나라도 떨어뜨리지 말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저 붉은 태양을 가슴 가득 안으리라.